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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엽의 미술생각 20

기사승인 2017.03.04  11: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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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화는 현실이 아니다 :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없는 이유

 

Paul Cézanne, Montagne Saint-Victoire,1895

 

현대미술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감상하는 미술에서 생각하는 미술'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미술 표현의 주된 관심사가 '무엇을 그렸느냐'에서 '어떻게 그렸느냐'로 옮겨 갔다는 것이다. 무엇을 그렸는지는 감상을 통해 내용을 찾아내면 이해도 되고 때론 감동까지 받는다.

그러나 '어떻게 그렸는지'는 표현 방식의 문제로 관찰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관찰을 통해 작품의 재료나 방법을 찾아내고, 이것이 이론적으로 타당한지 혹은 미술사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등을 따져 보는 것이 현대미술에 다가설 수 있는 길이다.

이처럼 미술이 특정한 이야기(내용)를 포장하는 수단에서 벗어나 포장 자체에만 관심을 갖게 되면서 다양한 포장술이 등장했고, 여기에는 항상 포장의 방법과 사용한 재료를 설명하는 메뉴얼이 따라 붙게 되었다. 이 메뉴얼이 미술 이론이다. 따라서 현대미술은 메뉴얼을 모르면 이해할 수가 없게 됐다.

이같은 미술의 새로운 원리를 처음 제시한 이가 폴 세잔(1839-1906)이다. 세잔의 독창적 회화가 등장한 이후 서양 미술은 3천여년 이상 지켜온 '현실세계의 재현'의 원리를 버리고 미술 만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세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인상주의가 무르익었던 시절에 화가의 길로 들어선 세잔은 인상주의자들이 자연을 해석하는 방식에 회의를 느꼈다. 인상주의자들은 빛의 반사로 인해 망막에 생긴 영상으로 자연 만물을 해석했으며, 회화는 이것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잔은 빛에 의해 순간 순간 변하는 영상은 자연 만물의 본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둠 속에서도 자연 만물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니까. 세잔은 이러한 본 모습을 그리고 싶어했다.

이를 위해 세잔은 고향인 엑상 프로방스로 내려와 수도자 같은 생활을 하면서 회화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실로 나온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생 빅투아르 산'이다. 그는 이 산을 소재로 60여점에 달하는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이쯤 되면 세잔에게 있어 생 빅투아르 산은 풍경의 주제가 아니다. 자신의 회화 연구에 가장 좋은 모델이었던 것이다. 결국은 이 산을 그리다가 죽음을 맞은 것을 보면 그가 이 산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세잔은 생 빅투아르를 그리기 위해 줄곧 장소를 바꿔 가며 야외 작업을 했다. 1906년 10월 15일에도 그는 이 산과 마주 하고 야외 이젤에 놓인 캔버스와 씨름하고 있었다. 그림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우를 피할 길이 없었다. 이때 걸린 폐렴이 원인이 되어 일주일 후 죽음을 맞은 것이다.

이 그림을 보면 딱딱한 느낌의 붓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마치 레고 블럭을 조립한듯한 견고함이 느껴진다. 자연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형태가 큐빅(세잔은 자연을 원통, 원뿔, 구로 파악함)으로 이루어졌다는 자신의 생각을 담아낸 결과다. 그리고 서양회화의 전통적인 원근법이 무시돼 버렸다. 하늘과 산은 거의 같은 색조와 붓질로 평면화돼 있다.

단지 산의 외곽선이 하늘과 산을 구분 짓고 있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화면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마을과 숲도 무질서하게 보이지만 계산된 규칙으로 처리한 붓 터치 덕분에 평면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이 그림에서는 공간의 깊이가 느껴진다. 색채의 성질을 이용하여 원근과 공간감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즉 화면 아래 부분의 숲은 따뜻하고 어두운 색조로 처리하여 안정감과 가까운 느낌을 주며, 중간의 마을은 밝고 따뜻한 색조로 아늑한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반면 원경에 속하는 산과 하늘은 차가운 색조로 처리하여 시야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주황이나 갈색, 붉은 색깔이 따뜻한 느낌을 주는 색채는 눈에 빨리 띄기 때문에 가깝게 느껴지는 반면, 청색 계열은 차가운 느낌으로 눈으로부터 멀어지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밝고 어두운 차이가 심하면 눈에 빨리 들어오기 때문에 가까워 보인다. 이러한 색채의 성질을 이론적으로 정리한 것은 인상주의 미술 덕분이다. 세잔은 회화는 색채의 성질과 붓질로 화면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그림은 산의 힘찬 모습이나 숲 속 마을의 아기자기한 조화를 나타내기 위해 그린 것이 아니다. 풍경의 정취를 재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화면의 견고하고 완벽한 구성을 위해 풍경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즉 회화라는 독자적 공간을 꾸미기 위해 현실 풍경을 빌려온 것이라고 하겠다. 만년작에 속하는 이 그림은 입체파 탄생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전준엽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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