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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만물공양으로 노동요 부르자_박필수 연출

기사승인 2019.11.27  16: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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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과 업 공유하며 ‘큰 나’로 조응하다

미황사란 절이 있어 오랫동안 괘불함에 보관하던 괘불을 대웅전 앞마당에 펼쳐 올려 법석을 연 지 올해 20년이 되었다. 괘불재는 종교적인 의미보다 민속적인 색채가 더 강하고, 일반 민중의 머릿속에는 괘불재의 내용보다 신앙의 대상이 되는 괘불 자체의 신비성이 더 강조되어 있다고 하는데..... 20회째 맞는 미황사 괘불재와 산사음악회를 첫 회부터 지금까지 20년을 이어오며 행사를 만들어 온 기획자가 박필수(55) 연출이다.

 

 

Q. 미황사 괘불제 첫 회부터 연출을 맡아 20회째를 맞는 소감은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행사가 어떻게 변했는지.. 이런 것들보다도 제 인생의 젊은 날과 가장 좋은 시절에 일 년에 한 번씩 어떤 일을 규칙적으로 해왔다는 것이 의미 깊게 남는 것 같고, 괘불제에 의해서 저를 점검하고 점검된 제 마음을 통해서 저를 표현해보고..이러한 관계 속에서 부처님과 대화하듯이 20여 년간을 이야기를 나누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1800년대 후반 미황사 중창 불사하기 위해 건립회를 조직하게 됐는데, 남해안에는 풍물패를 군고단이라고 부릅니다. 미황사군고단을 만들고, 마을사람들이 섬지방 등을 돌며 모금을 하고 다녔었는데, 한 달여 투어의 마지막 종착지가 청산도 였는데, 300m 앞두고 배가 풍랑을 만나 뒤집히면서 몰사했다. 그 때가 1890년도 무렵이었죠.

당시 저는 남해안에 풍물, 당제, 굿과 관련해 궁금한 게 많아서 20대 때부터 배우러 다니던 중, 미황사 군고단들이 동네에 왔었던 이야기, 청산도 앞바다에서 죽었다는 이야기들이 굉장히 많이 떠돌았는데, 그 이야기들이 축이 되어 들려왔었죠, 그 이후 미황사에 자주 오르게 됐고, 미황사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되고, 그런 이야기를 가지고 놀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 불교에 관한 책도 찾아 읽고, 기도도 하고 명상도 하던 중에 스님과 친분이 생겼고, 현공스님, 금강스님과도 친해지게 됐죠. 그러면서 미황사에 관한 설화를 듣게 되고 인도에서 배가 들어오게 되고, 배안에서 돌무더기를 싣고 오던 중 그 돌무더기 안에서 소 한 마리가 일어나게 되고, 싣고 가던 소가 지금의 미황사 자리에서 드러 눕고 죽었다. 죽기 전에 “미(美)~” 하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고 죽었다... 는 이야기였는데, 그것은 자기 장송곡이 아니었을까? 자기 할 일을 다한 아름다운 소리가 아니었을까? 이런 노래를 부를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서양의 추수감사절이나 옛 영고의 동맹이나 이런 것들도 정치적인 이면에 인간 본성적 측면에서 자기 땅에 감사하는 노래가 아니겠는가. 인간은 자기중심적 자아를 들여다보며 성장하는데,, 우리 사회가 각박해지는 현실에서, 그 마당에서 노래를 부르며 놀고 ‘춤추고 놀자’ 각자의 노동요를 불러보면 좋겠다 싶었죠.

 

 

- 미황사 산사음악회는 어떻게 전개 됐나요

 

2000년에 괘불재와 함께 첫 회를 시작했는데, 그때는 제가 사회를 보며, 방아노래 등 귀중한 노래를 발견해 강강수월래도 함께 불렀죠. 엄마 + 여성성 + 달, 만월이 주는 의미와 뉘앙스가 있잖아요? 판을 벌여 마음껏 놀아보자는 것이었죠. 초기에는 지역 사람 중심으로 동네에서 평생 살아온 사람들로 전통적인 방식의 놀이로 하다가 최근에는 전문 예술인 참여로 확장해서

앞에는 괘불재을 하고 의식 후 놀이 중심의 음악회를 열게 됐습니다. 사람마다 신심이 다르지만 발원이 1차적으로는 신앙의 대상이라면, 나와 부처라는 관계에서 나라는 존재가 큰 나로 조응하고 확장되고 나와 내가 한순간에도 확장될 수 있는 기회가 아닐까 싶어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끼리 어울려 서로 위로 받고 열리는 마음이 되는 시간이 되길 바라는 거지요.

 

 

- 미황사 괘불재의 특별한 점이라면

 

미황사에서는 지역사람들이 일 년 동안 내가 겪은 일과 업에 대해 ‘공유하자’는 만물공양의 의식이 있습니다. 노동에 대해 수많은 사람이 복합적인 인연으로 얽혀있는 각자의 결실을 공유하자는 것인데, 하나의 생명력이 결실로서 만물공양이 되기까지의 사연을 공유합니다.

각각의 발원의 공통적인 문제는 현사회의 현상으로 리서치의 결과를 나타내기도 하는데, 개인의 관심사가 신문고 같은 역할이 되기도 합니다, 올해도 결혼, 취업 등의 사안이 집단의식을 통해 신에게 발원되었는데, 여러 가지 사연들이 ‘놀면서 풀어보자’는 것이지요.

 

 

- 괘불재의 현대적 의미라면

‘괘불- 누워있는 것이 펼쳐져 올라 온다’ 는 것은 부처님과 접견하는 숙연함이 있습니다. 나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죠. 전통문화에서 탈피하려고 하는 의식, 그 의식이 싹 터가는 과제는 계몽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인간은 변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요, 과거 몇 백 년 유물의 가치를 넘어서 우리 사회의 일반적 현상에서 볼 때, 펼침에서 괘불이라고 하는 유기적 존재와 3천 년 전의 존재가 아닌, 우리 마음의 괘불을 올릴 수 있는 자신감, 능동감을 갖자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큰그림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펼침으로서 나의 발원도 묻어간다는 뜻.

괘불재라고 하는 독립된 행사라기보다 아침, 점심밥을 먹는 것처럼, 내 몸이, 괘불재가 무엇을 펼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중심된 생각이 계속 뚫고 나간다고 보면, 펼칠 때는 또 다른 신비로움이 있고, 똑같은 행사가 이어나가면서 그 안에 담긴 공감이 정체성이 아닐까싶습니다.

 

 

- 괘불재 행사의 지속적인 방향성은

사람의 변화가 필요하다, 일차적으로는 기획자들이 젊어져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놀 수 있는 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 노동에 대한 가치를 곱씹고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괘불을 통해 갖는다고 한다면, 인간의 삶이 그 자체는 고(苦)이지만 살만하지 않을까.

일단은 만물공양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를 유도하려고 하고, 마실장도 그런 의도에서 마련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들도 참여하고 있는데, 불교의식이라기보다 날마다 뜨는 해, 적당히 불어주는 바람, 햇빛..이런 자연의 혜택 없이 우리가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에 대해 하루쯤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런 행사를 하기에 미황사가 딱 좋은 장소가 아니겠는가 싶고, 이어져 나갈 수 있으리라 봅니다.

 

 

 

-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대해

 

일반적인 행사를 왕성히 하는 사람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존경받을만한 사람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보편적인 무리의 사람도 아니지만.. 설령 누구나, 농사를 짓는 사람도 그만한 외로움들을 갖고 있고, 자기 가치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을 때도 있지만, 또 한편 그것을 말할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쩌면 누구나 그런 고립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부분에서 개별화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또 그런 일들이 끊임없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글. 사진 임효정 기자 / 해남 미황사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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