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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갤러리] 사실과 추상을 양립시키는 조형어법_정재성

기사승인 2021.01.16  20:3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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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상을 재해석하는 조형적 관점

가을 추억을 위한 구성Ⅱ│91.0X91.0cm│Oil on canvas

세상은 본래 하나의 모습이지만 사람에 따라 저마다 다르게 보인다. 이는 미적 감수성의 차이에 기인한다. 미적 감수성이 예민한 화가는 아무리 하찮은 풀잎일지라도 그로부터 향기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한다. 따라서 그 풀잎이 실제보다도 아름답게 묘사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림이 지향하는 보편적인 목표는 이상화된 현실, 즉 승화된 아름다움에 있기 때문이다. 정재성은 타고난 예술가적인 미적 감수성으로 세상을 응시한다. 그의 미적 감수성은 표현 충동을 유도하는 물상과 마주했을 때 거의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듯싶다. 소재가 무엇이든지 경쾌한 감각으로 형태를 만들어가고 채색을 덧붙이는 과정이 마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그 자연스러움은 미적인 감흥에 이끌리는 흥취이자 리듬인 것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기술적인 숙련과 상관없는 듯싶은 초감각적인 터치가 화면을 풍요롭게 한다. 다시 말해 선묘 중심이 아니라 형태를 의식하지 않는 발랄하고도 경쾌한 터치만으로 이루어지는 듯싶다. 그러기에 물상간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이는 물상의 형태를 의식하지 않은 채 자유로운 감성적 표현을 중시한 결과이다. 이러한 기법은 본능적인 유희와 흡사한, 자기 흥취에 깊이 빠져들지 않고는 안 된다. 그래서일까. 제어되지 않는 자유로운 미적 감각이 현란한 몸짓을 한다. 여기에는 필경 미적 쾌감이 따른다. 붓이 캔버스에 발을 딛지 않고 물위를 미끄러지듯, 아주 경쾌한 몸짓으로 물상을 형용하는 그의 그림은 확실히 기존의 묘사방식과는 다른 점이 있다. 선과 명암 중심의 묘사방식이 아닌 까닭에 형태는 명확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명확한 형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실제의 형상을 복원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비록 형상이 구체적이지 않을지라도 이미 실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형태묘사에 비중을 두지 않을 뿐,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풍경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조은 날│162.2X97.0cm│Oil on canvas

형태묘사에 대한 의지가 강하지 않은 것은 형태보다는 전체적인 인상을 중시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실제로 그의 이전 작품에서 구체적인 형태묘사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부분적으로 보면 추상작업처럼 보일 정도였다. 만일 집이나 나무 따위의 형체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감성적인 표현이 풍부한 추상회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고 보면 그의 작업은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교묘히 오가면서 그 조화를 모색하는 형국이다. 현실을 응시하면서 추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이미지만으로는 미적 감각을 주체할 수 없다면, 추상과의 제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는 보이는 세계 그 이면에 존재하는 감각적이거나 정신적인 가치를 표현하는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구상보다 추상적인 이미지를 강화하는 그의 그림에서는 사실적인 작품에서는 얻을 수 없는 감각적인 색채의 조화가 두드러진다. 명암기법을 의식하지 않음으로써 보다 자유로운 색채이미지의 전개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추상적인 이미지는 다채로운 색반色斑이나 색면이 장악하고 있다. 반면에 구상적인 이미지는 최소한의 선묘를 통해 형태를 부각시키고자 한다. 이처럼 두 가지 이질적인 이미지를 하나로 통합하는 그의 조형어법은 어느 면에서는 위태로워 보인다. 자칫하면 부조화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그는 이 두 가지 상반된 이미지를 교묘히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작품에 따라서는 반추상으로 간주될 수도 있지만 화면을 주도하는 것은 역시 구상이다. 즉, 현실에서 취재된 풍경화로서의 면모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선묘 중심의 구상적인 이미지가 가세하지 않더라도 순수 추상화로서도 능히 자립할 수 있다.

어느 날│80.0X40.0cm│Oil on canvas

정재성의 풍경화에서 구도는 전체상에서 나타날 뿐, 부분적으로는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는지 알 수 없다. 이는 자유로운 추상적인 표현을 허용하는데 기인한다. 지극히 감성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색채 이미지로서의 추상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가운데 어느 순간 은근히 형태를 드러내면서 작업이 마무리된다. 이는 역시 형태묘사 그 자체보다는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색채 이미지가 주는 시각적인 포만감을 우선시하는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러한 감각적인 표현을 억제하면서 좀 더 신중해지는 유연함을 보인다. 예민한 미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경쾌한 붓 터치에다 힘과 여유를 보탬으로써 한층 차분해지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색채도 이전보다 두터워져 묵직한 무게감이 실린다. 이는 작업하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나면서 화면의 구조적인 안정감을 의식하기 시작했음을 말해준다. 뿐만아니라 작업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미적 감흥에 의탁하는 경쾌한 붓놀림 대신에 비로소 형태묘사를 의식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 이와 같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림은 여전히 발랄하고 경쾌하다. 물상간의 경계를 분명하게 처리하지 않음으로써 시각적으로 부드럽고 온화하며 환상적인 일면도 보인다. 마치 안개 풍경을 바라보듯이 상이 선명하지 않고 모호하게 처리되는 까닭이다. 이는 형태묘사보다는 색채 이미지를 통한 포름의 중요성을 의식한 결과인데, 상대적으로 현실성을 약화 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현실성이 약화된 자리에는 환상적이고 이국적인 정서가 깃들이게 된다. 그래서 작품에 따라서는 낯선 이국 풍경과 마주하고 있는 듯싶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최근의 작품은 작업시간에 비례하듯 색채 이미지가 농밀해짐과 동시에 두터워지고 있다. 새삼 기름 물감이라는 재료가 가지고 있는 두텁고도 깊은 맛이 주는 시각적인 안정감을 외면할 수 없다는 자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감각적인 터치도 좀 더 신중해지는 경향이다. 이로 인해 화면은 한층 구조적으로 견고해지고 안정된다. 발랄한 이미지가 약화되는 대신에 색채가 농후해짐으로써 안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가을 추억을 위한 구성Ⅰ │162.2X79.7cm│Oil on canvas

최근의 풍경화는 확실히 이전보다 한층 물리적으로 숙성된 시각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이는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히 물감을 쌓아올리는 식의 채색기법과 연관성이 있다. 땅을 다지듯 물감을 캔버스에 견고하게 밀착시키는 데는 시간과 반복적인 붓질이 요구된다. 이 과정에서 발랄하고 경쾌한 감각적인 터치는 절제되고 감성적인 표현은 순화된다. 이에 따라 시각적인 즐거움이 감소하는 자리에는 정신성이 거처하게 된다. 사려 깊은 시각적인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다. 작업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반복적인 행위가 이어지면서 사유의 여유가 생기는 셈이다. 어쩌면 이 과정에서 비로소 내면을 반영한다는 점을 의식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점차 색면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혀가는 것도 바람직하다. 구체적인 형태미를 지양하여 색채 포름을 중시한다면 평면적인 해석은 필수적이다. 그리하여 평면이 견실해지면 추상적인 감각 또한 상승하게 마련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정재성이 최근에 시작한 일련의 정물화는 추상적인 이미지, 또는 색채 포름을 기반으로 한다. 색반과 평면적인 이미지로 요약되는 정물화의 추상적인 이미지는 풍경화에서 익힌 조형감각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 오히려 정물화에서는 추상적인 이미지가 더욱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추상적인 이미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완성된 추상회화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 신뢰할 수 있을 만큼 밀도감이 느껴질뿐더러 구조적인 견고함이 있다. 평면적인 색채구성이라고 할 수 있는 추상적인 이미지는 다채로운 중간색조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시각적인 이미지가 현란하다. 크고 작은 색반과 색면의 조합으로 이루어지는 구성적인 화면구조는 확실히 색다른 제안이다.

 

이렇듯이 견실한 추상적인 이미지의 공간 속으로 사실적인 형태가 들어선다. 꽃을 소재로 한 정물화라는 일반화된 공식을 따르고 있다. 다채로운 추상적인 이미지를 배경으로 거느리는 정물은 현란한 시각 속에 놓인다. 정물의 소재와 배경이 서로의 영역을 조금치도 양보하지 않는 상황이다. 즉, 소재와 배경이 주도권을 다투는 상황이어서 화면은 긴장감으로 넘친다. 소재의 형태는 애매함이 없이 명확하게 묘사된다. 추상적인 배경 또한 색채가 두텁고도 선명하고 강렬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로써 서로 다른 이미지간의 상충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이 시선을 자극한다. 그 긴장감이야말로 그의 그림이 가지고 있는 조형적인 특징이다. 사실과 추상 두 진영 간의 대결구도가 팽팽한 조형적인 긴장상황을 연출하는 것이다. 이미지가 너무도 선명하고 강렬하여 감상자를 긴장시킬 정도이다. 그렇다. 그의 정물화는 우리의 느슨한 감정을 일깨우는 힘과 긴장을 내포하고 있다. 이렇듯이 새로운 조형적인 관점에서 출몰한 정물화는 시각적인 긴장감 및 현란함과 함께 장식성이 풍부하다. 어떤 공간에 놓이더라도 그 분위기를 장악할 수 있을 만큼 자기주장이 강렬한 것이다. 한편 평면적인 이미지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질감을 도입하기도 한다. 물감을 두텁게 바른다거나 믹스트 미디어 따위의 재료를 이용하여 부분적으로 질감을 강조함으로써 평면적인 색채구성이라는 상황을 반전시키려는 것이다. 질감을 제한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전체적인 통일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미점과 같은 시각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색면 대비 및 조화라는 추상적인 이미지가 추구하는 평면구조는 때로 단조로울 수도 있음을 의식한 결과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진일보한 조형적인 사고 및 표현방법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더욱 명확하게 부각시키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 물상을 보다 풍요로운 시각적인 이미지로 재해석하는 그의 조형적인 관점은 열린 현대미학의 요구에 부합하는 점이 있다. 전통적인 습속으로부터 자신의 조형적인 관점 및 세계관을 해방시키려는 의지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신항섭(미술평론가)

 

 

 

정재성 (丁在星) JUNG, Jae Sung

 

개인전 제38회 (서울, 대전, LA, New Yo가, 후쿠오카, 성남)

 

작품소장

백두산 600호, 한라산 100호(서울/전경련 회관)

想-가을추억 이미지를 위한 구성 100호(서울/한국은행 본점)

가을인상 120호 (대전/도시철도시설관리공단)

행복한꿈 500호 (대전/도시철도시설관리공단)

6.25전쟁기록화 300호 (서울/용산 전쟁기념관)

SBS 황금의 제국 작품협찬

 

 

양몽원 기자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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