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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 흔해 빠진 낡은 것은 가라! _SAMOⓒ

기사승인 2021.02.17  23: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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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관을 쓴 ‘검은 피카소’_장 미쉘 바스키아

미술시장 분석의 객관적인 기준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프랑스의 미술시장 분석회사 아트프라이스는 2010년 ‘현대미술시장 2009/2010: 아트프라이스 연간보고서’를 통해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팔리는 현대미술작가로 장 미쉘 마스키아(1960-1988)를 1위로 꼽았다.

‘검은 피카소’라 불리는 현대미술의 이단아, 자유와 저항의 아이콘,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작가로 유명한 장 미쉘 바스키아의 전시가 <장 미쉘 바스키아 거리, 영웅, 예술>이란 타이틀로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바스키아는 2017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제프 쿤스와 호크니를 제치고 최고 경매가 1,240억 원이라는 낙찰가로 기록을 갱신했다. 이번 전시는 국내 최초 대규모 회고전으로 150여 점의 작품들이 한국에 와 전시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8일 시작된 이후 그동안 관람객 10만 명을 돌파하며 연장전에 돌입해 2월 20일까지 전시된다. 이번 전시의 작품가는 1조원, 보험료만 5억원에 이르며, 바스키아의 유명세와 더불어 그의 다양한 작품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만큼 대중과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비싼 작가와 예술성

전시는 ‘거리’, ‘영웅’, ‘예술’ 이라는 키워드로 8년 동안의 짧은 기간 활동하다 28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불꽃처럼 살다간 인물에 대해 핵심 키워드를 중심으로 작품을 전시하고 있어 집약적으로 바스키아를 이해하기 쉽게 구성되어 있었다.

부제로 쓰인 '거리, 영웅, 예술'의 키워드가 다른 말로 '뼈, 왕관, 앤디'로 치환되어 와닿았다.

바스키아는 3천 점에 이르는 드로잉과 1,000점이 넘는 회화와 조각을 남겼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거리의 낙서에서 캔버스 작품으로 들어오게 되는 시작점에 있는 작품 ‘뉴욕, 뉴욕’(1981)부터 간결한 특징을 보여주는 창틀을 떼어 드로잉한 ‘여분의 담배’(1982), ‘무제’ 그리고 이번 전시작 중 가장 비싼 그림으로 2천 억 원을 호가하는 ‘다른 길 옆 들판 The Field Next to Road’(1981) 등 주요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키스 해링, 앤디 워홀과 교감하며 활동한 사진 등은 별도 섹션으로 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인종차별이 심한 뉴욕에서 흑인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 출신으로 태어나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뉴욕의 미술관을 다니며 미술사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쌓았던 바스키아가 세이모(SAMO) 팀 활동을 하며 거리의 낙서 작업을 하다 앤디 워홀의 영향에 힘입어 뉴욕 화단에 등단, 일약 스타덤에 오르기까지, 인기.... 그럼에도 늘 외롭고 고독했던 이단아, 스타가 되길 원했던, 제왕이 되고 싶었던, 그가 자신의 그림 속 아이콘으로 그려 넣었던 ‘왕관’의 상징, 영웅에 대한 오마주와 찬사, 초월적 존재로 인종차별을 넘어 인정받고자 자신이 부여했던 권위로서 왕관! 그것은 오늘날 현대인의 공통된 욕망으로서 사랑받고 주목받고 싶은 생, 화려한 인생을 꿈꾸는 일그러진 우리 자신들의 초상의 일면이기도 하다. 교통사고 후 관심 갖게 된 해부학에 대한 관심과 지식은 이후 그의 전 작품에 드러나게 되니 아마도 ‘뼈’가 의미하는 다중적인 암시로부터 그의 저항과 항거가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자유-저항-영웅

그의 전 작품에 박혀있는 왕관은 어떤 의미일까?

“I wanted to be a star!” 바스키아는 주목받는 삶을 살고 싶어했고, 스타에 대한 열망이 컸다. 카리브해에 있는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 출신 어머니로부터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아프리카 이민 온 흑인노예를 선조로 하는 후예인 셈이다. 회계사 아버지와 그림에 관심 많은 어머니의 교양있는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지만 교통사고 이후 부모의 이혼과 가족의 이산으로 가출과 방황의 시기를 겪으며 대안학교에서 만난 학교 친구로 그라피티 작가인 알 디아스와 그라피티 그룹 세이모(SAMO: Same Old Shit)를 만들어 소호에서 그라피티 작업을 하면서 미술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앤디 워홀과 가까워지면서 영향받고 같이 공동작업도 하게 되어 앤디워홀처럼 대중에게 사랑받고 싶었으나 그렇지 못했다. 그는 지독한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었던 것도 같다. 작품을 인정받고 돈도 벌고 유명해졌음에도 끝내 백인사회에서 검은 피부색의 인종차별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고독감은 사회적 편견과 억압에 대한 저항으로 나타나 있다. 그의 스타에 대한 열망은 전 작품을 관통하며 스포츠 스타와 재즈계에 관심을 갖게 했고, 야구선수 헨리 루이스 행크 애런에 대한 헌정으로 ‘무제’(1981)속에 망치와 못 등 다양한 부호와 상징으로 고통과 아픔의 심벌로 박혀있다. 그밖에 ‘갈색 폭격기’라 불리던 권투선수 성 조 루이스(1982), 무하마드 알리도 그의 영웅이었다. 또한, 재즈계의 혜성 찰리 파커에 대한 열정적 애정은 ‘지금이 그때’(1985)라는 작품에 표현되어 있다. 자유로움과 비애가 섞인 재즈는 즉흥성, 본능성 등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었을 것이다.

전시장에는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자유, 저항, 영웅’-에 대한 에스프리가 노랗게, 빨갛게 화폭에서 강렬한 빛을 발산하고 있다. 불꽃처럼 화려하게 한순간 타올라 분방하게, 분연히 살다간 예술가의 혼이, 그의 삶이.. 작품 속에 각인되어 진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epilogue

바스키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앤디 워홀과의 관계가 이번 전시에 별도의 섹션으로 뚜렷이 드러나 있어 특별히 주목된다. 바스키아는 아프리카로부터 전해지는 유전적 원형질과 다른 문화가 교잡된 혼혈아로 평생을 떠도는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떠도는 디아스포라적 삶을 살았다. 그 가운데 앤디 워홀과의 만남은 탈출구이자 위로이며 스승이자 친구로서 깊이 의존했던 터라 그를 떠난 이후 채울 수 없는 공백은 갈등과 고민이 심해지고 약물에 빠져들고, 결국 사망에 이른다. 전시를 보고 온 후 다큐 영화 <BASQUIA>와 자신이 직접 출연한 영화 <DOWNTOWN 81>를 찾아보며 든든한 후원자로 조력자로 친구같이 의지하던 앤디 워홀 사망 후 약물로 요절하기까지,, 떠도는 정체성, 부유하는 삶으로 뉴욕의 화려함 뒤에 숨겨진 타고난 천재의 고독과 슬픔은 현대의 누구나에게도 다름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바스키아의 예술적 업적은 거리의 낙서를 시적인 그라피티로 변환해 미술관에 들인 것이라고도 한다. 인종차별과 불평등과 사회적 편견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가볍지 않게 작품 속에 녹아 있다. 가라피티로부터 분리된 예술은 기술(techne)에서 다시 예술(techne)로 진화된다. 그의 작품이, 작품 속에 담겨진 생(生)이, 삶의 흔적으로 남아 ‘비싼 작가’로 대중에게 공감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닐까.

<장 미셸 바스키아: 거리·영웅·예술>展 10.8-2021.2.20 롯데뮤지엄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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