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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수의 무빙액트] 현실과 환상 사이로 난 골목길

기사승인 2021.02.18  00: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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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지공간의 <모파상에 대한 고백>

‘철의 골목’ 을지로에 걸어 들었다. 큼직한 카메라를 둘러메거나, 성능 좋은 신형 스마트폰을 손에 든 젊은이들이 쇳소리 튀어오르는 을지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좁고 낡은 길이다. 녹이 슬었고, 때가 묻었다. 칠이 까진 귀퉁이마다 세월의 먼지가 덕지덕지 눌러앉은 벽들이 까맣게 변해버린 시멘트 속살을 그대로 내보인 채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카메라가 찰칵거린다. 가까이 다가가 유심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무엇을 발견했는지 환호하며 쪼르르 달려가 포즈를 잡기도 한다. 곧바로 그들의 인스타그램에 사진이 오른다. #힙지로 #뉴트로 #감성맛집... 요 몇 년 사이 많은 동네들이 떴다가 졌다. 싹 다 갈아엎던 재개발 대신 도시재생이란 이름이 더 친숙해진지도 제법 오래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길쭉한 단어도 이미 익숙해졌다. 하지만 을지로에는 또 다른 냄새가 난다. 그곳에는 아직도 골뱅이와 노가리가 살아 있고, 힘차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가 있고, 팔을 걷어붙이고 일하는 현재진행형의 노동이 있다. 그 인쇄, 기계, 금속, 가구, 타일, 공구, 미싱의 골목 사이사이 어딘가에 티 내지 않는 젊은 힙쟁이들이 예술의 거점을 형성하고 오늘도 작품을 지어 올리고 있다.

을지로4가역 2번 출구로 나와 철물점 옆 해장국집과 인쇄소 사이로 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을지공간’이라는 극장이 나온다. 매우 현실적인 공간이면서 동시에 좀 뜬금이 없어 비현실적이기도 한 이 극장에서 며칠 전, 페이스북을 통해 <가상극장>의 티켓을 보내왔다. 제목은 <모파상에 대한 고백(장정인 총괄연출)>.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이자 세계 3대 단편 소설가로 손꼽히는 ‘기 드 모파상’에 대한 이야기로, 정신질환과 매독을 앓았던 ‘모파상’과 그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온 정신과 의사 ‘앙리’의 만남을 통해 <오를라>와 같은 환상소설을 쓰게 된 모파상의 말년의 삶과 그가 품었던 두려움의 정체를 들추고 있다.

 

‘입장하기’를 누르니, 공연 영상 위에 적힌 ‘인터랙티브 씨어터’라는 소개가 먼저 눈에 띈다. 연극은 본질적으로 상호작용의 예술이며, 관객과의 상호작용은 작품을 완성하는 최종단계이자, 연극을 존재하게 하는 바탕이다. 특별히 인터랙티브를 표방하는 공연의 경우, 관객이 선택하는 방향에 따라 결과가 바뀌는 것이 주된 특징인데, 이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더욱 친숙해진 방법이기도 하다. 이 공연 역시 이야기의 변곡점에서 선택지를 내밀기는 하지만, 선택에 의한 상황의 변화보다 더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카메라라는 기록매체의 특징이기도 한, 시점과 시선의 방향과 거리이다.

 

코로나의 시대를 만난 오늘의 공연예술가들은 공연 소통의 방식과 기록의 방법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했다. 물론 영상이 공연의 현장성과 순간성을 대체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별로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인터랙티브라는 방식도 ‘한 인간이 운명의 갈림길에서 내리는 선택을 지켜보며,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불순한 감정을 배출하는 것’이 연극 본래의 가치라는 고전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종교배로 태어난 변종과 다름없다. 하지만, 오늘날 연극의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 때로는 놀이가 되고, 때로는 체험이 된다. 첨단 기술은 스펙터클의 한계를 끊임없이 깨트리고 있다. 가상극장 <모파상에 대한 고백>은 ‘관객 배치의 다양성’이라는 현대연극의 대표적인 특징에 새로운 상상을 덧붙여주었다. 그것은 관객이 시선의 방향과 거리를 선택하여 볼 수 있는 연극이다.

 

불과 한두 해 전에 우리는 무대와 객석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연극을 보는 이머시브 공연의 유행을 마주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숨 샐 틈 없는 마스크와 잔뜩 움츠린 두 칸 띄기의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한계는 아이디어를 부추긴다. 극장 제일 뒷자리에서 보다가, 클릭 한 번으로 극장 제일 앞자리로 이동하고, 인물 A(모파상)의 시점에서 보다가, 원한다면 B(앙리)의 시선으로도 볼 수 있는 공연. 나아가 가상현실의 시대가 공연의 기록과 체험 양쪽에서 이미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음을 실감한다. 기가 막히고 길이 막히는 이 시대에도 좁은 골목을 이리저리 꺾어가며 멋스럽게 제 길을 가는 청춘들로 인해 오늘도 을지로 골목이 힙하다.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namsulse@hanmail.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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