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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의 풀어쓴 정가] 봄날의 나른함을 맞이하는 느긋한 여유

기사승인 2021.03.16  08:4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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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⑪ 가사 <춘면곡>(春眠曲)

 

⑪ 가사 <춘면곡>(春眠曲)

 

춘면(春眠)을 느짓 깨어 죽창(竹窓)을 반개(半開)허니

정화(庭花)는 작작(灼灼)헌데 가는 나비를 머무는 듯

안류(岸柳)는 의의(依依)허여 성긴 내를 띄웠에라

창전(窓前)에 덜 괸 술을 이삼배(二三盃) 먹은 후에 호탕(豪蕩)하야 미친 흥을

부절(不絶)없이 자아내서 백마금편(白馬金鞭)으로 야유원(冶遊園)을 찾아가니 화향(花香)은 습의(襲衣)허고

월색(月色)은 만정(滿庭)헌데 광객(狂客)인 듯 취객(醉客)인 듯

흥을 겨워 머무는 듯 배회(徘徊) 고면(顧眄)허여 유정(有情)히 섰노라니 취와주란(翠瓦朱欄) 높은 집에 녹의홍상(綠衣紅裳) 일미인(一美人)이 사창(沙窓)을 반개(半開)허고 옥안(玉顔)을 잠깐 들어 웃는 듯 반기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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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졸음 느긋이 깨어 대살창문 반쯤 여니

뜰에 핀 꽃이 화려한데 가는 나비 머무는 듯

강 언덕엔 버들이 무성하여 안개가 드문드문 뵈는구나

창문 앞 덜 익은 술을 두세 잔 먹은 후에 호탕하여 미친 흥을

끊임없이 자아내어 백마 타고 금빛 채찍 들고 기생집을 찾아가니 꽃향기는 옷에 스미고

달빛은 뜰에 가득한데 미친 사람인 듯 술 취한 사람인 듯

흥에 겨워 머무는 듯 여기저기 돌아보며 정을 주고 섰노라니 푸른 기와 붉은 난간 높은 집에 녹색 저고리 붉은 치마 입은 한 미인이 비단 창문 반쯤 열고 예쁜 얼굴을 잠깐 울어 웃는 듯 반기는 듯

(국립국악원 『풀어쓴 정가』 2018:119)

 

 

김희겸 <석천한유도>

<춘면곡>은 전승되고 있는 12가사(十二歌詞) 중 가장 애창되는 곡이다. 7장으로 이루어진 <춘면곡>은 노곤한 봄날의 졸음을 뜻하는 곡의 제목처럼 꿈인지 현실인지 나른하고 몽롱한 봄날의 애상을 노래한다. 많은 애정상사(愛情相思)의 화자는 여성인데 반해 <춘면곡>은 드물게 발견되는 사대부의 애정시가의 전통이 담겨있다. 봄에 느긋이 잠에서 깬 선비가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곧 이별하게 되어 괴로워한다는 내용이라 알려져 있다. 12가사 <춘면곡>보다 문학 <춘면곡>은 이본(異本)이 많은데, 대부분 노래곡의 7장보다 길이가 길고 사설 내용이 상세하다.

정가(正歌) 중 가곡과 시조에 비해 자유로운 형식과 진솔한 감정표현이 특징인 가사는 음악적으로도 음역이 좁고 단조로운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춘면곡>도 <매화가>와 마찬가지로 떠는 소리(요성, 搖聲)는 민요 서도소리와 유사한 특징을 갖는데, 속소리인 가성(假聲)의 사용이나, 종지마다 상행하면서 슬며시 사라지는 음악적 특징은 <춘면곡>의 정취와 유독 잘 어우러진다. 가곡과 달리 엄격한 기악반주의 규칙대신 수성(隨聲)가락으로 거문고, 대금, 단소 등 단촐한 기악반주에 얹혀 부르는 가사는, 특히 <춘면곡>에서 듣는 이로 하여금 노래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한다. 노래의 구성에 있어 남녀구분이 엄격한 가곡(歌曲)에 비해 가사는 남녀 가창자 모두 부르는 곡이라는 점에서도 다른데 그래서인지 가곡에서 남성 가창자에게 엄격히 제한된 세성(細聲)이 가사에서는 흔히 사용되고 있어 음악적으로 흥미롭다.

『청구영언』 , 『고금가곡』, 『해동유요』, 『가사육종』, 『남훈태평가』, 『협률대성』 『가곡원류』 등 11종의 가집에 실려있고, 『삼죽금보(三竹琴譜)』에는 거문고 악보로, 『일사금보(一蓑琴譜)』에는 양금 악보로 전해져 오고 있음을 볼 때, 오늘 날 뿐 아니라 노래가 창작되고 불리웠던 당대에도 유행곡이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실제 <춘면곡>은 19세기 서울의 가창 공간에서 가장 널리 불리던 노래다. <춘면곡>은 사대부와 시정, 중앙과 지역, 정가(正歌)와 속가(俗歌)의 문화가 교섭했던 당대 문화의 일면을 이해해볼 수 있게 해 주는 텍스트이기도 하다.

 

혜원 신윤복 <주유청강>

봄날의 풍류 문화는 조선의 대표적 풍속화가이자 도화서 화원이었던 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 1758~1814년경)의 <상춘야흥(賞春野興)>이나 <주유청강(舟遊淸江)>(일명 선유도 船遊圖(1805년), 그리고 정선(鄭歚)의 제자로 도화서 화원이었던 불염재(不染齋) 혹은 불염자(不染子) 김희겸(金喜謙, ?~?)의 <석천한유도(石泉閒遊圖)> 등을 통해 더욱 잘 짐작해 볼 수 있다. 특히 서도지역과의 교섭을 통해 서도음악적 특색을 갖게 된 <춘면곡>을 통해서 조선시대 연행사(燕行使: 조선 후기 청나라에 보낸 조선 사신의 총칭)들이 서도를 지나면서 지역의 관아에서 배푼 연향에서 즐긴 관기가무와 강상에서의 선유놀음, 그리고 대동강 뱃놀이 등 자연에서의 공연 감상의 사적인 음악향유문화등 <주유청강>같은 그림을 통해 그 일면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10여 분에 이르도록 느짓하게 부르는 <춘면곡>의 유려함은 봄날의 나른함 속으로 우리를 초대하는 듯하다.

 

가사 <춘면곡>

노래:홍원기(洪元基, 1922-1997,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https://www.youtube.com/watch?v=I9eoLuPi6Sc

 

노래:조일하, 대금:노붕래, 월금:고보석, 장구:안성일 <국립국악원 정악단>

https://www.youtube.com/watch?v=2Y5Q9X1lIbU

 

 

김희선 국민대학교 교수, 문화재청 무형문화재 전문위원

 

김희선 국민대학교(교양대학) 교수. 문화재청 문화재&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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