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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지금 좋은음악2] 아파도 괜찮아. 파란노을

기사승인 2021.05.05  11: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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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노을의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 있으니까

파란노을

이 음반에 대해 흠을 잡으려면 얼마든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녹음 상태가 좋지 않다고, 실제 연주를 하지 않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만든 소리라고 트집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누가 포스트록이나 슈게이징 음악을 듣느냐고 비웃을 수도 있다. 뮤지션 자신이 누구인지 드러내지 않는 태도를 문제시 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음반이 전 세계 음악 마니아들의 평점으로 구성되는 웹진 레이트유어뮤직 2021년 음반 차트에서(https://rateyourmusic.com/charts/) 4위에 올라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4,125명이 듣고 매긴 점수이다. 피치포크에서도 이 음반에 8.0이라는 높은 점수를 주었다. 급기야 동아일보에서 그를 인터뷰 했고, 대중음악 담당 기자의 칼럼에서도 이 음반을 언급했다. 파란노을의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이다.

이쯤 되면 멜론이나 벅스 같은 온라인 음악 서비스 사이트에서 이 음반을 찾아볼 것이다. 하지만 이 음반은 거기서 듣지는 못한다. 이 음반을 들으려면 유튜브나 밴드캠프로 가야 한다. 밴드캠프의 파란노을 페이지에서 이 음반의 카세트테이프(!)가 솔드아웃 되어 더 이상 구할 수 없고, 4월 16일 현재 유튜브에서 62,227이라는 조회수를 올리고 있으며, 댓글이 442개 달렸는데 영어 댓글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파란노을의 인기가 조금은 실감날지 모른다.

사실 우리의 취향은 좀처럼 만나지 못한다. 온라인 음악서비스 차트의 순위대로 듣는 사람의 취향을 취향이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음악을 일부러 찾아 듣고,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이상 공연장에 가는 사람의 취향만 취향이라고 존중하고 싶은 옹졸한 마음인데, 그 사람들이 듣는 음악도 번번이 엇갈린다. 그러므로 파란노을의 음반이 해외의 음악 마니아들에게 각광을 받고, 그 덕분에 한국의 음악 마니아들이 뒤늦게 찾아 듣게 되는 일은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이 순환 과정은 현재의 음악시장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BTS, 빌리 아이리쉬(Billie Eilish), 루이스 폰시(Luis Fonsi)만이 음악시장의 전부가 아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Gaz4EJObiw

 

사설이 너무 길었다. 파란노을의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을 들어보면 안다. 마이크가 없어서 스마트폰에 대고 노래를 녹음하고, 침실 컴퓨터 앞에서 싸구려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가상악기로 모든 것을 연주했다는 사실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슈게이즈(shoegaze)라는 장르에 로파이 사운드는 맞춤한 듯 어울린다. 음반에 담은 10곡의 노래가 흐르는 1시간 동안 감동을 받는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피해망상, 열등감, 추억팔이, 비적응, 도피, 환상과 환멸, 발악, 가장 보통의 존재, 무기력, 그리고 자살.’이라는 날카로운 감정 때문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멘탈리티라고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이 음반은 어떠한 설명을 확인하지 않고 들어도 설득된다. 여러 번 울컥하게 된다. 음반 곳곳에 흐르는 연주와 멜로디, 곡의 구성으로 구현해낸 아찔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이 음반에는 ‘릴리 슈슈, NHK에 어서오세요, 잘자 푼푼,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등 제 청소년기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것들에 대한 레퍼런스가 담겨져’ 있다. ‘최근 힘들었던 3년동안 느껴왔던 감정들도 솔직하게 담겨져’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레퍼런스로 삼았는가 라거나 얼마나 솔직한지가 아니다. 슈게이징/포스트록 마니아들이 이 음반을 들으면 어떤 음악을 레퍼런스로 삼았는지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렉트릭 기타 아르페지오 연주나 웅얼거리듯 노래하는 보컬로 구현해낸 멜로디, 감정을 쌓아가다 일순간 터트리며 계속 끌고 가는 곡의 구성 앞에서 마음이 몽글몽글 해지고 쓸쓸해지지 않기는 불가능하다. 있어야 할 것들이 있어야 할 순간에 있고, 파란노을의 음악은 과거의 어법을 답습하지 않는다. 자신이 느낀 절망이 서정적인 음악으로 치환되어 계속 듣는 이를 엄습한다. 나는 당신도 이 음악에 찔렸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고 삶은 누구에게나 버거우니까. 누군가는 나도 그렇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기 위해 노래하고 있으니까. 누군가는 알아듣고 화답하면서 계속 노래할 수 있게 하는 세상은 아직 살아볼만 하니까.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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