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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아의 길 위의 음악 ① 이란편

기사승인 2017.03.18  02:3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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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 속에 뿌리박은 이란의 전통음악

 

생활 속에 뿌리박은 전통음악

- 이란의 전통 현악기 셰타르

 

음악여행의 첫 행선지를 이란으로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모스크바 공항에서 테헤란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 앞에서 해외공연을 다녀오는 듯 보이는 이란 음악가들을 만났을 때 어쩌면 그것이 우리 음악여행이 순조롭게 풀릴 것이란 징조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는데 아니나 다를까 별다른 사전 준비나 기획도 없이 떠난 여행이었음에도 수많은 음악가들을 만나 그들의 음악을 듣고 기록할 수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뚜렷했기 때문에 아주 작은 기회라도 놓치지 않았던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란 사람들의 음악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타고난 음악적 재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믿는다.

처음으로 방문한 도시 테헤란은 크기와 인구가 서울의 1.5배나 되는 거대도시다. 도시의 외관은 팔레비왕조 시절 지어진 고층빌딩들이 79년 종교혁명 이후 서방의 경제제재로 자재수급이 원활치 않아 적절한 유지보수를 하지 못해 흉물스런 모습으로 남아있고 산유국의 저렴한 연료 덕에 도로에 넘쳐나는 낡은 수입차들이 내뿜는 매연이 고통스러워 웬만하면 바로 떠나고 싶었으나 도시가 커진다는 것은 물자 뿐 아니라 사람도 모여들기 때문이니 음악가들도 가장 많을 것이 분명하므로 테헤란을 건너뛸 수는 없었다.

특수지역이 아니라면 세상 어디라도 자유여행을 하는 편이지만 이란은 글자도 못 읽고 숫자조차 못 읽는 터라 십 수 년째 현지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가이드 김선생을 이틀 동안 고용했다. 우리가 김선생에게 부탁한 것은 딱 한 가지였다. 박물관이나 유적지 등은 별로 궁금하지 않으니 이란 전통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달라는 것이었다. 일이 되려니 그랬던 것인가 한국인 가이드 김선생은 음 악하는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었고 전통악기 만드는 장인도 친구로 두고 있어서 계약을 사흘로 연장해야 할 만큼 많은 음악 관련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란의 고전음악 환경은 세계시장에 널리 알려진 명인들의 경우 코흘리개들부터 산골 아주머니들까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스타덤을 누리고 있고 방송은 틀기만 하면 고전음악이 흘러나오니 우리끼리 얘기로 이란은 모든 채널이 다 국악방송인 것 같다고 할 정도여서 박물관에 들어간 형국인 우리 국악이 처한 환경에 비하면 행복하겠다 싶은데도 밀려들어오는 서양음악에 위기를 느끼는 탓일까 끊임없는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고전음악의 틀 안에서만 변화를 시도하는 이들이 있고 타 장르와의 협업이나 퓨젼을 활발히 시도하는 이들도 있다. 이번 편에서는 고전음악을 가르치는 명인 두 분의 연습실 방문기를 올리고자 한다.

 

 

음악인생 35년이라는 전통현악기 세타르 명인 바이야니 선생이 연습도 하고 레슨을 하는 공간은 낡은 콘크리트 건물의 3층에 있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니 어느 전통 가옥에라도 들어온 듯 기품 있는 인테리어가 눈을 사로잡았는데, 얇은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이 품격을 더해주고 있었다.

전통음악을 가르치고 배우는 장소로서는 이보다 더 완벽할 순 없을 듯했다. 선생은 악기 연주 시범을 보여주기 전에 이란 고전음악의 체계에 관해서 관련 자료집들을 이것저것 꺼내어 보여주시며 오랜 시간 깊이 있는 설명을 해주셨다. 선생이 연주하는 악기 세타르는 이란의 수많은 현악기 중에서 타르 카만체 산뚜르 등과 함께 가장 중요한 현악기 중의 하나이다.

스물대여섯 개의 프렛이 붙은 가늘고 긴 목에 물방울 모양의 작은 공명통을 가졌으며 예전에는 줄이 세 개였지만 18세기에 와서 네 줄이 되었다. 세타르의 ‘세’는 셋이란 뜻이며 ‘타르’는 현이란 뜻이다. 중앙아시아인들이 많이 연주하는 두 줄 현악기 두타르는 두 줄 악기인 걸 보면 숫자 세는 것만큼은 만국공통의 어원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연주법은 주로 검지손 가락으로 주선율을 연주하며 개방현 주법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매우 영롱하고 섬세한 소리를 낸다.

이란 고전음악은 이론 체계가 잘 정리되어 있을뿐더러 교습방법 또한 오랫동안 축적된 방식이 체계적이기 이를 데 없다. 가장 큰 특징은 언제나 즉흥으로 연주된다는 것인데 즉흥이라 하지만 오랜 기간 습득한 선율을 순간의 감흥과 관객의 반응에 따라 규칙 안에서 연주하게 되는 것이므로 독주뿐 아니라 합주도 마치 오랜 기간 함께 연습한 연주처럼 들린다.

 

 

프로연주자들은 구셰라고 하는 250여 개의 기본 선율들을 암기한 다음 그것들이 어떻게 조합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경우의 조합체계를 체득한 다음에야 진정한 프로가 될 수 있어 최소한 10년 정도의 학습 기간이 걸린다. 전통음악 교육이 이런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음악은 제대로 교육받은 자라면 어느 누가 즉흥으로 구성하더라도 전통음악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두 번째 방문한 분은 고전성악을 가르치는 팔라 선생이신데 이란 고전성악계의 수퍼스타 모하메드레자 샤자리안을 비롯한 대 성악가들도 여럿 거쳐 간 분이다. 선생의 작업실은 바이야니 선생의 작업실과 정확히 대비되는 분위기였는데 현대적인 인테리어에 커다란 미술 작품들이 할로겐 조명을 받으며 벽을 가득 채우고 있어 갤러리라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을 듯했다.

작품들은 모두 선생이 그린 것들로서 캘리그래피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었다. 선생은 성악 뿐 아니라 화가로서도 유명한 분이신데 성악 레슨보다 미술작품 활동이 주 수입원이라 한다. 이란의 음악가들은 자신의 대표 악기 외에도 웬만한 전통 악기들을 두루 다룰 수 있고 캘리그래피로 유명한 분들이 많다고 한다.

먼저 소개한 세타르 명인 바이야니 선생은 아랍권 미술의 주요 장르인 세밀화의 대가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도 요즘 세대들은 전공 악기 하나밖에 못 하지만 예전 세대의 명인들은 모든 악기를 두루두루 다룰 수 있었다는 얘길 들었는데 시켜서 하는 예술가와 좋아서 하는 예술가의 차이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팔라 선생의 작업실엔 우리가 방문했을 때 마침 레슨이 진행 중이어서 교습하는 모습도 보고 제자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30대부터 50대까지 고른 연령층의 제자들은 모두 생계를 위한 직업이 따로 있는 분들로서 일과를 끝내고 소리를 배우러 오신 분들이었다. 밖에서 보기에 취미생활을 할 만큼 넉넉한 환경이 아닐 것 같은데도 모두들 참 열심히 음악생활을 하는 것을 보며 국민소득 지수로 문화향유 수준을 판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감탄스러웠다.

 

 

신경아 프랑스문화원 홍보담당관으로 일하다 정년퇴직한 남편(최상일 PD)과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프로젝트를 실행하기 위해 정년을 5년여 남겨둔 2015년 말 30여 년 동안의 직장인 생활을 청산하고 세계의 음악을 찾아가는 여행을 하고 있다. 이들은 일반적인 세계일주 여행자들이 택하는, 한번 떠나서 전 세계를 휘돌아오는 방식을 취하지 않고 음악이 좋은 나라 한두 개를 선택해 몇 달 동안 집중적으로 여행하고, 돌아와 몇 달 쉬면서 전열을 정비한 후 다시 새로운 행선지로 떠나는, 깊고 느린 여행을 한다. 2016년 한 해 동안 이란과 터키 인도네시아를 여행했고 지금은 서아프리카 지역을 여행 중이다.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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