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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브갤러리] Non-existent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_전영기

기사승인 2022.03.15  12:3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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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기 작가

Unpractical Construction-160101, Pencil on Canvas,132x132cm, 2016. (1)

전영기-도시건물의 안과 밖

전영기는 격자형의 패턴으로 빼곡한 도시건물을 사진으로 찍고 이를 참조해서, 일부분을 확대하거나 또는 전면화시켜 캔버스 표면 위로 안착시켰다. 원근법적 시선은 지워지고 전일적인 시선만이 가득하다. 오로지 건물의 외부장식만을, 창문만을 응시하게 한다. 건물의 피부만을 압도적으로 밀착해서 보여주는 이 시선은 무엇보다도 화면의 평면성을 더욱 강조하는 형국이다. 평면성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다시 그려진 건물의 이미지 위에 선들을 유영시킨다. 그 선들은 입체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다시 평면으로 되돌려 보내는 동시에 자족적인 생을 산다. 혹은 꽃잎이나 물고기, 원형 이미지 역시 건물 위에서 부유하면서 인공의 도시적 미감에 자연과 유기적 생명체의 호흡 내지는 직선에 반하는 곡선을 겹쳐놓는다. 부분적으로 바니쉬로 칠해진 부위는 조명/빛과 시선의 각도, 동선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거듭하면서 반짝인다. 이 투명한 빛의 반짝임은 화면을 가득 채운 창/유리의 질감과 또한 맞물린다. 표면의 얼룩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거듭하는 것이다.

Unpractical Construction, Ball-pen on Canvas, 91x72.7cm, 2017. (1)

궁극적으로 작가는 도시 빌딩의 투명하게 반사되는 창을 그리고 있다. 창이란 건물의 안과 밖을 구분하고 내부에서 외부로 향해 열리는 통로이자 외부에서 안을 엿보는 틈을 만들어준다. 동시에 창 그 자체는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외부를 가득 담아준다. 그래서 창 그 자체는 스크린이자 화면이 된다. 건물의 창들은 보는 이들에게 창 안을 상상하게 하고 몽상에 젖게 한다. 작가는 다양한 건물의 다채로운 창들을 보면서 상상력을 부풀려낸다. 건물 내에 자리한 무수한 창문, 틀마다 저 마다 생의 사연이 있고 그 공간에서 살아가는 이들만이 삶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것을 상상해본다. 그런 상상을 하면서 도시를 보행명상한다. 소요한다. 그래서 그는 다시 그 창문을 응시한다. 그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상황과 내용을 상상해본다. 작가는 그렇게 완강하고 견고한 건물의 외부를 뚫고 그 안으로 상상력을 밀어 넣는다. 이 상상력의 장력이 건물이 견고한 외관을 엿가락처럼 녹인다.

 

도시는 삶의 공간이자 매일의 일상이 전개되는 실존적 장소이고 아울러 무수한 볼거리를 안기는 거대한 전시장이다. 강철과 유리, 콘크리트로 이루어진 도시의 외관은 단단함 속에 투명함으로 난반사된다. 작가는 도시를 배회하다가 마주친 건물의 외벽, 특히 창에 주목했다. 무엇보다도 수직으로 치솟은 장엄하고 숭고한 건축물의 구조, 단호한 질감으로 둘러쳐진 건물의 물성, 투명하게 반짝이면서 안을 드러내고 동시에 외부풍경을 비쳐주는 유리 등이 만들어내는 매혹적인 볼거리가 시선을 잡아끈 것이다.

Non-existent, 72x60cm, Ballpen & Oil on canvas, 2021.

그는 "도시 풍경의 인공미와 절대미를 작업의 모티브로 하여 특히 반복적인 형태인 창문과 그 프레임 안에 담긴 이미지를 탐구"(작가노트)하고자 한다. 그래서 다양한 건물의 창 이미지를 수집하고 동시에 그 창에 비친 외부의 풍경을 좀 더 극적으로 굴절, 왜곡시켜 보여준다. 결과는 기이한 선들의 추상적 흔적이다. 마치 낯선 시공간 속의 세계를 보는 듯 하다. 모든 것은 다 일그러지고 휘어지고 흔들리며 꿈틀댄다. 나른하고 느리게 선회하는 곡선들의 세계는 날카롭고 딱딱한 도시를 주물러놓는다. 현실적 시공간이 갑자기 탈바꿈하는 순간이다.

Non-existent, 117x72cm, Ballpen Oil-Mixed Media on canvas, 2021. (1)

오늘날 도시는 구체적인 생존의 장이면서도 심미적인 공간으로 기능한다. 도회의 미감이란 인공적인 구조물이 만들어내는 모든 것에서 발아한다. 그 중에서도 건축물은 도시풍경의 핵심이다. 작가는 건축물의 외관, 특히 반복적 형태로 배열된 창문과 그 프레임 안에 담긴, 어른거리는 이미지를 모티브로 삼았다. 창을 통해 반사되는 외부의 풍경이미지를 포착한다. 이미 창문이란 프레임 자체가 화면이자 동시에 이미지이고 나아가 평면적인 회화 그 자체가 되었다.

Non-existent , 40x70cm, Ballpen & Oil on canvas, 2021.

그는 건물의 창을 찍은 후에 그 결과물인 사진을 일부러 구겨놓거나 주름을 잡아 이를 다시 캔버스에, 실크스크린으로 옮겼다. 사진은 구체적인 세계의 재현이기 이전에 인화지라는 물질 위에 투사된 흔적이다. 사진의 존재론적 조건인 평면의 인화지를 구기고 접어놓아 그 안에 자리한 이미지를 변형하고 왜곡시키는 제스처다. 이는 사진에서 보여 지는 명징한 재현성을 의도적으로 훼손하고 대신 변형을 겪으며 탈바꿈되는 왜곡상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음을 드러낸다. 실크스크린으로 찍어 화면에 밀착시킨 후 그 위에 다시 밑바탕의 이미지를 참조하면서 선을 긋고 그리고 칠하고, 동시에 지우고 삭제하고 변형을 가해 또 다른 이미지를 산출해가는 식이다. 그것은 기계적 이미지에 아날로그적인 손의 흔적을 부단히 올려놓아 그 둘이 경계없이 맞물려 빚어내는 묘한 상황성의 드러냄이다. 특히나 작가는 촘촘하고 치밀한 선의 개입을 통해 희박하게 드러나는 실크스크린 이미지를 손작업, 회화로 환생시키고 모노톤을 유지하는 드로잉의 치밀함도 구사한다. 그것은 사진과 판화, 드로잉이 구분없이 얽혀 만들어나가는 이미지다. 동시에 사진을 재조합해서 몇 개의 중첩된 이미지를 만들어 보여주기도 한다. 그것은 이미 기존에 있는 건물을 자의적으로 변형하는 묘한 쾌감내지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건물에 대한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편이다.

Non-existent , 132x132cm, Ballpen on canvas, 2021. (1)

작가는 자신을 둘러싼 공간, 환경이미지를 작업의 모티브로 삼고 이를 기계적이며 동시에 인간적인 이미지 제작 방식의 혼효를 통해 도시에서 받은 미감에의 매료와 동시에 그로부터 마찰음을 내는 어떤 틈에 대한 발언을 형상화한다. 가시적이면서도 비가시적인 것이 혼재된 이 풍경은 단순한 건물의 외관에 대한 기록이나 재현에 머물지 않는다. 그로부터 벗어나 이 도시란 물리적 공간이 자신의 육체와 감수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색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박영택(경기대학교교수, 미술평론)

 

 

 

전영기 작가

작가 노트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_Non-existent

그림을 마주하면서 한 걸음 더 가까이 나아가 보이는 것이 진짜 세상의 보일 겁니다. 작은 부분들의 집합으로 전체를 이루는 조직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치 인체의 기초 단위세포들이 모여 전인적인 인간의 모습을 만드는 것처럼 작품에서 아주 미세한 기하학적 기본 단위들의 표식들이 모여 전체의 표상을 형성해 나아갑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어느 순간 뜬금없이 나타나 형성된 것은 아닐겁니다. 너무나 흔한 거리를 걷는 와중에 길 건너편 창에 투영되는 풍경, 무심코 젖힌 커튼 사이로 보이는 도시풍경 속의 사람들의 장면, 누구나 겪어 봤을 만한 연속적 장면들이 즐비한 영화 속에서도... 분명 현상들의 조합과 조직으로 인하여 이데아의 세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사용한 재료는 연필과 볼펜입니다.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으며 누구나 한 번쯤은 끄적끄적 되었을 법한 재료입니다. 그런 만만한 재료일 수도 있는 도구로서 그려서 잘 그린다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이 아닌 나만의 특별한 의도를 담고 그린 작품이기에 재료는 언제나 신발처럼 표현 의도와 원하는 기법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위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 작가는 한 가지의 표현 방법과 스타일을 고수하는 것이 이래적인 것에 비해 변화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유화로도 그려보고 다른 재료로도 그려보는 것에 기대됩니다. 작은 세포들의 기본형들로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현실적 풍경을 충분히 가상의 공간으로 만들어 실제적 진실의 세계를 보여주고 알리고 싶습니다.

 

 

 

양몽원 양몽원 기자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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