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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의 못 가본 전시] 베드타운을 밝힌 빛의 만찬_<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기사승인 2022.06.21  16: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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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_오연서 학예사_북서울미술관

존 브렛, <도싯셔 절벽에서 바라본 영국 해협>, 1871, 캔버스에 유채, 1006 x 212.7 cm. 테이트미술관 소장: 브렛 여사 1902년 기증, N01902.관람객이 그림을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코로나19 방역수칙 아래 미술관을 찾는 발길이 뜸해진 때, 도시 외곽의 베드타운이라는 지리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미술 애호가 사이에 호평을 이어가며 9만 명이 다녀갔다. 오랜 시간 전염병 아래 움츠러든 사람들의 마음에 한 줄기 빛을 선사한 전시,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빛』을 찾아, 전시를 기획한 오연서 학예사를 만났다.

 

시민 요구에서 한 발 더

『빛』은 어떻게 시작된 전시인가요?

북서울미술관에는 지난 6년 동안 세계적인 수준의 작품을 보고 싶다는 주민의 요구가 꾸준히 있었어요. 그 요구에 부응해 2020년에 예산이 배정됐고, 코로나로 1년 연기됐다가 이번에 전시를 열었어요.

『빛』은 2021년에 상하이 푸동뮤지엄에서 개관전으로 처음 열렸어요. 당시에 테이트미술관이 푸동뮤지엄과 협약을 체결했는데, 전시뿐 아니라 컨설팅과 교육도 함께 받는다는 내용이었어요. 그렇게 협력관계가 굳건해지니까, 테이트에서도 미술 사조나 작가에 따라서 분류하는 기존의 블록버스터 전시가 아닌, ‘빛’이라는 주제 아래 대규모 기획전을 열 수 있었어요.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미 2019년에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를 열면서 테이트미술관과 협력관계를 맺은 바 있어요. 그 관계를 바탕으로 이번 전시에서 테이트미술관 소장품 중에 걸작만을 골라서 다양하게 들여올 수 있었어요. 『빛』은 이번 서울 전시를 마치고 멜버른과 오클랜드에 이어, 일본의 두 개 도시까지 모두 6회에 걸쳐 전 세계를 돌며 열릴 예정입니다.

 

 

백남준의 <촛불TV>는 북서울미술관 전시에서만 볼 수 있겠군요.

네, 백남준의 작품 세계가 빛이라는 주제와 직결될 뿐 아니라 한국에서 하는 전시니까 추가하고 싶댔더니, 테이트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꼭 넣는 게 좋겠다고 했어요. 티브이라는 뉴 미디어 안에 촛불이라는 올드 미디어가 있는 풍경이, 이 전시에 나온 43명의 작가들이 200년 동안 만든 작품을 포괄한다고 생각해서, 프롤로그와 같이 전시장 입구에 배치했어요.

 

백남준, <촛불 TV>, 1975(1999). 초 1개, 철제 TV 케이스 1대,34 x 36 x 41 cm. 백남준아트센터 소장: &#169; 백남준에스테이트, 016사진 &#169; 김상태

 

시민의 요구에 따라, 탄탄한 기획을 발굴해서, 섬세하게 현지화한 것, 이 세 가지 외에 이 전시의 성공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라이브커머스를 두 번 했어요. 오픈마켓에서 생방송으로 티켓을 파는 데, 함께 열린 다른 블록버스터 전시의 방송보다 『빛』은 동시간 접속자가 두 배 이상 많았어요. 그런데 티켓은 그 전시의 반도 안 팔린 거예요. 이유가 뭘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두 시간 넘게 회의를 하고 내린 결론이 이거였어요. ‘오픈마켓의 라이브커머스는 주요 접속자가 아이들 데리고 전시장에 가는 엄마들이다. 그런데 이 전시는 MZ세대가 많이 온다.’ 나중에 MZ세대가 즐겨 보는 유튜브 사이트에서 라이브커머스를 했더니 금방 팔렸어요. 『빛』은 MZ세대가 즐겨 찾는 장소에서 열리지는 않았지만. 전시 콘텐트는 그들의 취향에 잘 맞았다고 생각해요. 『빛』에는 다른 블록버스터 전시랑 다르게 동시대 미술이 많고, 매체가 다양하잖아요. 또 빛이라는 주제가 어렵다는 분이 많았는데, 기존에 빛이라는 주제로 인문학적 성과를 보여주는 전시가 없었던 점이 오히려 관람객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거로 생각해요.

 

전시를 열면서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출품한 작가가 많고 매체가 다양한 점, 전시 주제가 생소한 점이 전시를 홍보할 때는 맹점이 되더라고요. 여기 나온 43명 모두가 기라성 같은 작간데, 그중에 모네만 강조해서 소개할 수도 없고 터렐만 소개할 수도 없었어요. 게다가 이미 전시에 ‘빛’이라는 제목을 쓰는 순간, 구체성이나 특수성이 완전히 사라진 거예요. 그래서 전시 중반에 8일 동안 전시장에서 제가 직접 설명해 드리는 특별 도슨트를 했어요. 그렇게 설명을 해드리고 나면 즐거워하면서 가시는 분이 많았어요.

 

오연서 학예사가 윌리엄 터너의 『빛과 색채(괴테의 이론)-대홍수 후의 아침』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169; 이기호

 

특별히 애착이 가는 전시실이 있나요?

10 전시실 ‘실내의 빛’이요. 거기 에피소드가 있어요. 필립 파레노의 <저녁 6시>는 한국에서 카펫 원단을 잘라서 피터(fitter)가 끼워 맞춰서 만든 작품이에요. 우선 작가가 정해준 카펫 브랜드에서 정해준 색상의 원단을 수입했죠. 작품 제작에 필요한 원단은 모두 세 가지 색이고, 제일 짙은 색은 제일 많이 필요하니까 두 롤이 필요했는데 한 롤이 안 온 거예요. 결국 한국에서 비슷한 색의 카펫을 사서 짰는데 찰떡같이 잘 맞더라고요.

필립 파레노의 설치 작품 <저녁 6시>는 현장 제작 설치 후 폐기된다. 사진 &#169; 이기호

 

존 컨스터블의 풍경화와 울라퍼 엘리아슨의 <우주 먼지 입자>가 한 공간에 있는 모습은 부자연스러웠어요.

시대상으로는 컨스터블(6 전시실) 다음이 인상주의(4 전시실)에요. 모네가 아직 인상주의를 완성하기 전이었던 1870년에 런던으로 피난 갔다가, 컨스터블이랑 터너의 작품을 보고, 인상주의를 완성하거든요.  2 전시실에 있는 터너의 <호수에 지는 석양>은 작품 제목을 보지 않으면 무엇을 그렸는지 알 수 없게 색채와 분위기만 있는데 마치 인상주의 작품과 화풍이 흡사해요. 이후 영국에서 프랑스로 돌아온 모네가 인상주의를 완성하고, 신인상주의 작가들이 더 과학적으로 빛을 분석한 다음에 동시대 작품이 나오게 돼요. 전체 전시에서 인상주의에 하이라이트를 주려고 ‘4. 빛의 인상’ 전시실을 따로 뺐어요.

존 컨스터블의 풍경화와 울라퍼 엘리아슨의 <우주먼지 입자>가 한 공간에 전시되었다. 사진 &#169; 이기호

 

첫 전시관에서 새 교과서를 받았을 때의 느낌을 받았고, 마지막 전시관을 나오니까 미술관 밖에 있는 빛이 새롭게 보였어요.

『빛』은 전시를 통해 작품이 새롭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구성된 전시예요. 크게는 시대 순서를 따르지만, 중간에 현대 작품이 섞여 있어요. 예를 들어 1 전시실에는 아니쉬 카푸어가 있는데, 근대 작품들이 모여있는 곳에서 현대 작품을 보면서 종교나 몰입과 같은 주제에 대해 시대를 관통해서 생각해볼 수 있겠죠. 또 회화와 설치를 무 자르듯이 나눠놓고 보는 게 아니라 같은 주제 아래서 맥락을 연결시켜 봄으로써 관람객 스스로 경험의 폭을 넓혀가실 수 있기를 바랐어요.

 

‘4 전시실에는 인상주의 작품들이 모여있는 한가운데 쿠사마 야요이 작품이 있거든요. 그동안은 빛의 인상이라는 게 뭔지 생각해보지 않고, ‘모네 - 인상주의’ 이런 식으로 교과서적으로 답습했다면, 여기서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에서 거울 들여다보면서 ‘빛의 인상이라는 게 이렇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구나.’ 하고 몸으로 느껴보고, 모네도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걸 그렸겠구나 그렇게 생각해보실 수 있기를 바랐어요.

 

 

 

 

『빛』 이렇게 보였습니다

 

 

전시장 밖에서 관람평을 들었다.

인터뷰이 최선영은 프랑스 리옹3대학에서 시각문화와 미학을 전공하고, 국민대학교 문화교차학과에서 미학을 강의하고 있다.

 

『빛』은 어떤 점이 좋았나요?

사실 저는 블록버스터 전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사람이 많으면 제가 보는데 방해가 되거든요. 그리고 너무 작품이 많으면 피곤해져요. 너무 생각할 게 많잖아요. 시각적으로도 피곤하고. 이 전시는 섹션을 나눠놓으니까 보기 편했어요. 한 섹션 보고 숨 돌리고 다음 섹션은 다시 환기해서 보고. 마음에 드는 것만 골라서 볼 수도 있는 거고요. ‘이 사람은 빛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이 사람에게 빛은 이거였구나.’ 그러면서 자기 취향도 발견해 나가는 거죠. 또 저는 제임스 터렐을 좋아하는데 제임스 터렐 전시관이 따로 떼어져 있어서 굉장히 좋았어요.

 

제임스 터렐, <레이마르, 파랑>, 1969. LED등, 가변크기. 테이트미술관 소장. 사진 &#169; Tate

 

 

전시에서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구성이 인위적이었어요. 챕터 간의 연결이 끊어지는 게 좋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좋지 않은 부분에서 끊어지면 보는 데 방해가 돼요. 사고의 흐름이 강제로 종료되는 느낌이잖아요. 그러면 다음 챕터에 갔을 때 감정이 이어지지 않아요. 다시 환기해야죠. 예를 들면 1 전시실에서 윌리엄 터너와 아니쉬 카푸어가 같이 있었어요. 아니쉬 카푸어도 제가 좋아하는 작가예요. 또 그 작품이 거기 있으면 의미로는 어울릴 수 있는데, 둘 사이에 시각적으로 충돌이 일어나잖아요. 존 컨스터블의 풍경화와 울라퍼 엘리아슨의 <우주 먼지입자>가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어색했어요

‘1. 빛, 신의 창조물’에는 아니쉬 카푸어의 설치작품 <이쉬의 빛>과 제이콥 모어(1740~1793)의 <대홍수>가 나란히 전시되었다.사진 &#169; 김상태

 

관람 동선도 불편했어요. 릴리안 린(3 전시실)이 조셉 라이트(5 전시실)와 붙어있고, 인상주의(4 전시실)와는 떨어져있었어요. 그래서 릴리안 릴 출구에 사람이 서서 말로 안내를 했어요. 작품에 맞는 공간과 조명을 따라 배치하다 동선이 꼬였으리라고 짐작은 되는데, 결과적으로 관람을 방해했어요. 그리고 같은 인상주의 작가라고 해도 영국 작가와 프랑스 작가의 느낌이 다르거든요. 모네에게서 보여지는 인상주의적 평면성은 영국 작가에게서는 느낄 수가 없어요. 프랑스에서 시작된 인상주의가 영국으로 넘어가서는 약간 다른 느낌으로 변화했죠. 그런데 인상주의 전시실은 들어서면 먼저 보이는 게 영국 작가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보이는 프랑스 작가 모네나 피사로의 작품이 이질적으로 보였어요.

클로드 모네, 포흐빌레의 센강, 1894, 캔버스에 유채, 65.4×100.3cm, 테이트미술관 소장. 사진 &#169; Tate

 

백남준의 <촛불 TV>외에 한국 작가 작품이 없었던 점은 아쉽지 않았나요?

한국 작가 작품이 꼭 있어야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블록버스터 전시는 수익을 고민하는 게 당연해요. 『빛』은 테이트모던의 미니어처 같은 전시였단 말이에요. 테이트모던에 비해서 작품 수가 굉장히 적은 거죠. 작품이 몇 개 더 나왔어도 괜찮았을 것 같아요.

 

 

 

마치며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흔들리는 배 한 척, 어린 시절 백과사전에서 본 윌리엄 터너의 그림이다. 단지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미술관을 찾았다. 정작 전시장 안에서 내 걸음을 가장 오래 묶어두었던 작품은 필립 파레노의 <저녁 6시>였다. 윌리엄 터너의 작품을 마주하며 느꼈던 것은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만나는 반가움이었다. <저녁 6시>의 카펫 위에 섰을 때, 작가의 기발함에 감탄해 가슴이 뛰었다. 터너를 찾아왔다가 파레노를 만났다. 『빛』에서 그를 처음 만났다. 한참을 전시장 안에서 서성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서성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보였다. 어쩌면 모네를 찾아왔다 터렐을 만났을 사람, 칸딘스키를 찾아왔다가 세쥴리를 만났을지도 모를 사람을 상상한다.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던 동시대미술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이기호 객원기자 (종이와 빛 발행인)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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