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정악아쟁 우) 산조아쟁 |
아쟁을 처음 보는 분들은 “이 악기가 뭐예요?” 혹은 “이거 해금이죠?” 하는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그러면 친절히 설명해드립니다. “이건 아쟁이라고 해요. 가야금처럼 뉘어 놓고 활로 연주하는 악기예요” 하고 말이죠. 아쟁은 그만큼 대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악기인 듯 합니다. 비록 인지도는 낮지만 아쟁은 여러모로 가능성이 무한한 악기입니다.
아쟁은 전통음악에 쓰이는 8현의 산조아쟁(小아쟁), 9현 또는 10현의 정악아쟁(大아쟁) 이외에도 창작용으로 사용되는 10현 또는 12현의 소아쟁과 대아쟁이 따로 있어서 최소 네 종류 이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맨 처음 아쟁에 대한 기록이 발견된 것은 [高麗史樂志(고려사악지)] 로, 7현의 정악아쟁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 뒤로 1950년대에 아쟁산조의 출현과 함께 산조아쟁이 만들어지고 이후 국악관현악단의 창단으로 현의 수를 늘린 개량 악기들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아쟁 연주_김참다운 , 2018 창작아카데미 최종 공연 융합음악 배승혜_"Unflowing Dialogues" for Ajaeng and Orchestra |
-앙상블에 최적화된 악기
아쟁은 음역에 따라 소아쟁과 대아쟁으로 개량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것은 어찌보면 앙상블 하기에 좋은 악기라는 뜻도 됩니다. 커버할 수 있는 음역대가 넓은데다가 pizzicato(줄을 손으로 뜯는 연주법)와 arco(활로 찰현하는 연주법)의 표현법으로 다양하게 연주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제쳐두고 악기의 음색만으로만 보아도 저음의 찰현악기가 주는 울림은 제법 큰 감동을 줍니다. 서로를 감싸주는 찰현 악기가 모이면 그 시너지 효과가 더욱 좋습니다. 아쟁 앙상블을 듣고 있노라면, 국악기 중에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닮은 악기가 바로 아쟁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 생각됩니다.
필자는 2009년부터 아쟁 연주자 이화연, 이신애와 함께 아쟁 앙상블 [Bow+ing]이라는 팀 활동을 해왔습니다. 아쟁으로 할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앙상블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로 아쟁 앙상블 곡의 레퍼토리를 확보하고 아쟁의 가능성을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 해오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첫 앨범인 [아쟁앙상블 보우잉 “the 1st"] 음반을 발매, 수록곡의 악보를 실은 창작곡집도 함께 발간하였습니다. 이 음반은 2017년 한국 대중음악상 재즈 및 크로스오버 최우수음반 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하였습니다.
아쟁 앙상블 Bow+ing 연주 사진, DS홀, 2019 |
- 산조아쟁의 가능성
2018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친구의 초대로 파리에 방문해서 바로크 음악과 국악이 만나는, 이른바 ‘동서고악’의 음악회에 참여하였습니다. 17세기 무렵 그 시절에 동양과 서양의 음악이 만났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에서 시작된 이 연주회는 바로크 음악과 우리음악의 접점을 찾는 재밌는 여정이었습니다. 해외연주에서의 이동성을 위해 필자는 여러 종류 아쟁 중 산조아쟁 한 대만 가지고 갔는데 공연의 레퍼토리를 위해서는 우리음악인 정악, 산조, 민요 외에도 바로크 음악까지 전부 산조아쟁 한 대로만 해 내야 했습니다. 조율을 제법 바꾸긴 해야 했지만, 결국에는 여덟 개 뿐인 줄로 pitch(표준 조율음)가 다르고(바로크 음악은 모던 음악의 표준 조율음보다 20이상 낮다.), 본청(으뜸음)과 조율이 모두 다른 음악들을 연주해낼 수 있었습니다.
“동서고악” 생데프레제 성당, Paris, 2018 |
이 연주회는 그 뒤로 4-5년간 지속되어 오고 있는데, 이 연주회를 준비하며 필자는 민속악에서만 으뜸이라 생각했던 산조아쟁의 무한한 가능성을 더 체감하였고, 이것은 2021년, 산조아쟁으로만 연주하는 창작음악 독주회를 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산조아쟁 창작음악 독주회 “땅이 있어야 나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립국악원 우면당, 2021 |
독주회에서는 전 곡에 한 대의 8현의 전통 산조아쟁만을 사용하였고, 원래의 기본 조율을 바꾸지 않는 것을 목표로 선곡하고 위촉하여 연주하였습니다. 많은 부분 스스로의 한계와 악기의 한계에 부딪혔지만 무사히 연주회를 마친 뒤에는 더욱 새로운 에너지와 가능성을 얻었습니다.
- 창작음악계에서의 러브콜
필자가 단원으로 재직 중인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에서의 활동으로 새로운 창작곡을 연주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최근 몇 년간은 협주곡을 초연하는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작곡자분들게 어째서 아쟁이라는 악기를 협연 악기로 선택했는지 여쭈면 하나 같은 대답이 “아쟁 음색이 너무 좋아서요” 라고 말씀해주십니다. 거칠면서 부드럽고, 묵직하면서 갸날픈 아쟁에 반해서 곡을 쓰게 되었다는 의견이 많은 점이 재미있었습니다. 국악관현악과의 협주곡들도 있었지만 2019년에 연주한 [Unflowing Dialogues-배승혜 작곡] 은 서양 오케스트라와의 협연곡이었고, 그 작곡 과정에 함께 참여했기에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협연곡 특성상 협연악기인 아쟁의 본질을 최대한 끌어내야 했기에, 명주실을 찰현하며 생기는 마찰음과 불분명한 미분음들을 마음껏 활용하고,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소아쟁과 대아쟁의 대비에 즐거워하며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연주로 전세계 유일한 Bowed Zither 형태의 악기인 아쟁의 독창성을 더욱 깨닫게 되었습니다.
Unflowing Dialogues, 코리안심포니, 롯데콘서트홀, 2019 |
새로운 음악을 대할 때 마다 스스로가 편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듣고 즐기는 음악도 그렇지만 연주해야하는 음악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어떠한 음악이든 어떠한 악보든 편견 없이 음표들을 건져내어 생명을 불어 넣는 것이 연주자의 소명이기에 편견 없는 연주자로 아쟁의 무한한 가능성을 계속해서 확장시키고 싶습니다.
김참다운_아쟁 연주자
국립국악고등학교를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김일구, 김한승, 김영길 명인을 사사 하였으며 대학원 과정 중 이태백, 김상훈 명인을 사사 하였다.
대학 시절 대학어울림악단(전 국립청소년국악관현악단)에서의 치열한 작업으로 새로운 형태의 음악에 대한 경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공부모임으로 시작한 창작음악집단 시울운(Project GM)에서 앙상블 속 아쟁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후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에 입단하여 다양한 연주를 하며 아쟁 솔리스트로서는 여러 작곡가들을 만나 아창제(2017), 서울챔버오케스트라 오작교프로젝트(2018), 창작아카데미 차세대열전(2018)등의 연주회에서 국악관현악단, 교향악단과의 초연곡들의 협연 무대를 가졌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들로 창작음악에서 아쟁의 가능성을 체감하고 시야가 넓어지게 되었다.
김일구류 아쟁산조에 대한 학습의 과정으로 세 번의 독주회를 가졌으며, Pure recording 방식 SACD로 산조음반(악당이반/2013)을 발매 하였다. 또한 아쟁의 영역을 확장 중인 아쟁앙상블 Bow+ing “the 1st” 음반(신나라 레코드/2017)을 발매 하였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이수자이며, 현재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단원으로 재직하며 서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 출강중이다.
강영우 기자 press@ithemo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