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김현동의 오페라로 보는 세계사] 오페라와 여인의 사랑④ 욕망의 사랑_<안나 볼레나>

기사승인 2022.11.28  04:01:41

공유
default_news_ad2

- 오페라 <안나 볼레나 Anna Bolena>

엔리코 역의 니콜라 로시 레미니와 안나역의 마리아 칼라스

화려한 이야기의 튜더 왕조

영국 역사상 가장 이야기거리가 많고 소설로도, 영화로도,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품을 쏟아내게 한 왕조가 바로 영국의 튜더왕조일 것이다. 여섯 명의 아내를 얻어 그 중 두 명과는 강제로 이혼을 하여 내 쫓았고, 두 명은 참수해 죽여 버렸으며, 한 명은 병사하였고, 최후의 한명은 당시 왕비로서는 부적절한 신분이던 과부를 아내로 얻었으나 다행히도 그녀의 품에서 최후를 마치고 죽어간 헨리 8세. 찰스디킨스의 소설 <왕자와 거지>의 실제 모델이자 헨리8세의 유일한 적장자인 에드워드 6세. 아버지 헨리8세에게 버림받은 첫 째 왕비 캐서린의 딸이자 훗날 여왕이 되어 수많은 신교회 사제와 신자들을 죽여 전 국토를 피로 물들인 여왕 피의 메리.

 

언니인 메리여왕의 끊임없는 견제 가운데 살아남아, 2등 국가 영국을 유럽 최강의 국가로 성장 시키며, “짐은 영국과 결혼하였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평생을 처녀로 살아가면서, 대 문호 섹스피어의 후견인으로 3등 언어인 영어를 세계적 언어로도 성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한 엘리자베스 1세.....

이 화려한 사건들이 일어난 시대가 바로 영국의 튜더왕조 때의 일이다.

 

아라곤의 캐서린_헨리 8세의 첫 번째 아내

헨리 8세의 여인들

영국 역사상 최고의 풍운아이자 호색가로 이야기되는 헨리8세는, 그의 아버지이자 튜더가문의 첫 번째 왕인 헨리7세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헨리7세(헨리튜더)는 장미전쟁의 한 축이었던 랭커스터가문의 후계자로 태어나 플랜태저넷왕조의 마지막 왕인 폭군 리처드3세를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튜더왕조의 첫 번째 왕이 된다. 헨리7세에게는 두 명의 왕자와 두 명의 공주가 태어나는데, 첫째 아들인 아서는 왕세자에 올랐으나 병약했던 탓에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헨리 7세는 아서 왕자가 죽기 얼마 전 스페인의 공주 캐서린과 결혼을 시키게 되는데, 이는 당시 유럽의 한 축이던 프랑스의 위협에서부터 영국을 보전하려는 정략적인 결혼의 의미가 컸었던 결혼동맹이었으므로, 헨리7세는 어떻게 하던지 이 결혼동맹을 유지하려 하였다. 이에 결혼식은 하였으나 첫날밤을 치루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왕세자 아서와의 결혼식을 무효로 하고 둘째아들 헨리8세와 캐서린과의 결혼식을 강행하는 악수를 두게 된다. 이것이 앞으로 영국의 왕위계승을 두고 나라 전체를 피로 물들이는 혼돈을 불러오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종교사에서도 엄청난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영국 국교회 즉, 성공회의 시작을 부르는 시작이 되었다.

튜더왕조 두 번째 왕위에 오른 헨리8세와 왕비 캐서린 사이에는 딸만 한명 태어나게 되었는데, 그녀가 훗날 <블러드 메리>라고 불리는 메리공주였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왕위를 이어받을 왕자가 태어나지 않았는데, 귀족세력으로부터 끝없이 제기되는 왕실안정에 대한 염려와 형수와 결혼했다는 비난 여론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는지 헨리8세와 캐서린 왕비와의 관계는 서서히 멀어지게 되었고, 캐서린의 시녀(왕비의 시녀는 평민 계급이 아니라, 귀족의 딸인 경우가 많다.)였던, 엔 불린 과의 염문으로 발전하게 된다. 앤 불린(안나 볼레나)는 왕의 정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왕비의 자리를 요구하며, 캐서린과 이혼하지 않으면 헨리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며 왕의 구애를 교묘하게 거절하고 있었고, 캐서린과의 이혼은 교황청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 문제였으므로 헨리8세의 고민은 깊어만 갔다.

헨리 8세 초상화

그러나, 건강한 후사를 강력하게 원했던 헨리8세의 바램과, 왕비 캐서린과의 불화, 그리고 앤 불린의 요구는 헨리8세로 하여금 캐서린과의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고, 스페인의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인 카를5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교황은 이를 강하게 반대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헨리8세는 캐서린이 자신과 결혼하기 전, 이미 형과 동침했다는 모순된 주장을 펼치며 강제로 이혼을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캐서린은 끝까지 이를 수용하지 않고, 영국에 머무르며 그의 딸 메리에게 가톨릭 신앙과 개신교와 앤 불린에 대한 원한을 심어주게 된다.

앤 볼린_헨리의 두 번째 아내

헨리8세는 그렇게 어렵게 결혼을 하게 된 앤 불린과의 사이에서도 역시 아들을 순산하지 못하고 딸만 한 명 낳게 되는데, 이 딸이 바로 훗날 영국을 유럽 최고의 해양국가로 발전시키게 되는 엘리자베스여왕이다.

그러나 앤 불린은 헨리와 다른 여인들과의 관계에 대해 과도한 질투와 견제를 하게 되고, 앤에게서 아들을 얻지 못한 헨리8세는 또 다시 앤 불린의 시녀인 제인 시모어와 결혼을 하려는 목적으로, 앤 불린을 여러 남자들과의 간통을 벌였다는 죄를 뒤집어 씌워 참수형에 처하고야 만다.

제인 시무어_세 번째 아내

그 후, 헨리8세와 제인 시모어 사이에는 비로소 아들이 한 명 태어나는데, 그가 바로 영국의 튜더왕조의 세 번째 왕이자, 소설 <왕자와 거지>의 실제 모델이 된 에드워드6세 이다. 하지만 왕자를 낳은 제인 시모어는 산후중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찍 죽게 되었는데, 이를 너무 가슴 아프게 여긴 헨리8세는 훗날 자신에게 유일한 아들을 남겨준 제인 시모어와 함께 묻히기를 유언하게 되고, 지금도 <세인트 조지 성당> 에 이들의 무덤이 있다.

제인 시모어를 잃은 헨리8세는 그 후로도 정략적인 결혼식을 올린 앤클레비스와도 이혼을 하게 되는데 이는 순전히 헨리8세 개인적인 취향이 크게 작용한 이혼이었다. 그 후 다시 나이어린 캐서린 하워드와 결혼식을 올리지만, 이번에는 진짜 문란했던 그녀의 남자관계가 다시 밝혀져 그녀를 참수에 처하게 된다.

많은 젊은 왕비들과의 결혼, 이혼, 처형, 사별을 거치면서 점점 지쳐가던 헨리8세는 어느덧 쉰 이 넘는 나이가 되었고, 이제 젊은 왕비에게서 다시 아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지고 나서야, 당시 두 번의 결혼과 사별을 경험한 뒤 홀로 살아가고 있던 캐서린 파와 결혼하고 지혜로운 그녀의 보살핌 속에서 험난했던 그의 여생을 마치게 된다.

 

헨리8세와 교회수장령

헨리8세가 공표한 교회수장령은 영국교회의 최고 수장은 교황이 아닌 영국의 국왕임을 밝히고 인정하게 하는 법령이다. 그리고 이 교회수장령으로 인해 지금까지 교황으로부터 왕의 상징인 왕관을 수여받는 행위를 금지하고 국왕이 임명한 영국교회의 대주교로부터 왕관을 건네받는, 이른바 셀프대관식을 비롯하여 주교와 사제의 임명권 등 이전까지 교황의 영향력으로 진행되었던 수많은 교회의 문제를 왕이 직접 다스리게 하는 법령이었다.

 

사실 헨리8세의 계속되는 결혼과 파혼의 내면에는 물론 왕실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확실한 왕위계승자인 아들을 바라는 당시 국내, 외의 분위기도 크게 작용했지만, 그보다 더 국가재정의 확보와 정치세력의 조율이라는 현실적인 이유도 존재하였다.

이는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들이 보유한 방대한 토지로 인하여 영국의 세수가 급격하게 축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오랜 세월 가톨릭 수도원과 교황령의 토지가 영국 내에서 늘어감에 따라 국가에는 세금을 내지 않는데비해 교황청이 거둬들이는 수입은 상당한 액수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세금을 거둬들일 수 없는 가톨릭 수도원들의 땅이 비대해진 것을 헨리8세는 바로잡기를 원했다. 게다가 오랜 세월 귀족들이 사유화한 토지들 역시도 영국의 국왕이 소유한 토지보다 훨씬 많아진데 대한 폐단을 바로잡고자 하였던것이다.

그리고 로마교황청의 지나친 국내, 외 문제에 대한 참견은 때로, 왕권을 능가하는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헨리8세는 이에 대해서도 역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서유럽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고 있는 두 국가인....

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 스페인, 네델란드, 프랑스일부 등)의 황제인 카를5세, 그리고 프랑스의 프랑수아1세의 틈바구니 속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자 한 것이 헨리8세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로마교황청은 신성로마제국과 프랑스라는 이 두 거인세력의 눈치를 늘 살피는 입장이었고, 이등국가 영국왕에 대한 배려 따위는 기대할 수 없었다. 이러한 세계정세 속에서 헨리8세가 찾아낸 정치적인 해법이 바로 교회수장령을 통한 세수 확충이었고, 그 도구로 사용된 것이 바로 캐서린 왕비와의 이혼과 앤 불린과의 결혼으로 자연스레 만들어진 가톨릭교회와의 결별이었던 것이다.

 

 

오페라 속에 앤 불린(안나 볼레나)과 제인 시모어(조반나)

이 오페라는 헨리8세(엔리코)의 두 번째 왕비인 앤 불린(안나 볼레나)와 제인 시모어(조반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미 국왕의 첫 번째 부인인 캐서린을 몰아내고 왕비가 된 안나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자신에게서 점점 멀어지는 엔리코를 의심하게 된다. 하지만 안나의 시녀인 조반나는 자신에게 점점 빠져드는 엔리코왕의 구애를 부담스러워 하며, 안나와 이혼을 하고 자신과 결혼하지 않으면 더 이상 밀회를 가질 수 없다고 전한다. 이는, 마치 안나가 스스로 왕비가 되고자 전 왕비인 캐서린과의 이혼을 종용 했던 것처럼, 자신도 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오페라에서는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엔리코왕은 안나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하여 안나가 처녀시절 사랑하던 남자인 리카르도를 유배에서 풀어주고 안나에게 접근하는 것을 유도한다. 이때, 안나를 짝사랑하던 궁중 음악가 스메톤이 안나의 방에 우연히 잠입하게 되고, 안나와 리카르도가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커튼 뒤에 숨는다. 아직도 안나를 잊지 못하고 있는 리카르도와 자신은 이제 왕의여인임을 다시 상기시키는 안나, 이에 좌절하는 리카르도가 칼을 빼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안나를 헤지려는 행동으로 오해한 스메톤이 그 사이를 막아서며 일이 커진다.

그때, 사냥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던 엔리코왕이 들어서게 되고, 이 상황을 불륜으로 몰아가면서 안나와 리카르도, 그리고 스메톤은 런던탑에 갇히게 된다.

런던탑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던 안나에게 조반나는 왕의 숨겨진 여인이 자신임을 밝히게 되고, 이를 들은 안나는 너무 놀라지만 용기 있게 말해준 조반나를 이해하면서 엔리코왕을 저주한다.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리카르도는 안나를 살려보려는 심정으로 왕과 결혼하기 전 안나는 이미 자신과 결혼한 사이였기에 왕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라고 주장해 보지만, 국왕은 결국 이 둘을 모두 처형하게 되고, 안나는 죽음 직전에 자신이 진정 사랑했던 사람은 리카르도였다는 것을 깨닫는다.

 

1957년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열린 안나 볼레나 공연 홍보 포스터-

불같이 살다가 간 안나 볼레나

오페라 <안나 볼레나>에서 그려진 안나의 캐릭터는 피해자의 모습, 그리고 상처받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이미지 메이킹은 그녀의 딸이 다름 아닌 엘리자베스여왕 이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보면, 엘리자베스시대 그녀의 어머니인 앤 불린의 미화작업은 어느 정도 감안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한다.

하지만, 당시 신교도 집안이었던 앤 불린과 그의 가문은 철저하게 가톨릭을 옹호하던 첫째 왕비, 캐서린과 그의 추종세력인 가톨릭세력을 몰아내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존재했다. 어떻게 해서든 왕의 아들을 낳고 영국의 모든 세력을 신교회파가 잡기를 바라는 간절한 욕망이 공존했다고 보는 것이 정당하다.

해서 앤 불린과 그녀를 지지하던 세력은, 헨리8세를 이용해서 온전히 가톨릭세력을 몰아내는데 성공하게 되었고, 훗날 캐서린의 딸 메리공주가 왕권을 잡기까지 숱한 왕비들이 주로 개신교 세력으로 채워지게 하는데 모든 힘을 쏟아 붓는다. (그 가운데는 영국의 재상 토마스 크롬웰이 활약한다.)

오페라에서와 같이 실재 역사에서도 앤 불린을 사랑했었던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앤 불린이 그토록 갈망했던 불같은 사랑도 냉혹한 현실정치와 국가와 자신의 후사만을 깊이 고민하는 헨리8세 에게는 그저 공허한 외침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앤 불린을 그렇게 형장의 이슬로 몰고 간 근본적인 원인은, 그녀의 외도라던가, 남편이던 헨리8세의 여성편력, 혹은 앤의 시녀인 제인 시모어의 배신과 같은 아침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스토리로 몰기에는 아쉬움이 있다. 어쩌면 욕망의 여왕 앤 불린의 죽음은, 격동하던 당시의 세계역사 속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향기를 더욱 안타깝게 그려내고 있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김현동 (축제, 공연 제작자)

김현동 축제, 공연 제작자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