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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지금 좋은 음악 19] 상투적이지 않은 헌사_유태성의 '미켈란젤로'

기사승인 2022.11.30  13:5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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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 기타리스트 유태성

음악으로 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이라거나 부처님의 말씀, 혹은 공자님의 말씀 같은 성인들의 가르침을 음악으로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물론 노랫말이 있는 음악이라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멜로디와 리듬을 장착한 말씀은 경전이나 설교보다 큰 울림으로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노랫말이 없는 연주곡이라면 어떨까. 음악은 멜로디와 화음, 리듬과 사운드라는 자신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음에도, 노랫말이 없는 경우에는 문자 언어만큼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 어렵다. 대신 멜로디와 화음, 리듬과 사운드 같은 음악 언어는 말씀 안에 내재한 정서, 태도, 감각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

작곡가이자 재즈 기타리스트인 유태성의 작품집 [미켈란젤로]도 미켈란젤로의 생애라던가, 그의 작품 목록을 알려주지는 못한다. 그의 작품이 미술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평가하거나 그의 작품이 왜 감동적인지 설명하지 못함은 물론이다. 그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고 강의를 들어야 한다. 대신 음반을 들으면 유태성이 2014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만난 후 어떤 인상을 받았고, 작품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했는지, 그의 가슴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물결쳤는지 감지할 수 있다.

 

유태성은 자신이 쓰고 편곡한 9개의 곡에서 이지민과 자신의 보컬, 자신의 기타, 이지영의 피아노, 정상이의 베이스, 김영진의 드럼, 그리고 현악기 주자들의 협연을 통해 미켈란젤로의 흔적들과 마주한 자신의 후기를 들려준다. 1475년에 태어나 1564년에 죽기까지 조각자이자 건축가로 활동하며 수많은 작품을 남긴 미켈란젤로의 명성을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여전히 서양미술사에서 하나의 정점이다. 기독교 서사를 기계적으로 재현하지 않고,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인간을 옮겨 담는 예술가로 고뇌했던 그의 작품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감동을 안겨준다.

 

 

유태성 역시 그 힘에 설득당한 게 아닐까. 아니 무장해제 당한 게 아닐까. 그래서 <Pieta>, <David>, <The Last Judgement>처럼 미켈란젤로의 작품 이름으로 곡을 쓸 수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

미켈란젤로_피에타, 1498~1499년, 대리석, 174 × 195cm,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당

 <Dawn>으로 시작하는 음반은 미명의 새벽 대성당처럼 거대한 공간에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만나고 있는 것 같은 감흥을 선사한다. 오래 전에 짓고 만든 건축물과 미술품들이지만 묵묵히 압도했음이 분명한 공간감이다. 자신이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으며 예술이 얼마나 위대한지 깨닫지 못했다면 그릴 수 없는 마음의 풍경화다.

 

두 번째 곡 <Birth Of The One>에서도 경건한 울림을 안기는 보컬의 스캣과 현악기 연주는 드럼의 역동성과 맞물리며 거대한 대상 앞에서 격동하는 이의 파동을 다시 한 번 제시한다. 반면 미켈란젤로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Pieta>에서 유태성을 사로잡은 감각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머니의 품에 안긴 예수와 아들 예수를 안고 있는 어머니 마리아 사이에 오가는 안식과 평화다. 자신이 연주하는 기타와 이지영의 피아노는 조각상에 흐르는 고요와 기원을 포착하고, 그 기운이 자신에게 이어졌음을 음악으로 고백한다. 반면 <David>에서는 살아 있는 듯한 남성 육체 조각상에 흐르는 역동성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주력한다.

 

유태성의 곡과 연주는 모두 정갈하고 서정적이다. 시스티나 성당을 연주한 <Cappella Sistina>에서도 여러 악기들이 깔끔하고 예쁜 멜로디를 반복하거나 덧씌우면서 성당에 머무는 순간의 감각을 복구하는 동시에, 성당의 고풍스럽고 성스러운 아우라를 현악기와 보컬 등으로 기록하면서 현장의 역사와 밀도에 근접한다. 눈으로 보여주지 못하지만 소리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유태성은 미켈란젤로의 유산들이 담지하고 전이시키는 아우라를 데려온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음반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에 대한 후기이며, 자신의 해석이다. 당연히 이 음반에 대해 비평하기 위해서는 음악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유태성의 해석과 감상이 얼마나 깊고 충실하거나 전복적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가령 <The Last Judgement>에 감도는 불안과 드라마틱한 흐름이 유일무이한 해석일수는 없다. 그보다 더 큰 스케일과 사운드 스케이프가 필요했을 수 있다고 보지만, 5분 47초를 장악하는 선명한 테마와 멈추지 않는 곡의 격랑은 한 뮤지션의 해석과 감상으로 분명 정직하고 충실하다. 미켈란젤로 광장의 소리를 옮겨 담고, 광장이 지켜보았을 시간을 복원하는 듯한 <Piazzale Michelangelo (Part 1)>과 <Piazzale Michelangelo (Part 2)>에서도 영광뿐이었을 리 만무한 미켈란젤로의 삶이 가까이 다가온다. 음악 전반에 흐르는 우아함 만큼의 미켈란젤로가 지녔을 격정과 과감함을 더 충돌시켰다면 어땠을까 싶지만, 음반 곳곳에 흐르는 세련된 기품으로 감지할 수 있는, 거장이 남긴 숭고함에 이르려는 노력은 좀처럼 상투적이지 않은 감사와 헌사를 듣게 한다. 오래 전의 예술과 지금의 예술이 이렇게 연결된다. 미술과 음악을 이은 정성 가득한 트리뷰트 음반이다.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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