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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롭고 낯선 '베토벤 소나타'

기사승인 2022.12.19  14:5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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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고르 레빗, 포고렐리치, 플레트뇨프 등 ....

지난 11월 15일, 이고르 레빗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리사이틀을 가졌다. 현재 유럽에서 아이돌처럼 무한한 지지를 받으며,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피아니스트다. 최근 발매한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 굉장한 호평도 받았다. 오늘 공연은 그 중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17번 ‘템페스트’, 21번 ‘발트슈타인’ 을 포함하고 있었다. 베토벤의 모든 피아노 소나타들 중 가장 유명하고 가장 자주 연주되는 작품들이다.

그렇기때문에 이 베토벤 소나타에서 a, b, c정도가 나올 것을 기대했는데, 이고르 레빗은 c‘, d, e, f, g부터 쏟아냈다. 전혀 낯선 음악들이었다. 어느 순간부턴 이해하려들지 않고 쏟아지는 광경들을 그냥 느꼈다. 무대 위에서만 만들어지는 그때그때의 순간이 아주 특별하다고 믿는 피아니스트 같았다. 무대 위에서 즉흥적으로 해석하고 연주하는 부분도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진부하다고 생각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들은 오늘도 새로운 것이 많았다. 또 완성도를 떠나, 레빗은 또 모든걸 시도했다. 피아노가 오케스트라가 되기도 하고, 주법을 통해 여러 시대를 오가기도 했다. 앙코르로 연주한 베토벤 바가텔 ‘엘리제를 위하여’는 지극히 낭만적이고, 여전히 새롭게 들리는 연주였다.

이고르 레빗 피아노 리사이틀, 사진 허명현

지난 몇 년간, 놀랍고도 한편으론 이해가 다 되지 않았던 베토벤들을 떠올려봤다. 일단 2020년 포고렐리치의 베토벤 소나타 11번이 있었다. 일단 전성기의 포고렐리치는 어디에도 없었다. 신체적인 노화가 아니라, 어느 누구에게도 없는 천재적인 감각이 사라져버렸다. 포고렐리치는 아고긱스를 극한까지 조절 가능한 피아니스트였고, 움직이지 않는 음들은 공명했다. 하지만 그 날 연주엔 그런게 전혀 없었다. 솔직히 이야기하면 응급실에 누워있는 연주 같았다. 언제 숨을 거둘지 모르는 소나타였다. 음악적인 농도가 짙어지는 순간이 오면 그 지점에서 노래가 자꾸 멈췄다. 당황스러웠다. 스스로를 어딘가에 가둬버린 것 같았다. 과연 관객들을 위한 연주였을까. 이 음악을 어떻게 소비해야할지 전혀 감이 안왔던 공연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19년엔 플레트뇨프의 베토벤 소나타 23번도 있었다. 마찬가지로 소나타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다. 확실히 알 수 있었던 건 포고렐리치가 그 선을 넘었다면, 플레트뇨프는 그 선을 지켰다는 것 정도였다. 아슬아슬하게 선을 지켜 새로운 차원의 아름다움을 만들었다. 모든게 처음이었지만, 꽤 아름다웠다. 곡을 조각내고 붙이는 방식 모두 낯설었지만, 재창조된 음악을 바라보니 모든 조각들이 마치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창조적 파괴였다. 크레셴도보다도 데크레셴도에서 다이나믹이 들어갔고, 엄청나게 작은 다이나믹으로 곡을 끝까지 끌고 나갔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플레트뇨프는 왜 피아노를 크게 치지 않느냐는 질문에, 크게 치면 시끄럽다고 답한 피아니스트다. 역시 여전히 시도중이고 진화중 이었다.

 

그렇다면 이런 연주들이 베토벤을 벗어나 단지 자의식이 강해서일까? 아마 어제 이고르 레빗의 연주와도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을 것 같다. 사실 그런 종류의 평가는 정말 여기저기 많이 쓰인다. 어떤 수준까지는 그런 말이 나오는 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완전히 그렇지만도 않은 게, 어제 이고르 레빗은 끊임없이 탐구하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데, 그런 사람치곤 굉장히 겸허한 연주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그는 허리통증을 호소하며, 내한 공연 중에도 허리 치료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단순히 연주를 평면적으로 다른 연주자의 것과 비교한다면 전통에서 벗어나 있다고 말할 순 있지만, 이게 베토벤에서 벗어나 자의식 때문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사실 이런 논의가 있을 때마다, 빌헬름 켐프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당시엔 굉장히 도전적인 해석을 했음에도 이제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요즘 와서 정형화된 연주들이 부쩍 더 많아지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베토벤에 대해 더 보수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결국 대단한건 베토벤이 아닐까.

 

사진 제공 빈체로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huhmyeong11@naver.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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