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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마조프가의 의자들

기사승인 2017.04.09  18:5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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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일진 무대미술가 (인천대학교 공연예술학과 교수)

 

의자는 인간의 몸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척추에 무리를 주고 성인병을 유발한다. 그래서 요즘 유럽에서는 서서 일하는 것이 유행이다. 의자는 앉는 사람의 신분을 드러내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좌식 생활을 했던 조선시대에도 왕은 의자에 앉아 어전회의를 집전했다. 의자에 앉으면 편한 곳은 다리가 아니라 마음이다. 몸은 싫어하지만 마음은 좋아하는 이런 의자의 속성은 공업디자이너들에게 끝나지 않는 도전이었다. 그래서 스타 디자이너는 자기 스타일을 보여주는 의자씩을 갖고 있다.

연극<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다섯 개의 의자와 함께 시작된다. 마치 ‘의자’라는 글자를 쓰듯, 까만 어둠 속에서 최소한의 빨간 직선들이 그어지며 의자가 나타난다. 그 와중에도 표도르의 의자는 등받이가 길어 아버지의 위치를 나타낸다. 사물의 사회성에 대한 무대미술가의 이해가 배우의 대사를 대신해 작품 속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다.

이런 무대미술가가 아니었다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7시간을 넘겼을지도 모른다. 무대미술을 맡은 임일진 교수를 만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무대미술과 그의 무대미술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Q.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무대미술을 맡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잘 안 하는 작품, 그리고 희곡이 아닌 소설을 연극으로 만들면 뭐가 나올까? 하는 호기심이요.이번 작품은 어떤 무대가 나올지 예상하기 어려운 공연을 나름의 해석으로 소개했다는데 의미를 두고 있어요. 제 스타일을 보여준 거죠. 함께 하는 일에서 제 것을 선보일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죠.


Q.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무대미술을 그릴 때 처음 찍는 점 하나와 같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무대미술의 반은 미술이 아니라 극으로 봐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풀어가는 과정도 처음에 종이를 펴놓고 ‘이제 뭘 하지?’가 아니고 철저하게 대본을 봐야 돼요. 나름의 분석을 하고, 장면을 어떻게 쪼갤 건지나 각 장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들에 대해서 연출과 이야기를 많이 해야 돼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같으면 우선 ‘오브제 위주로’와 같은 무대미술의 큰 컨셉트를 정하는 거죠. 그 컨셉트 안에서 반영이라던지…… 이런 식으로 대본 분석, 캐릭터 분석, 연출과의 대화를 통해서 큰 덩어리에서 이미지를 찾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최종적으로 디자인 요소가 정립 되죠.


Q. 각 장을 그릴 때는 시간 순으로 하시나요? 아니면 주요 장면부터 하시나요?


저희는 전환이 중요하거든요. 아무리 멋있어도 전환이 안되면 못하는 거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큰 것들을 생각해놓고는 시간 순서대로 보죠. 그런데 이런 게 있어요. 처음을 보지만 그 다음과 다음의 다음까지 생각하면서 봐야 돼요. 1장만 봐서는 2장이 해결이 안돼요. 디테일이랑 전체를 같이 보는 게 쉽지 않아요. 처음 무대미술을 시작했을 때는 그게 힘들었거든요.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사고가 되는 거지 훈련을 많이 해야 돼요. 
 
 “아무리 멋있어도 전환이 안되면 못하는 거죠.”

 

Q. 이번 공연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역사적이고 끈적끈적한 이야기인데, 역설적으로 무대를 굉장히 미니멀하게 가보고 싶었어요. 바닥을 흰색으로 새로 깔고 싶었는데 원래 극장 바닥을 그대로 썼죠.무대미술은 제작비하고 관계가 깊어요.


Q. 반대로 생각보다 잘만들어진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제가 만족할 때는 더도 덜도 말고 제 작전대로 나왔을 때예요. 그런데 정말 좋을 때가, 나는 내 작전대로 뭐가 나왔어. 거기에 연출이 또 뭔가 덧붙여주고, 배우가 덧붙여주고, 조명이 덧붙여주고, 그랬을 때 너무 행복하죠.


Q. 이번 연극에서는 그런 장면이 어디였나요?

예를 들어서, 등이 하나 내려와서 이반과 스메르쟈코프가 주고받으면서 이야기하는 장면 같은 경우에, 그 등을 어떻게 쓸지 내가 말하지 않아요. 연출이 그렇게 디렉션을 안해주면 못하는 거고, 해줘도 배우들이 잘해줘야죠. 그 합이 됐을 때, 무대미술이 완성되는 거죠. 사실은 돈이 없어서 무대를 제대로 못한다는 것도 핑계에요. 극을 정확히 이해하고, 연출을 비롯한 다른 스태프들과 커뮤니케이션이 완벽하게 이루어지면 적은 돈을 갖고도 나름의 좋은 공연을 만들 수 있어요. 


Q. 작업한 무대는어떻게 기록하시나요?

꼭 남겨놔야 될 것들은 도면이죠. 혹시 재공연하면 봐야 되니까. 파이널스케치는 장면별로 갖고 있고 프로그램북 정도. 사진은찍어두기 어려운 게 공연 중에는 찍을 수가 없고 리허설 기간이 짧아요. 요즘에는 이런 생각도 해요. 공연은 말 그대로 끝나면 없어지거든요. 같은 공연이라도 어제 공연이 오늘 공연이랑 다른 게 생명이에요. 그래서 재미있나? 하는 생각을 해요. 추억처럼.


Q.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무대는 미니멀한 느낌이었어요. 그게 전시장의 미술이라면 스타일을 지킬 수 있지만, 무대미술은 오브제들 틈으로 배우들이 섞여야 되잖아요. 그런데 배우들은 원통과 구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주름도 있고 냄새도 나는 지극히 사실적인 인간이에요. 이렇게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가 한 무대 위에서 어울릴 수 있게 하는 노하우가 있나요?

없죠. 있으면 책 썼게요. 그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에요. 출연자와 오브제와의 관계를 충돌시킬 것이냐, 같이 갈 것이냐, 반반 섞을 것이냐. 그걸 고민하는 게 무대미술가가 할 부분이라고 봐요. 사람을 갖고 어떻게 할 수는 없잖아요.

모양새로 생각 하면 안되고, 어떤 식으로연기하느냐, 연기톤이라고해요. 오브제가 어떤 형식으로 붙느냐에 따라서 연기가 많이 바뀌어요. 그게 배우의 일이죠. 서로 누구의 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같이 그걸 맞춰보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로 연습을 많이 보면서 ‘연기가 저런 식이면무대가 이건 아닌 것 같다.’하는 식으로. 배우의 표현 방식과 무대미술의 물성간에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거죠.
 

Q. 이번 공연은 어떤 방향을 염두에 두고 진행하셨나요?

이번에는 같이 갈 생각이 없었어요. ‘캐릭터 별 주요 장면에 충실하자’가 첫 번째. 또 인간 본연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작품이어서 ‘이런저런 장식들을 떼자’. 카체리나의 의자는 쌩뚱 맞았죠? 사실 그걸 원했어요. 마치 바비 인형이 사는 집처럼. 작품 전체를 뚫고 가는 주요 재질이나 물성은 거울이죠. 반영.

Q. 무대미술 과정 중에 가장 좋아하는 단계는 언제인가요?

입금 될 때? 하하하. 그건 아니고. 혼자 상상하고 아이디어를 전개하다가 연출자하고 이야기가 잘 맞았을 때, 뿌듯하죠. 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죠.
 

Q.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어서 가능했고, 그래서 즐거우셨던 점이 있나요?

배우들이 진지하게 땀 흘리는 속에서 같이 했다는 거. 제가 누구한테 ‘잘하네 못하네’ 하는 건 옳지 못하고, 연극을 하는 마음, 직업인으로서 성실하게 임하는 모습, 배워야죠. 나도 따라 해야죠. 이번 공연에 그런 분들이 많았어요.

 

인터뷰 이기호 객원기자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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