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이소영의 종횡무진 음악산책] 전남도립국악단의 도전과 성취

기사승인 2023.12.28  12:47:36

공유
default_news_ad2

- - 국악관현악을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

공무원에 준하는 근로조건을 제공받고 살아가는 국가 및 지자체 소속 국악단 모델은 불안정한 예술가의 일반적인 존재방식을 놓고 볼 때 더 할 나위 없이 안정감 있는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공무원 규정을 ‘준용’하는 방식이어서 대체로 정년까지 호봉승급을 보장 받으며 연장계약 된다. 안정감 있는 직장이니 생계 걱정없이 예술적 성취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악이 융성해질 수 있는 기본 시스템을 마련하는 중요한 토대인 셈이다. 문제는 이 안정적 근로조건이 오히려 예술가 집단의 예술적 창의성이나 열정을 저해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는 대한민국에서 국악관현악의 문제와 국공립단체의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 찾기에 나서면서 서울에서 가장 변방에 위치한 전남도립국악단(예술감독: 류형선)을 내가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이 단체의 지난 4년간의 행보가 이러한 문제를 누구보다도 정면에서 돌파하려는 대안적 시도라는 판단 때문이다.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하다

4년 전 전남도립국악단에 부임한 류형선 예술감독이 최우선으로 내세운 것은 ‘콘텐츠 경쟁력,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 확보’였다. 그는 먼저 중앙과 지역의 등급화 된 실력 차이는 불가피함을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등급화 된 예술 시스템을 수평적 가치의 공존형태로 바꾸어 낼 수 있는 도전을 자신의 예술감독 활동을 통해 증명해 낼 창의적 방안을 고심했다. ‘콘텐츠 경쟁력,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 확보!’ 이것이 예술감독으로서 그의 첫 번째 좌표였다.

1986년도에 창설한 전남도립국악단은 가무악희(歌舞樂戱) 구성이다. 창악부·무용부·기악부·사물부, 여기에 공연기획실까지 합쳐서 총 80명의 구성원이다. 다른 지자체 소속 국악단이 ‘국악관현악’ 중심인 것에 비해 전통예술 콘텐츠 경쟁력을 구축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었다. 류형선 예술감독은 이러한 가무악희 종합예술단이라는 점이 오히려 전남도립국악단이 갖는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간파하고 이를 다른 국악관현악단과의 차별성을 갖는 중요한 전략으로 사용하였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이 있다. 대개의 국악단은 정기공연·기획공연에 모든 여력을 집중한다. 그런데 류형선 예술감독의 전남도립국악단은 특이하게 ‘상설공연’에 모든 화력을 쏟아 붓는다. 심지어 기획공연·정기공연 조차도 상설공연을 성과적으로 해 내기 위해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 확보를 위한 기회로 활용한다. 그 이유를 물었다.

 

“매주 거듭하는 상설공연을 잘해야 진짜 실력이다. 한 번 두 번 큰 공연을 잘해 내는 것은 단원들의 힘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가능하지 않은가? 거듭 또 거듭 봐도 동일한 기대감을 충족시켜 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를 창고에 가득 저장해 두어야 가능한 일이다.”

 

전남도립국악단의 토요(상설)공연 타이틀은 ‘그린green국악’이다. 기후위기에 대한 전통예술의 대응 차원이 아닐까 싶어 물었다.

 

“기후위기는 가장 성공한 문명이 그 성공한 이유 때문에 스스로를 통째로 이 지상에서 파괴시킬 엄청난 위기 아닌가? 우리는 이를 ‘문명의 자기성찰’ 차원으로 다루고자 그린국악이라 이름 붙였다. 우리 단원의 표현을 빌리면 ‘지구 온난화 위기는 전통 가무악희가 반영해야 할 이 시대의 절박한 이면(裡面)’이다.”

 

전남도립국악단은 2023년에도 130회의 공연을 치루었다. 팬데믹 이전에는 평균 150회를 넘나 들었다. 공연 횟수가 너무 많은 게 아닌가, 물었다.

 

“그만큼 하는 게 국공립 예술단의 존재방식에 적합하다고 본다. 다만 그 많은 공연의 퀄리티를 끌어 올리는 게 내게 아주 중요했다. 그래서‘ 콘텐츠 경쟁력 확보,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 확보‘가 내게 아주 중요한 최우선 과제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안정감 있는 존재방식과 예술적 열정의 공존

전남도립국악단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온라인 활동에 관한 한 전국 단일 국악단 중에서 가장 큰 성취를 해 내고 있다. 류감독이 부임했던 당시만 해도 구독자 103명에 겨우 10개 남짓했던 콘텐츠가 지금은 3600명 구독자와 135개 콘텐츠로 성장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500명에서 6천명으로 늘었다. 지역 국악단이 자신의 확장성을 이루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한다. 코로나 시대 이후 비대면과 대면의 공존이라는 새로운 세상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

또한 전남도립국악단의 유투브로 발표된 레퍼토리는 대부분 ‘암보’로 연주된다. 암보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연습의 축적으로 암보가 이루어지고 암보 과정에서 발생하는 ‘설렘과 긴장’이 전남도립국악단 내에 건강한 예술적 에너지로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무대 위의 연주력 역시 미증유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안정감있는 존재방식과 예술적 열정의 공존이 전남도립국악단에서는 이렇게 가능했다.

전통예술의 공공적 가치실현

가장 궁금한 것은 언 뜻 ‘소모성 공연’으로 보이는 사업이었다. 전라남도 내 초중학교를 찾아가서 공연과 체험학습을 병행하는 <깍지 손 국악>이 그 대표적인 것이었다. 평균 40명이 넘는 단원이 연 25회 정도의 횟수로 ‘찾아가는 공연’을 하는 것이다.

 

“전통예술의 공공적 가치 실현! 이게 내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이다. <깍지 손 국악>은 문화소외지역 학생들에게 전남도립국악단의 평균 퀄리티가 보장된 가무악희(歌舞樂戱) 공연을 해 내겠다는 것이다. 전라남도 초중학교는 문화소외지역이 아닌 곳이 없다. 유일한 전라남도 소속 예술단인 전남도립국악단의 공연을 보려면 배타고 버스타고 3~4시간을 써야 한다. 우리가 가면 되는 것 아닌가? 전교생이 10명, 30명, 50명인 초중학교가 전라남도에는 즐비하다. 이 공연에 40명의 단원과 음향설비와 제반 시스템이 동원되는 게 당연히 소모성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발상을 전환해보면 이러한 소외 지역을 정성을 다해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도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예술가집단이 존재하는 이유일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미래의 국악 마니아 집단을 확보하는 중장기 전략도 되는 것이라고, 그는 부언한다.

 

지역 고유의 가치

지역 국악단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그 지역의 고유성’이다. 일견 설득력 있는 프레임으로 들리지만 그 지역의 기득권을 보장하는 이면이 포함되기 쉽다. 류형선 예술감독이 주목하는 지역의 고유성은 이와는 결이 다르다.

 

“지역 예술은 ‘가치’ 중심이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 지역의 고유한 가치가 반영된 예술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부임 직후 오라토리오 집체극 <봄날>을 정기공연으로 올렸다. 5.18 음악극이다. 2021년에는 여순사건을 다룬 가무악희 <또 다른 숲을 시작하세요>를 정기공연으로 올렸다. 나는 전라남도에서 이 두 사건을 음악극으로 다룬 것이 처음이라는 게 오히려 믿겨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 지역의 역사적 사건을 극화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노래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예술적 충동이 고양된다는 사실이다. 그게 그 지역의 고유한 가치에 착근하면서 빚어지는 새로운 예술 창작 방법인 셈이다. 전남도립국악단의 대표적인 레퍼토리와 대표 브랜드 콘텐츠는 대부분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창작하는 국악예술단원

전남도립국악단의 특이한 점 중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단원이 직접 창작하는 콘텐츠’이다. 굳이 ‘창작’하는 수고를 단원들이 마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매년 시행되는 ‘실기평정’ 때 새로운 창작물을 내놓는 단원들에게 가산점을 주고, 익년 레퍼토리로 개발될 수 있는 여건을 예술감독이 직접 마련해 준다고 한다.

예술감독이 작곡가이기 때문에 대부분 작곡과 연주의 공동작업의 형태인데, 이 역시 연주자의 생동감 넘치는 성음과 발음이 작곡가의 구성능력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모범적인 공동창작 방식이다. 전남도립국악단의 대표 레퍼토리는 거의 그렇게 완성되었다. 작곡가와 연주자의 공동창작 방식으로 빛을 이룬 작품 중 특히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이번 2023년 12월2일, 기악부 정기공연 무대에 올려진 <국악 관현악 산조>였다. 본래 류형선감독이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으로 재직한 시절에 초연된 작품인데, 여기에 동살풀이와 휘모리를 붙여서 개작 초연한 곡이다. 가락은 단원들이 직접 구성한 것이다. 특히 23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을 악보와 보면대 없이, 지휘자 없이, 단락의 매듭만 찍어 주는 집박 지휘에 의존하여 오로지 연주자들만의 호흡으로 연주하였다. 이번 산조 연주는 산조의 본고장이 전남임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일반적인 산조 합주보다 산조의 신명과 에네르기를 훨씬 더 짜임새 있게 보여준 공연이었다. 국악원이라는 단체의 단원들의 연주가 명인들의 집합체인 산조 합주를 능가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또 하나 눈길을 끈 작품은 ‘컨템퍼러리 이면가락 시나위 합주 <헝거스톤hunger stone>’이었다. 9명의 단원이 1년의 시간을 거쳐 만든 공동 창작이라고 하는데 ’나를 보면 울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기후위기를 빌미로 문명에 대한 성찰을 자신의 예술적 이면으로 고백하는 단원들의 진정성이 오롯하게 배어나온 작품이었다.

변방의 혁신이 중심을 견인하다

2023년 9월2일, 아창제 15주년 기념 학술대회가 있었다. 오랜만에, 양악계와 국악계의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하루종일 학술대회를 열었다. 학자뿐만 아니라 평론가, 지휘자, 작곡가, 연주가가 함께 한국창작관현악의 문제를 학술적, 비평적 차원에서 논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 이날 종합토론에 이르기까지 계속 뜨거운 감자로 다루어진 것은 국악관현악의 태생적 한계와 존재 이유의 정당성에 대한 것이었다. 비판의 기저에는 국악관현악을 서양관현악의 이식으로 보고 작곡과 연주의 분리, 국악기의 서양적 운용, 시김새를 비롯한 연주자의 손맛 결여 등에 대한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전통음악의 합주가 갖는 고유한 가치들이 과연 19세기 서구식 근대적 패러다임에서 형성된 국악관현악이란 매체를 통해 구현할 수 있는가, 이러한 매체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성찰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등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을 깔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평소 국악관현악단의 존재 이유와 방향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견지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국악관현악의 한계를 나름 돌파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원일의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같은 기존 국악관현악의 틀을 넘어서려는 새롭고도 전통적인 작업 방식과 실험을 눈여겨 보아왔다. 그러나 이번 가을, 원일 예술감독의 사퇴 이후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 여느 국악관현악단과 같은 길을 가게 될지, 기왕에 걸어온 길을 좀더 창조적으로 모색해 내갈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변별성이 약한 국공립 국악관현악단이 우후죽순으로 존재하는 가운데 연주자들의 창작력 고취와 경쟁력있는 콘텐츠 확보 및 로컬리티와 글로벌리티를 횡단하는 시대정신 반영, 국악의 동시대성 구현, 나아가 근대주의의 산물인 고전적 관현악이란 틀을 유연하게 넘어서서 가무악희의 종합예술단으로서 변별성을 확보하고 있는 전남도립국악단의 발걸음은 더욱 희소가치를 띠며 혁신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과 지방의 문화 생태계는 중심과 주변이라는 수직적 위계구조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기존의 편견을 깨고 오히려 주변과 변방이 혁신의 아이콘이 되어 중앙과 중심을 견인하며 새로운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전남도립국악단의 음악하기(musicking)가 다른 지역의 국공립 단체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국악관현악단에게 신선한 자극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소영 음악평론가.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