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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석의 행복론 ⑨] 여행과 행복1_낭만적 노스탤지어

기사승인 2024.04.25  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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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로라도 그냥 떠나는 것... 그것도 여행이다

램브란트 광장

여행과 행복

보통 여러 가지 목적으로 낯선 곳 혹은 이미 아는 곳을 방문하는 것 혹은 그 과정을 여행이라 한다. 여기서 사업적인 혹은 실용적인 방문이 목적인 경우는 되도록 논외로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여행의 맛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어떤 실용적 목적으로 낯선 곳 혹은 다른 곳을 방문하였으나 부수적으로 그 곳의 풍물이나 인물을 만나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이런 경우는 일종의 여행으로 보아도 될 듯하다.

아득한 과거에는 인류가 유목 생활을 했기 때문에 여행의 필요성이 거의 없었으나 그 이후 정착이 보편화되어 한 곳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게 되었다.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도시에 거주하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은 반복되는 일상에 염증을 내고 지루해지는 경험을 하게 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여행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또한 삶에서 파생하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혹은 기분을 전환하기 위하여, 혹은 새로운 체험을 하기 위하여 여행을 한다. 물론 단체 여행을 하는 경우, 홀로 여행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단체 여행이라도 가족여행이 다르고 타인과 함께 하는 여행이 다를 수 있다. 아래에서는 주로 홀로 여행하는 경우 혹은 소규모로 하는 여행을 전제로 스케치해 보고자 한다. 물론 단체로 여행을 하면서도 여행의 맛을 느끼지 말라는 법은 없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게 되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은 자기자신에 돌아오는 빈도나 강도가 약화되어 여행의 본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

여행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무작정 집을 떠나게 되면 설령 계획을 한다 해도 너무나 상투적인 생각만으로 남들이 보통 하는 방식에 머무르게 되고 그만큼 얻는 것이 적어질 수 있다. 아래의 사항을 체크해 보면 얻는 것이 적지 않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알랭 드 보통의 명저 『여행의 기술』(The Art of Travel)을 참고, 정리하면서 내 생각을 조금씩 끼워 넣으며 견주어 보려고 한다.

 

1) 기대 (장소: 런던 해머스미스, 바베이도스; 안내: J.K. 위스망스)

알랭 드 보통(1969~, 스위스)은 윌리엄 호지스와 쿡(영국의 탐험가)의 타이티 그림에서 영향을 받아 여행을 결심한다. 때로는 여행의 계획만으로도 행복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이다. 보통은 쿡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어 바베이도스(미국 남부의 쿠바와 아이티 주변의 서인도 제도 카리브해 동쪽 섬, 영연방 내의 독립국)섬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여행은 인생의 목적인 행복을 찾는 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은 여행이 모호하기도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의 모습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여행이 꼭 철학적인 사고를 요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의 목적지도 중요하지만, 그 이유와 방법은 더 중요하며 그것은 목적지나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각자가 찾아야 할 것이다.

위스망스(1848~1907, 프랑스 작가)의 소설 『거꾸로』(A Rebours)에는 퇴폐적이고 염세적인 주인공인 귀족 데제생트 공작의 영국 여행 계획이 보여 주는 문제점이 잘 그려져 있다. 여기에 어떤 장소를 상상하는 것과 그곳에 막상 도착했을 때의 차이에 대한 염세적인 분석이 잘 드러난다. 사람의 생각이 대체로 빠지기 쉬운 문제점이랄까... 공작은 어느 날 우연히 자국(프랑스)의 어떤 시골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의 사람들을 보고 사람들에 대한 혐오감이 강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영국 런던을 여행하고 싶은 욕구가 솟구친다. 영국인들은 혐오스러운 프랑스인들과 다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었을까? 어떻든 영국인들의 삶을 직접 보고 싶었다. 런던 안내도와 여행 전문 업체의 자료를 구입한 그는 자료를 읽으며 더불어 영국 시인 디킨스와의 달콤한 백일몽에 빠진다. 그러나 기차를 탈 시간이 다가오자 여행의 피로나 번잡함 등에 대한 귀찮은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그의 꿈들이 오염되어 간다. 결국 그는 영국행을 위한 기차를 타지 않고 자신의 별장을 향하고 만다.

 

여행의 현실은 기대와는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그 내용을 따라가고 있는 『여행의 기술』의 저자 보통은 여행을 계획한 지 두 달 후 친구 M(여자친구?)과 바베이도즈(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의 애덤스 공항에 도착했다. 그러나 자신이 있으리라 상상했던 것과 같은 것은 거의 발견하지 못한다. 인생에는 기대하지 않은, 전혀 엉뚱한 것이 있을 수 있고, 예술에서도 단순화와 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여행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즉 기차, 배, 식사, 기타 수많은 사소한 사건이나 경험으로 인해 의식은 불안하다. 우리의 삶 자체도 지루한 반복과 엉뚱한 강조와 논리를 벗어난 플롯으로 지칠 수 있는 것이다.

램브란트

데제생트는 오래 전에 네덜란드도 가 보고 싶은 생각이 떠올라 구체적 계획을 세운다. 그곳 화가 렘브란트를 비롯한 여러 화가를 떠올리며 그들과 닮은 곳이리라 막연히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막상 하를렘과 암스테르담에 가 보고는 실망한다. 현실은 그림과 너무 달랐던 것이다. 박물관에서 본 인상에 미치지 못해 실망해 돌아온다. 인생에서도 늘 기대와는 다른 냉엄한 현실이 펼쳐지곤 한다. 이에 절망하거나 의기소침해지기 일쑤인 것과 마찬가지다.

주인공은 마음과 몸의 상태가 너무 힘들어 여행 이외의 문제, 즉 불안, 권태, 슬픔, 재정 상태에 대한 불안에 골몰하게 된다. 어느 장소에 대한 기대감이 많지만 사실 그 안에서 느끼는 행복은 너무나 짧을 수 있다. 집에서의 걱정이 간간이 연장되어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미래에 대한 걱정, 또 여행비에 대한 걱정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보통은 동행자 M과 사소한 일로 다투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인간관계의 몰이해와 원한이 여행지의 아름다움과 편안함을 방해해 즐기지 못한다. 결국 삶에서 행복의 요소는 물질적인 것도, 미학적인 것도 아닌 심리적인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여행을 통해서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손쉽게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것들을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에서 경험하게 되는 점이 다르다면 다른 점이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

네덜란드에 다녀와 실망하여 영국 여행을 포기한 데제생트는 해외여행 자체를 포기한다. 대신 그는 자신의 별장에 여행의 호기심을 불러올 만한 여러 가지 물건을 수집한다. 외국의 도시, 박물관, 호텔, 기선 등에 관한... 그는 “상상력은 실제 경험이라는 천박한 현실보다 훨씬 나은 대체물”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정말 그렇기만 하다면...

 

알바트로스 새_시인 샤를 보들레르는 1842년 인도양 항해 도중 선원에게 붙잡혀 학대받는 알바트로스를 목격하고 창공에서는 신천옹으로 불리는 큰 새가 지상에 내려앉는 순간 무력해진 모습에 시인인 자신의 처지를 알바트로스에 빗대 '알바트로스' 시(<악의 꽃> 중)를 썼다.

 

2) 여행을 위한 장소

프랑스의 작가 샤를 보들레르(1821~1967)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어떤 남자와 재혼하면서 가정의 공포와 외로움의 고통으로 인해 멀리, 다른 대륙으로 떠나는 꿈을 꾸게 된다. 그러다 인도 남해의 모리셔스 군도에 들렸는데 기분전환이 되지 않아 다시 고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다시금 여행, 즉 집이 아닌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게 된다. 어디로라도 그냥 떠나는 것... 그것도 여행이다, 때로 그것이 보다 나은 여행이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미국과 영국의 현대 시인이자 희곡작가인 엘리엇(1888~1965)은 보들레르를 근대의 여행을 돕는 기계의 아름다움을 최초로 표현한 19세기의 예술가라 극찬한다.(“낭만적 노스텔지어”) 활주로, 공항 대합실의 여러 전광판과 독특한 분위기, 이륙하는 비행기에 대한 모습과 이에 대한 여러 색조의 기분... 보들레르는 떠나고 도착하는 장소도 사랑했지만 그곳에 있는 움직이는 기계들, 바(술집)들에 대한 매력과 신비감에 푹 빠졌다. 그 육중하면서도 날렵한 배들을 발전시킨 과학기술, 커다란 비행기가 이착륙하고 나는 신비한 모습에 새삼 경탄했다. 그 어떤 과학적 설명과도 관계없는 놀라움... 비행기를 타고 이륙하는 순간의 짜릿한 몇 초간의 해방감... 이륙하는 비행기의 빠른 상승은 변화의 전형적인 상승, 이러한 힘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를 짓누르는 엄청난 억압들 위로 솟구칠 것으로 상상하기도 한다... 비행기에서의 새로운 시점은 새로운 질서와 논리를 부여하며, 비행기의 엔진은 힘든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위에서 보는 구름은 솜사탕 같은 섬이며, 우리는 그 위를 날고 있다. 구름 위에서는 간단한 기내식 음식도 새로운 맛을 띠며 롤빵과 플라스틱 접시에 담긴 감자 샐러드는 새로운 풍미를 자아낸다.

 

호퍼_주유소

도로의 휴게소에서 마주친 고립감으로 호퍼(1882~1967, 미국의 화가)의 유화 몇 점을 떠올리며 슬픔으로 인한 외로움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호퍼는 스물네 살의 나이로 파리로 가서 보들레르(의 시)를 발견하고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의 시를 평생 암송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 인해 고독, 도시 생활, 근대성, 밤의 위로, 여행과 관련된 장소를 공유한다. 도로변의 “빈방 있음, 텔레비전과 욕실 완비” 등 새로울 게 없는 네온사인, 각종 남루한 식당들, 그저 그런 주유소 등에서 호퍼는 시를 발견하는데 그 중심 내용은 외로움이다. “자동판매 식당”이라는 호퍼의 그림 안에서 외로이 앉아 차를 마시는 여인은 슬프지만 위대하고 음울한 음악 작품과 같은 위력을 지닌다. 호퍼는 기차에도 많은 관심을 가진다. 바퀴가 철로에 부딪히며 박자에 맞춰 소리를 내는 동안 기차 안은 정적에 싸이고 두 대조적인 상태와 밖의 풍경이 어우러져 꿈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여기서 끝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호퍼_

여행은 생각의 산파다. 움직이는 배나 기차는 내적인 자기만의 대화를 이끄는 장소다. 눈에 보이는 것과 머릿속 생각이 밀접한 관계를 맺는 것이다. 정신이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의외로 생각이 쉬워지기도 한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이 오로지 생각뿐일 때 정신은 그 일을 잘 해내지 못하기도 한다. 음악을 듣거나 가로수를 눈으로 좇을 때, 생각은 쉬워지기도 한다. 기차 안에서 보는 풍경은 단조롭지 않다, 생각의 형성과 발전에 크나큰 도움을 준다. 평야를 가로지르며 아버지의 죽음을 생각하고 집필중인 스탕달론, 친구간의 불신에 대해 생각한다. 기차를 타면서 나로 돌아온 느낌이다. 그렇게 중요한 감정이나 관념을 다시 만난다. 몇 시간 동안 기차를 타면 그 만큼 나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느낌이 든다. 진정한 자아와 만날 수 있는 곳... 호텔 방들 역시 정신의 습관(타성)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곳이 될 수 있다.

-계속-

 

 

양우석 아욱스부르크대학 철학박사, 한국외대 철학과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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