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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희망을 부르는 투명한 독백과 따뜻한 연대감_에브리우먼

기사승인 2024.05.14  08:5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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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

<에브리우먼> 2024.5. 국립극장 달오름

 

 

Jeder stirbt!_Jedermann(누구나) 죽는다

 

마침, 비가 오는 날이었다.

무대 위에는 비가 내리고, 바흐의 칸타타 피아노 곡이 흐른다. 흘러내린 빗물로 흥건한 무대 위에는 커다란 두 개의 바위가 오롯한 채, 무대 중앙의 앞에는 구형 카세트 녹음기가 놓여 있다.

비 사이로, 음악 사이로, 노란 물결의 흐릿한 빛 속으로 한 사람이, 모두의(every woman) 누군가가 사라져 간다.

시나브로 점점이... 멀어져 간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려니,, 언젠가 사라지는 것, 멀어지는 것,

기억으로부터, 존재로부터

 

먹먹한 피날레의 인상적인 장면을 마지막으로 80분간의 모놀로그가 막을 내리면,

영원히 울리는 아리아의 끝 곡.. 그 노래를 듣고, 그 대사를 읊는다.

 

지난 5월 11일(토) 오후 3시,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샤우뷔네 베를린의 <EveryWoman 에브리우먼>(밀로 라우 연출)이 해외초청작으로 3일간 공연해, 둘째날 보러갔다.  최근, 홍수처럼 쏟아지는 공연들 속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배우 우르시나 라르디의 1인극 <에브리우먼>은 방대한 대사와 영상 속 출연하는 췌장암 말기 환자 헬가 베다우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두 사람의 삶과 죽음에 대한 심경의 과정이 80분간 전개된다.

예술의 궁극적인 이데아인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탐색을 극렬하고 생생히 몰입의 시간으로 이끌었다. 100년 전 <예더만>을 상기시켜 존재의 심연을 돌아보며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예술적 의의를 소환함으로써 음악의 가치 표현에 대한 상징과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는 무대가 됐다. 다큐의 형식을 닮은 듯한 모놀로그 무대는 아름다운 여배우 우르시나 라르디의 진심이 전해져 연대의 온기로 공감하며 희망을 엿볼 수 있었다.

다소 긴듯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상념으로 예감한 순간들이 의미를 담았다.

<관객과의 대화> 에서 배우 우르시나 라르디가 공연에 대해 말하고 있다._2024.5.11

"죽음을 맞이할 때, 무력감, 존엄성에 집중했다. 베다우씨가 가장 좋아하는 바흐의 음악을, 진심을 다해 피아노를 쳤고, 음악은 좋은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공연이 끝난 후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배우 우르시나 라르디는 직접 연주한 음악에 대해 말했다.

 

음악은 오래전부터 죽음과 함께 했다. 죽은이를 떠나보낼때도 음악이 있었고, <레퀴엠>은 대표적 추모 음악이기도 하다. 인간의 가장 내밀한 감정과 무한한 초월성을 보여주는 낭만성으로부터 '불멸'은 그곳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주곤 한다.

 

"이제 가야 합니다. 바흐를 들을 거예요.."

베다우는 길을 떠나며 생의 한가운데에서 그토록 삶의 기쁨과 환희를 만끽하며 즐겨들었던 바흐를 듣는다.

비 사이로, 음악 사이로 그녀가 점점 멀어져갈 때, 음악은 한층 깊어진다. 삶과 죽음 어디쯤엔가 겹겹이 포개어진 영롱한 시간의 레이어를 수놓으며....

2020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100주년 개막작으로 초연된 <에브리우먼>은 매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Salzburger Festspiele>의 첫날, 개막으로 공연하는 후고 폰 호프만슈탈의 <예더만>의 새로운 버전이 된 셈이다.

 
)

 

<잘츠부르크 음악제>의 태동이 된 이 작품 <예더만>이 잘츠부르크 고성 아래 광장에서 노천연극으로 개막을 장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중세의 종교극이라 할 수 있는 바로크 신비극 <예더만>은 인간 존재의 우화극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 무너진 유럽 문화의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재건하고 인간적인 가치를 구현하고자 한 음악제의 목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100년이 지나 오늘날까지 고요한 도시였던 인구 4만의 작은 도시 잘츠부르크에 전 세계 예술인들이 모여 ‘예술의 수도’가 된 까닭이기도 하다.

연출가 밀로 라우는 이번 내한공연에 오지는 않았는데, 우르시나는 그들이 <예더만>과는 차별화되는 방식으로 인간의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예더만>과의 유사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두 가지 측면에서 볼 때, 그 하나는 <예더만>의 마지막 장면 문장의 구절을 통해 인간 삶의 생애를 통한 의미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 이로써 그는 인간의 수명을 다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심판자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오직 그의 ‘업적(선)’만이 그를 돕고 변호할 것이다..”

Jedermann
예더만_잘츠부르크 페스티벌 _2015

호프만슈탈의 <예더만>(1911)은 15세기 영국의 도덕극 <에브리맨(Everyman)>과 16세기 독일 극작가 한스 작스가 쓴 <죽어가는 돈 많은 사람에 관한 희극>을 바탕으로 한 운문극인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죽음에 당면해 신 앞에 불려가 삶을 돌아보는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된 기독교적 교리"를 담았지만, 호프만슈탈 자신이 말하듯 “기독교적인 옷을 입힌 인간적인 동화”로 선(善)을 향한 인간의 노력을 그린 보편적 인간 실상의 알레고리 연극이라 할 수 있다.

Jedermann

또 하나는, 당시 예술계에서 걸출한 젊은 천재로 평가받았던 호프만슈탈의 시 <이른 봄 >(1891)과 운문극 <바보와 죽음>(1893)에 드러난 죽음에 관한 상징이다. 호프만슈탈은 김나지움 학창시절부터 다양한 필명으로 작품을 발표했는데, 스테판 츠바이크가 말했듯이 “호프만슈탈의 출현은 세계 문학사상 하나의 기적”이었다고 할 정도로 어린 나이에 죽음에 관한 깊은 성찰과 암시적 메시지가 놀랍다. 

세기말적 서정성이 담긴 시 <이른 봄(Vorfrühling, 早春)>에는 인간 존재의 생애(生涯)에 대한 무상함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빛을 발한다.

 

봄바람이 스쳐지나간다

나뭇잎이 없어진 가로수 위를,

봄바람이 불고 지나가는 곳에서는

희한한 일들이 벌어진다.

....... 중략

잎들이 없어진 가로수 위를

봄바람은 달린다

....

밋밋하고 헐벗은

가로수를 지나

봄바람은

창백한 그림자를 몰아간다

지난 이 한 밤을

아득히 먼 곳에서

몰고 온

그윽한 향기

 

호프만슈탈이 19세 때 쓴 그의 대표작 <바보와 죽음 Der Tor und der Tod>(1893) 에서는 죽음에 관한 더욱 깊은 탐색과 관조를 보여주며 <에브리우먼>과의 연관성을 갖게 한다.

여유로운 고상한 취미생활로 향락적 삶을 살아온 젊은 귀족 클라우디오는 죽음이 맞이하러 온 순간에야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죽음과 화해한다.

 

“.... 지금 죽어가는 이 마당에 비로소 나는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낀다. 나는 지금 삶의 꿈의 감각에 마구 넘쳐서 죽어서도 눈을 뜨고 있을 것이다.”

 

<바보와 죽음>에서 죽음이 찾아오는 순간에 방문한 ‘죽음(Tod)’이 바이올린을 켜며 들어오는 연주자라는 것, 마지막 장면에 죽음이 사라져 갈 때, 창문 밖으로 죽음이 바이올린을 켜며 지나가는 것이 보이는 등은 <에브리우먼>에서 피아노 연주를 통해 음악의 효과로 연결됨을 보여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음악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을 흔드는 것이 표현되었다고 보여진다.

'어느 돈 많은 사람의 죽음에 관한 연극'이라는 부제가 붙은 <예더만 Jedermann> 서문에서 호프만슈탈은 이미 예언처럼 말하고 있다.

후고 폰 호프만슈탈(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창시자

"구전동화처럼 전해지는, 어느 시대에나 어울리는 보편타당한 이 동화를 다시 한번 시도하는~" 이유가 독일 민중의 살아있는 유산이 특정 계급(유식, 유산층)의 전유물처럼 되어있기 때문이라며, "어쩌면 훗날, 미래의 어느 시대에 누군가에 의해 다시 시도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의 예언처럼 100년이 지나 <예더만>은 <에브리우먼>으로 재시도되어 우리에게 찾아왔다.

 

문득,

'제53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서 공개됐던 영화 <레퀴엠>(2000) 이란 영화의 포스터 이미지가 <에브리우먼>과 닮았다는 것(눈 EYE을 강조)이 이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에서는 마약중독자의 체험을 드러내며 욕망(각자의 꿈)을 위해 환각을 선택했지만, 꿈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통해 여전히 꿈을 부여잡고 나락으로 치닫는 악몽을 보여 준다.

삶(꿈)을 붙잡으려 하는 사람들의 허망한 꿈(환각)에 대해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는 점에서 <에브리우먼>의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적 주제에 무관하지 않고, 또 다른 생(生/TOD)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에브리우먼>에서는 삶의 마지막에 직면한 인간의 구원을 향해 메시지를 던진다.

문틈 사이로 엿보이는 존재의 궁극의 구원에 대해 ‘희망(Hoffnung)’ 이라는 키(열쇠)를 제시한다. 배우 우르시나는 에브리우먼의 영상 프로젝트에 기꺼이 참여한 헬가 베다우의 열린 마음과 무대를 통해 연결된 우리의 연대감이 '희망(Hoffnung)'을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희망의 제안은 <예더만>의 신적인 구원과 유사하면서도 차별화되는, <에브리우먼>의 독특한 방식이 된다. 죽음 너머 “영원한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는” 그곳을 향한 그 문은 누구(everywoman)에게나 열려있는 것이니까.

 

2023.5.11. Sat. 3pm. 국립극장 달오름

 

*헬가 베다우는 2020년 샤우뷔네 초연 후 2023년 1월 세상을 떠났다.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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