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머시브 오브제극 <미토의 고백>
미토의 고백 |
공연장의 ‘옛날 명칭’ 어린이회관
춘천시립인형극단은 KT&G 상상마당 춘천과 공동으로 기획하여 지난 5월에 이어서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미토의 고백>을 재공연하였다. 공연장은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센터 B동 1층이었는데, 이곳은 1980년 개관하여 2014년 4월 28일까지 ‘어린이회관’이었던 공간이다. 서울에 살던 필자도 1990년대 후반 춘천인형극제 공연을 보러 여기에 왔었다. KT&G 상상마당 춘천이 있는 이 공간은 다양한 공연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곳이다. 지금도 관객들은 이 공연장에서 받은 감동을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미토의 세계에 초대받은 사람들
이머시브 오브제극 <미토의 고백>은 이런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제작한 공연이었다. 관객들은 주인공 미토가 초대하여 이곳에 왔다. 만약 20대 이상인 관객이라면 이곳을 ‘어린이회관’이라고 불렀을 때 실내와 실외 공연장에서 본 작품이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도 혼자서 또는 가족의 손을 잡고 미토를 만나러 와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관객들은 입장 관리소에서 팔찌를 받은 후 미토의 세계로 들어갔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팔찌는 관객과 다른 대상을 ‘연결’하는 의미를 내포하는 주요한 소품이었다. 큰 환대를 받으면서 미토를 만나러 온 관객들은 주인공인 미토가 부재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관객들은 놀라고 당황하면서도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지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인터뷰로 기억의 주름 만지기
하이브리드 인형으로 표현된 미토의 집 안내자는 미토님이 비밀스러운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관객들을 초대했다고 말했다. 먼저 두 개의 방으로 관객을 따로 안내하여, 가족에 관한 영상을 보여주었다. “당신은 가족과 연결되어 있나요?” 영상의 주요 내용은 ‘KT&G 상상마당 춘천 아트센터’인 이곳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여러 사람이 영상에 등장하여 가족에 관한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집 안내자는 영상을 본 후 부재한 미토를 대신하여 관객 한 분을 초대하여 관객의 가족에 관해 인터뷰하였다. 물론 관객이 내밀한 얘기까지 말하진 않았지만, 공개할 수 있는 사생활에 관해서는 성실하게 나누어 주었다. 이 장면을 통해 미토라는 인물은 ‘관객을 초대한 주체’에서 관객과 연결된 ‘관객’으로 치환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미토의 기억은 곧 관객 각자의 기억과 연결되었고, 관객 스스로 가족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성찰하는 데 이르렀다.
“어디에서 오신 누구십니까? 그곳에 누구와 함께 살고 계시는가요? 그곳에 …님과 가장 깊이 연결된 분과 살고 있으십니까? …님의 가족 관계는 안녕하십니까? 살면서 가족에게서 벗어나려고 한 적이 있을까요? 있다면, 언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님에게는 ‘붙이지 못한 편지’가 있습니다. 만약에요? 부치지 못하고 마음에 품고 있는 편지가 있습니까? 있다면, 누구에게 쓴 편지입니까? 내용을 조금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님은 가족을 포함하여 무엇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님이 강하게 연결되고 싶은데, 그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까? 미토님은 “몸은커녕 내 마음을 머무르게 할 집조차 이젠 없다.”고 하셨습니다. …님은 어떠세요? …님에게 집은,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인터뷰 질문 인용)
최초의 기억을 찾아서
두 공간에 있었던 관객들은 장소를 옮겨서 한 복도에 모였다. 그곳에서 미토가 어떻게 살았는지를 살펴보는 공연이 진행되었다. 손톱을 다듬지 않아서 손톱이 길게 자란 호기심 많은 가시덤불 소년과 뭘 자꾸 먹는데 먹는 순간 밖으로 다 쏟아지는 먹보 소녀가 등장하였다. 미토의 어린 시절과 관련 있는 욕망과 결핍을 상징하는 인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집처럼 보이는 머리에 추상적인 얼굴 형상을 한 하이브리드 인형과 날개가 빨간 어떤 인물이 등장하였다. 엄마나 자연과 연결된 날개 달린 아이를 표현한 것으로 보였다. 이 장면 이후에 고래 한 마리가 등장하여 다른 이미지와 서로 중첩되었다. 어린 시절 미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사람이나 자연과의 연결이나 공존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찾아온 미토의 방
집 안내자는 복도 장면 마지막 대목에서 미토의 사망 소식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그런 다음 미토가 왜 죽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미토님의 속을 들여다보길 원한다면, 미토님의 방에 들어가 보자고 제안한다. 미토님은 세계가 모두 연결되었다고 믿었는데, 관객들이 이를 믿는다면, 그 증표로 자석이 있는 팔찌를 서로 연결한 후 미토님을 만나러 가자고 말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미토의 방에서 펼쳐졌다. 미토의 몸에 기억된 미토의 삶이 해부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머리와 눈, 배 등 미토의 몸에서 찾을 수 있는 미토의 과거와 생각을 확인했다. 여기서는 과학과 상상이 절묘하게 만나는 장면이 많았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에 즉각 반응하는 어린이 관객과 심사숙고하는 다른 관객의 태도가 서로 달라 미토에 관해 표면과 심연을 두루 오가며 살펴볼 수 있었다. 관객의 연령이 다양하기에 오히려 더 큰 시너지를 발휘하는 공연장이 연출되었다. 특히, 마지막에 미토의 몸속에서 똥과 보석이 함께 나올 때는 어린 관객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관객들은 똥과 함께 섞여 나온 빛나는 보석을 팔찌에 하나씩 매달고 나와서 복도 끝에 있는 생명나무에 불을 밝혔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낭만적인 분위기가 되었다. 미토가 꿈꾸던 연결을 통한 공존의 미학이 환하게 빛나면서 부활한 것이다.
오브제극의 새로운 지평 열기
이 작품에서는 미리 녹음하거나 녹화한 매체도 사용하였지만, 현장에서 연주하는 생음악 연주나 현장 영상을 함께 사용하여 공연의 풍부함과 생생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공연에서는 추억이 켜켜이 쌓인 이 공간의 깊이도 영리하게 활용하였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 가족이나 다른 사람과 연결된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게 하였다. 이를 위해 적절한 매체로 구체적인 인형과 다소 추상적인 오브제 인형을 함께 등장시킨 것이다. 인물을 표현하는 오브제는 특정 대상을 가리키기보다는 존재 자체를 표상하기에 한층 깊은 근원을 찾아보게 했다. 그래서 이 공연을 인형극 너머 오브제극의 지평을 보여준 선구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어린이와 성인 모두 이 작품을 감상하며, 인간 존재에 관해 철학과 과학, 미학 층위에서 함께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훌륭한 오브제극을 만든 춘천시립극단 창작진께 큰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 더 갈고 다듬어서 단단한 연결을 통한 공존의 미학을 많은 관객에게 전해 주길 바라고, 응원한다.
사진_춘천시립인형극단
오판진(서울대 강사, 연극평론가)
이수민 기자 Press@ithemo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