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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 GALLERLY] 2월의 초대작가_전준엽

기사승인 2018.02.24  11: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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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의 모든 것이 연결된 한 순간 <별 하나에 추억> 연작

‘별 하나에 추억과-폭포’, 전준엽, 캔버스에 유채, 100호P, 2017년

별 하나에 추억(追憶)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憧憬)과/ 별 하나에 시(詩)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어머님,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 소학교(小學校) 때 책상(冊床)을 같이 했든 아이들의 이름과, 패(佩), 경(鏡), 옥(玉) 이런 이국(異國) 소녀(少女)들의 이름과, 벌써 아기 어머니 된 계집애들의 이름과 가난한 이웃 사람들의 이름과, 비둘기, 강아지, 토끼, 노새, 노루, “프랑시스 · 잠” “라이너 · 마리아 · 릴케” 이런 시인(詩人)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읍니다./ 별이 아슬이 멀듯이,/어머님,/ 그리고 당신은 멀리 북간도(北間島)에 게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 많은 별빛이 나린 언덕 우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흙으로 덮어 버리었읍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부끄러운 이름을 슬퍼하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우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우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게외다.

- 윤동주, ‘별 헤는 밤’

 

 

별 하나에 추억과-여행/캔버스에 유채/30호P/2017년

 

별은 꿈과 추억과 우주적 상상력을 안겨준다. 시인 윤동주는 암울한 일제 치하에서 부딪히는 지식인의 고뇌를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며 내일의 희망을 꿈꾼다. 오늘이 단지 끝이 아니며 이름 묻힌 언덕 위에도 새로운 풀들이 무성하듯이 오늘과 내일, 시간의 영속성은 이어져 있다. 유화로 표현한 진경산수화로 화단의 주목을 받아온 중견작가 전준엽의 <별 하나에 추억> 연작은 수많은 별빛 가득한 은하계 속을  고래 한 마리가 매화 핀 폭포수의 진경 산수를 향해 유영하는 그림이다.

우뚝 솟아있는 암석들 사이로 꼭대기로부터 아래로 흐르는 시원한 물줄기는 빛을 만나 더욱 영롱한 분위기를 그린다. 그동안 목가적 자연풍경을 빛과 조우하는 회화적 표현을 고수해 온 작가의 신작(2017)은 별빛 가득한 우주 속에서 더욱 풍성한 감성을 화폭에 담았다. 전작가는 “윤동주 시인을 옥죄였던 이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살아남아 있다”며 “그의 시 ‘서시’와 함께 ‘별 헤는 밤’에 담긴 감성을 화폭에 옮기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별은 예전부터 먼 곳의 심연에 다다르고픈 인간의 근원적 염원과 기원을 담아 소망하는 이상향 같은 상징이 되어 왔다. 그 이름도 다양하다. 아련한 별똥별, 샛별, 달별, 살별, 어둠별, 떠돌이별 등 각양의 별의 이름들은 나름의 유래가 있는데, 그 중 샛별은 금성(Venus)를 가르키며 동쪽 하늘에서 반짝이며 시선을 끄는 별로 동방박사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한 별이다. 또, 별똥별은 유성으로 우주에 떠 있던 물체가 대기권에 진입할 때 마찰에 의해 빛은 내면서 떨어지는 운석의 별이름이다. 떠돌이별은 행성(行星 Planet), 유성, 혹성을 뜻하고, 살별은 혜성을 가르키며, 달별은 위성으로 행성의 끌어당기는 힘에 의해 그 행성을 도는 별로 지구에 대한 달이 그 대표적 별인 것이다.

시인은 별들이 아슬이 멀 듯이 느껴지는 고국의 새, 동물, 어릴 적 친구들, 이웃 사람들, 좋아하는 시인들, 그리고, 어머니..., 이들의 이름을 별을 헤듯이 헤아리며 그리워한다. 그리움이 깊을수록 현실의 벽과 스스로의 무능을 질책하며 자괴감에 슬퍼하면서도 겨울 지나 봄이 오면 이 모든 고난과 굴욕을 묻고 새싹이 피어나 다시 일어서리라는 무성한 희망을 별에 새기며 시를 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는 시인의 감성을 통해 별빛속에 담긴 시인의 감성을 화폭에 옮겼다. 은하계를 유영하는 고래라니? 바닷속도 아니고 우주 속에 웬 뜬금없는 고래를 그려넣었을까? 고래는 오랜 역사를 품고 있다. 인간이 출현한 제4기 홍적세 중기에 이미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발굴된 고래의 화석은 지금과 조금 다르나 이미 고래수염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있고, 이빨고래류의 조상은 그보다 먼저 제3기 에오세 후기부터 출현했고, 고래는 육지를 보행했던 시대를 거쳐 물가에서 살다 점차 바다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만큼 고래는 오랜 고생적 시간을 통해 인간 존재의 기원과 함께하는 상징적 동물로 여겨져왔다. 우리나라 울산 반구대의 신석기시대 바위 조각에서도 볼 수 있는데, 고래 뱃속에서 살아온 이야기, 설화나 민담 등에 얽힌 이야기 등은 이후 피노키오, 백경 등 문학과 영화 속에도 상상력 자극하는 소재로 지금까지 자주 등장하곤 하며 오랜 기원을 내포하고 있다.

인간에게도 친근한 존재로 같은 포유류이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종이 다양하고 지능도 높아서 그림 속의 은하계를 유영하는 고래 한 마리는 어쩌면 유구한 시간 속 우주의 한 점 같은 지구상의 인간 존재의 고독한 상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거대한 몸짓과 굳건한 눈빛은 시간과 역사를 거슬러 의지의 표상으로서 인간의 모습에 대한 형상화 내지는 신화적 상상을 담은 존재에 대한 이상적 표현이랄까. 고래는 우주의 한 부분인 진경 산수를 향해 유영하는 몸짓으로 다가간다. 고래는 연작의 다른 그림에서 우주를 노젓는 뱃사공의 모습으로 치환되기도 한다.

바탕을 이루는 누르스름한 황토빛 대지의 색감은 낯익은 한국적 정취를 자아내고 영롱한 별빛이 흐르는 우주 속에 오롯한 한국적 정취의 진경산수화의 세계를 펼친다. 전준엽 작가의 코발트빛 푸른 청색은 ‘별하나에 추억’ 시리즈에서 더욱 두드러지는데, 짙은 감청색의 우주는 깊은 심연을 표현하고, 환한 빛이 반사하는 폭포수 흐르는 파란 못, 풍랑이는 바다, 암석 위에 치솟은 꿋꿋한 노송 등은 산수화의 현대적 정취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그의 그림에서 친근하게 나오는 동화적 장면의 연출은 은하계의 돛단배 한 척, 우주를 노젓는 뱃사공의 모습에서 어김없이 나타나 따뜻한 정서를 느끼게 한다. 그의 작품에 한결같이 드러나는 밝음과 밝은 세상에 대한 믿음이다.

 

임효정 기자

 

별 하나에 추억과-파도/캔버스에 유채/30호M/2017년

 

 

작가노트

<별 하나에 추억과> 시리즈를 시작하며

예술가에게 지사적 삶을 요구하는 시대가 있다. 윤동주가 살았던 시절이 그랬다. 타고난 서정성 탓에 행동하는 지식인이 될 수는 없었던 그는 시대에 대한 송구스러움을 참회의 고백으로 시에 담았다. 하늘, 별, 바람 그리고 시로만 시대를 견뎌야 하는 자신이 밉다고. 그게 어쩔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이라고. 고난의 농도나 시대 성분이 달라져도 예술가의 고뇌는 같다. 이념이 번성하는 시대의 예술은 피폐할 수밖에 없으니까. 윤동주 시인을 옥죄였던 이념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살아남아 우리 감성을 적신다. 예술의 생명력이다. 그의 시를 다 좋아하지만 특히 ‘서시’와 함께 ‘별 헤는 밤’을 자주 읊조린다. <별 하나에 추억과>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연작 중 하나다. 1941년 어느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시인은 자신과 연결된 많은 일들을 기억해 냈을 게다. 그가 헤아렸던 밤하늘별을 필자도 보고 있다. 그러다 떠오른 주제다. 저 무수히 많은 별 중에 먼지처럼 반짝이는 빛 하나가 지구겠지. 그 곳에서도 아시아의 조그마한 나라에 태어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무엇일까. 그 무엇은 필연이다. 시공을 뛰어넘어 이어온 인연의 결과가 오늘 내가 보고 있는 현실이다. 동양에서 키워낸 세상을 바라보는 이치를 그려보고 싶었다. 예부터 우리는 세상 모든 일이 날줄과 씨줄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을 품어 왔다. 내가 바라보는 세계가 유일하다고 믿지 않았고, 보이지 않는 다른 세상이 있다고 생각했다. 창조와 종말이 아니라 생을 거듭하는 윤회를 믿게 된 까닭도 그런 이유다. 우리 삶은 좌우전후 사방팔방으로 연결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내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만물이 서로 주고받는 작은 힘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즉, 지금 이 순간은 내가 있어서 가능한 게 아니고 우주의 모든 것이 연결된 결과의 한 순간이며, 내가 존재하는 일도 그런 연결 속에서 필연적으로 나오는 결과라는 생각이다.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된 것처럼.

 

전준엽 작가

 

전준엽 화가·미술저술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 세계를 유화물감으로 표현한 그림을 그린다. 중앙대 예술대에서 회화를 전공, 맑고 정갈한 토속적 정서를 통해 한국적 미감의 표현 방법을 모색해오고 있다. 1986년 첫 개인전을 가진 이래 현재까지 전업작가로 서울, 도쿄(東京), 로스앤젤레스, 뮌헨, 홍콩, 뉴욕 등에서의 개인전을 비롯, 300회 이상 기획전에 참가했다. 성곡미술관 설립 멤버로 9년간 학예연구실장으로도 활동했으며, 작품 활동 외에 미술에 대한 글쓰기를 꾸준히 하며 신인 작가들을 발굴, 육성하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저서로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나는 누구인가’ ‘익숙한 화가의 낯선 그림 읽기’ 등이 있다.

 

http://www.art500.or.kr/chunjunyeup.do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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