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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성의 클래식과 함께 하는 식도락여행 ⓵]_식도락의 제왕 조아키노 로시니 1편

기사승인 2018.04.10  18:4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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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t alors, tournez le dos(그러면, 등을 돌려서 요리하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로시니

조아키노 로시니(Gioacchino Rossini, 1792~1868)는 역사상 의심할 바 없는 위대한 작곡가인 동시에 19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미식가였다. 

잘 알려진 미식가인 웨이버리 루트(Waverley Root)는 “드라마, 드라마, 드라마! 이탈리아인의 음식은 오페라 같아야한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아마도 그에게 있어서 작곡가는 음표 대신 덜그럭거리는 접시와 쨍그랑 부딪치는 유리잔들의 소리를 음표로 바꾸어놓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로시니의 경우는 이러한 루트의 생각을 대변하는 아주 좋은 예로서, “만약 그의 음악적 재능이 미식가로서의 재능을 가리지 않았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축복받은 미식가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탄식했다. 로시니의 많은 전기들에도 반은 사실이고 반은 전설이 된 다양한 그의 미식학적 일화들이 많이 등장한다.

 

마리 앙투완 카렘

까렘과의 운명적인 만남

전기작가들은 로시니는 이미 소년시절부터 미사를 위해 준비된 와인을 즐겼다고 그의 선천적인 미식기질을 회상한다. 어떤 문헌에는 젊은 음악가 로시니가 <세빌리아의 이발사, Il barbiere di Siviglia>의 오프닝 밤 장면을 날려버리고 샐러드를 위한 새로운 레시피를 묘사하는 세부적이고 장황한 장면을 끼워넣으려고 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레시피는 자연스럽게《Salad alla Rossini》로 탄생하게 된다. 

Salad alla Rossini

 

마에스트로 스탕달(Stendhal) 역시 로시니의 전기를 썼는데, 오페라 <탄크레디, Tancredi>는 당시에는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아리아 “이렇게 설레는 가슴이(Di Tanti Palpiti)”는 유럽 전역을 거쳐 잘 알려졌다고 하며 ‘쌀을 위한 아리아’라고들 친근하게 부르곤 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어느 날 로시니가 레스토랑에서 주문한 리조또가 나오기 기다리면서 이 음악을 작곡했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 로시니는 오페라 <라 세레넨톨라, La Cenerentola> 가운데 아리아 “슬픔과 눈물 속에서 자라나(Nacqui all'Affanno e al Pianto)”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고 하는데, 이는 로마의 한 선술집에서 술 마시고 떠드는 친구들이 자신이 앉은 구석 테이블을 둘러싸는 바람에 15분 정도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시간 안에 작곡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파리에서 체류할 당시 로시니는 당대 최고의 명망 있는 음악가로 숭배 받았다. 전기 작가들은 로시니와 친분을 맺었던 당대 최고의 천재 주방장이자 ‘요리의 왕’으로 지금까지 추앙받는 앙토넹 까렘(Antonin Carême, 1784~1833: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 러시아 로마노프 왕가, 대영제국 조지 4세의 요리사로서 프랑스 요리의 기초를 세운 전설적인 요리사)이 그를 두고 “나를 진정으로 이해한 단 한 사람”이라 단정지었다고 전한다.

 여러 해 동안 이 두 사람은 그들이 속한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에 경의의 표시를 주고받았다고 한다. “마에스트로, 만약 당신이 나와 함께 한다면 기꺼이 아메리카로 갈 것입니다.” 로시니는 이렇게 말할 정도로 까렘에 무한한 신뢰를 표시했다고 한다. 

 

 

까렘이 로시니에게 보내준 가메 빠테(game p&acirc;t&eacute;)

까렘은 볼로냐에 있는 로시니에게 맛있는 가메 빠테((game p&acirc;t&eacute;)를 보내면, 곧 로시니는 까렘을 위한 짧은 아리아를 작곡하여 선물하곤 했다. 이것이야말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백아와 종자기에 비견할 만한 위대한 음악적 교분이 아닌가!

 

트러플(송로버섯)

 파리에서 로시니는 단 한 번도 칠면조 요리에 트뤼플(Truffle)를 곁들여 즐기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한다. 이는 저서 「맛의 생리학」(Physiologie du goût)을 통해 트뤼플의 섹슈얼리즘을 찬양했던 법률가이자 정치인, 식도락가이자 미식가인 장 앙뜨렘 브리아-샤바랭(Jean Anthelme Brillat-Savarin, 1755~1826)의 선언에 충실히 따른 것으로서, 당시 파리에서는 트뤼플이 커다란 유행이었다.

 

뚜르느도 로시니

 

뚜르느도 로시니의 탄생

한 번은 로시니가 트뤼플을 곁들인 칠면조 요리를 건 내기에서 이겼다. 그러나 그 내기는 결코 명예롭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마에스트로의 끈질긴 요구에 어쩔 수 없이 응대한 내기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기에서 진 사람은 돈이 없고, 무엇보다도 일등급 트뤼플을 구할 수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로시니는 무심결에 “넌센스야, 넌센스”라고 말하며, “트뤼플로 맛을 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은 칠면조를 둘러싼 고약한 음모인 것이 분명해”라고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또 다른 일화에 따르면, 로시니는 평생토록 딱 세 번 울었다고 한다. 한 번은 그의 첫 오페라 공연이 실패했을 때, 두 번째로는 니콜로 파가니니(Niccolò Paganini)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었을 때, 마지막으로는 선상에서 뱃놀이를 할 때 점심으로 나온 트뤼플이 얹어진 칠면조 요리가 배 밖으로 떨어져서 가라앉았을 때.

칠면조 요리

 

저 유명한 메뉴인 《뚜르느도 로시니》(Turnedos Rossini: 구운 기름 없는 소등심인 뚜르느도 사이에 가금류를 넣고 트뤼프 버섯과 프와그라를 얇게 저며 한 조각씩 얹은 음식; tournedos는 회전하다라는 뜻의 동사 tourner와 등이라는 뜻의 명사 dos로 조합된 것으로서, 즉 뚜르느도 로시니란  “등 돌린 로시니”라는 뜻)의 발명은 가히 전설적이다.

 파리의 꺄페 앙글레(Café Anglais)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로시니가 식사 준비를 직접 보고 싶어했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요리하는 과정을 바로 앞에서 보고 싶었던 로시니는, 주방장이 바로 자신의 테이블 앞에서 요리할 수 있도록 호의를 베푸는 척했다. 그러나 결국 주방장은 로시니의 끈질긴 간섭을 견디다 못해 그의 요구를 거부해버렸다. 그러자 마에스트로는 짧게 이렇게 대답했다. “Et alors, tournez le dos (그러면, 등을 돌려서 요리하시는 것은 어떠실까요).”

 

글: 박제성(음악칼럼니스트)

필자 박제성

 

- 쌀을 위한 아리아

오페라 <탄크레디, Tancredi>, 아리아 “이렇게 설레는 가슴이(Di Tanti Palpiti)”

https://www.youtube.com/watch?v=CEfcNDKZLDA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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