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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쿠사이의 파도, 제2의 자포니즘..

기사승인 2018.07.09  23: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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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츠시카 호쿠사이 <파도 뒤로 보이는 후지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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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가 경제를 이끄는 시대다. 자동차 수 천 대를 파는 것 보다 잘 만든 영화 한 편이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시대가 됐다. 세계가 중국을 주목하는 이유도 중국이 동양 문화를 이끌어 왔고, 그 만큼 문화적 텃밭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금세기 문화 전쟁 대열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21세기 벽두, 세계는 자포니즘으로 물들고 있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일본적인 문화 취향을 ‘세련되고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은 장기 침체에 빠져 있던 일본 경제를 되살리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

자포니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19세기 중반 유럽에서 한 차례 불었다. 유럽인들은 일본 문화의 이국적인 장식성에 매료됐다. 당시 자포니즘을 이끈 것은 도자기와 우키요에(일본의 통속적인 생활상을 주제로 한 그림)였다. 150여 년 지나서 다시 불어오고 있는 자포니즘은 국지적 열풍이 아니라 전 세계를 휩쓸 가능성을 보이는 태풍 수준이다. 애니메이션, 패션 등 시각 문화에서부터 음식, 레저 등 일상 문화, 종교, 문학 등 정신문화 그리고 건축과 인테리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그런데 자포니즘의 주동력이 일본 전통 정서에 기반을 둔 시각 문화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11세기부터 모노가타리(일본 고대 소설 형식)를 두루마리식으로 그리는 이야기 그림(에마키)이 나타났고, 이런 전통이 17세기 우키요에와 이후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세계적인 만화 왕국을 일군 것이다. 자포니즘을 이끈 대표적인 그림 한 점을 보자. 미국의 시사 월간지 <라이프>는 최근 지난 1천 년간 세계 역사를 만든 100대 인물을 발표했다. 서양인의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선정했기 때문에 리스트의 대부분이 서양인으로 채워졌다. 그런데 여든 여섯 번째로 꼽힌 사람이 우리에게도 낯선 일본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1760-1849)라는 인물이다.

호쿠사이는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우키요에를 발전시켰다. 후지 산을 주제로 한 연작 목판화<호카쿠 36경(후지 산 36경)>이 대표작이다. 이 정도가 성글게 짚어 볼 수 있는 호쿠사이의 모습이다. 그런데 서양인들은 왜 그를 세계적 인물로 꼽았을까. 답은 우키요에와 인상주의 미술의 관계에서 찾아야 할 듯싶다. 19세기 유럽에 자포니즘 물결을 일으킨 우키요에는 도시의 통속적 생활상을 다룬 것으로 대중 소비를 맞추기 위해 목판화로 제작됐다. 상품 포장지로 유럽에 입성한 우키요에는 특히 인상파 화가들을 매료시켰다. 그것은 우키요에가 인상주의의 이념인 도시적 이미지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우키요에를 통해 동양의 새로운 조형 원리를 배우게 된 것이다. 즉 간결한 선으로 사물의 특징을 명쾌하게 잡아내는 방법, 색채의 독자적인 장식미와 디자인적 성격의 현대성, 원근감 없이도 공간의 느낌을 표현하는 방법, 극적 구성과 익살스럽고 풍자적인 표현 방법 등이다. 특히 풍경을 주제로 한 호쿠사이의 우키요에는 고흐, 고갱을 비롯한 많은 화가의 작품 세계에 직접으로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는 형체가 없거나 움직이는 것을 표현하는데 탁월한 기량을 보여줬는데, 이런 표현 방법은 후에 만화적 표현 기법으로 발전한다. 그림으로는 도저히 나타내기가 힘든 감정 표현 기법을 만드는데 바탕이 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파도의 표현은 압권이다. 극적인 긴장미와 함께 섬세함과 간결함 그리고 장식미까지 담아 을 압축해 보여준다. 유럽에 ‘가나가와의 거대한 파도’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호쿠사이의 파도 그림은 도쿄(당시 에도)만의 바다를 소재로 한 우키요에다. 일정한 형체 없이 순간순간 변하는 파도를 간결하고 명확한 선을 이용해 극적으로 구성한 이 그림은 유럽의 화가 뿐 아니라 드뷔시 같은 인상주의 음악가에게도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 속 파도를 보고 있으면 굉음이라도 들리는 듯하고 파도의 거품은 야수의 발톱 같다. 거친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긴 사람들은 자연의 거대한 힘에 눌린 듯 배에 납작 엎드려 있다. 생뚱맞게도 파도 저 너머에는 후지 산이 솟아 있다. 솟아 있지만 큰 파도 아래다. 이 그림의 주제는 파도가 아니라 후지 산이다. 거대하고 사납게 밀려오는 파도 아래 조그맣게 그린 후지 산은 의연해 보인다. 아마도 작가의 의도적 처리인 듯싶다. 후지 산은 일본인의 정신적 상징이다. 여기서 큰 파도는 아마도 당시 일본에 물밀 듯 들어온 서구 문명일 것이다.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는 일본인의 자세는 파도의 흐름을 타고 있는 배로 나타냈다. 호쿠사이는 문명은 받아들이되 정신까지는 내주지 않겠다는 생각을 파도 뒤에 보이는 후지 산으로 표현함으로써 ‘동도서기’(東道西器/서양의 기술로 동양 정신을 구현한다)를 그대로 보여준다. 일본은 20세기 경제대국을 이뤘고, 금세기 문화대국을 꿈꾼다. 후지 산에서 시작된 호쿠사이의 파도는 지금 서구인의 심장에 제2의 자포니즘을 새기고 있다.

 

전준엽 화가, 미술칼럼니스트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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