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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무용+人] 영혼을 울리는 춤_장혜림

기사승인 2022.05.29  18: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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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 Best 여성안무가_장혜림 <말 없는 꽃>

장악_IFILE_20211026_공감시대 무용(22)

김종덕의 심층 인터뷰 [이 시대의 무용+人]

THE MOVE 선정 _2021 가장 주목받은 여성 안무가와 작품.

_장혜림의 <말 없는 꽃>

 

2021년 10월 26일 국립국악원 ‘풍류 사랑방’에서 공연된 <말 없는 꽃>은 뛰어난 춤사위와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작가의 의도가 선명한 작품, 오랜만에 만난 특별한 공연이었다. 국립국악원이 기획한 <이 시대의 춤꾼>은 우리 춤의 전통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고, 이 시대 예술가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동시대의 춤을 감상하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변화하는 시대에 현대인들과 소통하는 우리 춤의 새로운 매력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막이 오르면 장혜림은 한 치의 공간 이동도 없는 구성과 예측할 수 없는 강렬한 메시지로 ‘기발하다’는 단어 외엔 대체할 단어가 마땅치 않을 만큼 작품의 전개 과정이 새롭고 신선했다. 우리는 흔히 좋은 춤은 춤사위가 크고 빠르고 강해야만 한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장혜림은 여지없이 깨뜨리고, 창사와 대사, 전통 춤사위의 반복적인 나열은 진지하다 못해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지만, 겹겹이 두른 치마가 벗겨지자 실체가 곧 드러난다. <말 없는 꽃>은 다리 하나가 불구인 무용수의 숨겨둔 비밀이 폭로되면서 작품이 종료된다.

‘아름다움은 아픔과 역경을 견디어 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짙어진다.’는 윤사비나 안무의 <말 없는 꽃>은 춘앵전(春鶯囀) 복식과 형식을 빌려 이미지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우리는 때로 극단적인 호기심이나 관심이 굳이 드러내지 않고 싶은, 들추지 말아야 할 상처까지도 관음증 환자처럼 훔쳐보고, 자신의 몹쓸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상대방의 삶을 송두리째 왜곡하고 해체해버린다. 장혜림은 이 작품에서 본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다른 사람에 의해 왜곡되고 채색되어 가는 사회적 병폐에 대한 경고를 자신만의 어법으로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꾸짖는다.

 

 

"언제나 영혼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춤을 만들고 싶어요"

 

Q.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고급실기 시간에 만났던 장혜림은 또래보다

무척 차분하고 춤을 잘 추는 학생으로 기억됩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시간이 많이 흘러서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졸업 후에도 춤을 추고, 만들면서 지냈습니다. ‘99 아트컴퍼니’를 창단하고, 많은 예술가를 만나서 작업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하고, 아기도 낳고요. 인생의 크고 작은 변화들과 기회를 통해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진학하게 된 동기나 학교생활에 있어서 좋은 추억이나

기억되는 사건이 있을까요?

제가 살던 곳 가까이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있었습니다. 건물이 지어지던 때부터 오가며 봤어요. 13살 무렵 산책길에 아버지께서 ‘이곳에 예술학교가 설립되면, 혜림이는 나중에 이 학교 오면 되겠다.’ 하셨던 말씀이 선명히 기억납니다. 이후 고등학생이 되고, 진정 가고 싶은 대학이 어디일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수많은 조언 속에서 스스로 답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직접 학교들을 방문하기 시작했어요. 멋진 캠퍼스와 웅장한 건물들, 학교 앞에 예쁜 카페, 옷가게, 구경할 거리가 많은 학교의 모습도 참 낭만 있고 좋아 보였는데, 제 마음을 끌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늘 가까이 있었던 한국예술종합학교에 큰 기대감 없이 들어섰는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더라고요. 연습실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혼재되어 들리고,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데 ‘아 이곳이다!’ 했어요. 무용수들의 열정을 고스란히 느꼈던 것 같아요.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정말 재밌었어요. 친구, 선후배들과 늦게까지 연습하고, 함께 술 마시면서 밤새 춤에 관한 이야기했던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소중하고도 그리운 기억들입니다.

 

 

- 어떤 가정환경에서 자랐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저는 사랑이 많으신 부모님 밑에서 오빠와 함께 자랐습니다. 부모님은 가정에 충실하시고, 예술을 사랑하시는 분들이세요. 어렸을 때부터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어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주말이면 온 가족이 박물관, 고궁, 판소리, 서예전시 등 항상 시간을 내어 다녔어요. 제가 춤을 시작할 때도 아낌없는 격려와 지원을 해주셨습니다.

 

졸업 작품이 <묵향유희>라는 작품이었는데요, 이 작품은 아버지를 보고 영감을 얻어서 만든 작품이었어요. 먹과 붓, 종이가 소재가 되고, 먹의 향기가 아름다운 예술로 피어오른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붓글씨를 즐겨 쓰셨는데, 그때마다 먹을 갈아드렸거든요. 이 정도면 되겠지 하면서 ‘아빠 됐어?’ 하면 ‘더 갈아야 해.’ 조금 더 갈다가 아버지께 ‘아빠 됐어?’ 하면 아직 멀었다고 말씀하시며, 무엇이든지 그 역할을 온전히 해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설명해주셨어요. 그렇게 완성된 먹으로 아버지는 한참을 앉아서 글을 쓰셨어요. 어린 시절 자주 느낄 수 있었던 고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아버지의 성품과 정신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란 것 같습니다.

 

 

 

- 윤사비나 안무와 장혜림 출연의 <말 없는 꽃>의 줄거리와 작품 의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특히, 작품의 특징이나 작품의 주제를 강화하기 위해 중점을 둔 것이 있다면

독자들을 위해 상세히 말씀해주시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말 없는 꽃>은 2014년 ‘99 아트컴퍼니’ 창단 기념 공연에서 연출가이자 안무가 윤사비나가 안무한 작품으로 ‘그의 반복된 꿈이 모티브가 되었다.’고합니다. 윤사비나 안무가와의 인연은 2012년 차세대 안무가 클래스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시작되었습니다. 항상 당당하고, 에너지 넘치는 그녀와 수개월 동안 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나누며, 언젠가 함께 작품을 하자는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그리고 ‘99 아트컴퍼니’를 창단하겠다는 의지가 생겼을 때, 그녀에게 협업을 제안했고, 그 의지가 <말 없는 꽃>으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윤 안무가는 20대에 당한 교통사고 때문에 전신 탈모라는 신체적 증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겪게 되었던 사회적 인식과 차별, 상처와 같은 감정들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작품 세계에 반영되었고, <말 없는 꽃> 역시 그러한 주제의식을 담아내고 있어요.

2014년의 <말 없는 꽃>은 사랑을 고백하는 수줍은 소녀의 이야기였다면, 7년이 지난 2021년 에는 성장한 여인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윤 안무가도, 저도 여인이 되었고 엄마가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작품 속의 소녀도 성장하게 되었어요. 그렇기에 이번 안무에서는 타인이 준 상처에 슬퍼하지 않는,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당당하게 나의 길을 걷는 내면이 단단한 여인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어요.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 어떠한 상황에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춤에 집중하며 춤추는 장면으로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가는 듯한 움직임이 펼쳐지며 작품이 마무리되는데, 제가 제일 사랑하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이 안무가와 제가 바라는 지향점이고, 세상에 던지고 싶었던 이야기였습니다. 저희는 이 작품 속에 여인이 한쪽 다리가 없는 상황을 설정했다는 것에 지금까지도 많은 대화를 주고받고 있어요. 저는 무용수로서 신체적 장애의 당사자성에 대해, 윤 안무가는 자신의 작품에 자주 등장해온 장애가 적절한가에 대한 의구심에 대해서 말이죠. 정답을 내리기는 어렵지만, 저희는 연작으로서 <말 없는 꽃>을 구상하고 있어요. 아마 저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 다음 작품에 반영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품 속의 소녀와 저희가 어떤 이야기를 통해 성숙하게 될지 기대하고 있죠.

 

- 그동안 삶에 있어서나 예술 활동을 하면서 지침이 되거나 영향을 준 작품이나

예술가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분께서 중요한 시점에 영향을 주셨는데, 지금의 시점에서 저에게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사람을 소개하자면 제 남편입니다. 남편 이영철 씨는 국립발레단의 수석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국립발레단의 마스터로 지도자의 위치에 있어요. 무용수를 지도하면서도 본인의 몸 관리부터, 작품에 대한 열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성실하고, 한결같이 노력하는 남편의 모습에 많은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 주변 장르의 예술가들과 밀접한 협력을 통해 작품을 기획하고, 제작하는 것 같은데,

주로 어떤 예술가들이 참여하고, 어떤 방법으로 협력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작업에 참여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늘 모험을 하는 것 같아요. 저희 작업에 참여하는 형태라기보단 모두의 작업이 되길 소망하며, 협력의 장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최근에 올렸던 작품 <타오르는 삶> ver.2를 예로 들자면, 원래 이 작품은 2019년도에 스웨덴 스코네스 댄스시어터의 7명의 무용수를 위해 만들었던 작품이에요. 한국 전통춤 승무를 바탕으로 ‘노동’이란 주제를 담아 이 시대의 제의(祭儀)를 표현하고자 한 작품이죠. 한국으로 돌아와서 장서이 무용수와 함께 군무가 아닌 듀엣 버전으로 새롭게 구상했어요. 가장 중요했던 것이 음악이었는데, 평소 주보라 가야금 연주자의 작업을 좋아했던 터라 연락을 드렸어요. 사실, 과제를 안겨 드린거죠. 승무 음악을 가야금으로 해석할 수 있는지, 그리고 함께할 다른 악기는 무엇이 좋을지 여쭈었어요. 며칠 후, 어떤 악기와 함께할지 고민해봤는데, 거문고였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전혀 예상 밖의 악기였죠. 타악기가 아니어서 우리에게 익숙한 강렬함을 표현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현악기 두 대로 승무를 해석하면 독특하고 재밌을 것 같다는 그녀의 선택에 동의했어요. 그래서 황진아 거문고 연주자가 추가되었죠. 연습실에 모여서 함께 몸도 풀고, 많은 대화를 했어요. 많은 장면 중에서 타령장단으로 춤추는 장면이 있어요. 작품의 도입부이자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단인데, 악기의 연주뿐만 아니라 일하면서 힘들 때 나오는 탄식이나 숨소리 같은 것이 섞여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제안했어요. 그러자 타령의 구음을 ‘하-습-하-습’과 같은 소리로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나왔죠. 숨소리에 거문고가 들어오고, 가야금이 더해지며 음악의 틀을 만들어 갔어요.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이 탄생한 거죠. 저희 작업은 협업자들과 함께 하나하나 의견을 제시하고 더해가며 만들어지며, 그런 장면들이 쌓여서 작품이 완성되어갑니다.

- 최근에 가장 관심 있는 이슈나 분야는 어떤 것인가요?

 우크라이나 사태에 비통함을 느낍니다. 애도할 방법이 없어 무용수들과 전할 수 없는 춤을 만들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나누고 있어요. 6월에 올려질 ‘에카(ekah)’라는 작품에 이 슬픔이 담길 것 같습니다.

 

 

- 제가 알기로는 예술중학교와 예술고등학교를 거쳐서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실기 위주의 교육체계에서 공부했는데, 안무가가 되기 위해서 어떤 부분을 보충하고, 노력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안무를 시작하면서 사유하는 시간을 많이 가진 것 같아요. 저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제가 관심 있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 영화도 많이 보고, 타 분야의 창작자와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어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창작자와의 대화가 안무에 많은 영감을 주었던 것 같아요. 현재 개인적인 관심사에서부터, 작업의 방향, 방법 등 다양한 주제들을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갖고, 저에 대해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었어요. 가끔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과제로 내주는 것 중 하나도 바로 타 분야의 창작자들을 인터뷰하는 것이죠.

 

- 올해 활동 계획과 차기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올해는 다양한 작업으로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장 가까이 있는 공연은 6월에 있는 ‘현대춤 작가 12인전’에 참여할 <에카>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시대의 슬픔에 함께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만들게 된 작품이에요. 히브리어 <에카>는 ‘어찌하여’와 같은 탄식으로 성서의 예레미야의 애가, 즉 슬픈 노래라는 뜻입니다. 음악가 ‘강다니엘’씨와 함께 할 예정입니다.

 

 

8월 제ver.2<타오르는 삶>, ‘99 아트컴퍼니’

9월 <Hello to Emptiness>, Sidance Festival

10월 <맥베스>,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12월 <침묵>, ‘99 아트컴퍼니’

 

 

- 본인이 생각하는 무용 예술의 지향점은 어디이신가요?

 언제나 “영혼에 울림을 줄 수 있는 춤”을 만들고 싶습니다.

 

 

 

장혜림, photo by_BAKI

 

장혜림_안무

‘99 아트컴퍼니’ 예술감독

한성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

 

작품

2021. 브라질 SESC Dance Biennale 초청<심연>

2021. 올해의 창작산실 선정 <타오르는 삶> ver.2

2020. 러시아 오픈룩 페스티벌 초청 <제(祭)Ⅱ>

2019. 국립현대무용단 x 스코네스댄스시어터 <Burnt Offering>

2018.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초청 <숨그네>

2017. 서울문화재단 예술작품 지원 <침묵>

 

수상

2018. 전문무용수 지원센터 ‘2018 무용수상,

2017. 제주해비치아트페스티벌 위원장 상

2016. 한국평론가협회 무용연기상

2016. 한국비평가협회 베스트작품상 <심연>

2015. 크리틱스초이스 최우수안무자 <숨그네>

 

김종덕 세종대학교 뉴미디어퍼포먼스융합전공 초빙교 choom1020@hanmail.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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