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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덕의 심층 인터뷰 [이 시대의 무용+人] 명쾌함이 주는 감동_하지혜

기사승인 2023.05.14  22: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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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SCF 최고 화제작_하지혜 <무당벌레의 꿈>

사진 최원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20년 만에 조우(遭遇)한 하지혜는 대학 시절 무척 쾌활하고 적극적이었다. 한국무용을 전공했던 그녀가 종종 안은미 현대무용단에서 활동 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성격적인 측면에서 참 멋진 선택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것을 느꼈다. 과감하고 거리낌 없는 성격이 해학적이면서 위트가 넘치는 안은미의 기질과 잘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2022년 SCF(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의 최고 화제작이 된 하지혜의 <무당벌레의 꿈>은 미니멀(minimal) 음악에 쉽고, 재미있고, 흥미로우면서 개성적인 몸짓으로 일본, 미국, 프랑스, 헝가리 등 4개국 초청공연과 사단법인 한국현대무용진흥회가 주최하는 ‘2023 댄스비전’에서 Best Dancer Award를 수상했다. 쾌활했던 그녀지만 주목받기까지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버티며 성장했는지, 또 '쉽고, 재미있고, 흥미로우면서도 유쾌함이 주는 감동'을 선물한 <무당벌레의 꿈>은 어떻게 탄생 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하지혜

 

Q. 시간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은 정서적 교감이 이어지고 있었다는 느낌 때문인지 무척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전혀 낯설거나 어색하지 않아요. 그동안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버티며 생활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변함없는 모습 때문인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네요. 저는 대학교 졸업 후, 쭉 무용과 요가 수업을 함께 겸하며 활동해왔어요. 많은 무용인이 그러하겠지만, 아무래도 생활이 안정적이지 않다 보니 항상 여러 일을 하면서 활동을 할 수밖에 없어요. 어딘가 소속되지 않았더라면 무용수의 삶을 지속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감사하게도 안은미 선생님 울타리 속에서 10년 넘게 활동하며, 안정적으로 무용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어요. 그 시간 동안 가랑비에 옷 젖듯 안은미 선생님 곁에서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며 성장했던 것 같아요. 2020년에 안은미 컴퍼니를 퇴사하고, 이후 국립현대무용단과 허성임 안무자님과 인연을 맺게 되면서 무용수로서 저의 또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고 활동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어요. 현재 무용수 활동 외에도 ‘아하 무브먼트’라는 단체를 만들어 안무 활동도 함께 겸하고 있습니다.

 

 

- 2022년 SCF에서 공연되었던 <무당벌레의 꿈>의 작품 내용을 보니 ‘서울살이 19년 차, 낯선 대도시에서 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되어있던데, 혹시 그동안의 여정을 <무당벌레의 꿈>에 담아낸 것인가요?

 

1년에 딱 하루쯤은 저를 위한 날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1년 중 생일 만큼은 행복하게 보내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바쁜 일정 때문에 종일 한 끼도 못 먹고 몸이 부서지듯 춤추고 집에 가던 길이였어요. 그때 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는데, 정말 따듯한 목소리로 '생일인데 밥은 먹었냐?'라는 안부 전화였어요. 생일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했었데, 사는 게 바빠서 그날이 제 생일인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으니 괜히 더 서럽더군요. 오늘이 며칠인지, 나는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데 급급했던 제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여 자신에게 ‘고생한다.’는 말로 위로해주며 안아주고도 싶었어요.

사진 최원규

 

이는 어쩌면 나만의 삶이 이런 것이 아니라 모두의 삶이 이렇겠다는 생각에 작품을 통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무당벌레로 의인화하여 ‘토닥토닥’ 공감 어린 위로와 잘살고 있다는 긍정적인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관객들이 쉽고 재미있게 주제에 접근할 수 있도록 움직임 외에도 조명, 오브제, 의상 변화, 효과음 등 다양한 장치들을 통해 제가 서울에서 혼자 자취하면서 느꼈던 감정의 변화들과 신체에 누적된 경험들을 고스란히 작업에 담아내고자 하였습니다.

 

- <무당벌레의 꿈>은 SCF 서울국제안무페스티벌을 통해 일본, 미국, 프랑스, 헝가리에 초청되었고, NDA 페스티벌을 통해서 마카오에 초청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현지인들을 위해 어떻게 공연을 준비하고 있으신지요?

 

<무당벌레의 꿈>은 2020년에 국내에서 초연된 후, SCF 페스티벌과 NDA 페스티벌을 통해 올해 5개국 투어를 앞두고 있습니다. 안은미 컴퍼니 작업이나 국립현대무용단 작업으로는 투어를 많이 나갔었지만, 제 작업으로 투어를 나가는 것이 처음이라 긴장도 되고 설레이기도 합니다. 안은미 컴퍼니 활동 당시, 무용수가 무대에서 라이브로 대사하며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장면이 있었는데, 매방문 국가마다 그 나라의 언어를 배워서 공연함으로써 관객이 유쾌하게 작업의 흐름에 따라오며 효과적으로 공감을 이끌어낸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 작업에서도 도중에 나오는 ‘카톡’ 효과음이나 어머니의 사투리 음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그 나라에서 자주 사용하는 메신저 소리와 자막을 사용하는 것을 고려중에 있습니다.

사진_강정환

 

- 현대무용가 안은미 선생님과는 어떤 인연으로 활동을 하게 되었나요?

 

안은미 선생님은 제가 스무 살 때, 한국체육대학교 정기공연 작업을 통해 만나 뵙게 되었어요. <딸기>라는 작품이었는데, 40명이 넘는 인원이 동시에 공중부양을 한 사진은 아직도 친구들과 회자 되는 사진 중 하나입니다. 고등학교 때 입시 위주의 한국무용만 하다가 대학 들어가 처음으로 한 단체 작업이 현대무용 안무자의 작업이라 자연스레 장르에 대한 경계가 무너지게 되었어요. 대학 시절 동안 <앵두>, <청풍명월>, <딸기> 등 안은미 선생님 작품에 함께 하였고, 이후 저희 학년의 졸업 발표회 중간 검사도 안은미 선생님께서 맡아주시면서 혼자 안은미 선생님께 내적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전공이 다르다는 점을 크게 느끼지 못했던 것 같아요. 졸업 후, 안은미 컴퍼니에 활동하고 있는 선배를 통해 오디션을 보게 되었고, 2008년부터 안은미 선생님과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 안무가 안은미 선생님과 활동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안은미 컴퍼니에서 활동한 12년 동안 정말 배운 것들이 많아요. 작업을 대하는 태도, 안무자로서 역할, 안무 철학, 표현 방법 등 너무나도 많지만, 그중 최고는 정말 부지런한 예술가라는 점입니다. 과감한 시도와 바쁘게 변화하는 시대에 빠르게 적응하기 위해 항상 인문학 강의나 기술 워크숍을 수강하시고, 작업만으로도 벅찰 텐데, 밥 못 먹고 다니는 무용수들을 위해 손수 김밥을 싸 오시는 등 ‘어떻게 하면 함께 하는 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는 편이십니다. 어렸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안무자로서 작업하게 되니 이해하게 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 기쁘기도 하고 한편으론 죄송하기도 합니다. 최근 선생님과 만나 대화했었는데 제가 컴퍼니의 무용수로 활동할 때와 또 다른 이야기 주제들로 가득해서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어요. 선생님께서 오래오래 건강하셔서 더 좋은 대화를 많이 나누면 좋겠습니다.

 

- 삶의 궤적을 돌아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의 하지혜가 있기까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랐고, 어떤 영향을 받으며 무용가로 성장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저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에 태어났어요. 그래서 부모님들께서는 우스갯소리로 넌 진짜 우리의 ‘참 자식’이라며 많이 아끼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어머님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것은 ‘모르는 건 죄가 아니고 모르면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하고 배우면 된다’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러다 보니 삶에서 무지의 부끄러움보다 배움의 즐거움이 항상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매우 긍정적일 뿐만 아니라 삶에서 거짓 되게 자신을 포장하는 것이 아닌 솔직함과 진솔함을 추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비어있다면 새롭게 채울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뜻이니까 채워지는 만큼 배움도 기대됩니다.

 

또 한 제 가치관에 영향을 미친 일화로 제가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을 다닐 때, 지도교수님께서 제가 쓰고 있는 논문에 대해 한 문장으로 정의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당황해서 횡설수설 장황하게 말씀드리니 너조차 자신의 논문에 대해서 요약을 못 하는데, 어떻게 그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겠냐는 말씀과 ‘공부를 하는 이유는 어려운 정의들을 쉽고 간결하게 설명하기 위함’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때론 너무 많은 말과 생각들은 오히려 가고자 하는 방향을 흐리게 하거나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하게 한다는 깨달음으로 ‘Simple is Best’라는 가치관을 자연스레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 이후 무언가를 할 때 많은 것들이 의도나 목적을 혼란스럽게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불필요한 것은 하나하나 제거하며 단순하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게 되었어요. 원래도 단순한 편이기도 했지만, 목적을 명확하게 함으로써 가고자 하는 방향에 확신과 추진력이 생긴 것 같습니다.

| LIG문화재단 커뮤니티 프로그램 <안은미 1분59초 프로젝트> 워크숍2014.6.28(토) &#8211; 2014.9.14(일)LIG아트홀ㆍ부산[코드명 719 &#8211;네 안의 잠자는 거인을 깨워라]07.19(토) 움직임 워크숍 with 안은미컴퍼니 무용수 배효섭, 하지혜 [출처] [워크숍 현장 방문기] LIG 문화재단 커뮤니티 프로그램 <안은미 1분59초 프로젝트>|작성자 LIG아트홀

제 무용 인생에서 안은미 선생님을 뺄 수가 없는데,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그중에서도 직업 무용수로서 작업을 바라보는 태도를 정립하는데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한참 컴퍼니 무용수로 활동할 당시, 안은미 선생님께서 무용수는 ‘살아 있어야된다.’고 말씀해주셨어요. 살아있는데 ‘무슨 당연한 소리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웃음), 안무자의 도구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무용수로서 존재하며, 무대와 관객, 함께 추는 무용수들과 유기적으로 호흡하고, 작업에 대한 자신의 관점과 아이디어를 안무자에게 제안하고 함께 구현해나가는 게 좋은 무용수라고 말씀해주셨어요. 학생 때는 주어지는 것을 잘 해내기 위해 집중했다면, 안은미 선생님을 통해 작업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나가며, 무용수로서의 직업의식을 견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는 퇴사 이후, 다른 안무자와의 작업을 하면서도 안무자에게 영감을 주는 무용수 하지혜가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태도를 견지하게 되었습니다.

 

- 그동안 무용가로서 지침이 되거나 영향을 준 예술가나 작품이 있다면 소개해주시고, 어떤 무용가가 되고 싶으신지 말씀해주세요.

 

안은미 선생님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해서 안은미 선생님 인터뷰처럼 보일까 걱정되는데(웃음), 제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작업은 안은미 선생님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입니다. 이 작업은 안은미 선생님의 대표작으로 전국을 일주하며 기록한 평범한 시골 할머니의 춤을 담아낸 작업이에요. 그 작업은 제가 무용수로서 가장 많이 재연한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볼 때마다 각 장면이 다르게 보이고 눈물과 웃음 짓게 만들었던 작업입니다. 초연 멤버로 애착이 많이 가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할머니들께서 직접 출연하셔서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웃고, 춤추고, 마지막으로 관객들과 함께 교감하는 것에서 매료되었던 작업입니다. 또한 공연 외에도 실제 출연하셨던 할머니들의 삶이 공연하기 전과 후가 많이 달라진 것을 보고 저 역시 안무자로서, 무용수로서 마음을 움직이는 무용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이전에 함께 작업하는 무용수들과 교감하고 토론하며, 제 작업이 함께 그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법을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안은미_조상님께 바치는 땐스

 

 

- 예술적 행위는 일상에서의 어떤 사물이나 사건을 작가의 관점에서 다시 들여다보고 관찰하게 하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 어떤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지요?

 

 

작업을 구상할 때 에너지, 움직임, 구성 등 신경 쓸 것들이 정말 많지만 제가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메타포(metaphor/행동, 개념 물체 등이 지닌 특성을 그것과는 다르거나 상관없는 말로 대체하여 암시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작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직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거 같아요. <무당벌레의 꿈>에서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신체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부항 자국을 선택하였고, 트리오 작업인 <Nobody knows>에서는 타인에게 기대지 않도록 완전하게 거듭난 1인 가구를 보여주기 위해 효자손을 오브제로 사용했었어요. 봤을 때 ‘아~저게 저거였어?’라고 이해하거나 유추할 수 있는 장치들을 찾는 것을 즐기고, 그 장치들을 기반으로 상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또 한, 하나의 의미로만 사용되기보다 그 장치가 변주되면서 자연스레 일어나는 감정이나 느낌들을 찾으려고 해요. 이때 이러한 메타포가 혼자만의 상상에 지나지 않도록 그 안에 사회의 보편적인 의미와 진정성을 담기 위해 계속 고민하고 시도합니다. 그래서 주제를 정하면 바로 움직이기보다 그에 맞는 아이디어와 플롯(plot/사건을 인과 관계에 따라 필연성 있게 엮는 방식)을 짜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흐름에 따라올 수 있는 서사의 형태를 취할 때가 많은 것 같아요. 보는 분들이 너무 어렵지 않게 직관적으로, 어쩌면 유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정확하게 말로 해도 의미가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들이 많잖아요. 움직임은 더 난해하니까 조금은 친절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 더!! 이건 중요하게 생각하기보다 선호하는 방향성인데, 작업을 구상할 때 어둡고 무겁기보다 밝고 유쾌하게 접근하고자 해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든 일도 많고 슬픈 일도 정말 많은데, 제 작품을 보면서 잠깐은 유쾌해지면 좋겠다. 라는 생각에 오락(entertainment)적인 요소를 항상 고려하려고 합니다.

 

- 그동안 많은 해외공연의 경험이 있으실텐데요, 초청국마다 예술가를 대하는 태도나 지원 제도 및 처우가 조금씩 다를 것 같습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일이나 우리가 더 보안 또는 개선할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해외공연은 아무래도 안은미 컴퍼니로 나간 적이 가장 많아요. 그 중 기억에 남는 순간은 대부분의 초청국은 공연이 끝나고 나면 항상 공연 관계자들이나 함께 페스티벌에 초청된 다른 팀들과 샴페인을 나누는 리셉션이 있었어요. 그래서 항상 투어할 때 공연 날 입을 예쁜 옷을 챙겨갔었어요(웃음) 리셉션은 극장에 따라서 함께 즉흥적으로 춤을 추며 즐기기도 하고, 리셉션에 있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얘기하며 정보를 나누고 서로 교류하는 자리였습니다.

한번은 벨기에 리에주에서 공연했을 때, 극장 내에 있는 펍(public house/서양식 주점)에서 파티를 준비했었어요. 파티에서 극장 관계자들과 다른 페스티벌 참가팀, 관객들 모두 서로를 환대하며 무용수, 관객 너나 할 것 없이 음악에 맞춰 자연스레 잼(jam/재즈 연주자들끼리 모여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를 주고받는 일종의 연주 방식) 형태로 함께 춤을 추며 즐겼습니다. 그리고 그날 했던 공연에 대해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 나누며 정말 춤으로 교류하는 하나의 축제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공연하고 끝!’이 아닌 다시 시작되는 것 같아 올해 제게 있을 <무당벌레의 꿈> 투어가 많이 기대가 됩니다. 영어 공부 많이 하고 가야죠(웃음).

 

 

- 오랫동안 무용수로 활동하다가 어떤 계기로 안무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10년 넘게 무용수로 활동하면서 안무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무용수로서 무대에 서는 것이 너무 행복했고, 안무자가 그리는 세상을 제가 가진 움직임 언어로 설득하고, 이를 구현해나가는 것에 몰두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오래 다녔던 무용단을 그만둘 결심을 하면서 나이도 있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라는 마음으로 무용을 아예 관두려고 했어요. 막상 관두려고 하니 우울증이 찾아와서 마지막으로 ‘내가 설 무대를 내가 만들어 보자.’라는 마음으로 첫 안무를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안무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고, 그간 안무에 관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가 작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지?’라는 의문 보다 애초에 말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이 더 큰 난관이었어요. 그래서 그걸 계속 고민하다가 일단 ‘진솔하게 내 얘기부터 해보자.’ 하며 제 삶에 집중하게 되고, 그 계기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많이 어색하고 낯설었는데, <무당벌레의 꿈>을 시작으로 다음 그다음 또 다른 무언가를 상상하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를 통해 ‘아하 무브먼트’라는 단체를 만들어 작업을 계속 이어가는 중입니다.

 

- ‘아하 무브먼트’를 창단하게 된 이유와 주로 어떤 현상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아하 무브먼트’는 깨달음의 순간인 ‘아하 모멘트’에 착안하여 만든 신진 무용단입니다. ‘삶이 예술이다.’라는 모토로 현실과 유리된 예술을 지양하며, 공통과 다름을 비롯한 현실 기반을 토대로 대중과 소통하고자 합니다. 무용이 추상적이고 어려운 것만이 아닌 ‘공감’을 키워드로 삶과 밀접한 동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미시적인 것, 일상적인 것을 탐구하며 삶을 전달하는 전달자로서 작업에 임하고자 합니다.

 

안무를 시작하면서 한병철의 <피로사회>에 관심을 가지며, 타향살이, 1인 가구, 생존불안, 경쟁 등 그와 관련된 키워드를 중점적으로 확장하여, ‘노동’과 ‘소진’의 이미지를 움직임으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무당벌레의 꿈>, <결, 바람>, <Nobody knows>, <배속인간> 등이 있습니다.

 

2022년에는 서울무용센터 상반기 레지던스 입주단체로 선정되어 빨라진 ‘배속사회’에 대한 이야기인 <배속인간> 쇼케이스를 선보이며, 쉼표의 필요성을 제기하였습니다. 이에 연이어 올해 새롭게 시작하는 서울무용센터 1기 레지던스 입주단체로 선정되어 <배속인간>의 후속 작업으로 ‘휴식’, ‘관성’, ‘현존’을 키워드로 리서치 중에 있습니다.

 

배속인간_서울움용센터

- 다음 행보와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

현재 서울무용센터 1기 레지던스 입주단체로 신작을 리서치를 하고 있는데요. 5월 말에 서울무용센터 스튜디오 블랙에서 과정 공유회를 1차로 가지고 6월 말에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에서 쇼케이스를 할 예정입니다. 여러 투어로 리서치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해 아쉽지만, 최선을 다해 준비 중이에요. 여전히 안무가 어렵지만, 이번에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안무에 대한 즐거움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어요. 제 작은 소망은 함께 열심히 준비한 작업이 좋은 결과물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과 앞으로 더욱 즐겁게 안무할 수 있도록 제가 얼른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지혜

 

현) 아하 무브먼트 대표

현) 2023 서울무용센터 1기 레지던스 입주 단체

2022 서울무용센터 상반기 레지던스 입주 단체

전) 국립현대무용단 시즌 무용수(2021-2022)

전) 안은미 컴퍼니 정단원(2008-2020)

 

 

안무작

<Wifi Station>, <무당벌레의 꿈>, <결, 바람>, <Nobody knows>, <배속인간>

 

 

수상경력

한국현대무용진흥회 <베스트 댄서 어워드> 수상

 

 

 

김종덕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choom10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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