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퍼펙트 데이즈>
예전에 필름으로 사진을 찍을 때는 인화해서 사진이 나올때까지는 그 결과물이 어떨런지 알 수 없었다. 사진이 나올 내일을 기다리는 시간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고, 막상 사진을 받아보면 그 반응은 몇 장의 사진과 함께 만족감과 실망감이 교차했었다. 요즘은 디지털 카메라나 스마트 폰으로 촬영을 한 후엔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고, 확인 후 마음에 안 들면 바로 삭제해버릴 수도 있다. 간편해진 세상. 때론 기다림이 익숙했던 아날로그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는 그런 아날로그 감성이 가득한 영화다.
영화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소환되는 기억들은 1940년대를 전후로 한 일본의 옛 영화들이다.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들에서 보았을 법한 샷들과 마주하는 느낌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화면도 요즘의 화면비가 아니다. 오래 전 사용되던 4:3 화면비의 프레임은 옛 추억을 들춰보는 듯한 감성을 불러오지만, 그와 동시에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익숙한 시선이 아닌 새로운 시선으로 옮겨 놓는다. 같은 풍경과 사물이라도 어떤 프레임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그 내용은 다르게 보인다.
흔히 다다미 샷으로 불리는 낮은 카메라 앵글의 일본식 주택 내부 모습 장면에서 포섭되는 수직과 수평의 직선들이 만들어내는 정적인 미장센은 빔 벤더스 감독이 옛 일본 영화 거장들에 대해 바치는 존경의 표현으로 느껴진다. 아마 빔 벤더스가 영화를 처음 공부하던 시절, 일본의 거장 영화들이 만들어낸 독특한 미장센은 서양의 이 젊은 영화인에게 신선한 자극이었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옛 거장들에 대한 존경심만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의 많은 부분은 빔 벤더스만이 포착할 수 있는 미장센들이 있다.
흔히 영화는 연극이나 소설과 가깝다고 여겨진다. 서사적 형식이 비슷해서 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영화가 그렇지는 않다. 어떤 영화는 소설보다 시와 많이 닮아있다. 심지어 장 콕토의 경우 영화는 시와 같다고 했다. 빔 벤더스는 <퍼펙트 데이즈>에서 시인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영화 <패터슨> |
아마도 이런 면에서 시네아스트들은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패터슨>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문학도 아닌 영상 예술에서 시적인 표현이란 무엇일까? 시라는 예술이 구조화된 언어가 다 표현해내지 못하는 의미를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찾아내게 하는 것이라면, 영화도 드라마트루기의 구성에서 다 표현해내지 못하는 의미들을 샷과 샷 사이에서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영화는 시처럼 이성이 아닌 감성을 통해 전해지는 부분이 많은 영화다.
이 영화는 흘러간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향수가 진하게 느껴지는 영화다. 혹시 빔 벤더스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대부분의 장면은 인공 조명이 아닌 자연광을 이용해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거친 입자의 화면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적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이른 아침 히라야마의 2층 다다미방에서 잡힌 샷들은 일품이다. 창문 너머에서 흘러 들어오는 은은한 햇살은 화분들이 있는 공간과 히라야마가 잠자는 다다미방 바닥에 은은하면서도 미묘하게 구별되는 색깔의 스펙트럼을 펼쳐놓는다.
확실히 빔 벤더스 감독은 스스로가 살았던 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함께 했던 사람들과 문화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애정은 아쉬운 미련, 혹은 꼭 붙잡고 살아야 할 어떤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디지털로 바뀌어 가는 세상에서도 히라야마는 여전히 아날로그 시대를 살고 있다. 하늘 높이 치솟은 스카이트리가 있는 도시 한 구석 쇠락한 골목 한 켠에는 여전히 옛 모습 간직한 선술집을 찾는 이들이 함께 있듯이. 그는 핸드폰도 구식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취미인 사진을 찍을 때도 디지털 카메라가 아닌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 음악도 스트리밍이나 CD가 아니라 카세트 테이프로 듣는걸 고집한다. 당연히 음악도 1960년대 말에서 1970년 대의 블루스와 록 음악들이다. 이 노래들은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이 영화에서 처음 히라야마가 출근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애니멀스가 1964년에 발표한 <House Of The Rising Sun>다. 여기서 ‘해 뜨는 집’은 소년원 혹은 교도소를 암시하며, 자신의 불행한 삶을 후회하는 가사와 함께 히라야마의 푸른 유니폼은, 이 남자에게 말 못 할 불행한 과거사가 있지않을까 짐작하게 만든다.
https://www.youtube.com/watch?v=N4bFqW_eu2I
“뉴올리언즈에 집 하나가 있어요
사람들은 '해 뜨는 집'이라 부르죠
많은 불쌍한 아이들이 망가져서 왔어요
신이여, 나도 그 중 한 명이죠”
이 노래는 영화 후반부에서 선술집 주인으로 등장하는 엔카 가수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가 한 번 더 부르게 되는데. 이 때 부르는 곡은 그녀와 동 시대에 활동했던 아사카와 마키(浅川マキ)가 일본어로 개사한 곡 <朝日楼~朝日のあたる家>이다. 일본 번안곡의 가사는 살짝 다르다. 일본어 버전의 ‘해 뜨는 집’은 사창가를 의미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rPYFlWi0ktU
“내가 도착한 곳은 뉴 올리언스의
'아침 해의 누각'이라는 이름의 사창가였어
사랑하는 남자가 돌아오지 않았어.
그 때 나는 고향을 떠났지
기차를 타고 다시 기차를 타고
가난한 나에게 변한 것은 없지만”
주옥 같은 수많은 곡들이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데,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곡은 역시 영화 제목과 같은, 루 리드의 <Perfect Day>가 아닐까 싶다. 담담하게 흘러가는 멜로디에는 사랑했던 여인과 보낸 아름다웠던 하루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했던 하루의 추억. 완벽한 하루란 그 아름다웠던 추억의 하루였을까? 혹은 그 하루의 추억 덕분에 살아가는 지금의 하루 하루 일까? 하지만 그냥 행복했던 사랑 이야기로만 흘려 보낼 수 없는 이유는 이 노래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의미 심장한 가사 때문이다.
“You’re going to reap just what you saw.” 구약성서 시편 126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히라야마에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오, 정말 완벽한 하루예요.
당신과 함께 보내서 기뻐요
오, 정말 완벽한 하루예요
당신은 나를 계속 버티게 해요
당신은 뿌린 대로 거둘 거예요”
아주 오래 전, 빔 벤더스라는 이름을 <도시의 앨리스>라는 영화를 통해 처음 알았을 때, 도시의 표정을 잘 포착해내는 감독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카메라에 잡힌 도쿄 도시의 풍경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모습에는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희로애락이 읽혀진다. 빔 벤더스는 외부자의 시선이 아니라 내부자의 시선처럼 도쿄의 모습을 담았다. 그 모습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화려한 도쿄의 모습이 아니다. 이른 아침 시간을 담아낸 카메라는 대부분 주인공 히라야마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어느 위치에 서 있느냐에 따라 보이는 세상의 풍경이 다르다고 했다. 청소부 히라야마의 눈 앞에 보이는 풍경은 끝없이 치솟을 듯한 고층 건물들이 아니라 일상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동네의 풍경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보이는 풍경은 간헐적으로 보이는 도쿄 스카이트리 타워의 모습. 나즈막한 건물들 너머로 높게 치솟아 있는, 거리와 높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게 앵글에 잡힌 타워의 모습은 낯설게 동떨어져있는 비현실적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히라야마가 사는 세상 위에 군림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타워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성공 신화의 상징처럼 읽혀진다. 손에 잡힐 듯 모두를 유혹하는 욕망의 대상이지만 누구나 갈 수 없고 선택 받은 소수만이 갈 수 있는 높은 곳. 영화에서 히라야마가 그 타워를 올려다보는 일은 없다. 그가 유일하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볼 때는 나무이파리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을 카메라에 담을 때뿐이다.
이 영화에서 도시의 전경을 보여주는 방식은 '버즈 아이 뷰'라고 하는 다운 샷의 방식이다. 이 샷을 통해서 잡히는 히라야마의 승합차는 거대한 도시에서 그가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가를 드러내지만, 막상 카메라 가까이에 잡히는 히라야마의 일상은 그다지 초라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삶은 나름의 우아함과 고상함을 갖춘 품격 있는 일상이다. 히라야마의 눈 높이에서 보이는 풍경과 사람들은 모두 화려하지 않고 궁상스러울지 몰라도 모두에게는 각자의 삶의 의미와 방식이 존재한다. 비록 말이 없고 설명이 없더라도 우리는 히라야마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려는 따스한 시선을 배운다.
누구나 자신만의 사연을 간직하고 살아간다. 영화속 인물들 역시 그렇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들에 대해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한 것은 히라야마의 과거사이지만 우리는 끝내 알아내지 못하고 다만 짐작할 뿐이다. 영화가 대사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 것은 오히려 미래다. 조카의 질문에 히라야마의 대답은 이렇다.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지.” 나이 든 사람은 과거의 추억을 먹고 살고, 젊은 사람은 미래의 희망을 먹고 산다고 했다. 조카는 미래가 궁금하지만 미래는 그저 또 다른 오늘일 뿐이다. 과거 역시 또 다른 오늘이었던 것처럼. 내게 주어진 하루가 가장 소중한 날이란 생각은 젊은 세대에겐 와닿지 않는 말일지 몰라도, 고단한 삶의 시간을 어느 정도는 통과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만한 말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이 영화에 많은 호응이 있었다면 그 건 바로 히라야마의 세대들이 많이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는 노래는 니나 시몬의 노래 < Feeling Good>이다. 가사는 희망을 말하지만 그 안에는 고단한 삶의 무게와 애환이 담겨있다. 이 노래가 흐르며 롱 테이크로 잡힌 히라야마의 클로즈업 샷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명 장면이 아닐까 싶다. 야쿠쇼 코지의 연기가 가장 빛났던 순간이다. 노래를 듣는 그의 얼굴에는 알 듯 모를 듯 미세하면서도 미묘한 표정 변화가 일어난다. 한 인간의 희로애락이 읽혀지는 클로즈업. 아무 것도 설명해 주지 않지만, 우리가 살아 온 삶의 무게와 길이만큼 이해될 것 같은 히라야마의 표정. 그 위에 흐르는 니나 시몬의 노랫말이 그 표정들과 함께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높이 나는 새들아 내 기분을 알겠지
하늘에 걸린 해야 내 기분을 알겠지
새로운 새벽이야 새로운 낮이야
내겐 새로 열린 인생이야
기분이 좋아”
한요한 애니메이션 감독 themove99@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