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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향과 진은숙의 ‘아르스 노바’가 남긴 것

기사승인 2018.02.09  16:4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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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작곡가에 경도된 신임과 애정을 넘어 클래식 음악에 대한 거품과 허세가 아닌, 진정한 음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감상이 이뤄져야 할 때다. 클래식갤러리가 아닌, 음악학을 전공한 인문적 식견이 높은 철학적인 음악 평론가가 나와야 하고, 전문적인 평가를 통해 음악의 본질에 대해 논하며, 옥석을 가려줄 평자가 있어야 한다.

 

 

서울시향의 연관 뉴스가 새해 벽두부터 클래식계 뜨거운 감자로 부상해 여전히 논란이 일고 있다. 그 논란의 여파가 우리 사회 음악계 특히 클래식 음악계 평자들과 애호가들, 오피니언 리더들의 생각과 발언자들의 핵심을 간과한 편향된 사고, 현실과의 괴리, 또 현대음악에 대한 유의미한 측면 등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1월 2일, 서울시향 상임작곡가 진은숙이 연임이 안 돼 사임을 발표하자 클래식계 핫 이슈가 됐고, 각종 언론과 음악계 관계자들은 일제히 서울시를 비난하며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진은숙 작곡가는 서울시향의 상임작곡가로 12년간 활동하며 지난해부터는 공석이 된 공연기획 자문 역할도 겸하고 있었는데, 이에 대해 한 사람의 장기 집권과 고액 연봉 이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연임이 안된 사유로  상임작곡가로서 서울시향을 위한 곡을 많이 쓰지 않았다는 등 지적이 일었다. 이후 진 작곡가는  출국해 독일로 돌아갔다. 

이후 정명훈 감독 사건 등으로 최근 몇 년 간 내홍을 겪어온 서울시향에 대한 관심은 급기야 진은숙이 이끌어왔던 현대음악 프로그램 <아르스 노바 Ars Nova>와 연관해 현대음악에 대한 가치와 지원의 필요성과 더불어 진은숙 작곡가의 공로를 부각하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후 3주가 지나고 진 작곡가는 A4 용지 14장에 이르는 분량으로 서울시향에서의 그간의 일과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내용을 담은 인터뷰 형식의 글을 온라인 매체 허핑턴포스트에 실었다 며, 기자들과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별도로 이메일을 전했다.

그에 의하면, 진 작곡가는 연봉 4만 1,000유로(5400여만 원)로 처음 영입되어 이후 약간의 인상이 있었으나 겸직을 하며 별도 보수를 받지 않았고, 시향을 위한 곡을 쓰지 않은 연유도 해외 전속 매니지먼트사와의 계약 관계 등 여러 복잡한 사정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가 주력한 <아르스 노바>는 관심 밖이었던 현대음악에 대한 수준 높은 연주와 보급 확산, 젊은 작곡가들의 해외 진출을 도우는 등 많은 기여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또한 진은숙 이라는 세계적 위상이 있어 세계적인 연주자를 초빙할 수 있었고, 가능한 일이었다.

 이 일이 알려지자 해외에서도 <아르스 노바>로 인해 혜택을 입고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는 많은 연주자들의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공통되는 의견들은 진 작곡가에 대한 10년 이상 장기 연장에 대해 두터운 신임과 서울시의 행정적인 처분에 대한 비난과 불신이었다. 

물론, 서울시의 감사 내용은 기준이 모호하고 미흡하다. 특별한 전문성을 갖는 예술단체에 대한 지원과 인사에 있어서는 기준과 잣대가 일반적인 예산 편성과 달라야 하며, 그에 대한 보완 정책과 조례 등이 마련되어야함에도 일반적인 형평성의 잣대로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향후 전문적 분야에 대한 평가 보완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그러나 한편, 이러한 일들을 통해 불거지는 의문들이 있다. 그것은 현대음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이렇게 높았었나? 이들은 진은숙의 작품과 현대음악을 이해하고 감상을 즐겨왔었나? 국내 현대음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아르스 노바> 말고는 없는 건가? 진은숙 이라는 세계적 명성에 가려 지나치게 우호적이고 절대적인 추종은 아닌가? 과연 진정한 현대음악에 대한 감상자로서 객관적인 관심과 평가가 이뤄진 것인가? 서울시향의 <아르스 노바>는 진은숙 작곡가가 아니면 제대로 운영이 안 되는 것인가? 진은숙은 대체 불가의 절대적 존재인가? 하는 등등이다.

현대음악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프로그램은 당연히 필요하고 유의미한 가치를 지닌다. 또한 국내에는 <아르스 노바> 외에도 현대음악과 젊은 작곡가를 지원하고 육성하는 다수의 프로그램과 기획 프로젝트가 지속되고 있다. 한 작곡가에 대한 신임과 애정을 넘어 클래식 음악에 대한 거품과 허세가 아닌, 진정한 음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감상이 이뤄져야 할 때다. 

이제 우리 음악계도 애호가 수준의 리뷰나 서구지향적인 추종식의 글쓰기, 또는 클래식갤러리가 아닌, 음악학을 전공한 인문적 식견이 높은 철학적인 음악 평론가가 나와야 하고, 전문적인 평가를 통해 음악의 본질에 대한 내용으로 음악가들을 제대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할 때다.

이에 대해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윤호근 지휘자는 “한국 클래식계의 거품과 허세는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어서 이번 같은 서울시향의 결정도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명훈, 진은숙은 유럽에서 그냥 음악가의 한사람이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는 세계적인 음악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한 근본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들의 허세 또한 문제입니다. 음악가 이전에 도덕적, 모범적 사회인 이였는지도 이번 사태에 깔려 있습니다. 음악가는 실력으로만 인정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적 정서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일반 연예인, 운동선수들에게도 언론이 날카로운 잣대를 대는데 세계적이라는 허세에 모든 것이 용납되어진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는 일이지요.” 라며, “니체, 무라카미 하루키도 클래식 음악에 관해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음악을 애호하는 철학가이고 소설가입니다. 그러한 권위가 있는 예술가들도 애호가로 분류되어집니다. 음악 평론가를 하려면 요아힘 카이저와 같이 평생 음악의 본질적 내용을 다룬 저자이어야 합니다.” 라고 전문성에 대해 강조했다.

또한 이영조 작곡가는 “아직 우리 사회가 음악적으로 성숙되지 못한 부분이 많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제적으로 부상하는 많은 명성 있는 연주자들의 연주가 하루가 멀다 하고 줄잇는 때에 옥석을 가려줄 전문적 평가가 더욱 요구된다.

또한, 현대음악을 사랑하고 즐기고 필요로 한다면, 보다 확산된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켜 참여하고 관심을 확산해야 한다. <아르스 노바> 외에도 젊은음악인들의모임에서 주관하는 <대국국제현대음악제 DCMF>가 올해로 28회를 맞아 지속되고 있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주관의 <아창제> 등 그밖에 현대음악에 대한 많은 노력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작곡가 이건용은 그의 ‘현대음악 강의’에서 “많은 사람들이 쇤베르크와 메시앙을 만나지 못한다. 모차르트의 경우 쉽게 이 벽을 넘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의 심금을 울리는 것은 어법과 언어가 아니라 그 언어에 담긴 작곡가의 음악혼이다. 그것이 절절해서 감동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또한, “20세기의 현대음악에는 그 세기를 살아간 사람들의 절망과 믿음, 탄식과 위로의 외침이 담겨 있다.”고 현대음악의 가치에 대해 역설한다.

이제, 논란을 떠나 음악의 본질적인 측면, 영감과 창의성, 자유, 영혼, 열정 등의 음악혼이 살아 숨 쉬는 음악의 현장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닐까. 열려있는 현대음악 그 속으로 직접 들어가 봐야 할 것이다.

임효정 기자 .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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