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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수의 무빙액트] 시를 위한 詩

기사승인 2021.11.08  08: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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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로는 다 못할 사랑노래: 연극 <러브송>

연극 <러브송>

아침 일찍부터 시작한 온라인 강의를 열한시 반쯤 끝내 놓고 방문을 열었다. “나갈까?” 재빨리 바지를 갈아입고, 아내를 삼청동 가게까지 차로 모신다. 유턴을 하기 위해 도로 가운데 멈춰 있는 동안 조수석의 아내가 거울을 보며 한숨을 폭 내쉰다. “눈 위에 뼈가 툭 튀어 나왔어.” “응? 눈 위에?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아니야, 나이 먹으니까 눈은 꺼지고 눈 위는 툭 튀어 나오고...” 또 한숨을 폭 쉰다. “눈 들어가고 눈 위가 나오면 서구적인거지!” “이게 무슨 서구적인 거야 그냥 늙은 거지.” 이야기를 왔다갔다 궁시렁거리는 사이, 차는 자하문터널 위를 지났고, 윤동주 문학관을 마저 지났다. 보통날의 습관처럼 별생각 없이 노래가 입 밖으로 툭 튀어나오더니 제멋대로 흘러 다녔다.

 

“바람이 불어 꽃이 떨어져도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강물이 되면 그대의 꽃잎도 띄울게.

나의 별들도 가을로 사라져 그대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내가 눈 감고 바람이 되면...”

- <광화문연가> 중 ‘詩를 위한 詩, 이문세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_CCzCM5ajH8

 

 

보통 때 같으면 웬 노래냐며 핀잔을 주었을 아내가 갑자기 울음을 터트렸다. 왜 그러냐 했더니, 당신 노래가 너무 슬프다 했다. 갱년기라 그런가보다며 서둘러 변명도 했다. 가을이라 그런가? 마침 오늘 아침엔 기온도 뚝 떨어졌다. 푸르던 나뭇잎도 누렇게 말라가고, 우리도 그렇게 늙어간다. 젊은 날의 패기와 사랑의 약속은 놀랍도록 빠른시간 앞에 불안과 허전함에게 어느새 많은 자리를 내주었다. 노래가 흘러간다. 시간이라는 우주의 법칙 사이를 휘저으며 쓸쓸한 사랑 노래가 소리 없이 흘러간다.

 

시월의 문턱에 <러브송>이 있었다. (연출 서지혜, 출연 남명렬, 남기애, 안병찬, 김나연) 프로젝트아일랜드의 창단10주년 공연으로 제작되어 대학로 예술극장 무대에 올려진 이 연극은 영국 작가 아비 모건이 10년 전에 쓴 작품으로,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운명이자 두려움인 ‘늙는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을 바탕으로 삶과 사랑, 욕망과 헌신, 유대와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는 40여 년을 함께 살아온 매기와 빌리라는 노부부의 마지막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집은 수많은 시간을 품고 있다. 그 시간 속에는 애틋하고 아련한 그리움들도 있겠지만, 미련과 아쉬움과 아직도 생생한 아픔의 흔적들도 있다. 질병과 죽음으로 예정된 이별은 지난 시간의 기억으로 집을 가득 채우고, 추억으로 가득찬 집은 견디다 못해 시간의 벽을 허물어뜨린다. 늙고 병든 매기가 들어간 벽장에서 젊은 시절의 마가렛이 갑툭 튀어나오고, 젊은 시절의 윌리엄이 소리 없이 스며들어 매기를 안아준다. 젊은 아내와 춤을 추던 노인의 손이 허공을 가르고, 문득 무언가를 찾아 더듬거린다. 젊은 남편이 사라진 어두운 벽틈 사이를 늙은 아내 혼자 가만히 응시한다. 그들은 서로를 가로지르기도 하고, 나란히 따라 걷다가 멈춰 서서 자신의 머릿속을 가만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문득 뒤돌아보기도 한다.

 

지나온 시간은 낭만적인 발라드도 화려한 왈츠도 아니다. 이들은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서로 갈등하고, 다른 이성에게 마음이 흔들리고, 남녀의 역할과 결혼생활이 주는 행동의 제약으로 삐걱거리고, 아이를 가질 수 없는 공허함에 힘들어했다. 그렇게 시간들이 다 지나가 버렸다. 젊은 시절은 잠시의 달콤함과 그보다 훨씬 많은 불만과 다툼의 말들로 차 있었고, 마지막 시간들은 말하지 못한 또는 말할 수 없는 이야기들 투성이다.

기억의 아래에는 노래가 흐른다. 우리는 느닷없이 코에 걸리는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묻는다. 시간은 무엇이고, 우리는 누구이며, 사랑은 어디로 갔을까. <러브송>은 분명 보통의 사랑노래 혹은 사랑 이야기와는 다른 결을 갖고 있다. 매우 감상적이며 동시에 진솔하다.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냉철하다. 사건에 빠져들게 하기보다는 삶과 사랑에 대한 질문 앞에 우리를 멈춰 세워놓고, 대답하지 못하는 우리의 조금은 뻣뻣해진 어깨를 위로의 손길로 감싸준다.

 

대본은 독특하고 연출은 기발하다. 빛과 음악의 조화가 말로 다 못하는 이야기들을 아름답게 채워나간다. 다만 이국의 관객에게 보편의 감정으로 밀착되기에는 영국 작가의 대사와 사건들이 약간 거리감이 있고 빈 구석도 느껴진다. 때문에 움직임과 춤의 중요성이 그만큼 더 커 보이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춤추는 장면들의 길이와 기술이 약간 부족하여 심리적 충돌이나 리듬과 템포의 변화가 약화되었고, 특히 절정부라고 할 침대 위에서의 4인무가 충분한 교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여 조금 아쉬움을 남겼다. 그럼에도 이 연극은 현재성과 직접성이라는 연극의 본질을 이용하여, 어떤 장르보다 강력한 시간의 마법을 구사하였고, 이 마법은 무척이나 정직하고 아름다웠다.

 

말로는 다 못할 사랑이야기는 시간을 넘고 대양을 건너 이제 막 국내 초연의 순간을 뛰어넘었다. 삶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듯 순탄하지만은 않겠지만 믿음으로 손잡고 다음 시간으로 함께 뛰어넘어, 앞으로도 오래도록 불려지는 ‘사랑노래’가 되길 기대한다.

 

진남수 (배우, 극작가, 호원대 교수)

 

 

* 아비 모건의 <러브송>은 모더니즘의 최초시로 평가 받고 있는 T.S 엘리엇의 <J 알프레드 프루프록의 러브송>에서 영감을 받아 창작되었다 한다.

 

* ‘시를 위한 詩’는 이문세 5집에 수록된 이영훈 작사, 작곡의 노래다.

 

진남수 호원대 교수 / 극작가, 배우 namsulse@hanmail.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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