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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쇼팽은?

기사승인 2022.04.18  13:5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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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만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이혁의 쇼팽 공연이 있었다. 가장 최근에 열린 이혁 리사이틀의 경우, 인터미션 이후는 순전히 쇼팽 콩쿠르 3라운드 프로그램들이었다. 쇼팽 ‘돈 조반니 주제에 의한 변주곡’ 과 '피아노 소나타 3번'. 그의 연주는 ‘모든 음을 틀리지 않고 객석에 전달하겠다’가 아니라, ‘음악이 흘러가는 대로 두겠다’ 에 가까웠다. 앙코르로는 마주르카, 폴로네이즈, 왈츠, 녹턴을 한피스씩 꺼냈는데 쇼팽콩쿠르 당시 밤잠 설쳐가며 응원해준 팬들에 대한 보답 같았다. 쇼팽 콩쿠르에서 활약한 영혼의 파트너 시게루 가와이가 무대에 없어 아쉬웠다.

 

어떤 쇼팽을 마음 깊이 좋아하고 듣고 있을까? 살아있는 연주자 중 먼저 떠오르는건 플레트뇨프의 최근 쇼팽 실황들이다. 우선 플레트뇨프의 쇼팽은 쇼팽의 말년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플레트뇨프는 포르테를 사용하지 않고도, 그 안에서 놀라울 정도로 대비를 준다. 그러다보니 성부를 엇갈려 연주하는 방법 등을 활용해 베이스를 크게 연주하지 않고도 오랫동안 울림이 남게 만든다. 이런 방법으로 젊을 때보다 더 자연스러운 쇼팽의 어법을 획득했다. 개인적으론 가장 선호하는 쇼팽이다. 굉장히 섬세하지만 또 병약해서 언제라도 쿨럭쿨럭 할 것 같은 연주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반면 플레트뇨프와 한살 차이인 동년배 지메르만은 여전히 타올랐다. 모두가 떠올리고 모두에게나 익숙할만한 쇼팽을 연주했다. 그의 4악장을 들으며 말년의 쇼팽이 이렇게 건강한 연주를 할 수 있었을까? 라는데 의문이 들지만, 이 작품에서 이 연주 이상이 있을까? 라는 맛이었다. 정말 절제되면서도 딱 필요한 만큼의 루바토 맛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해주었다. 연주를 들으며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라파우 블레하츠의 콩쿠르 실황이 생각나기도 했는데, 라파우 블레하츠도 딱 그랬다. 과도한 표현들이 남발하는 시대에서 기준점을 제시했다.

 

사실 쇼팽 음악 중 오히려 소품들이 쇼팽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19년에 지메르만 리사이틀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도 마주르카였다. 지메르만은 때로는 과격한 다이나믹과 흥미로운 밀당으로 ‘너희들 마주르카를 춰보기는 한거야?’ 라고 물었다. 이 연주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블레하츠 역시 최고의 마주르카를 보여줬다. 뭔지는 잘 모르지만 이 사람들끼리 공유하는 음악이 분명 있다. 지난 쇼팽 콩쿠르에서도 대곡에서는 죽쑤던 폴란드 연주자들이 마주르카만 되면 들썩거렸다. 물만난 물고기 같았다. 세부적인 컨트롤이 아니라, 곡을 설계하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 마주르카는 미적인 부분만 있는 악곡은 아니니깐. 플레트뇨프의 마주르카를 들으며 춤을 출 수 있을까? 정말 멋질 것 같은데 제대로 뒤통수를 맞을 것 같다.

 

덧붙여 블레하츠가 쇼팽 콩쿠르 당시 연주했던 쇼팽 소나타 3번 영상을 쭉 보다보니 이 연주자는 약간의 지메르만과 약간의 플레트뇨프를 섞어 놓은 느낌도 들었다. 양쪽 스쿨에 소속되어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지메르만처럼 느꼈던 건 엘로퀀스 때문이었고, 플레트뇨프처럼 느꼈던건 계산적이면서도 압도적인 아이디어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둘의 굉장한 하이브리드라기 보다 둘의 성분을 조금씩 흡수한 느낌이다. 고추장과 토마토 페이스트와 스리라차를 썼다는 느낌이라, 어느 하나를 원하는 사람에겐 별로일 수 있다. 칭찬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외모는 그대로다. 참 쇼팽같이 생겼고 또 쇼팽같이 약해 보인다. 그가 건강한 몸으로 다시 한국에 올날은 언제가 되려나.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 huhmyeong11@naver.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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