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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의 소리비평] 백 년 동안의 역동 – 산조대전과 산조포럼

기사승인 2022.06.16  17: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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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조 공연을 보는 일을 싱글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보는 일에 비유해보고 싶다. 무대는 넓고, 가운데 선 연주자/선수는 긴 기간 수련해 온, 처음부터 끝까지 소리의/움직임의 길이 정해진 프로그램을 수행한다. “~류 대금 산조”라든가, “~년도 프리스케이팅 프로그램”의 이름을 단 무언가가 시작되는 것이다. 연주자는 장구와 함께 악기에 진동을 불어넣고, 선수는 음악의 시작과 함께 날에 몸을 싣는다. 길이 정해져 있지만, 산조 연주자의 숨, 활질, 혹은 손짓은 그리고 선수의 한발, 한날은 이전의 연행과 다르고 그렇기에 늘 새롭다. 관객은 숨을 죽이고, 연행자가 오래 갈고닦은, 최선의 최선이 집약된 몸짓을 보고 듣는다. 소리로, 몸으로 점프를 하고 스텝을 밟고 때로 날아오르면 관객은 움찔하고, 안도하고, 경탄한다.

19세기 후반 태동한 장르인 산조는, 20세기 중반 이후 이념적으로는 여전히 ‘즉흥’ 음악이지만 실제 전승과 교육은 ‘보존과 본(本)따기’에 집중된 채 이어져 왔다. 일견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두 개념들이지만 생각해 보면 그럴 것도 없다. 유파의 틀을 잡은 명인 혹은 연주자 개개인의 스타일이 매 연행마다 반영되고 때로 새로운 변주 혹은 ‘더늠’을 통해 갱신된다는 점에서 즉흥의 요소는 늘 살아있지만, 그 틀과 소리의 길, 풍경은 여전히 유지되기 때문이다. 재즈 스탠다드가 연주자이자 편곡자인 개별 연행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지만 새로운 곡이 아니라, 같지만 거듭나는 버전으로 여겨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즉흥이냐 보존이냐의, 혹은 발산이냐 수렴이냐의 문제는 사실 택일의 문제가 아니라, 둘 사이에서 개별 연행, 개별 연행자가 어떤 것을 지향하는지, 혹은 차라리 둘 사이의 어떤 긴장된 양립 혹은 역동을 추구하는지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한 달 여간 펼쳐진 ‘산조대전’은 이러한 긴장된 양립 혹은 역동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예를 들면 20세기 중반 연주되었으나 그 특유의 즉흥성으로 인해 전승이 끊긴 심상건류 가야금산조를, 가야금 연주자 김진경이 공부와 해석을 바탕으로 ‘정리’ 혹은 정제하여 무대에 올렸다. 이것이 보존과 복원이라는 개념과 관련된 수렴의 모습이라면, 반대로 젊은 연주자 김용성이 새롭게 만든 해금산조, 혹은 산조 악기 바깥에 있었던 영역을 개척한 김동근류 퉁소산조, 서용석제 송경근류 훈산조 등은 확장과 발산의 예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발산이지만, 산조대전 무대에 오름으로서 그 자체가 하나의 본이요 참고가 된다는 점에서 이 역시도 정제와 보존의 과정에 포섭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역동성은 삼십여 명의 연주로뿐만 아니라 3월 28일의 ‘산조포럼’을 통해 연행자 스스로의 언어들로도 표현되었다. 전통음악과 산조 장르의 팬으로서, 기량 높은 연행자들의 고민을 나누며 장르의 미래를 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고 또한 아름다웠다.

장장 50분에 달하는 서용석류 대금산조를 형형히 무대에 올린 연주자 정소희는, 서용석 명인의 작고 이후 1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그 형태가 무한히 바뀌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표하며 보존의 원형의 가치에 대한 애정을 표하였다.

한편 ‘불세출’의 멤버로 포럼 전날 김영재류 해금산조를 자신만의 스타일과 버무려 연행한 해금 연주자 김용하는, 지금 전승되고 있는 산조들이 기실, 각 명인들이 진지하지만 재밌게, 때로는 가벼운 마음으로 개성과 기량을 바탕으로 하여 쌓아낸 결과물이기에, 후학들도 선학들과 같은 마음으로 좀더 산조의 확장 자체를 즐기면서 나아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비추었다.

토론자 중 가장 막내였던 아쟁 연주자 김용성은, 느린 장단에서 빠른 장단으로 가는 기존 산조의 틀을 깨는 시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기존의 틀이 새로운 창작과 장르 갱신의 재료이자 동력이 되는 어떤 지점을 논하기도 하였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전승 대 대중화와 같은 낡은 논쟁이 아니라, 앞서 누차 언급한 수렴과 발산 사이의 생산적인 역동으로서 듣는 이에게 다가왔다.

장르의 팬이자 산조 연주를 배워 맛을 본 적 있는 아마추어 관객으로서는, 연주자들이 오랜 기간 진지하게 산조를 연마하다 보니 외려 해당 장르를 일반인들이 듣기 힘든, 무거운, 진입 장벽이 높은 음악이라 여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전통음악의 여러 기악 장르 중에서, 심지어는 풍물보다도 더 단시간 내에 즐기기 쉬운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오랜 시간 다져진 장단의 정형성, 그리고 솔로 기악이라는 점이 초보 ‘리스너’들에게는 음악의 흐름을 따라가기 상대적으로 쉬운 조건이라 여기기 떄문이다. 다음, 다다음 산조대전과 산조포럼이 이어지면서 보다 많은 연행자들과 관객들이 산조를 진지하되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박종현 (음악가/기획자(월드뮤직센터))

박종현 뮤지션, 월드뮤직센터 기획팀장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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