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희의 정재만류 허튼춤 ‘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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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脈)을 제대로 잡았다. 서정춤세상 대표이자 삼육대 교수인 이미희는 ‘정재만류 허튼춤’을 통해 맥잇기를 시도했다.
기획의도와 프로그램이 일치된 면모를 보여준 이번 공연은 전통춤의 길과 길을 또 하나의 길로 연결했다는 의미가 있다. 2022년 5월 22일, 한국문화의집(KOUS)에서는 총 8작품이 맥박을 뛰게 했다. ‘2022년 이수자 지원사업 선정작’ 공연을 통해 이수자의 역할과 가치 또한 보여주었다. 그 시간을 촘촘히 매운 주인공들은 주최자인 이미희 선생을 비롯해 서정춤세상의 단원, 그리고 특별출연자들이다. 정용진(승무), 안귀호(김백봉부채춤), 최유진(처용무)은 각 해당 종목 이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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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범주에서 ‘허튼’이란 말이 들어간 것이 있다. ‘허튼춤’, ‘허튼가락’, ‘허튼굿’ 등 다양하다. 변주의 속성을 지니되 장르와 맥락속에서 간파해야 될 여지도 있다. 이번 공연은 ‘정재만류 허튼춤’이다. 정재만 교수는 허튼춤은 ‘고통’이란 표현을 쓴 바 있다. 예술은 슬프고도 기쁜 역설의 고통을 늘 주고받는다고 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한 것은 고통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2017년 이미희 선생이 쓴 글에도 나와 있듯, ‘감정의 끝, 극한의 경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고통속에서 본연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 이 춤이다. 삶의 편린을 예술의 매듭으로 이어야 되는 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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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춤 관련, 이미희는 2015년 첫 번째 헌정공연을 했다. 2017년에 허튼소리춤의 복원 및 재현, 2022년 이번 공연에서 다시 한 번 맥을 잇는 춤판을 가진다. 이번 무대에서는 ‘허튼입춤’, ‘허튼춤’을 선보였다. 재인계춤인 ‘허튼입춤’은 정재만 선생에 의해 2012년 처음 선보였다. 특히 이미희에게 맞는 동작으로 만들어 낸 입춤으로 2015년 이미희에 의해 ‘허튼입춤’이 재정리된 의의를 지닌다. 느릿함 속 춤 표정이 유장하다. 무채색과 유채색을 결합한 느낌이다. 정재만류 특유의 입춤의 정형성에 더해 허튼입춤이 주는 맛이 깊다.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한 ‘허튼춤’. 이미희는 객석에서 등장하며 주목도를 서서히 높인다. 자유로움 속 예술적 성취가 상당하다. 번뇌와 고뇌의 춤인 ‘정재만류 허튼춤’을 역사적으로 보자면, ‘허튼소리춤’까지 가야만 한다. 정재만 교수는 허튼춤 연습 시, “원래 허튼춤은 허튼소리춤이 시작이야. 나중에 허튼살풀이춤이 된 것이지”라고 말씀한 바에서 흐름을 잡을 수 있다. 1980년에 정재만 선생이 허튼춤을 만들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1993년에 허튼살풀이춤을 추었다. 1994년에는 허튼살풀이춤을 창작화 한 ‘허튼소리춤’을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당시 무대는 1994년의 ‘춤작가 12인전’이다. 전통살풀이 기법을 남성적인 허튼가락을 풀어낸 이 춤은 번뇌와 고뇌가 예술적으로 승화된 춤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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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춤세상 단원인 최윤정, 김혜승, 황윤재는 한영숙-정재만으로 이어지는 ‘태평무’를 선보인다. 최윤정이 솔로춤으로 격조있게 리드한 후, 두 명이 합류해 태평무의 미학성을 전달한다. 2021년 대한무용협회 명작무로 지정된 ‘청풍명월’은 역시 서정춤세상 단원인 이예림, 변혜령이 은은함 속 고고함을 현의 선율을 타고 넘으며 춤적 가치를 높인다. 이 춤은 송범 산조를 정재만이 ‘청풍명월’이라 명명한 춤으로 단아함과 절제미를 서정성있게 담아낸다. 차분한 마음이 장삼자락에 흘렀던 ‘승무’를 이미희는 곡진하게 담는다. 한성준-한영숙-정재만으로 이어지는 춤의 숨을 맥으로 다시 한 번 뛰게 했다.
특별출연 무대는 각 레퍼토리가 지닌 무게감만큼 출연자들은 최선을 다해 무대에서 보여줬다. 이날 첫 문을 연 ‘처용무’는 김중섭 보유자가 새로이 구성한 일인처용무를 제자 최유진이 처음 선보인 자리였다. 김백봉부채춤 이수자이자 안귀호춤프로젝트 예술감독인 안귀호 선생은 ‘김백봉부채춤’을 김백봉-안병주로 이어지는 춤맥으로 부채춤만이 지닌 예술성을 집약해 구현했다. 거장의 숨결이 예혼의 춤결로 치환된다. 승무 이수자로 벽사춤 대표인 정용진 선생은 정재만-정용진으로 이어지는 ‘광대무’를 선보였다. 벽사류 춤 특질이 잘 나타나는 작품으로 즉흥성과 현장성이 강하다. 힘찬 음악과 함께 사선에서 시작된 춤은 시종일관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밀도를 높인다. 활달함 속 진중함을 제대로 보여준 무대다.
맥은 역사의 줄기를 타고 능선을 지나 유유히 흘러가는 바다와 같다. 춤의 바다에서 맥을 건져 올린 소중한 시간이었다. 정재만류 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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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희
서정춤세상 대표
국가무형문화재 제27호 승무 이수자
삼육대학교 교수
정재만 춤 보존회 회원
정재만 춤 연구회 회원
세계무용연맹 한국본부 부회장
무용역사기록학회 부회장
한국장애인무용협회 부회장
대한민국전통예술전승원 부이사장
이주영 무용칼럼니스트 jy034@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