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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의 소리비평] 시공을 넘고 흩으며 변화하는 잼 놀이

기사승인 2022.07.19  21:3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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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한 살 때였다. 서울 신림동의 모 라이브클럽 겸 바 무대에 올라, 치기 시작한 지 일 년 남짓한 기타로 자작곡 몇 개를 겨우겨우 연주하고 내려오자 바에 앉아 있던 남자분이 슬몃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까 그 블루스곡, 좋던데 저희 셋이랑 같이 연주해도 좋을까요?”

“네? 뭘 어떻게 해야 하지요?”

“그냥 그 곡을 치시면 돼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그들은 각각 드럼, 기타, 베이스를 연주하는 유명 밴드 세션 연주자들이었고, 나는 얼떨결에 인생의 첫 잼 세션(jam session) 위에 놓이고 말았다. ‘놓인’ 것이긴 하지만 내가 잼을 했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내 곡의 리프를 반복하여 쳤을 뿐이고, 그 리프와 스케일 위에서 변주를 통하여 논, 즉 ‘재밍’을 한 것은 나머지 세 분이었다. 그 놀음의 가운데 앉아 나의 소리에 새로운 소리들이 앉았다가 날으는 것을 처음 목도한 그 느낌은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있다.

미리엄-웹스터 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잼 세션이란 “임프로비제이션으로 특징지어지는, 특히 재즈 뮤지션들의 집단에서 이루어지는 즉흥 연행”을 의미한다. 여러 음악가가 같은 시공간 속에 모여 특정한 장르 문법 및 약속 안에서 함께 맞추어 연주하되, 돌아가며 즉흥 연주 능력을 선보임으로써 전에 없던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재즈와 블루스와 같은 몇몇 장르들과 주로 엮인 연행 장르이기에, 청중의 입장에서 잼의 현장을 직접 볼 수 있는 곳들은 연관 장르가 연행되는 클럽과 공연장, 페스티벌 무대 등이 대부분이었다고 하겠다.

앞서 ‘같은 시공간 속에 모여’라는 표현을 썼다. 그런데 잼에 대한 정의를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전통적인 의미의 시공간성을 벗어나는, 새로운 유형의 세션들이 가능해지고 또 퍼져간다. 먼저 물리적인 ‘같은 공간’이라는 제약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극히 최근에 해제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라인 환경에서는 즉흥은커녕 일반적인 합주조차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는데, 소리가 장비를 타고 들어가 디지털로 처리된 뒤 자신에게로 되돌아오기까지의, 그리고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타인의 장치로 전달 완료되기까지의 시간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레이턴시’ 문제를 거의 해결하여 실시간 합주가 가능한 ‘싱크룸’과 같은 플랫폼이 일반화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코로나 시대 기존 밴드들의 ‘합주’를 위한 도구로 서서히 받아들여지는 것을 넘어, 서로 모르는 연주자들이 모여 실시간으로 합을 맞추는 ‘잼 세션’에 가까운 놀이가 이루어진다. 또한 이들의 즉흥 연주가 유튜브 등의 플랫폼을 통해 중계가 되고 인기를 끎으로써 재즈나 블루스 애호가 혹은 공연장 방문을 즐기는 관객이 아니더라도 관련 하위장르들을, 그리고 잼이라는 연행 형태를 접하고 즐길 수 있는 상황이 되어가는 것이다.

 

http:// https://youtu.be/VClxDKolIC8

 

 

그렇다면 ‘같은 시간’이라는 조건을 넘어선 ‘잼 놀이’는 가능할까? 최근 웹툰 작가 주호민이 인터넷 방송에서 (그래미 시상식에서 두 거장에 의해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재즈 스캣을 꽤 적확하고 멋지게 모사하여 불렀다. 그후 피아노, 트럼펫, 베이스, 드럼, 대금 등 수많은 악기 연주자들이 그 스캣 위에 자신의 스타일로 연주를 부가하고 또 서로의 연주를 활용하여 새로운 변형을 만들어내어 즉각즉각 유튜브 영상 및 쇼츠의 형태로 올렸다. 그것들을 주호민 작가가 다시 그러모아 ‘테마(가 된) 멜로디의 여러 변주 버전’을 관객들과 같이 듣고 보는 ‘감상회’를 열기도 했다. 전자음악의 ‘리믹스’와 유사한 것이 아니냐, 라고 혹자는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는 타 연주자와의 합주에 기반하되 변주의 미학에 초점을 맞추고 즉흥성과 관련한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잼 세션’의 기본적인 정의와 놀랄 정도로 다르지 않은 것이며 바로 그 점에서 리믹스와는 차별되는 종류의 음악행위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렇게 즉흥 연행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떨쳐내거나 탈각시킬 수 있게 되었다는 새로운 환경의 대두는, 앞서 언급하기도 한 청중 개념의 변화 혹은 확장뿐 아니라 잼 연행과 연행자의 저변에 있어서도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듯하며 이미 이끌어내기 시작하고 있는 듯하다. 예를 들면 전통적 무대에서 창작 및 연행활동을 하지 않는 소위 ‘방구석’ 연주자들이 이러한 즉흥 놀이에 대거 참여하게 되었다든가, 같은 공간 속에서는 음량 차이 때문에 합주 어레인지가 어려운 악기들, 혹은 전혀 다른 지역 및 장르 전통에서 온 복수의 악기들이 서로 다른 공간과 장비를 이용해 만남으로써 밸런스를 맞추어낼 수 있게 되었다든가, 하는 것들이 요즘 내가 주시하고 있는 현상들이다.

 

 

 

 

참고 링크:

싱크룸 원격 잼 중계 https://youtu.be/oiO6hM-nCsM

주호민 재즈 페스티벌 https://youtu.be/VClxDKolIC8

 

 

박종현 뮤지션, 월드뮤직센터 기획팀장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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