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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의 전시] 뒤샹은 왜 소변기에 <샘>이라고 했을까?

기사승인 2019.01.09  09:2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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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 展

국립현대미술관_마르셀 뒤샹_전시 전경

1917년은 현대미술의 판도를 바꾸어놓은 연대기적 의미를 갖는다. 1917년, 마르셀 뒤샹이 소변기에 <샘 Fountain>이라는 이름을 붙여 예술품으로 세상에 나오며 미술계의 시각을 발칵 뒤집어놓은 일대 혁신의 해가 됐다. 현대미술의 판도를 바꾸어놓은 그 유명한 소변기(<샘>)의 작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의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며 <샘>도 한국에 왔다. 

국립현대미술관_마르셀 뒤샹_전시 전경 

또한 무엇보다도 이번 전시에서는 <샘>과 구조물뿐 아니라 뒤샹이 청소년 시절부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 당시 프랑스의 화풍을 공부하며 제작했던 그림과 드로잉 등의 회화 작품이 특히 주목된다. 뉴욕 아모리 쇼에 전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1912년 작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를 비롯한 독특한 색감과 구성의 일련의 회화들은 뒤샹이 실험적, 이념적인 설치 작가가 아니라 탄탄한 드로잉이 수반된 작가임을 뚜렷이 증명해 보이고 있다.

 

필라델피아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샘(1950)>은 1917년 원본의 복제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원본의 의미가 별 소용이 있으랴. 프랑스 청년 마르셀 뒤샹이 뉴욕 생활 2년째 접어들 던 때, 친구이자 후원자인 월터 애런스버그와 또 다른 미국인 예술가 친구 조지프 스텔라와 같이 뉴욕 5번가를 돌면서 배관 전문업체 모트 아이언 웤스(J.L. Mort Iion Works) 가게 안으로 들어가 소변기를 구입하면서 세상의 예술에 대한 방식이 바뀌는 순간이 돼버렸다. 

소변기가 예술품 <샘>으로

뒤샹은 당시 뉴욕의 현대 미술을 위해 예술가가 운영하는 포럼인 독립예술가협회를 구성하는 것을 도우며, 독립예술가협회가 민주주의와 수용성이라는 가치를 얼마나 수호하는지 시험해 보고자 1917년에 열린 협회의 첫 전시에 이 화장실의 소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출품했다. 도기 재질의 소변기 아래 테두리에 ‘R. Mutt 1917’ 이라고 가명과 날짜를 적어 넣고 태어난 <샘>은 이렇게 뒤샹의 손을 거쳐 예술품이 되었다. 뒤샹은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조각품을 만들어냈다고 자평했다. 특별한 미학적 특징이 없는 공장의 대량생산품 중 하나를 선택해 그 제품을 본래의 기능적 역할로부터 자유롭게 풀어줌으로써 기능적 쓸모가 아닌, 실질적인 예술품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그 대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과 배경지식을 뒤집음으로써 가능해진다. 뒤샹은 자신이 고안해낸 이 새로운 예술방식을 기성조각품이라는 뜻으로 ‘레디메이드(readymade)’라 명명했다.

 

뒤샹은 이보다 몇 년 전 프랑스에 살던 시절부터 예술가로서 작업하는 새로운 방식에 대해 고민하며 회화 기법과 화가라는 작업을 포기하고 기념비적인 구조물의 개념을 창안했다. 그는 자전거 바퀴와 앞축, 안장에 집착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실행했는데, 자전거 바퀴가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즐거웠다. 1912년 가을 이후의 시기는 뒤샹에게 구조물이 예술품으로 보이기 시작한 시기다. 국립현대미술관 <마르셀 뒤샹 전> 2부 전시장에서는 이 시기의 뒤샹의 작품을 조명하고 있다.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1912년, 기념비적인 구조물 <그녀의 독신남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큰 유리)의 개념을 그리기 시작해, 1913년에는 <자전거 바퀴>를 만들었는데, 이는 평범한 기성품으로 만든 예술품, 즉 레디메이드의 첫 번째 작품에 해당한다. 레디메이드는 그 무렵 뒤샹이 자신의 노트에 쓴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예술적’이지 않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1915년 여름, 뒤샹은 전쟁에 휩싸인 파리를 떠나 뉴욕으로 향했고, 수집가 루이스와 월터 아렌스버그 부부 주변에 모인 재능 있는 예술가, 작가, 지식인 무리에 합류했다. 아렌스버그 부부는 이후 뒤샹의 주요한 후원자가 되었고, 1917년, 뒤샹이 <샘>이라는 제목을 붙인 논쟁적인 오브제가 전시회에 출품되면서 레디메이드라는 개념과 그것의 의미에 대한 대중적 논의가 촉발했다.

 

“나에게는 항상 나를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었다.”

- 마르셀 뒤샹, 1967년 삐에르 까반느와의 대화 중에서

 

<샘>이 독립예술가협회 전시에 출품되자 사람들은 당혹감과 혐오감이 뒤섞인 격렬한 반응을 보였고, 협회 이사 대다수는 장난질로 여겼다. 급기야 조직 위원회는 방침을 어기고 투표를 통해 간심히 <샘>을 전시하지 못하게 했고, 뒤샹은 이에 항의하여 사임했다. 당시 ‘독립미술가협회’는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모인 집단으로, 현대미술에 보수적이고 경직된 태도를 보이는 국립디자인아카데미(NAD)와 정반대의 입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반응은 미술계의 권위와 사회적 통념에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대중이 처음 접한 레디메이드 작품인 소변기는 도발적인 장난에서 비롯됐지만 이것은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향력을 끼친 예술품이 되었다.

당대 미국의 기존 예술에 도전장을 내민 뒤샹은 예술계에 대한 야유와 도발만이 아니라 <샘> 이면에는 에로틱함과 관려된 수많은 이야기도 함의되어 있었다. 1920년대 뒤샹은 미술에서 체스로 직업을 바꾸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후 1920-30년대에 이르는 20여 년 동안 체스 활동과 더불어 에로즈 셀라비라는 여성 자아를 만들어 새로운 예술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다.

소변기에 담긴 뒤샹의 생각은 다다, 쉬르레알리즘,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등에서 또, 아이웨이웨이부터 데미언 허스트까지 동시대 현대미술이라는 이름의 전제하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러면 뒤샹은 예술을 해방시켰는가? 그것은 과연 예술일까? 이에 대한 관점은 여전히 논의 중이다. 뒤샹은 현대미술의 시작이 아닌, 그 과정에 있음을 말해준다. 기존의 질서를 뒤엎었고, 새로운 시대의 예술을 알리는 참이었다. 뒤샹은 우리 사회에서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철학자와 같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무릇 예술가란 속세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기가 아나라면 아무 소용없는 심상을 표현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국립현대미술관의 <마르셀 뒤샹>전은 뒤샹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 협업으로 대표작 <샘>,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1912) 등 국내 최초 공개와 회화, 레디메이드, 드로잉 등 150여점을 전시하고 있다. 

작가의 삶의 여정에 따른 작품 변화를 4부로 나누어 소개하며, 1부에서는 특히 프랑스의 화풍을 공부하며 제작했던 그림과 드로잉을 선보여 눈길을 끈다.

에탕 도네

‘망막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여겼던 뒤샹의 대표작 <큰 유리> 제작에 영향을 준 <초콜릿 분쇄기>, <통풍 피스톤> 등 관련 작업과 <자전거 바퀴>, <샘> 등 레디메이드 작품, 그리고, 체스에 몰두하던 작가의 모습, ‘에로즈 셀라비’로 둔갑해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 세계 여러 곳에서 전시를 하던 뒤샹의 아카이브를 보여준다. 또한 마지막 작업으로 알려진 <에탕 도네>를 제작하며 남긴 스터디 작품도 공개된다.

 12.22-2019.4.7. MMCA 서울

 

임효정 기자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1912)

누드 형상을 움직이는 기계로 묘사한 이 작품을 위해 뒤샹은 입체파의 추상과 기하학적 공간에 관한 현대 수학 개념 그리고 과학 사진에서 빌려온 운동을 재현하는 발상을 결합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1912년 봄 파리에서 열린 중요한 연례 현대미술 전시회인 살롱 데 쟁데팡당에 출품했다. 입체파 동료 몇몇이 이끈 심사위원회는 뒤샹에게 작품에 몇 부분을 수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어쩌면 위원회가 보기에 역동적인 움직임을 재현하는 방식이 탐탁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혹은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라는 소재나, 뒤샹이 캔버스 하단에 굵은 글씨로 써놓은 제목이 터무늬없이 보였을 수 도 있다. 뒤샹은 수정하는 대신 그림을 거뒤들인다. 결국 이 작품은 이듬해 뉴욕 아모리 쇼에서 논란을 일으키며 성공을 거두었다.

 

ㅇㅇ

 

<마르셀 뒤샹> 展_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직무대리 박위진)은 미국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공동 주최로 마르셀 뒤샹의 삶과 예술을 집중 조명하는 전시를 12월 22일(토)부터 2019년 4월 7일(일)까지 MMCA 서울 1, 2 전시실에서 개최한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은 미술의 역사에 있어서 ‘창조’와 ‘해석’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바꾸며 새로운 예술의 정의를 만든 현대미술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뒤샹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파리의 입체파 그룹에서 활동하며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로 유명세를 치렀다. 25세에 회화와 결별하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그녀의 독신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 일명 <큰 유리>를 1912년부터 8년에 걸쳐 제작한다. 동시에 평범한 기성품을 예술적 맥락에 배치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레디메이드’개념을 만들어 예술의 정의를 뒤집었다. 1920~30년대는‘에로즈 셀라비(Rrose Sélavy)’라는 여성의 자아로 자신을 위장하며 고정된 성적 정체성을 허물었다. 뒤샹은 수많은 레디메이드의 작가로서 에로즈 셀라비를 유머러스하고 성적 함의가 가득한 언어 유희 작가로 활용했다.

 

뒤샹은 자신의 작품이 한 기관에 소장되기를 원해 작품의 복제, 전시, 소장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핵심 후원자였던 루이즈와 월터 아렌스버스 부부의 도움으로 필라델피아미술관에 다수를 기증했다. 이번 전시는 전 세계에서 뒤샹 작품을 가장 많이 보유중인 필라델피아미술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협업으로 회화, 레디메이드, 드로잉 등 150여점과 아카이브를 선보이며, 이 중 다수의 작품이 한국에서 처음 공개된다.

 

전시는 작가의 삶 여정에 따른 작품 변화를 총 4부로 나누어 소개한다. 1부에서는 작가가 청소년 시절부터 인상주의, 상징주의, 야수파 등 당시 프랑스의 화풍을 공부하며 제작했던 그림과 드로잉을 선보인다. 특히 뉴욕 아모리 쇼에 전시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1912년 작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No.2)>가 포함된다.

 

2부에서는 작가가 미술작품은 눈으로 본 것, 즉 ‘망막적’인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여겼던 뒤샹의 대표작 <큰 유리> 제작에 영향을 준 <초콜릿 분쇄기>, <통풍 피스톤> 등 관련 작업과 <자전거 바퀴>, <샘> 등 레디메이드 작품을 소개한다.

 

3부에서는 체스에 몰두하던 작가의 모습, ‘에로즈 셀라비’로 둔갑해 정체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업, 그리고 미술과 공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광학적 실험을 했던 <로토릴리프(광학 원반)> 등을 선보인다. 특별히 뒤샹의 작품을 총망라한 미니어처 이동식 미술관 <여행가방속 상자>는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의 1941년 에디션과 필라델피아미술관 1966년 에디션을 함께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4부는 세계 여러 곳에서 전시를 하던 뒤샹의 아카이브를 보여준다. 또한 마지막 작업으로 알려진 <에탕 도네>를 제작하며 남긴 스터디 작품도 공개된다. 필라델피아미술관에 영구 설치된 조각-건축물 <에탕 도네>와 소재의 특성상 이동이 어려운 <큰 유리>는 이번 전시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구현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뒤샹의 삶과 작품에 영향을 준 사진작가 만 레이, 건축가 프레데릭 키슬러, 초현실주의 작가 앙드레 브르통,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갖은 영국 팝아트의 거장 리처드 해밀턴 등 다양한 예술가들과 생전 협업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전시 도록에는 필라델피아미술관 큐레이터 매슈 애프런(Matthew Affron), 뒤샹 연구자 알렉산더 카우프만(Alexander Kauffman)이 참여해 뒤샹이 작품에 사용했던 개념 레디메이드, 정밀광학, 인프라씬 등을 다룬다. 제임스 존슨 스위니와 뒤샹과의 인터뷰(1946, 1955) 및‘창조적 행위’(1957) 등 뒤샹이 직접 쓴 글도 포함된다.

 

또한 전시실 앞 열린 공간에서 한 달 간 전시와 연계한 다양한 교육․문화프로그램이 이루어진다. 미술관이 마련한 기성품을 활용해 레디메이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레디메이드 워크숍>, 작품 카드로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긴 갤러리를 구성하는 <마르셀 뒤샹 작품카드> 등 참여형 워크숍이 운영될 예정이다. 또한 예술적 정체성을 의상과 소품으로 표현하는 문화 프로그램 <마르셀 뒤샹 그리고/혹은 에로즈 셀라비> 상시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겨울방학 기간인 1~2월은 큐레이터 토크와 뒤샹 연구자들을 초청해 학술 대담회도 개최한다.

 

한편, 배우 이서진이 《마르셀 뒤샹》전 특별 홍보대사를 맡았다. 직접 가이드 투어를 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마르셀 뒤샹의 삶과 작품 설명을 들려준다. 관람객에게 깊은 감동을 전할 가이드 투어는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 앱(App)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http://www.mm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일반인 전화문의: 02-3701-950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대표번호)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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