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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만나는 아비뇽 페스티벌

기사승인 2021.04.16  12: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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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LG아트센터 이현정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연예술축제하면 떠오르는 것이 프랑스의 아비뇽페스티벌과 영국의 에든버러 페스티벌일 것이다. 이 양대 산맥은 각각 7월과 8월에 열리면서 전 세계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 두 축제 모두 공교롭게도 같은 해인 1947년 시작되었다. 축제의 규모나 장르의 다양성으로 보면 사실 에든버러가 더 거대하다. 스코틀랜드의 중심도시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인터내셔널 페스티벌’과 ‘프린지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북 페스티벌, 밀리터리 타투, 필름 페스티벌 등 다양한 페스티벌이 같은 기간에 열리면서 ‘에든버러 페스티벌’로 통칭해서 불리고 있다.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예술감독의 작품 선정 권한 아래 클래식, 연극, 발레, 현대무용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른다. 이 축제를 가장 축제답게 만드는 것은 사실 프린지인데, 8월 내 3주간 3천5백개에 이르는 작품이 도시 전역에서 공연된다. 특히 뮤지컬이나 쇼적인 공연도 많아서 에든버러 프린지에서의 성공이 웨스트엔드 등 런던 상업공연계에서의 성공을 담보하기도 한다.

반면 아비뇽 무대는 에든버러에 비해 보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극 예술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In과 Off로 이루어져 있는데, ‘아비뇽 In’은 예술감독의 엄격한 기준 하에 세계 초연이거나 적어도 프랑스 내에서 초연인 작품에 대해 무대를 제공하며,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연출가, 안무가들의 작품뿐 아니라 유럽 공연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신진예술가들의 도전적인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이에 반해 ‘Off’는 에든버러 프린지와 마찬가지로 심사기준이 따로 없이 아비뇽 시내 혹은 외곽의 소극장이나 카페, 학교, 심지어 창고나 야외 어디서든 무대가 될 만한 곳이라면 누구나 공연을 할 수가 있어 In과는 또다른 차원의 자유로운 연극적 상상력과 에너지 넘치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다만 어떤 작품을 보게 될지는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따라서 Off의 경우 수 천개의 작품 중에서 관객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벌이는 홍보전 역시 치열하다. 이 때문에 배우들은 저녁에는 공연을, 낮에는 길거리에 나와 분장을 하고 의상을 입은 채 짧은 공연을 카페 앞이나 거리에서 하기도 하고, 직접 관객을 찾아 전단을 나눠주기도 한다. 덕분에 아비뇽 거리를 누비면 온종일 어디에서든 연극을 만날 수 있고 하루 종일 연극적 분위기에 취해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아비뇽페스티벌을 가게 된다면 In과 Off를 적절하게 섞어 관람하기를 권한다. 표를 구하기가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In을 통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도전적인 초연 작품을 가장 먼저 만나는 즐거움을, Off를 통해서 거칠지만 날것의 연극적 에너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페스티벌이기에 가능하다. 특히 아비뇽은 전년도 9월에 시작해 6월말까지 한 시즌을 끝낸 유럽 연극인들이 여름 휴가를 떠나기에 앞서 한 해의 회포를 풀고, 앞으로 우리 연극의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이어가는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언제든 이곳에 가면 이보 반 호브, 토마스 오스터 마이어, 조엘 폼므라, 로메오 카스텔루치, 오스카라스 코르슈노바스 등 세계 공연예술계를 리드하고 있는 아티스트들과 프로듀서들을 거리에서 그리고 카페에서 마주칠 수 있다. 전 세계 연극인들, 평론가들, 관객들의 시선이 집중되다 보니 거장 예술가든 신진 예술가든 아비뇽 페스티벌의 무대는 모든 공연예술인들에게 꿈의 무대가 되고 있다.

 

 

아비뇽 페스티벌은 1947년 9월, 배우이자 연출가인 장 빌라르(Jean Vilar)가 세 편의 작품을 교황청 안뜰인 ‘쿠르 도뇌르’(Cour d’Honeur, 명예의 뜰)에서 공연하며 아비뇽 예술주간을 만든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예술 비평가이자 수집가였던 크리스티앙 제르보스(Christian Zervos)와 르네 샤르(René Char)가 현대 미술 전시회를 교황청에서 열면서 장 빌라르에게 1945년에 공연했던 T. S. 엘리엇의 <대성당의 살인>공연을 교황청 야외무대에서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처음에는 연극을 하기에 너무나 거대하다는 이유로 거절했지만 이내 <대성당의 살인> 대신 <리처드 2세>를 비롯 자신이 연출하는 세 개의 작품을 해 보기로 결정, 1주일간의 아비뇽 예술 주간을 열었는데 지역 주민들에게 열렬한 호응을 얻게 되었다. 평소 “연극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접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던 장 빌라르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자신감을 얻은 빌라르는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연극 페스티벌로서의 진용을 갖추어 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아비뇽 시를 설득해 재원을 마련하고, 유명 프랑스 배우들, 연출가들을 불러모아 이목을 집중시켰다. 역사와 문화유산으로 가득한 작은 도시는 그 분위기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7월이면 독특한 연극 무대로 변모했다. 아비뇽은 프랑스 예술의 중심지 파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연극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프랑스 전역에 화제를 모았고, 빌라르는 17년간 예술감독을 맡으며 ‘페스티벌’의 규모를 키워 나갔다.

장 빌라르 이후 아비뇽 페스티벌은 현 예술감독 올리비에 피까지 총 5명의 예술감독을 맞이하며 프랑스를 넘어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페스티벌로 성장했다. 인류 공연예술계에 회자되는 수 많은 도전적인 작품이 아비뇽 무대에서 초연되었다. 모리스 베자르, 아리안느 므누슈킨, 피나 바우쉬, 장 클라우드 갈로타, 마기 마랭, 로메오 카스텔루치, 토마스 오스터마이어, 이보 반 호브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수 많은 거장들이 아비뇽과 함께 성장했고 아비뇽을 빛냈다. 그 중 아비뇽 시내에서 14키로나 떨어진 폐기된 채석장을 무대 삼아 9시간 동안 야외에서 공연된 피터 브룩의 <마하바라타>는 아비뇽이기에 가능한 무대였다. 1985년 공연된 이 작품을 보기 위해 관객들은 초저녁부터 동이 틀 무렵까지 밤을 꼬박 지새우며 앉아 있어야 했는데, “자연마저도 이제 피터브룩의 연출 아래 있는듯 하다”라는 평을 들으며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교황청 명예의 뜰에서 공연한 토마스 졸리의 <티에스테스>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를 사랑하는 아비뇽 페스티벌의 무대는 실내보다는 야외 무대가 많다. 아비뇽이 유적지가 많은 소도시이기 때문에 큰 규모의 실내 공연장이 부족한 탓도 있겠으나 장 빌라르가 처음 페스티벌을 시작했을 때 도시와는 차별화된 분위기에서 공연을 경험할 수 있기를 원했던 전통을 유지하기 위한 이유가 더 클 것이다. 페스티벌 프로그램의 하이라이트는 페스티벌 시작이 되었던 교황청 안뜰에서의 공연이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답고 거대한 석조 건물인 교황청을 무대 배경으로, 한번에 2천명이나 수용 가능한 객석을 바라보며 공연해야하는 이 중압감을 견뎌야 하니, 제 아무리 세계 여러 무대를 섭렵한 거장 연출가라 해도 쉬울 리가 없다. 그러다 보니 어떤 예술가가 이 무대를 요리할지 페스티벌의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페스티벌 기간인 7월의 남부 프랑스는 대체적으로 온화한 날씨를 보이기는 하나, 간혹 억수 같은 비가 내리거나 비바람이 심한 날에는 추위를 참고 공연을 봐야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비가 너무 심해 조명이나 무대 장비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경우가 아니면 공연은 웬만하면 강행된다. 추위에 이를 달그락 부딪혀 가면서도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게 되는데, 무엇이 우리를 그 자리에 있게 하는지 이유야 각기 다르겠지만 어찌 되었든 이것 역시 페스티벌이 가진 또 하나의 힘이자 매력이 아닐까 싶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상영된 이보 반 호브의 <파운틴헤드>

지난해 전 세계를 덮친 펜데믹의 영향은 7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가진 아비뇽 페스티벌마저 무너뜨렸다. 올해 페스티벌 역시 무사히 치룰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르는 상황이다. 또한 페스티벌이 어떤식으로든 열린다 하더라도 아마도 전 세계 예술가들과 관람객들이 모여 예전과 같이 어깨를 부딪히고 밤 새 연극에 대해 토론하는 시절로 돌아가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비록 장대한 교황청 앞뜰에서 하는 공연을 직접 볼 수는 없어도 올해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아비뇽 페스티벌 시네마로 그 기분을 조금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그 어떠한 것도 전 세계 연극인들이 모여 거리와 무대에서 내뿜는 생생한 에너지를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아비뇽 페스티벌 조직위원회와 주한 프랑스 문화원의 도움으로 마련되는 이번 아비뇽 페스티벌 시네마에서는 지난 10년간 페스티벌에서 공연한 아티스트 중 아비뇽페스티벌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는 5명의 예술가들의 작품을 상영한다. 네 편의 연극과 한 편의 무용으로 이루어지는데, 아비뇽의 현 예술감독인 올리비에 피의 <리어왕>, 프랑스가 차세대 연출가로 가장 주목하고 있는 연출가 토마스 졸리의 <티에스테스>, 2004년 아비뇽 페스티벌 협력 아티스트를 역임했으며 여러 번 아비뇽에서 작품을 올린 바 있는 독일 샤우뷔네의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햄릿> 그리고 로사스를 이끌고 있는 안무가 안느 테레사 케이르스마커의 <체세나>가 모두 교황청 명예의 뜰을 배경으로 공연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연출가로 아비뇽에서 총 5편의 작품을 올렸던 조엘 폼므라의 작품도 처음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소개된다. 조엘 폼므라의 작품은 <이 아이>, <두 한국의 통일> 등이 번역되어 한국 극단에 의해 소개된 적은 있지만 그 자신의 연출작이 직접 한국에 소개되는 것은 처음이다. 이번에 만나게 될 작품 <콜드룸>은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공연된 작품은 아니지만 아비뇽의 대표예술가로 아비뇽 페스티벌 조직위원회가 직접 선정한 예술가 조엘 폼므라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프랑스 최고 권위의 연극상인 몰리에르 어워드에서 극본상과 단체상을 수상했고, 그 해 최고비평가협회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펜데믹으로 해외 작품을 대면하기 어려워진 이 때, 방구석 1열 스크린을 벗어나 오랜만에 대형 스크린으로나마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공연되었던 화제작들을 관람하며 세계 공연예술계의 흐름과 다양성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지 한다.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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