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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동의 오페라로 보는 세계사] 오페라와 여인의 사랑⑤ 이룰 수 없는 사랑_<돈 카를로>

기사승인 2022.12.20  00:2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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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 <돈 카를로 Don Carlo>

스페인 합스부르크왕가의 시작: 스페인 합스부르크왕가는 어느 면으로 보면 가장 찬란했던 스페인의 전성기 시절이었기도 하고, 원조 해가지지 않는 대제국 스페인의 몰락을 가져온 시절이기도 하다. 이베리아반도의 기독교 국가들이 똘똘 뭉쳐 이슬람세력을 몰아내는, 국토회복운동 “레콩키스타”가 이사벨라여왕과 페르디난도 2세 국왕 때 비로소 완성을 이룬 후, 오랜 전쟁으로 기울어진 스페인의 국력은 아이러니 하게도 대서양을 건너 인도항로를 개척하겠다고 떠들던 이탈리아인 콜럼버스로 인하여 엄청난 금과 은을 아메리카대륙으로부터 가져오면서 다시 재활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 결과로 스페인은 일약 무적함대의 나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고, 태평양을 횡단하여 중국과 인도에 다다르는 뱃길과, 인도양을 이용하여 아시아대륙까지 진출하게 되는 해상 무역강국으로 우뚝 서게 만들기도 하였다.

이 두 기독교국가의 국왕에게서 태어난 <후아나 공주>는 합스부르크왕가의 필립 왕과 결혼하게 되고, 그들이 아들을 낳으니 그가 바로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로부터는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인 오스트리아, 독일, 헝가리 등의 나라들과 외 조,무모로부터 아메리카대륙과 네델란드, 이탈리아, 시칠리아 등 조, 부모로부터 여러 북유럽국가들을 물려받게 되면서 그의 나이 19세 때 에는 이미 그의 영토가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에 이르는 해가지지 않는 나라의 황제가 되어버린 카를5세(스페인에서는 카를로1세) 즉, 스페인, 신성로마제국의 모든 통치권을 가진 황제가 합스부르크가에서 탄생한 것이다.

 

스페인판 영조와 사도세자

원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의 황제인 스페인의 카를로1세(신성로마제국의 카를5세)는, 포르투갈의 공주 이사벨라와의 사이에서 두 아들과 공주를 낳게 되는데, 큰 아들인 필립2세에게는 스페인을, 둘째 아들인 페르디난도2세 에게는 오스트리아(신성로마제국)를 물려주고 은퇴를 한다.

스페인의 국왕이 된 펠리페2세는 외사촌인 포르투갈의 공주 마누엘라와 결혼을 하여, 첫 아들 카를로스를 출산하게 되는데, 마누엘라 왕비는 왕자를 출산한 후 산후중독을 이겨내지 못하고 숨을 거두고 만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를 잃은 카를로스는 유, 소년기 까지 유모나 고모 등의 손을 전전하며 성장하게 되는데, 심한 애정결핍에다가 합스부르크왕실의 유전병(근친혼으로 인하여 생겨남)으로 턱에 심한 부정교합이 생겼으며, 말이 어눌하고 이해력이 떨어지는 등 여러 가지 장애를 가지고 자라게 된다.

특히 펠리페2세는 첫째 부인인 마누엘라가 죽자 재혼을 하게 되는데, 그 상대가 바로 영국국왕 헨리8세와 자신의 아버지 카를5세의 이모인 아라곤의 캐서린 여왕의 장녀 영국여왕 메리였다.(메리는 펠리페2세의 고모가 된다.)

결혼 후 펠리페2세는 메리여왕과 함께 영국왕을 겸하게 되어 런던에 거주하게 되었고, 카를로스는 아버지도 없는 궁정에서 무섭고 쓸쓸하게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영국여왕 메리가 숨을 거두자, 펠리페2세는 다시금 프랑스의 공주 엘리자베스 드 발루아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사실 프랑스의 엘리자베스공주는 프랑스와 스페인간의 결혼동맹을 맺기 위하여 두 왕실이 약조를 한 카를로스 왕자의 약혼녀였다. 그렇지만 프랑스와의 혼인동맹을 빨리 맺었어야 했고, 왕비의 자리를 한시도 비워둘 수 없었기에 아들의 약혼녀를 자신의 부인으로 먼저 삼아버린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의 사망과 아버지의 부제, 타고난 장애, 왕궁에서의 불안정한 생활, 믿었던 고모의 출가로 더욱더 홀로 남겨진 나약한 청년은 아버지에게 약혼녀까지 빼앗겼다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점점 난폭하고 잔인한 말과 행동을 시작했다.

급기야 식민지 플랑드르의 독립문제로 인하여 자신의 아버지인 펠리페2세에게 칼까지 겨누게 되고, 그 일로 체포되어 다락방에 갇히게 되는데, 펠리페2세는 그 아들에게 물이나 음료도 잘 전해주지 않고 병사들로 하여금 신체적 구금과 함께 강한 통제를 하게 되었고, 찌는 듯 한 무더운 여름, 워낙 병약하고 정신병까지 있던 왕자는 결국 다락방에서의 구금생활을 이겨내지 못하고 숨을 거두게 된다. 아들의 죽음을 지켜본 펠리페2세는 “신앙심이 투철하던 아들 카를로스를 주님이 데려갔다.” 라고 교황에게 보내는 짧은 편지만을 남기고는 더 이상 아들의 죽음을 내색하지 않았다고 한다.

 

 

왕실 비화의 소재가 된 카를로스2세 이야기

오페라와 영화, 소설 등 다양한 이야기의 소재가 된 돈 카를로스의 이야기는 주로 그의 결혼상대가 될 뻔 했던 동갑내기 프랑스의 공주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새어머니가 되어버린 것에 관심과 초점이 주로 맞춰져서 다뤄지게 된다.

즉, 카를로스2세와 엘리자베스여왕이 펠리페2세의 눈을 피해 사랑을 나누고 그를 돕던 친구들이 죽고, 결국 카를로스도 아버지의 손에 죽게 되면서 이사벨라여왕은 종교재판까지 받게 된다는, 불륜의 이야기를 소재로 삼는 것이 많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좀 다르게 쓰여 져 있는데, 펠리페2세와 엘리자베스는 처음부터 사이가 무척 좋은 부부였다. 둘 사이에는 딸이 둘 태어나는데, 당시 왕실이란 곳에서 아들을 낳지 못하는 왕비가 받는 스트레스는 가히 상상 이상이었던 터라, 연약한 엘리자베스왕비 역시 오래 살지 못하고 병사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의붓아들인 카를로스와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것으로 나온다.

해서 병약한 카를로스를 위해 스스로 배우자감을 물색하는 등 여러 가지 온정을 왕자에게 주었고, 이런 이야기들이 아마도 새어머니와 의붓아들의 불륜으로 그려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엘리자베스여왕이 죽은 후 펠리페2세는 다시 혼인동맹을 위하여 자신의 여동생인 신성로마제국왕비인 마리아의 딸 안나, 즉 조카와의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사실 이 안나 역시도 자신의 아들인 카를로스2세의 배우자로 이야기 되었던 공주였으니....

스페인 합스부르크왕실의 근친혼과 펠리페2세의 복잡한 혼인동맹은 후손들에게는 나을 수 없는 유전병을, 국가적으로는 무리한 외치와 전쟁으로 나날이 재정적인 파산만을 가져오게 되는 오점을 남기게 되었다.

 

오페라 <돈 카를로스>의 등장

이 오페라는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부라 일컫는 주세페 디 베르디(Giusebbe di Verdi) 의 말년 작품이다. 오페라 운명의 힘의 성공에 고무된 프랑스의 파리오페라극장은 거액의 작곡료를 선 지급하며 오페라작곡을 의뢰하게 되었고, 당시 정치인으로 작곡보다는 정치활동에 관심이 더 많았던 베르디는 작곡을 빨리 진행하지 않다가 1년여의 시간이 흐른 뒤 1867년 3월11일 드디어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3세와 황후, 그리고 많은 귀족들 앞에서 초연하게 된다.(이 당시 판본은 5막짜리 프랑스어로 되어있다.)

 

하지만 초연은 사실상 실패로 돌아가는데, 그 이유는 오페라의 주연인 프랑스의 공주인 엘리자베스가 왕과 종교재판관과의 대립하는 모습에 나폴레옹3세의 황후가 상당히 불쾌감을 나타냈으며, 또 당시 바그너의 오페라에 영감을 받은 베르디의 극음악 진행은 당시 독일과 무척 사이가 좋지 않았던 프랑스인들에게 환영받지 못했고, 특히나 이 오페라를 본 비제는 “베르디는 더 이상 이탈리아인이 아니다,” 라는 독설로 오페라 돈 카를로를 맹비난 했다.

 

그러나 3개월 뒤 런던에서 재공연한 돈 카를로는 영국인들의 찬사를 받았고, 그 후로부터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어 4막 오페라로 정리된 것을 최근에는 가장 많이 연주하고 있다.

 

오페라 <돈 카를로스>에서 의붓아들의 약혼녀였다가 국가의 이익을 위한 선왕의 결정으로 약혼자의 아버지인 펠리페2세의 아내가 된 엘리자베스는 스페인왕비의 모습과 옛 연인과의 사랑사이에서 끝없이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여인으로 묘사가 된다.

그리고 이 오페라는 돈 카를로스와 엘리자베스의 비중 이상으로 펠리페2세와 그의 정부이자 이 오페라의 또 하나의 빌런인 에볼리의 비중이 적지 않다. 남, 녀 주인공의 활약은 극 후반부에서나 나타나고, 극의 전반부를 이끌어 가는 것은 돈 카를로와, 그의 절친 로드리고의 브로맨스가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마치 모든 배역에게 골고루 작품의 이야기를 나누어 주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인다.

 

그리고 극의 진행이 역사적인 내용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데, 사실 돈 카를로스왕자는 플랑드르(지금의 벨기에 북부지방과 네델란드 남부지역)의 독립을 원하는 세력에 의해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에 동조하고 왕에게 대항하다가 체포 구금되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오페라의 내용은 아버지에게 대항한 후 구금되었다가 풀려나서 플랑드르로 떠남을 알리려 엘리자베스를 만나게 되고, 결국 이를 막아서는 펠리페2세 앞에 선왕인 카를5세의 무덤에서 카를5세의 목소리가 나오며 돈 카를로스는 플랑드르로 떠난다는 설정으로 끝이 난다.

불행한 성장과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유로 결국 부왕으로부터 버림받고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스페인 왕위계승자의 죽음은 마치 조선중기 사도세자와 영조임금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작품이라 하겠다.

 

김현동 축제, 공연 제작자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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