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1월 2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역사의 길'에 디지털로 재현한 광개토대왕릉비가 설치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월 24일, 2024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광개토대왕릉비 원석탁본(청명본) 확보를 계기로 디지털 비석도 세웠다”고 밝히며 공개했다.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원석탁본 역시 고구려실 전시실에 비치됐다.
각력응회암(角 礫 凝 灰 岩 )의 석질로, 높이, 너비가 6.34×1.3-2.0m 가량, 무게 37 ton 에 이르는 실제 비는 높이 8m, 너비 2.6m 규모의 LED 미디어 타워로 고휘도 LED패널 1,260개가 사용된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로 재현됐다.
비의 거대한 4면(面)에 새겨진 내용은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에 걸쳐 고구려의 영역확장 과정과 그 사회상 및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를 보여주는 내용들이 담겨 있는 귀중한 자료인데, 한학자 청명(靑溟) 임창순(1914∼1999)이 소장했던 원석 탁본(청명본)을 토대로 빠진 부분을 보완했다. 1889년 리원충이 탁본한 것을 3글자씩 잘라붙여 첩으로 만든 형태다. 청명본은 3.4면 일부가 사라졌는데, 박물관은 이번 디지털 복원하며 빠진 부분(1,775자 중 362자)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 소장 원석 탁본의 고화질 이미지를 활용해 보완했다. 비문의 내용은 고구려실 디지털 키오스크에서 전체를 확인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광개토대왕릉비의 규모(최대 높이 6.5m)와 재질 및 서체 등을 재현한 새로운 전시 시도로 ICT기술 활용과 전시품과 유적(현장)을 연결하는 종합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관람객들의 흥미를 유발할 것으로 기대한다.
비문에 의하면 광개토대왕(391-412)의 정식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며,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비를 ‘호태왕비(好太王碑)’, 또는 ‘영락대왕비(永樂太王碑)’라고도 부른다.
비의 위치는 현재 중국 길림성(吉林省 集安市) 역전에서 동북으로 3-3.5㎞ 가량 떨어진 지점인 大碑街에 서있다. 고구려의 왕릉급 무덤들이 집중적으로 존재하는 우산(禹山)을 뒤로하고 압록강을 앞에 둔 위치에서 동쪽으로 약 45。정도 치우친 동남향에서 서북향 방향이다.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의 훈적(勳 績 )을 기리고 그의 사후 왕릉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왕이 죽은 지 2년째 되는 해인 414년 9월 29일에 아들인 장수왕(長 壽 王 )이 세운 비석으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비석이다.
4개면에는 총 1775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나 현재 많이 훼손된 상태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다가 처음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77년으로 발견 당시 이끼를 제거하기 위해 불을 질러 글자가 상당수 훼손됐다. 전해지는 탁본은 100종이 넘지만 80% 가량이 1890년대 이후 집중된 석회 탁본이 대부분이다.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