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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여름 음악 페스티벌로 우뚝 선 평창대관령음악제

기사승인 2017.09.13  11: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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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린스키와 조우,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콘서트 국내 초연

뮤직텐트에서 한여름밤 러시아의 서정 수놓다

마린스키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의 조우

‘Great Russian Masters_볼가강의 노래’

프로코피에프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에 대한 사랑> 콘서트 국내 초연

 

 

7월 말, 2017년 제14회 평창 대관령 음악제가 그 화려한 막을 올렸다. 내년 초 평창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의 행사로서 지금까지의 페스티벌 가운데 가장 야심찬 기획을 했으니, 그것은 바로 러시아를 대표하는 명문단체인 마린스키 오페라단과 오케스트라를 초청한 것. 평창 대관령음악제로서는 처음 있는 외국 저명 오케스트라 초청으로서, 이것은 아마도 페스티벌의 음악적인 컨셉과 정체성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지표로 작용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는 주로 실내악 위주의 구성을 바탕으로 유명 아티스트를 셀링 포인트로 삼아 진행했던 것에 비하여, 이번에는 덩치가 큰 오케스트라를 내세워 홍보적인 측면에 있어서 대단히 큰 반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원래 페스티벌의 제목이 실내악 전문도 아니고 행사장인 알펜시아에는 전용 클래식 콘서트홀과 더불어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 음향도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는 뮤직텐트까지 있어 컨셉과 인프라가 충분한 만큼 유럽이나 미국의 유명 페스티벌들처럼 상주 개념의 오케스트라가 있어야만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오케스트라를 중심으로 실내악과 챔버오케스트라 공연, 협주곡 등등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고 무릇 클래식 음악페스티벌의 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오페라까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대관령 음악제의 하이라이트는 프로코피에프의 오페라 ‘세 개의 오렌지의 사랑’으로서, 이를 보기 위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그 색다른 감동에 찬사를 멈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 있어서 상주악단 개념으로서의 상투적이지 않고 무언가 특별한 것을 청중에게 줄 수 있는 해외 오케스트라 섭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었다.

 

 

마린스키와의 조우

마린스키 오케스트라는 이미 잘 알려진 바로 상트 삐쩨르부르그에 본거지를 둔 마린스키 오페라 하우스 소속 악단이다. 러시아 차르 시대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마린스키 히스토릭 스테이지와 21세기 세계 최고의 최첨단 공연시설과 하이엔드적인 아름다움을 뽐내는 건축물인 마린스키 II, 천혜의 사운드를 자랑하는 마린스키 콘서트 홀, 이렇게 세 개의 홀을 중심으로 거의 매일 공연을 펼치는 마린스키. 여기에 세계 곳곳의 연주회와 페스티벌을 순회하기 위해 3교대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구성되어 동시에 움직인다. 정말로 ‘공연의, 공연을 위한, 공연에 의한 오케스트라’로서 여름에 상주악단으로 활동하는 페스티벌만 해도 상트 삐쪠르부르그의 백야 축제와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리는 마린스키 극동 페스티벌, 핀란드 미켈리에서 열리는 게르기예프 페스티벌, 핀란드, 일본 홋카이도에서 열리는 퍼시픽 뮤직 페스티벌 등등이 있다. 특히 음악감독인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콘서트를 지휘 하는 지휘자로서 바쁘게 비행기를 타며 이 모든 일정을 직접 소화해내기도 한다. 물론 게르기예프와 마린스키는 이를 비롯하여 중간 중간 많은 도시에서 열리는 페스티벌과 콘서트에 참여하며 시즌보다 더 바쁜 여름을 보낸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단체인 만큼 이번 평창 페스티벌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한국에 커다란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그 결과는 한 마디로 대성공!

이번 마린스키의 내한은 평창 단독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워낙 규모와 지원이 큰 탓에 여러 도시와 공동 프로젝트로 이루어졌는데, 하나는 대구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세 개의 오렌지의 사랑’ 정식 오페라 공연이었고, 다른 하나는 통영에서의 콘서트 공연이었다. 그런데 대구 오페라 하우스가 프로젝트를 성사시키지 못함에 따라 평창과 통영 두 곳에서만 열리게 된 것.

앞으로 평창이 굳이 마린스키가 아니더라도 페스티벌의 격과 급을 올려줄 수 있는 해외의 저명 오케스트라를 상주악단으로 내세우며 세계적인 명성과 국내 흥행을 계발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이렇듯 국내 다른 도시들과의 연계과 협업이 절실하며, 동계 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평창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여름 음악 페스티벌을 운영하는 예술 도시로서의 입지를 더욱 견고하게 다져나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보다 더 적극적이고 확대된 지원이 이루어져야만 할 것이다.<세 개의 오렌지의 사랑>이라는 오페라를 많은 사람들이 새롭게 접할 수 있었고, 러시아 오페라 갈라 콘서트를 통해 러시아 성악의 새로운 매력을 알 수 있었던 2017년 여름. 러시아의 국제적이고 완성도 높은 예술성을 자랑하는 여름 음악 페스티벌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며 올바른 궤도에 오른 만큼 이제부터가 평창 대관령음악제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러시아 오페라의 핵심은 바로 극! 아리아 중심보다는 스토리 자체와 이에 따른 오케스트라의 팔색조 같은 변화무쌍함에 빠져드는 매력이 강한 프로코피에프 오페라 본연의 가치를 마린스키가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오페라 본연의 가치를 전하다_ <세 개의 오렌지의 사랑>

7월 29일 7시 30분 알펜시아 뮤직텐트에서 프로코피에프의 오페라 가운데 가장 재미있는 내용을 갖고 있는 <세 개의 오렌지의 사랑> 콘체르탄테 공연이 열렸다. 작품도 한국 초연이자 프로코피에프의 오페라 자체가 한국에서는 처음 연주된 것이다. 음악에 원시적인 힘과 동화적인 친연성, 근육질적인 에너지를 더한 감격적인 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수많은 성악가들의 연기 및 대화적 표현력, 강도 높은 성악적 폭발력이 어우러진 감격적인 공연으로서, 현지에서 관람했던 정식 오페라 무대보다 더 직접적이고 자세한 음악적 집중력과 극적인 몰입을 전달받을 수 있었다. 무대가 없는 만큼 시각적 요소들에 모여질 관심이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디테일과 사운드에 온전히 맞춰졌기 때문으로서, 여기에 마린스키 전속 성악가들의 노련하면서도 강렬한 연기와 가창이 가세하며 뮤직텐트는 금세 후끈 달아올랐다. 1막에서 첼리오와 파타 모르가나의 흥미로운 카드 게임과 왕자의 유머러스한 아픈 연기도 이채로웠고 2막 처음에 울려 퍼지는 저 유명한 행진곡과 왕자의 여행 출발, 3막의 너무나 천연덕스럽고 애교 만점의 요리사(베이스) 연기와 오렌지 공주들의 등장 등등이 이어지노라니 인터미션 없이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극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 러시아 오페라의 핵심은 바로 극! 아리아 중심보다는 스토리 자체와 이에 따른 오케스트라의 팔색조 같은 변화무쌍함에 빠져드는 매력이 강한 프로코피에프 오페라 본연의 가치를 마린스키가 제대로 보여준 것이다. 극에 대한 이해를 도운 한글 자막도 대단히 훌륭했고 리브레토 전체와 상세한 해설을 실은 프로그램 북 또한 최고 수준. 모든 것이 완벽했다.

 

 

보리스 고두노프 중 대관식 아리아 장면

 

음악적 호기심을 충족시킨 다른 공연들

다음 날 7월 30일 7시 30분에는 뮤직텐트에서 마린스키의 러시아 오페라 갈라 콘서트가 열렸다. 러시아 오페라 아리아들이 얼마나 호소력 짙고 아름다운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던 회심의 콘서트로서 이렇게 합창단을 제외한 All-Russian 멤버가 연주한 러시아 아리아 갈라 또한 국내 최초. ‘차르의 신부’ 중 류바사의 아리아와 ‘호반시치나’ 중 마르파의 예언을 기가 막히게 부른 메조 소프라노 율리아 마토츠키나에게 격렬한 브라바를, ‘루슬란과 루드밀러’ 서곡, ‘보리스 고두노프’의 대관식 장면, ‘예프게니 오네긴’ 폴로네이즈, 앙코르로 연주되며 뮤직텐트가 터져나갈 듯 울려 퍼진 ‘이고르 공’ 폴로베치안 춤 등등을 러시아 고유의 원시적이면서 상상력 풍부한 에너지를 가득 실어 발산한 마린스키에는 열정적인 브라비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양일 모두 지휘는 게르기예프 대신 조르벡 구가예프가 맡았는데, 마에스트로만큼의 완성도는 보여주진 못했지만 마린스키의 사운드를 만끽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이들의 감동은 며칠 뒤 이어진 통영 공연에서 게르기예프의 지휘와 신동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로자코비치의 연주회에서 다시 한 번 재현되었다.

마린스키의 공연만이 중요했던 것은 아니었다. 7월 29일 2시 평창 콘서트 홀에서 열린 실내악 연주회도 몹시 완성도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었다. 소리는 완전히 하난데 성부만 네 개가 들리는 신기막급한 연주를 보여준 보로진 현악 4중주단과 신기한 음향도 많고 에너지의 분배와 스토리 텔링이 무척 흥미로운 시닛케 첼로 소나타, 손열음과 조성현이 연주한 슈만 세 개의 로망스, 보로진 4중주단 멤버와 지안 왕, 손열음이 가세한 말러 피아노 4중주 등등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7월 28일 7시 30분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에서 정경화와 스티븐 코바체비치, 이 두 거장이 함께 연주한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도 무척 역사적이고 감동적인 연주였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8월 5일 7시 30분 뮤직텐트에서 열린 공연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1부에서는 평창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반주로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빈과 피아니스트 이혁의 협연, 고이치로 하라다의 지휘로 연주된 멘델스존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D단조, 2부에서는 세 명의 솔리스트와 세 명의 타악기 연주자가 함께 한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5번이 이어졌다.

이 가운데 쇼스타코비치는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첼레스타, 타악가들을 위한 빅토로 데레비안코의 편곡 버전이었는데, 원곡에 담긴 음악적 요소들과 작곡가의 의도를 X레이처럼 투시하여 오케스트라 편성에서는 자칫 간과할 수 있는 정묘하고 자세한 디테일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작품에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1악장과 3악장에서의 타악기들의 극적 효과, 2악장의 그 피아노 트리오가 만들어내는 실내악적 심원함과 4악장에서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는 그 내성적인 열정과 시니컬한 완전연소는 이 편곡버전이 갖고 있는 매력이라 하겠다. 마지막 코다에서 손열음이 왼손으로 첼레스타를 연주한 그 얼어붙는 듯한 영롱함은 오케스트라 버전에서의 효과보다 더 강력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고, 거의 지휘자 같은 주도적인 역할을 한 1바이올린을 맡은 보리스 브로프친과 너무나 많은 감정표현과 호흡에도 불구하고 작품의 베이스 파트를 홀로 구현해낸 김두민에게도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규모가 조금 작은 편성이라 콘서트 홀에서 했으면 음향이 더 좋았을 것 같았지만 연주자들의 열기와 음악적 감동만큼은 매우 컸다.

 

박제성(음악칼럼니스트)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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