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
보통 사람은 누구나 자신에 대한 칭찬이 사탕발림에 지나지 않음을 잘 알면서도 왠지 흐뭇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다. 반면에 바른 말로 자존심을 건드리면 불쾌해하고 적의를 품게 된다. 그 말이 그르지 않은 진실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인간은 때로 매우 모순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자신의 문제를 타인의 판단에 기대는 것은 일종의 불행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도 타인의 말이나 평가에 너무나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요즘의 세태다. 아니 과거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결국 그가 어떤 자아를 가졌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인터파크 북 DB |
보통 자아에는 진정한 자아와 경상(鏡像)자아가 있다고 말한다. 진정한 자아는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본연의 것이다. 경상자아란 곧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라는 뜻이다. 이 개념은 찰스 쿨리(Charles Cooley)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가 창안한 것으로 타인의 시선에 내가 다시 반응하면서 나타난 파생적인 자아, 비본래적인 자아를 말한다. 즉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선에 의해서 형성된 2차적인 자아를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거울이란 타인의 견해, 그의 판단과 시선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 현대인은 본연의 자아보다는 이런 타인의 시선에 의해 형성된 자아를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현대 사회철학자 리스먼이 말한, 타인의 시선에 의해 형성된 “타인지향형” 인간의 자아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로 나오는 것이 곧 명예와 명예심이라는 것이다.
찰스 쿨리 _'인간 본성과 사회 질서' |
명예란 ‘세상에서 인정받는 좋은 이름이나 자랑거리’를 말한다. 나에 대한 타인의 호평인 것이다. 나 자신이 과연 그런 인물인가 하는 문제는 관심의 저편으로 밀려난다. 쉽게 말해 타인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에 관심을 집중한다. 이런 명예는 나의 자존감의 근거가 된다. 여기서 나오는 행복은 그런 타인의 평가에 만족해하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은 행복이란 건강, 의식주 이외에 기분, 능력, 수입, 처자, 친구, 주택 등등이 좌우한다고 한다. 그러나 경상자아를 가진 사람은 타인이 평가해주지 않는 행복은 의미가 없다고 여긴다. 이런 불치의 명예심이 현대인의 의식 가운데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것이다. 드높은 의식의 경지에 있었다는 저 자랑스러운 우리의 조상 조선 선비들의 체면의식이라는 것도 일종의 명예심인 것이다.
조지 미드 |
2. 재능도 남이 알아주어야
역사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권력과 돈을 위해 목숨 걸기를 주저하지 않았음에 새삼 놀란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목말라하는 권력과 명예란 결국 남들 앞에서 떵떵거리고 싶은 마음을 말해준다. 통치자나 권력자가 되려 하거나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재산을 많이 긁어모으려는 욕심은 곧 남들 앞에서 부러움과 존경을 받으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했듯이 타인의 시선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은 실은 불행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은 후의 명예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실은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생각이다.
명예욕의 결론은 곧 남들 앞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다. 자신의 존재가 빈약할수록 이런 명예욕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존재, 즉 자아가 건실한 사람은 그토록 처절하게 명예를 얻으려 광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일수록 거기에 목을 맨다. 옛날에는 다반사로 벼슬을 사거나 부정한 방법을 써서라도 거부가 되고자 하기도 했다. 물론 요즘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심지어는 죽은 후에도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최대의 관심을 두기도 한다. 미국의 억만장자 록펠러가 자손대대로 먹고서도 다하지 않을 엄청난 재산을 모으기 위해 생사를 넘나들며 고군분투했던 것도 결국은 남들이 나를 대단한 존재로 여겨주기를 바란 데 그 원인이 있었고 할 수 있다.(데일 카네기의 견해) 인류의 스승이라는 공자도 자신의 아까운 재능을 세일즈하기 위해 평생을 떠돌며 겉도는 삶을 이어갔다. 물론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진정 인류를 위한 것이었지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항변할 것이다. 공자는 제자가 상자 속에 든 옥을 팔 것인지 그냥 둘 건인지를 묻자 망설이지 않고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자신의 재능을 세상을 위해 써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은자(隱者)들은 그런 공자를 명예심에 도취한 자로 비웃었다. 누가 그 진실을 알까마는 분명한 것은 공자는 자신의 이름을 빛내기를 바래 평생을 자신의 쎄일즈에 허비했다는 것이 당시 은자들의 공통된 비웃음이었다. 하물며 우리 범인들이야 어떠하겠는가.
3. 명예욕을 부추겨 남을 이용
범상한 사람들의 이런 뿌리깊은 명예심의 본질을 꿰뚫어 보면 적당한 아첨으로 손쉽게 남을 이용하거나 지배할 수 있게 된다는 엉뚱한 결론이 나온다. 역사상 혀를 내두를 만한 수많은 간신들이 있었고 그 간신들에 놀아난 수많은 제왕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런 실상을 잘 말해준다. 우리나라 최고의 학덕과 인품을 가진 완성된 군자 제왕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도 민족의 염원인 한글창제를 사사건건 반대한 학사 최만리를 훌륭한 자질을 갖춘 학자임에도 끝내 내치고 만다. 물론 그런 세종대왕을 나무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본다. 누구든 자신을 인정해주고 긍정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사사건건 비판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잘 드러내 준다. 진정한 군자라면 자신에게 쓴 소리를 하는 자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자신을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상이 실제 현실에 실현되기에는 인간의 본성이 이에 맞지 않는 것이다.
누구나 주변인들에게 바른말이나 쓴소리만 해댄다면 누구도 그를 인정하거나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뻔한 말이라도 긍정적인 말만 해준다면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좋아할 것이다. 자신에게 걸맞지도 않는 지위를 원하고 그것이 되지 않을 경우 뇌물이나 그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그 자리에 가서 타인의 추앙을 받고자 하는 인간의 추악한 본성... 하나같이 그런 사람들은 얼굴에 희색을 띄고 “나를 봐주세요!” 하듯이 거만하게 행동한다.
자신에게 걸맞지도 않는 지나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지나친 소비와 겉치레를 위해 필요 이상의 신경을 쓴다. 결국 이들은 타인의 편견이나 무지, 독선에 의존하는 셈이다. 그런 사람에게 아부하거나 역으로 그런 사람의 등을 쳐먹는 행위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으며 우리를 실소케 한다.
- 계속
양우석 아욱스부르크대학 철학박사, 한국외대 철학과 themove99@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