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제4회 제주비엔날레, 83일간의 항해, <아파기(阿波伎)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
<아파기(阿波伎)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The Drift of Apagi: The Way of Water, Wind, and Stars)
‘표류’ 화두로 14개국 87명 작가 참여 풍성하고 다양한 탐색과 성찰, 흥미와 예술성 부각
역사와 삶의 터전의 문제 심층 탐구 돋보여
접근성 위한 다각도의 노력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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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Jeju)는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형성된 남방문화와 칠성신화의 북방문화가 서로 공존하고, 충돌하며 독특한 문화 지형을 만들어 냈다. 다양한 요소들이 모여들고 흩어지는 표류 현상에 의한 사회 인류학적 고찰로 그 표류의 역사는 ‘섬, 제주(Island JEJU)’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표류의 역사를 간직한 섬 제주의 표류에 의한 이동과 이주는 제주에 독특한 생태환경과 정체성을 형성했다.
쿠로시오 해류_해류도_자료: 국립해양조사원 2020 한반도는 쿠로시오 해류에서 갈라져 나온 황해 난류, 동한 난류, 대마 난류의 영향을 받는다. 쿠로시오 해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난류인 멕시코 만류 다음으로 큰 해류로 서안 경계류의 특성을 가진다. |
올해 11월 26일 개막한 <제4회 제주비엔날레>는 ‘표류’라는 주제로 14개국 87명의 작가가 참여해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새롭게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게 한다. 사르트르가 말했듯이 인간 삶의 여정은 알 수 없는 미지의 곳을 향한 표류의 역사인지 모른다.
쿠로시오 해류를 따라 제주로 이어지는 83일간의 여정을 시작한 <제4회 제주비엔날레>는 고통과 상실을 내포한 표류의 역사를 탐색하며 자연과 공존하는 환경에 주목한다. 신화적 상상에 의한 가상의 표류의 길은 문명의 만나고 충돌하는 여정을 통해 제주의 독특한 지형을 형성하고 융합을 통해 오늘의 새로운 길을 열어간다.
<2024 제4회 제주비엔날레>는 풍성하고 다양한 탐색과 성찰로 흥미와 예술성을 부각했다. 역사와 삶의 터전의 문제에 대한 심층적 탐구가 돋보이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기술과 인간, 자연과의 융합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개했다는 점에서 새롭다.
특히, 주제에 집중한 제주작가들과 아시아 작가들의 실제 삶의 양식에 천착한 다큐멘터리적 작품들은 생생하고 우주적 생존과 연결되어 깊은 공감을 일으킨다.
인간은 우연한 존재다. 우리는 목적 없이 세상에 던져졌고, 스스로 그 목적을 찾아야 한다
_장 폴 사르트르 Jean Paul Sart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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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는 2025년 2월 16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공공수장고 △제주아트플랫폼 △제주자연사박물관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총 5곳에서 83일간의 여정을 펼친다. 본전시‘아파기(阿波伎) 표류기: 물과 바람과 별의 길’(The Drift of Apagi: The Way of Water, Wind, and Stars)는 14개국 87명의 작가가 참여한 작품들로 제주도립미술관에서 펼쳐진다.
전시의 타이틀명인 <아파기 표류기>는 가상과 상상의 기록이다. 일본서기에 의한 기록은 661년 5월에 일본 사신이 당나라와 교역 중에 표류하여 탐라에 도착한다. 이 배편에 탐라왕자 아파기(阿波技) 등이 일본에 입조했다고 전해진다. 아파기의 가상의 표류의 거시적 주제들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했다.
이종후 총감독 |
이종후 제주도립미술관장(제주비엔날레 총감독)은 주제인 ‘표류’에 대해
“표류가 만든 우연과 필연적 교차점에서 만남과 충돌, 융합의 경계를 예술적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계기가 되길”바란다고 말했다.
김진우, <진화의 비밀 #J-7-별을 품다> |
제주도립미술관 본전시장으로 향하는 미술관 전면 거울연못에는 키네틱 아트로 구현된 김진우 작가의 <진화의 비밀 #J-7-별을 품다>가 진화와 신인류를 모티브로 동력, 빛, 소리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자연과 인간, 기계를 융합한 모습으로 세워져 있다. 12개의 별자리를 중심으로 기하학적 구조 속에서 빛을 발산하며 물 위에 떠서 표류하듯 움직인다.
김순임, 바다풍경_제주 |
입구 로비에는 해류를 따라 흘러들어온 플라스틱 조각을 수집해 설치한 김순임 작가의 푸른 색채의 조형물 <바다풍경_제주>가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고, 왕 더위(대만) 작가 <N33,22>는 푸른 쿠로시오 해류의 흐름을 따라 대만과 제주도 사이, 고통의 역사에 대한 유사성을 발견한다.
앤드류 테스타(Andrew Testa), 모켄족 |
제주도립미술관 본전시장을 들어서면 벌거벗은 어린아이들이 작대기를 들고 바닷속을 누리는 모습의 강렬한 흑백 사진 이미지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앤드류 테스타(Andrew Testa) 작가는 절제된 흑백의 톤 안에서 극적인 연출 없이 모켄족 삶의 한 단면을 담은 <모켄족> 이미지로 그들이 처한 ‘삶의 터전에 대한 상실’에 대한 문제를 드러낸다. 태국 해안에서 60km 떨어진 수린 제도에 사는 원주민 모켄족은 ‘바다 집시’로 알려져 있다.
투라지 카메네자데(Tooraj Khamenehzadeh), <나는 노래로 불려지지 않으리> |
그 옆으로 3m가 넘는 거대한 영상을 채운 수조는 3채널의 모뉴멘탈한 영상 작품이다. 투라지 카메네자데(Tooraj Khamenehzadeh)의 <나는 노래로 불려지지 않으리>각 영상에는 인물들이 물속에 잠기며 페르시아 시인 샴루의 시를 영어로 암송한다. 어두운 고뇌를 흡수하는 물속에서 무거워질 운명을 지닌 인물들은 들리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노래한다.
제주의 정체성에서 스토리를 확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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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가상의 6개 소주제를 통해 전시의 대주제 ‘표류’를 탐구한다. 가상의 표류는 제주의 정체성에서 스토리를 확장하는 장치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해양 쓰레기를 추적해 리서치와 설치작업을 하는 양쿠라 작가를 비롯한 표류와 관련된 작업을 하는 제주 작가들의 대거 참여는 더욱 주목된다.
양쿠라 작가가 자신의 작품 <대마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양쿠라는 제주 4.3 사건 희생자들의 시신이 해류를 따라 표류하여 대마도에서 발견되어 대마도 주민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위령제를 거행하는 일 등을 제주도 역사의 한 단면으로 해석한다.
고길천, <출토-부활> <앞 못 보는 새-알락오리 2> |
바람의 길을 통한 철새의 이동을 주제로 한 고길천, 김용주, 이은봉 작가와 표류의 미디어적 해석을 담은 부지현 작가, 그리고 설치조각, 서성봉, 사진 김수남, 회화 현덕식 작가가 참여했다.
아구스 누르 아말 |
아구스 누르 아말, 라룽 페스티벌 |
외국 작가로는 오브젝트 시어터 퍼포먼스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아구스 누르 아말(Agus Nur Amal, 인도네시아)이 제주도의 전통 영등굿 의식에서 영감을 받은 신작 <라룽 페스티벌(LARUNG FESTIVAL)>을 선보였다. ‘라룽(LARUNG)’은 인도네시아어로 ‘휩쓸다’를 의미하며 주로 물, 바람, 햇빛과 같은 자연 요소에 감사하는 의식으로 다양한 공물을 바다에 씻어내는 전통이다. 아구스는 인도네시아와 제주도의 이러한 민간 신앙체계의 공통점을 통해 바다 제례의 의미를 탐구하며 이를 제주의 아이들과 오브젝트 시어터로 완성시켜 보인다. 오브제와 역사를 기반으로 한 탈경계적인 다양한 융합 예술을 펼친다.
롤롤롤, 네오 샤먼 |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 판 록 술랍과 예술가 그룹이 목판화 <과거를 경배하고, 현재를 긍휼히 여기라>(2024)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들은 제주비엔날레를 위해 제주에서 한 달을 보내며 제주의 영적, 생태적, 그리고 공동체적 유산에 주목해 도민들과 함께 현대적 작품으로 담아냈다. |
판록 술람팀 작업 모습 |
작업 모습 |
대만 예술가 그룹 롤롤롤(lololol)은 식물 이파리에 부착한 심전도기로 발생한 파장을 재해석해 마치 영혼의 나무에 접신하는 네오샤먼이돼 소통을 시도한다.
대만 작가 린 슈카이가 개막일 로비에서 자전거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
린 슈 카이 , |
린슈카이(Lin Shu Kai, 대만) 는 자전거를 타고 전시장 곳곳을 항해하듯이 표류하며 작품의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린슈카이는 제주 시내를 돌아다니며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임완수 박사가 전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본 전시에는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학계 전문가가 참여한다는 점이 주목할만하다. 커뮤니티 맵핑의 권위자인 임완수(미국)는 제주 시민들과 함께 해양 쓰레기 문제에 앞장서는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진행한 결과물로 ‘표류’와 연결됨을 보여준다.
고광민 바구니 |
2층 전시장에는 민속과 생활사의 전문가로 바구니 문화를 연구하는 고광민(한국, 제주작가)의 바구니 전시가 펼쳐져 해류를 따라 제주도로 유입된 말레이시아, 필리핀, 타이완 등 아시아 도서 국가의 바구니와 제주의 전통 바구니인 ‘구덕’과의 연관성을 탐구한다.
고광민은 “바구니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기후와 생태 환경, 사회적 관계를 반영한 중요한 민속 오브제”라는 것을 강조한다. ‘구덕’은 제주지역에서 여성들이 물건을 담아 나르는 대나무 죽공예품으로 일상생활에서 쓰임새가 가장 많은 도구다. 제주의 기후와도 깊은 연관성으로 제주는 바람이 강해 짐을 머리에 이고 나르는 것보다 등에 메고 다닐 수 있도록 탄탄하고 가벼운 구덕이 만들어졌다.
부지현, 궁극 공간 |
이밖에 제주아트플랫폼의 부지현 작가의 작업은 독특하고 신기한 이머시브 전시로 흥미롭다. <궁극 공간>은 옛 메가박스 극장 공간의 형태를 살린 공간 속에서 감각적 경험을 인터랙티브한 역동적인 분위기를 느껴 볼 수 있다. 캄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 레이저 빛과 스모그로 마치 바닷물 속으로 점점 침잠해 들어가는 경험을 하며 특별한 정서적 몰입에 빠져들게 한다.
김수남과 히가야스오 사진전 |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는 한-일 두 작가의 사진전이 전개된다. 김수남의 사진은 제주도 하로산당 영등굿을 통해 척박한 환경 속 인간의 간절함을 담았다. 히가 야스오(1938-2000)는 베트남전쟁 병참기지였던 오키나와에서 여성들이 주체가 된 류코호 제사의 세계를 흑백 사진에 담은 <류큐호 제사의 세계-‘어머니들의 산’에서> 20점을 전한다. 신의 존재를 수용하며 자연과 공존하는 삶의 면모를 비교해 볼 수 있다.
전시의 마지막 부분으로 2층 한켠에 전시된 홍보대사 방송인 전현무의 자화상과 초상화 2점의 <무스키아의 표류기> 전시도 재미있다.
제주현대미술관 |
제주비엔날레 연계전시로 제주도립미술관내 장리석 기념관에서는 <누이왁>(너울(누)과 이야기(이왁)를 조합)특별전, 제주현대미술관에서는 서양미술의 거장 89명의 작품 143점을 모은 대규모 전시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서양미술 400년, 명화로 읽다>( ~3.30까지)가 열린다.
앤디 워홀, <모네에서 앤디워홀까지: 서양미술 400년, 명화로 읽다> |
비엔날레의 특성상 낯선 탐색에 대한 대중적 확산의 의도로 마련한 서양미술 명화전은 부가적인 연계전시라고 하기에는 의외로 규모가 크고 풍성하다. 현대작가들을 포함해 흔히 보기 어려운 작품들을 포함해 방대한 작품들은 제주현대미술관 전관에 전시됐다. 개막 첫날부터 관람객들이 많아 인기를 끌었는데, 비엔날레 본전시장과 거리가 떨어져있어 주객이 전도되지 않을지 우려되기도 했다.
또한,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다양한 사전 프로그램으로 도민들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프로젝트와 네트워킹 등으로 소통의 시간을 마련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다만, 풍부한 심층적 탐색의 비엔날레임에도 장소가 제주라는 점에서 관광과 연계한 다각도의 관심과 접근의 용이함을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이다.
11.26(화)-25.2.16(일) 제주도립미술관 등
임효정 기자 / 제주
사진 _ⓒ임효정 ⓒ제주비엔날레
서양미술 400년, 명화전>이 열리고 있는 제주현대미술관 앞 풍경 (2024.11.16) |
판록 술랍 작가 그룹과 필자 |
아말 작가와 필자 |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