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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지금 좋은 음악 1]_ 음악의 가능성, 정재일 [psalms]

기사승인 2021.04.14  12: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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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980년 5.18 당시 진압군이었던 공수부대원 한 사람이 자신의 사격으로 세상을 떠난 희생자의 유족 앞에 머리 숙여 사죄했다. 4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5.18 광주민중항쟁은 국가기념일이 된지 오래되었다.

이제는 5.18을 이야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지 않아도 된다. 역사교과서에 5.18 이야기가 나오고, 뉴스에서도 5.18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그러다보니 5.18은 6.25 한국전쟁처럼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공수부대원의 뒤늦은 사죄 소식은 5.18의 상흔이 누군가에게는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잊혀지지 않는다. 아물지 않는 상처를 견디며 살아갈 뿐이다.


다행히 5.18을 노래한 음악은 많았다. <님을 위한 행진곡>만이 아니었다. 민중가요 진영에서만 5.18을 노래하지는 않았다. 김원중과 이선희가 5.18을 노래했고, 밴드 블랙홀도 5.18을 품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5.18을 노래한 뮤지션들이 많지 않았지만, 오월창작가요제에 참가하는 뮤지션들은 새로운 노래로 5.18의 의미를 이어갔다. 그리고 지난 2월 23일 한 장의 음반이 더해졌다. 정재일의 [psalms]이다. 2020년, 5.18 40년에 헌정하는 음악을 위촉 받았던 정재일은 그 작업을 하곤, 장민승 작가의 시청각 프로젝트(audio visual project) ‘둥글고 둥글게(round and around)'의 작업을 이어갔다. [psalms] 음반은 그 작업의 결과물을 모은 음반이다.

 

이 음반은 음반의 제목처럼 성경의 시편을 노래했다. 장민승 작가가 신중히 고른 30장의 기도 속에서 12곡의 음악을 길어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성경의 시편과 5.18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하지만 ‘아주 오래된 유대 경전 속에서 되풀이되는 고통에의 절규, 운명에 대한 원망, 신을 향한 하소연, 간절한 기도’는 5.18을 이야기하기 위해 쓴 것처럼 맞아 떨어진다. “이 목숨을 죄인들과 함께 거두지 마소서. 살인자들과 함께 이 생명을 거두지 마소서”라는 성경 시편의 26편 9절에서 출발한 첫 곡 <26.9>을 들으면 안다. 시편을 활용하고, ‘기독교 전통의 합창곡 형식’을 사용한 정재일의 방법론이 얼마나 묵직한 울림을 자아내는지.

잊을만 하면 사회면 뉴스로 5.18 소식이 찾아오곤 하지만, 사실 이제 5.18은 좀처럼 예술의 소재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이고, 오래도록 말하고 노래했기 때문일 것이다.

작곡가 겸 음악 감독 정재일. 2021.02.23.ⓒ사진 제공 = 유니버설뮤직

그런데 정재일의 음반은 이제 더 말할 것이 없느냐고 넌지시 묻는다. 그리고 상처와 고통과 죽음으로 곧장 걸어간다. 놀이가 되지 못하고 즐기지 못하는 예술을 외면하는 시대, 정재일은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타협하지 않는다. 정재일이 만든 음악들은 그 날 이후 40년동안 하루도 마음 편한 날 없었을 사람들의 심장을 도려내듯 악보에 옮긴다. 음악은 처절했던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은 사람들, 끝내 견디지 못했던 사람들의 편에 선다. 상투적으로 경외하지 않고, 서둘러 위로하지 않는다. 잊지 못하고 아물지 못하는 마음을 옮기려고 안간힘을 쓴다. 숭고하지만 가혹했던 시민군들의 시간을 울며 보듬는다.

그래서 음반을 듣기가 힘들다. 몇 번이나 입술을 깨물게 하는 음반이다. 듣는 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음반이 얼마만인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나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마주하듯 밀도 높은 작품은 외면할 수 없는 질문들을 내리꽂는다. 알고 있냐고, 기억하고 있냐고, 공감하고 있냐고, 외면하지 않았냐고. 음악이 역사 앞에 얼마나 진실할 수 있고, 치열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아니 한 사람의 고통 앞에 얼마나 극진할 수 있는지 물을 때마다 나는 이제 이 음반을 가리키겠다.

예술이 삶을 바꿀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다만 좋은 작품은 우리를 멈춰 서게 한다. 멈춰서 듣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듣고 생각한다고 생각이 바뀌거나 행동이 바뀌지는 않는다. 단지 어떤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이 음반은 바로 그 가능성이다. 인간을 인간답게 할 가능성. 우리를 덜 부끄럽게 할 가능성. 그것을 희망이라고 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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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음악의 아름다움이 구현되는 방식과 사회적 역할에 특히 관심이 많다.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어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2004년부터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2005년에는 광명음악밸리축제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저서로『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 『음악편애-음악을 편들다』, 『밥 딜런, 똑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아』등.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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