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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아트 선구자, 영감의 조형언어 _빅토르 바자렐리

기사승인 2024.03.10  23: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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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토르 바자렐리: 반응하는 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0230725-Laurent Sully_Rapho Agency_1958

<고르드(프랑스 도시)에서의 바자렐리, Victor Vasarely in Gordes>, 1958, (Photo by Laurent Sully, Rapho Agency) Michèle Vasarely Foundation, Puerto Rico

Victor Vasarely: The Responsive Eye _Treasures From Budapest

 

Victor Vasarley

 

“나는 순수한 형태와 색으로만 세계를 완전히 표현할 수 있다.”

“미래의 추상미술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우주를 담아내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다”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1906–1997)

 

 

1965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윌리엄 세이츠가 기획한 《응답하는 눈(Responsive Eyes)》전이 열리고 흥분과 경탄에 휩싸였다. 이 전시를 계기로 『타임』지 기자가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옵티컬아트(Optical Art)의 줄임말인 ‘옵아트’로 명명하며 기하학적 추상의 일종인 옵아트의 역사가 시작되고 빅토르 바자렐리는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옵아트(Op Art)는 극도로 강렬한 시각적 효과를 나타내며 주로 광학적 일루전을 통해 관람자의 눈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미적 감각을 자극한다. 그래픽 디자인, 패션,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세기 추상미술의 한 장르인 옵아트의 대표적 작가 빅토르 바자렐리(헝가리 태생 프랑스 아티스트)의 빅토르 바자렐리: 반응하는 눈>展(2024.12.21.-2024.4.21.)이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헝가리 수교 35주년을 기념해 1990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34년 만이다.

헝가리 국립 부다페스트 뮤지엄과 바자렐리 뮤지엄이 소장한 200여 점이 나왔다. 바자렐리가 의학도에서 그래픽 광고 디자이너를 거쳐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발견하고 옵아트의 선구자가 되기까지 전생에 걸친 작품세계와 인생을 총체적으로 조망한다.

13개 섹션을 통해 각 시대별작품의 경향과 스타일을 모두 보여주며, 그래픽 아트, 추상미술, 키네틱 아트를 걸쳐 ‘플라스틱 유닛’를 창안하고 이를 조각과 다양한 장르에 걸친 작품으로 변형하기까지 전 과정을 보여준다.

작가는 엄격한 구성에 의한 기하학적인 추상을 추구해 간다. 바자렐리의 작품은 단조로운 도형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부분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변화와 착란을 통해 화면에 생생한 움직임을 주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 모호성과 분산을 느끼도록 만든다. 기하학적인 형태와 대비적인 색상을 사용해 광학적 일루전을 창출하고, 관람자의 눈이 그 패턴에 반응하도록 해 관람자는 일상적인 경험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한다.

 

공공 건축과 도시 개발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자기 작품의 무한한 복제와 적용을 시도한 그는 1959년 프랑스로 귀화했다. 1970년 바자렐리 재단을 설립한 후, 1982년 자신의 조국인 헝가리에 작품을 기증한다. 4년 뒤인 1986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바자렐리 공공 콜렉션을 소장한 ‘바자렐리 뮤지엄’이 부다페스트에 문을 연다.

바자렐리의 예술 세계는 정사각형, 공간, 움직임, 시간이라는 네 가지 키워드로 말한다. 바자렐리는 자신의 작품이 ‘순수한 조형성’이 우세한 특징을 갖게 하기 위해 기호, 무작위적인 붓질, 개인적인 제스처 등 연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배제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결과 순전히 ‘시각적 개념’이 드러나게 됐다.

<반응하는 눈>은 1965년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개최된 후 미국 등 세계 각지에서 전시됐다. 전시에 대해 작품의 시각적 효과가 관중들을 현혹시키고, 시각적 감각을 자극하는 데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단순히 시각적인 효과를 넘어 인간의 인지와 감각에 대한 심층적인 탐구를 유도한다는 견해도 있다. 흥미로운 시각적 경험과 창조적 영감에 우리의 눈은 어떻게 반응할까?

- 4.21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이미지 제공_Victor Vasarely, 1964-1974, Marsan-2. Acrylic on Canvas. Vasarely Museum, Budapest

 

 

Mich&#232;le Vasarely Foundation, Puerto Rico<아르케이(프랑스 도시)에서의 바자렐리, Victor Vasarely in Arcueil>, Late 1940s, Mich&#232;le Vasarely Foundation, Puerto Rico

20C 미술의 혁신 바자렐리: 바우하우스에서 추상미술까지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옵티컬아트 창시자로 불리는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1906-1997)는 헝가리 태생의 프랑스 화가이다. 원래 그의 전공은 의학이었으나 데생과 드로잉을 배우고 헝가리의 바우하우스로 불리는 ‘뮤힐리 아카데미’(Budapesti Műhely)에 입학하면서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말레비치, 몬드리안, 칸딘스키, 그로피우스 등 당대 가장 신선하고 파격적인 추상 예술가의 작품을 접한다.

1930년 파리로 이주한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상업 광고 디자이너로 성공한다. 그러나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기성 미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에 나선다. 추상미술의 시대를 거쳐 마침내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발견하는데 성공한다. 옵아트의 대표적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된 작가는 엄격한 구성에 의한 기하학적인 추상을 추구해 간다. 그의 작품은 단조로운 도형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부분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변화와 착란을 통해 화면에 생생한 움직임을 주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 모호성과 분산을 느끼도록 만든다.

공공 건축과 도시 개발 등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자기 작품의 무한한 복제와 적용을 시도한 그는 1959년 프랑스로 귀화했다. 그는 1970년 바자렐리 재단을 설립한 후, 1982년 자신의 조국인 헝가리에 작품을 기증한다. 4년 뒤인 1986년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바자렐리 공공 콜렉션을 소장한 ‘바자렐리 뮤지엄’이 부다페스트에 문을 연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그래픽 아티스트로 출발해 광고 디자이너와 추상미술 작가, 공공미술 프로젝트 개발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 빅토르 바자렐리의 총체적 면모를 보여주는 전시로 기획되었다. 이를 통해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옵아트에 대한 이해와 추상미술의 전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Mich&#232;le Vasarely Foundation, Puerto Rico<아네트 쉬르 마네(프랑스 도시)에서의 바자렐리, Victor Vasarely in Annet-sur-Marne>, 1970, (Photo by Willy Ronis) Mich&#232;le Vasarely Foundation, Puerto Rico

 

이수민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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