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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의 종횡무진 음악산책] '한여름밤의 꿈'과 한국창작오페라의 좌표

기사승인 2024.05.04  13: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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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오페라단 <한 여름밤의 꿈>

 

벤자민 브리튼의 <한여름밤의 꿈>을 보면서 한국창작오페라의 좌표를 생각하다

서울은 참으로 음악회가 많다. 장르 또한 다채롭다. 세계 어느 도시에서 이렇게 많은 음악회가 동시다발로 열릴까? 4월 첫 2주 동안 내가 관람한 음악회만 열거해봐도 4월 2일 다닐 트리포노프(Danil Trifonov)의 피아노 독주회, 4월3일 국립창극단의 <리어>, 4월 6일 <김세철의 풍류 2>, 4월9-10일 교향악 축제 중 대구시향 연주와 한경arte 필하모닉 연주, 4월12일 국립오페라단의 <한여름밤의 꿈>, 4월14일 진윤경의 피리 독주회 <禮樂>, 4월16일 염경애의 완창판소리, <춘향가> 등이다.

이렇듯 대한민국의 서울은 세계문화 도시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양한 씬의 공연과 음악회가 우후죽순으로 열리고 있다. 이 중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장르는 크게 네가지 정도이다. 첫째는 해외 유명 연주자들의 내한 공연 및 국내 유수의 클래식 공연, 둘째는 한국 전통음악 공연, 셋째는 양, 국악을 포괄하는 창작 및 컨템포러리 공연, 넷째는 오페라, 창극, 뮤지컬 등을 포괄하는 넓은 의미의 음악극 등이 그것이다. 앞서 언급한 공연들도 이 네가지 장르에 편재된다. 각각의 공연이 차지하는 의미와 공연에 대한 리뷰를 자세히 해도 좋을 공연이 많으나 이번 호에서는 한국음악극 창작에 많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국립오페라단의 <한여름 밤의 꿈>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 중 하나인 <한여름밤의 꿈>은 벤저민 브리튼(Benjamin Britten)이 그의 파트너, 피터피어스와 공동으로 각색하고 작곡한 오페라이다. 1960년 알데버러 축제에서 작곡가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이태리 오페라나 독일 오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희소한 영어 오페라이지만 20세기 오페라에서는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 중 하나이다. 국내에서는 국립오페라단 프러덕션으로 올해 4월11일부터 14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초연되었다.

20세기 오페라는 뮤지컬에 대중적 자리를 내어 주고 소수만이 즐기는 오페라로 여느 현대음악과 같은 길을 걸어왔다. 오페라 청중들은 여전히 19세기 오페라를 즐겨 듣고 있는데 벤저민 브리튼의 오페라는 상대적으로 다른 20세기 오페라와 견주어 대중들에게 꽤 사랑을 받고 청중과의 소통에 성공한 오페라로 평가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공연의 지휘를 맡은 펠릭스 크리거(Felix Krieger)는 ‘브리튼이 무조성의 요소를 도입했음에도 여전히 조성적 표현과 소리의 울림을 표현하고 있고 전통적인 멜로디를 배제하지 않은 채 다양하고 눈부신 표현들을 선사’하면서 관객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간 것에 그 원인을 찾고 있다. 필자의 관람 포인트 역시, 막상 듣고 나면 기억에 남을 만한 선율적 아리아가 한 곡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벤자민 브리튼의 오페라가 어떻게 난해한 현대오페라 모드를 탈피하면서 오페라 청중들과 소통하는지에 대한 음악적, 연출적 전략에 관한 것이었다.

 

Benjamin Britten

 

벤자민 브리튼은 1960년대 독일의 무조성 음악과 미국의 아방가르드 음악의 분위기 등 당대 현대음악계의 주류적 성향에 비교해 볼 때 온건하고 보수적인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리아와 레시타티브로 이뤄지는 이태리 오페라의 진부한 전개를 넘어서 바그너의 음악극 정신을 이어받고 있으면서도 영어의 오페라적 가능성을 탐색하기에 영국식 민족주의적 작곡가이면서 동시에 이에 갇히지 않고 자기의 취향에 맞는 모든 경향의 다양한 음악 기법을 종합해 좋은 의미의 대중성을 발휘한 현대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이다. 

<한여름밤의 꿈>에서도 다름쉬타트 중심의 난해하고 실험적인 현대음악의 여러 경향과 조류로부터 자유로운 의식을 보여준다. 좀더 부언하면 다른 현대오페라와는 달리 무조성이나 불협화음의 연속적 전개가 없어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조성적이면서 선법적인 선율을 사용하되 기능화성적인 조성 음악이나 멜로디 중심의 19세기 오페라의 진부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극의 전달에 충실하여 색채적인 관현악법과 감각적이고 날카로운 표현력을 통해 청중들에게 직관적으로 극의 서사를 전달하고 있는데 그 효과면에서는 19세기 오페라를 능가한다.

 

이러한 벤자민 브리튼의 영어 오페라는 오늘날 한국 창작오페라를 모색하는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한국 오페라는 70여년의 역사를 가졌으나 한국말을 음악적으로 어떻게 살려낼 것인가와 벨칸토 창법의 서구 오페라 어법 속에 '한국적 정체성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라는 과제를 여전히 난제로 부여받고 있다. 한국말과 잘 맞지 않는 벨칸토 창법에 바탕한 서구 오페라의 문법으로 한국 창작오페라를 그대로 적용할 때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는, 마치 번안 오페라를 듣는 듯한 어색함과 생경함이 노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다고 해서 창극이나 판소리 어법을 가지고 오면 우리 말은 잘 살릴 수 있으나 남도 토리에 기반한 전통창법에 어울리는 가락이기 때문에 오페라의 창법과 융합시키는 것도 용이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장르의 양자택일적 선택이 아닌 제3의 길을 모색하는 데 있어 이번 공연의 창작방법론은 어느정도의 실마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오페라에서 레시타티브는 없으나 연극적 대사를 활용하고 영어 가사를 선율적으로 처리하기 보다는 텍스트의 낭송 및 가사 전달에 주안점을 두면서 선율과 색채에 관한 대부분의 영역을 오케스트라에 넘겨주는 브리튼의 방법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A Midsummer Night_BMF(2016)

무엇보다도 이번 오페라가 시사하는 점은 오페라의 극적 구조를 꿰뚫는 작곡가가 대본에 대한 주도권을 확실히 쥐는 것이야 말로 오페라 성공에 있어 매우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이다. 벤자민 브리튼은 희곡의 구조를 오페라적 구조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원작을 재구성하는 창작적 태도의 유연성과 과감성을 보여주었다. 오페라는 원작의 앞 부분인 궁정 장면을 과감히 생략하고 요정이 나오는 숲에서 곧장 시작한다. 이처럼 브리튼의 각색을 통한 대본의 개입은 음악이 중요한 오페라가 언어 위주의 소설이나 연극과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오케스트라의 서주에서부터 환상적인 숲의 분위기를 금속성 악기와 글리산도 주법의 연속 사용으로 사운드를 몽환적으로 표현하면서 극의 중심부로 청중들을 확 끌어 당기는가 하면 초자연적인 요정들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높은 음역대로 배치시킨 합창단의 선법적인 선율 역시 초월적이면서 환상적인 이미지를 감각적이고 직관적으로 구현하는데 일조하였는데 이는 언어적 빌드업 과정을 과감히 축약하고 음악적 서사로 무게 중심을 옮겨야 하는 오페라만의 특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주는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소설이나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한국오페라나 창극, 뮤지컬로의 각색에 있어 원작자를 포함한 대본가와 작곡가의 의견이 충돌하고 갈등할 때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주는 지점이다.

 

한편 이태리 낭만 오페라가 주로 소비되는 국내 오페라 시장에서 영국 오페라 그것도 현대오페라가 상연될 때 어떻게 청중들게 받아들여질 것인가라는 수용적 측면 역시 이번 오페라의 관전 포인트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청중들의 웃음이 오페라 초, 중반에 간헐적으로 들리더니 3막에 가서는 박장대소를 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도 눈에 띄어 ‘코믹 오페라로서의 성공이 이런거구나’를 여실히 보여주어 현장에서 그 열기를 확인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이러한 웃음 코드와 함꼐 관객들의 흥미와 몰입도를 불러일으킨 요소를 살펴볼 때 가장 먼저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원인은 원 대본의 희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인 접근이다. 사실 대본이 희극적이라고 해서 실제 현장에서 관중들에게 웃음 코드가 반드시 의도한 대로 작동하리라는 법은 없다. 한 예로 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국경을 넘어 갈 때 특정 개그 코드를 이해하지 못해 웃어야 할 때 웃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한여름밤의 꿈>에서는 당나귀 머리가 되어 티타니아 여왕과 한밤의 사랑을 나누는 보텀의 코믹한 연기부터 시작하여 후반부 극중극 전개가 진행되면서는 본격적인 웃음 코드가 작동되었다. 3막에서 플루트는 과장된 선율 중심으로 극적 흐름을 깨는 벨칸토 성악의 인위성을 비트는 풍자적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는데 파안대소로 화답하는 관객들의 반응으로 인하여 친근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극장 가득히 조성되었다. 오페라 극장이 객석과 무대의 심리적 간극아 없어진 친밀한 공간으로 변모 될 수도 있구나 하는 경험을 처음으로 안겨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5명이 넘는 등장인물과 3개의 다른 세계(요정, 귀족, 마을 사람들)로 인하여 무대에 올리기에는 다소 복잡한 구조와 인물 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중들이 이해하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던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작곡가의 음악적 연출 및 작곡 능력의 탁월함에서 비롯된다. 작곡가는 이 많은 등장인물을 세 그룹으로 나누어 각기 다른 음향적 색채를 특징적으로 부여했다. 천상의 요정 세계는 하프, 첼레스타, 글로겐슈필, 벨, 트라이앵글 등 밝은 금속성 악기를 사용하고 현실의 왕족 세계의 연인들에게는 현악기과 관악기 중심으로, 극중극을 담당하는 시골 마을 남자들의 음악에는 낮은 음역의 목관악기와 금관 악기의 조합을 사용했다. 음색의 감각적 조합을 텍스트 상의 인물 그룹의 성격과 상황에 일대일로 매칭되게 그려낸 것인데 바그너의 유도동기와 비슷하지만 동기 대신에 음색적 특성을 캐릭터에 입혔기 때문에 더욱 청중들의 이해가 용이했다. 이 역시 창작 오페라를 쓸 때 매우 유용하게 참고할 만한 음악 전략이라 여겨진다.

퍽 역의 가수 김동완

 

또한 부수적인 것 같으면서도 극적 재미를 유발시키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캐릭터는 요정 퍽(김동완 역)이었다. 이번 공연에서는 그룹 ‘신화’의 멤버로 유명한 가수 김동완을 퍽으로 캐스팅함으로써 유명 가수의 오페라 도전기는 젊은 층을 끌어들이는 데 일조하였다. 퍽은 오베런과 함께 극을 이끌어 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오페라에서 가장 중요시 되는 ‘노래’를 정작 부르지 않는다. 대신 오로지 대사만으로 극의 흥미를 더욱 돋군다. 연극이나 뮤지컬, 혹은 징슈필처럼 구어체적인 대사를 읇조렸다면 지극히 평범했을 터이나 연극‘조’의 셰익스피어 시대의 고어를 구사하는 듯한, 영어 인토네이션을 운율적 리듬 속에 살려내었다. 쇤베르크의 ‘말하는 듯한 음성 Sprechstimme’의 영어식 버전으로서 창극 관점에서 본다면 영어 오페라의 ‘아니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국 오페라나 창극, 뮤지컬 등에서 레시타티브와 대사의 중간 지점에서 절충적인, 음악의 말 붙임새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사하는 것이다. 연극적 재미와 음악적 재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하는 현대식 ‘아니리’, 혹은 쇤베르크의 ‘말하는 음성(Sprechstimme)’의 한국적 적용에 대한 힌트를 주는 방법론으로 여겨진다.

 

이상에서 <한여름밤의 꿈>은 오케스트라가 펼치는 음악의 환상적 이미지와 함꼐 캐릭터와 매칭되는 오케스트라의 효과적 사용을 통한 음악적 연출의 탁월함, 선율과 레시타티브, 대사의 경계를 넘어서서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영어 가사 등을 통해 현대 오페라가 가지는 잠재성을 극대화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번호붙은 오페라가 범하기 쉬운 오류- 중간 중간 박수를 유도하면서 극적 흐름을 끊고 상투적인 종지를 반복하는-를 범하지 않고 바그너의 무한선율 작법처럼 종지 없이 음악이 흘러가면서 영어적 뉘앙스를 잘 살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레시타티브의 어색함, 아리아 종지의 진부함과 과장된 박수 유도 등의 난제들을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 창작오페라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연출_볼프강 네겔레

한편 이번 공연의 성공은 원 오페라의 훌륭함을 더욱 잘 부각시킨 볼프강 네겔레의 연출에 상당부분 기인한다. 그는 요정 퍽을 자기 복제가 가능한 초능력자로 설정하여 1대3인의 분신술로 퍽의 민첩성을 표현하였다. 3명의 일사분란하면서도 리드미컬하고 동시에 자유로운 몸짓은 극의 코믹성과 연극성 및 속도감을 올리며 오페라의 안무적 재미를 가져다 주었다. 또한 시작할 때 꿈의 환상적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조명을 통해 무대 위 천정까지 비친 거울 효과는 오케스트라의 음향적 효과에 덧입혀져 극의 몰입도를 초반에 높이는데 매우 설득력 있었다.

<한여름밤의 꿈>이 오페라로서 유니크한 점은 오베런 역의 남자주인공을 카운터테너가 맡았다는 것이다. 카운터테너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와 매칭됨으로써 바로크 오페라적인 모드가 연출되는 가운데 남자 주인공에 해당하는 오베런은 중성적 이미지로 각 인물들과 상황을 이끌어가는 매우 독특한 역할을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연출가 볼프강 네겔레는 오베런과 티타니아를 신적인 초월적 존재가 아닌 현실 속에 존재하는 오래된 부부 관계로 해석하였다. 숲속이 아닌 거실과 부엌이 있는 집이란 공간에서 부부싸움을 벌이는,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부부의 모습으로 극의 사실성을 이끌어 낸 것이다.

한국 오페라계는 공연예술창작산실,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과 소극장 오페라축제, 각 오페라단의 정기공연 등을 통해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나 외국 오페라를 수입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체적으로 창작오페라 생산을 통한 새로운 컨텐츠를 축적하는 부분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예산뿐만 아니라 관객층 확보나 한국 오페라의 양식적 정체성 찾기 등에 있어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오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산자이든 수용자이든 간에 이렇게 잘 만들어진 현대오페라를 관람하면서 긍정적인 부분들은 타산지석으로 삼고 부정적인 것들은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 특히 오페라나 연극, 뮤지컬, 창극 등 음악극 전반에 발 딛고 있는 연출가나 대본가, 작곡가들이 이런 웰메이드 오페라를 ‘셀프-교육’ 차원에서 진지하게 관람했으면 한다. 

5월23-24일, 국립오페라단의 후속작 <죽음의 도시>(Eric Wolfgang Korngold 작곡)가 기다려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소영 음악평론가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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