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전준엽의 미술생각 29] 인생을 바라보는 4개의 다른 시선

기사승인 2017.10.22  00:26:21

공유
default_news_ad2

-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 <낙엽 Autumn Leaves >

 

John Everett Millais, 낙엽 Autumn Leaves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해 질 무렵 낙엽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속삭인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 낙엽이 되리니 -레이 구르몽<낙엽> 중에서

 

창 밖에 가득히 낙엽이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이 불빛이 그리웠다/ 바람은 조금도 불지를 않고 등불들은 다만 그 숱한 향수와 같은 것에 싸여가고 주위는 자꾸 어두워갔다/ 이제 나도 한 잎의 낙엽으로 좀 더 낮은 곳으로, 내리고 싶다. 

-황동규<시월6>

 

John Everett Millais

바람결이 스산해지기 시작하는 계절에 읽으면 가슴 아리게 만드는 시(詩)들이다. 가을바람처럼 가슴 시리게 하는 그림도 있다. 존 에버렛 밀레이(1829-1896)의 <낙엽>이다. 낙엽을 메타포 삼아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19세기 영국 빅토리아시대 대표적인 미술 양식 라파엘 전파의 중심인물 밀레이가 자신의 회화 어법을 완전히 다진 시기에 그린 그림이다. 여기서 낙엽은 예상한대로 쇠락, 그리고 죽음을 암시한다. 태양이 빛을 잃은 서늘한 저녁 하늘, 낙엽 태우는 연기 역시 황혼기의 삶과 인생의 덧없음을 일깨우는 설정이다. 가을 저녁 같은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바라보는 인생은 이 그림처럼 스산할 게다. 그런 심정을 실감나게 부추기는 이미지로 작가는 소녀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낙엽을 끌어 모아 태우는 소녀들은 청순하고 예쁘다. 젊고 싱싱한 소녀와 쇠락한 낙엽이라는 상반된 세월의 이미지를 가을 저녁 풍경으로 연출해 인생의 덧없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낙엽 타는 연기로 물든 가을 저녁 무렵은 가슴 저미는 풍경이다. 이 그림 배경이 그렇다. 스코틀랜드 퍼스, 로지에 살았던 작가의 집 안 마당이 그림의 무대다. 이곳의 짧은 가을은 사려 깊은 성품을 지녔던 밀레이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소재였을 것이다. 이 그림이 나온 연유다. 황혼기 삶의 무게를 애수 어린 풍경에다 담아보겠다고 마음먹게 된 것은 당시 교류를 가졌던 시인 앨프리드 테니슨의 영향이다.

가을의 우울한 분위기를 좋아했던 밀레이는 특히 낙엽 타는 냄새에서 작품의 영감을 얻기도 했다. 낙엽 타는 냄새를 ‘지나간 여름의 향내’라고 풀어냈을 정도였으니까. 해가 막 지평선으로 넘어간 시간, 들판을 바라본 경험이 있을 게다. 낮과 밤의 교차점. 하루의 기운이 바뀌는 이런 시점을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절묘한 비유로 표현했다. 사물의 정체를 확인하기 어렵고 실루엣이 선명해지는 시간에 보이는 개와 늑대는 구분해내기 어렵다는 비유인데, 풀이하면 적과 아군을 분별하기 어려운 상황을 빗댄 것이다. 밀레이는 이런 저녁 풍경에서 삶과 죽음의 중간 참의 환상을 보았던 것이다.

낙엽 더미를 둘러싼 네 명의 소녀들은 각각 다른 표정을 짓는다. 애조 띤 얼굴을 하고 있는 왼쪽 끝의 소녀는 이 일(낙엽 태우는 일)과 무관하다는 얼굴이다. 시선은 정면을 보고 있으나 초점이 없다. 낙엽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더미 위에 올려놓는 소녀는 먼 곳을 보고 있다. 마치 이 세상 너머의 다른 세계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듯. 이 두 소녀는 똑 같은 분위기의 검은색 옷을 입었다. 이 때문에 낙엽 더미가 선명하게 보인다. 따라서 두 소녀가 보여주는 낙엽 태우는 행위에서는 엄숙한 분위기가 나타난다. 그 옆의 소녀는 기라라도 하는 듯 눈을 감고 있는데, 명상적 분위기가 풍긴다. 손에 과일을 든 작은 소녀는 타는 낙엽을 무심하게 바라본다. 인생을 바라보는 각기 다른 시선 또는 삶의 방식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낙엽 더미에서 스멀스멀 배어나온 연기는 소녀들은 휘감고 어스름한 벌판으로 퍼져나간다.

각기 다른 삶이지만 똑같은 죽음을 맞는 것이 인생이라는 엄숙한 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런 생각은 앞의 낙엽 더미가 봉분을 연상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짐작이 간다. 지평선 너머 여명은 이 그림의 애잔하고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완성시키는 배경이다.

 

전준엽 (화가)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