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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느린 음악, 세상에서 가장 반듯한 음악

기사승인 2020.05.14  23: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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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여창가곡 평조 이수대엽 <버들은>

김득신의 수묵화 <세류황사(細柳黃梭)

 

버들은 실이되고

꾀꼬리는 북이되어

구십(九十) 삼춘(三春) 짜내느니 나의시름

누구서

녹음방초(綠陰芳草)를 승화시(勝花時)라 하든고

 

 

버들은 실이되고

꾀꼬리는 북이되어

구십 일 봄 석달동안 짜내나니 나의시름

그 누가

녹음 드리우는 초여름이 꽃피는 봄보다 좋다고 하던가

(국립국악원 『풀어쓴 정가』 2018:86)

 

거문고가 앞서 선율을 시작하면 가야금, 해금, 대금, 피리, 장고가 이어 고요히 대여음(大餘音)

을 연주하면 연주자들 앞줄의 한 가운데 정갈하게 앉아 관객을 응시하던 여류가객이 얼굴 빛과 감정, 그리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노래를 시작한다. “버드으으~~~ 나의 시름”여기까지 노래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반주악기들은 중여음(中餘音)의 간주를 악기소리만으로 채운다. 중여음에 이어 가객은 다시 “누구서~~ 하든고”까지, 초장 중장 종장의 3장의 시조시는 여창가객이 부르는 가곡의 선율과 반주악기에 얹혀 10분을 넘나드는 5장의 길고 우아한 노래가 된다. 여창가곡의 대표곡이 바로 평조 이수대엽의 선율에 얹어 부르는 <버들은>이다. 가곡은 하나의 선율에 여러 시조시를 얹어 부르는 노래였기 때문에 노랫말로 <버들은> 이외에도 다른 시어를 붙여 둘째 바탕, 셋째 바탕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역시 <버들은>은 이수대엽의 유려함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노랫말이다.

 

봄 날 버드나무 가지사이를 바삐 드나드는 꾀꼬리 한 쌍을 보며 버드나무 가지를 씨실로, 꾀꼬리를 베틀의 날실을 왔다 갔다 하며 베를 짜는 북으로 표현한 이 시조는 여성이었을 화자의 마음을 대신하여 외로운 자신의 신세를 표현한다. 석달 구십 일의 청순한 신록의 봄에 새들도 춘흥으로 쌍으로 노니는데, 시조 속 화자는 외로이 수심만 깊어져가니 대체 그 누가 녹음 드리우는 초여름이 꽃피는 봄보다 좋다고 하던가 라며 푸념한다.

 

김홍도, 마상청앵 -말 위에서 꼬꼬리의 소리를 듣다

버드나무, 꾀꼬리, 봄과 여름, 아름다운 자연에 빗대어 자신의 시상을 담은 아름다운 노랫말은 김홍도의 그림 <마상청앵(馬上聽鶯)>(말 타고 가며 꾀꼬리 노래 듣다)나 김득신의 수묵화 <세류황사(細柳黃梭)>(가는 버드나무 가지 위의 꾀꼬리) 속 버드나무 가지와 꾀꼬리를 연상시킨다. 그 어느 때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는 요즈음, 자연의 소리와 숨결이 가득 담긴 <버들은>은 맑고 깨끗한 공기 같다. 여류가객의 단아하면서도 끊어질 듯 이어지는 수묵화와 같은 가곡의 농담을 온전히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이수대엽 <버들은>은 또한 여성 가객들이 맨 처음 배우는 노래이기도 하다. 팔세토 속소리의 발성, 어단성장(뜻이 있는 단어는 짧게 발음하여 의미를 전달하고, 모음은 길게 늘여 시김으로 부르는 가곡발음의 원칙)의 발음, 느린 속도의 긴 호흡, 절제하면서도 섬세한 요성 등의 시김 같은 여창소리의 기본을 제대로 학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수대엽 <버들은>은 선가의 명인이었던 고 김월하 선생님(1918-1996)의 대표곡이었다. 1964년 녹음한 선생님의 음원은 2004년 제자들에 의해 음반으로 나왔고, 1989년 5월 무형문화재 정기공연 김월하의 여창가곡 발표회에서도 첫 곡으로 불리웠다. 월하 선생님 이외에도 조순자, 변진심, 이준아, 김영기, 강권순 등 이 시대 여류가객들은 저마다의 음색으로 가창하여 여창가곡 <버들은>을 최고의 음악대열에 올려놓았고, 고 만당 이혜구 선생님은 가장 아름다운 음악으로 이수대엽 <버들은>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음악, 세상에서 가장 반듯한 음악, 자연과 시상을 품은 음악 이수대엽 <버들은>은 그렇게 우리에게 선물 같은 옛 노래다.

 

노래

강권순, 이수대엽 <버들은>

https://www.youtube.com/watch?v=tr8p9lvVNFk

(국악무대, 국악방송, 170906 - 선가(善歌) 김월하 선생 탄신 100주년 기념연주회 중(中)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국민대학교 교양대학 부교수

국제전통음악학회 동아시아 연구회 회장

국립국악원 『풀어쓴 민요』 , 『풀어쓴 정가』 기획, 역서 『한국 전통음악의 지평을 넓히다 황병기 연구』, 『Korean Musicology Series Gagok, Gasa, Sijo, Classical Vocal Music of Korea』, 『Gagok: Classical Long Lyric Song Cycle』 외 다수의 논문과 저서가 있으며 한국전통음악을 국내외에 알리는 일에 힘쓰고 있다.

 

김희선 국립국악원 국악연구실장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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