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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음악, 나의 악기] 당신이 알고 있던 피리의 실체_안은경

기사승인 2023.02.21  09:4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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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리_안은경

개구리 왕눈이 덕분인지, 가수 송창식의 덕분인지 ‘피리’라는 이름의 악기는 대중에게 매우 익숙하다. 피리는 속이 빈 대에 구멍을 뚫고 불어서 소리를 내는 악기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왕눈이가 불었던 악기도 피리이고, 가수 송창식이 노래한 그 사나이의 악기도 피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피리’라는 이름을 가진 악기에 대한 기록이 고구려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니 ‘피리’를 단순히 부는 악기의 총칭으로만 사용하기에는 그 이름의 주인이 얼마나 서운하겠는가.  

 

- 그렇다면 피리는 과연 무엇인가?

 

피리에 대한 기록은 삼국시대 이전에는 보이지 않으며, 중국의 문헌인 <수서>와 <구당서>에는 고구려 음악에 피리가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 음악에 쓰인 피리는 본토의 고유 악기가 아닌 외래 악기를 수용한 것이다. 1)

피리 구조의 연원은 중국의 관악기 관자(管子) 2) 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관자와 피리는 지공의 형태 및 산형에 대해 공통적인 부분이 나타나기 때문에 피리 구조에 대한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관자(管子) ‧ 필률(觱篥) ‧ 비률(悲篥) ‧ 가관(笳管) ‧ 두관(斗管) ‧ 풍관(風管) 등은 같은 유형의 악기인데 이는 시대 또는 지역이 다르고, 혹은 구조의 크기, 음역이 달라 다른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관자가 중국에 전해진 시기는 수당(隋唐)이전 시기이고, 중앙아시아로부터 중국으로 들어왔으며 일본에 전해졌다. 3)

 

고려 예종 9년(1114) 송나라 휘종이 신악기(新樂器)를 보내줄 때에 중국으로부터 비파 ‧ 장고 ‧ 석방향 ‧ 철방향 ‧ 공후 등의 악기와 더불어 당피리가 들어왔다. 당피리의 형태는 관자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관자에 대한 문헌적 기록은 당피리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는 데에 긴요하다. 특히 진양의 <악서>에 전하는 “오늘날 교방에서 관자는 윗부분에 7공, 아랫부분에 2공이 있다” 는 기록은 당피리의 형태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형태는 향피리의 구조와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의 관자 - 당피리 - 향피리의 상호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다. 4)

조선조 궁중과 민간 음악에서는 당피리와 향피리가 주를 이루며 사용되었음을 문헌의 상세한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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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혜구, “고구려악과 서역악”, <한국음악연구>(국민음악연구회, 1955), 213쪽.

2) 관자는 중앙아시아의 구자(龜玆, Kucha)지방에서 들어와, 피리(篳篥, Pi-li)라는 이름으로 중국 궁중음악에서 사용했다. 관자는 종류가 많아서 크기와 음역도 다양하다. 쇄납보다 작지만, 지고의 수는 같다. 음역은 2½옥타브이고, 만드는 재료는 참나무‧벗나무‧마호가니 등의 나무를 사용하고 음색은 강하고 높다.

한만영‧전인평, <동양음악>(삼호출판사, 1989), 123쪽.

 

3) 이원경 저․임정미 번역, “관자연구(管子硏究), <한국악기학> 제8호(한국통소연구회, 2011), 209~213쪽 참조.

 

4) 관자와 당피리 관련성의 정도와 관자와 향피리 관련성의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당피리가 기본적으로 관자의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과 달리 향피리는 관자의 영향을 직접 받지 않고, 관자에서 당피리가 파생된 이후 생긴 악기라는 점이 다르다.

 

5) 조선조 궁중과 민간에서 사용된 피리에 대한 내용은 안은경, “한국 피리 전승에 관한 음악사적 연구”(단국대박사학위논문, 2022)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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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에서는 당피리와 향피리가 함께 쓰였고, 민간에서는 향피리만 쓰였다. 이는 오늘날까지 전승되어지고 있다. (<그림1> <악학궤범>(1493)에 나타난 궁중 제례음악의 피리 참조)

또한 세피리가 문헌에 처음 보이는 것이 정현석의 <교방가요>(1872)이다. 이 문헌에는 당시 가악의 반주, 정재(교방춤)의 반주에 쓰인 악대와 그 악기편성의 기록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는데 특히 ‘세피리’로 명명된 악기가 등장하는 점이 주목된다. 이를 통해 세피리가 19세기에 연주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2>는 가곡을 부를 때 갖추어야 하는 가자(歌者)와 악공, 그리고 반주악기 등을 기록한 가곡의 실연도이다. 가자4 ‧ 거문고1 ‧ 철사금1 ‧ 세피리2 ‧ 대금1 ‧ 해금1 ‧ 장고1의 구성으로 ‘악공 세피리’로 표기된 것으로 볼 때, 교방 또는 관아의 연향에서 연행된 노래반주는 관속악공에 의해 세피리가 연주된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피리’라는 이름의 악기가 조선조부터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궁중과 민간에서 활발히 쓰였다. 문헌에 기록된 피리는 오늘날까지 전승되어 당피리, 향피리, 세피리의 3종류의 피리가 한국 전통음악에서 주선율을 담당하고 있다. 

 

 

<위부터 세피리, 향피리, 당피리>

<위부터 세피리, 향피리, 당피리>  

피리에 대해 전문적인 소리 공부를 할 때에 스승님께서 항상 말씀하셨던 이야기가 한 가지 있다. 

 

 “새벽을 깨우는 황계수탉 같은 소리가 정악(궁중음악) 피리이다.” 

 

큰 편성의 궁중음악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목(目)피리(수석 연주자)는 음악을 전체적으로 아우르는 음악성과 더불어 크고 단단한 피리소리는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하는 항목임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나는 황계수탉이 되기 위해 목의 핏대를 세워 터질듯 빨개진 얼굴로 힘을 쏟아 피리에 숨을 넣었던 기억이 난다. 

<평조회상 상령산 피리독주 안은경>

 

 

- 피리의 이면

피리는 전통음악에서 주선율을 담당하기 때문에 늘 크고 단단한 톤을 유지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부단히 수련하던 시기에 피리의 이면에 대해 궁금해졌다. 태산을 움직일 법한 큰 소리의 피리가 귓속말을 할 수는 없을까? 장엄한 우장함 속의 따뜻한 속삭임은 과연 불가능한 일인가? 라는 작은 궁금증은 피리 이면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그 고민의 결과로 나의 첫 피리 독주회(2003)를 발표하였다. 첫 독주회 무대에서 작곡가 류형선 곡 <나무가 있는 언덕>을 위촉초연 하였고, 이 곡을 통해 황계수탉의 부드러운 귓속말이 가능함을 제시할 수 있었다.  

 

<피리 독주곡 - 나무가 있는 언덕> 

이후 2장의 정규앨범을 통해 피리의 목가적인 선율과 서정성을 담은 소리를 담아내었다. 하늘이 그 마음을 알아보셨을까, MBC드라마 <해를 품은 달>, <마의>의 음악에 나의 피리 선율이 담겨지기 시작하였고, 피리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선물과 같이 다가왔다. ‘피리’라는 총칭의 공감대 덕분에 관객에게 한층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MBC드라마 <마의> OST. 중 '오직 단 하나'

 

 

<좌) 안은경 정규앨범 1집, 우) 안은경 정규앨범 2집>

 


- 이 시대의 마술피리

2020년 시작된 펜데믹으로 갑작스럽게 일상이 멈춰진 상처의 대상은 지구에 생존하는 모든 생명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얼마나 기약 없이 막막했던가. 숨막히는 마음에 위로가 닿을 수 있는 영역은 문화 예술이었을 것이다. 작가 레오 리오니의 작품 <프레드릭>에서 들쥐 프레드릭은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햇살과 색깔을 모으고, 지루한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야기를 모았다. 깊은 겨울, 물리적인 고갈상태의 무력함과 막막함이 현실에 닿을 때 들쥐들은 프레드릭의 햇살과 색깔, 그리고 이야기를 행복하게 나누었다. 


나는 연주회를 준비할 때면 프레드릭처럼 감동을 전하고 싶은 열망이 돋는다. 음악의 위엄과 선한 에너지는 연주자의 순수한 마음으로부터 전달되기 때문에 조금도 꾸며낼 수가 없다. 관객과 마주하는 나의 모습은 나조차 알 수 없는 순수함으로 무장되는 것 같다. 이와 같은 마음의 공감과 감동의 에너지가 시대의 삭막한 갈증의 해결점이 아닐까.
30cm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악기가 마술피리이기를 바란다. 태산을 움직일 듯 한 큰 음량과 더불어 달콤한 귓속말까지 가능한 이 가능성을 거머쥔 피리가 세계 곳곳 깊숙한 곳까지 다니며 선한 에너지를 마구 뿜어내기를 바래어본다.   

 

<2020 안은경의 피리-절대 변하지 않는 것들> 

 

<2022 안은경의 피리 결-Tune Nature>

 

 

안은경_피리 연주자

국립국악고등학교를 거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사, 예술전문사를 졸업한 후
단국대학교에서 국악학과 음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정규 음반 <안은경 Purity>, <안은경 Purity 2nd>을 통해 피리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였으며, 피리독주곡 <나무가 있는 언덕>, MBC드라마 <해를 품은 달>, <마의>, 국악방송 국악동요, 국악태교, 전래자장가, 놀이노래 등 다양한 음원 작업을 통해 안은경의 피리소리는 이미 대중에게 익숙하다. 또한 2012 런던올림픽응원가 <김창완 밴드-아리랑>을 시작으로 2018 평창동계페럴림픽 폐막식<아라리오>에 참여하여 전 세계에 호쾌한 태평소 연주를 전하였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제46호 피리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이며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부수석이다.

안은경, 피리 연주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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