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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음악 나의 악기] 대금이나 똑바로 불어! 퉁소는 무신...

기사승인 2023.06.09  1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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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여영_ 퉁소

최여영_퉁소

2003년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던 어느 날, 삼성동에 위치한 서울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현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 지하에 연습실에서 국가무형문화재 15호 북청사자놀음 전수조교 동선본 선생과의 첫 퉁소 수업이 이뤄졌다.

당시 민속악 학자의 큰 선생이신 이보형 선생의 칼럼에서 퉁소라는 악기의 소개와 그간 많은 민속학 자료 연구논문에 의한 다양한 내용이 담긴 기고를 읽고 퉁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퉁소를 배우고 싶은 사람은 매주 수요일 저녁 시간이 되면 삼성동에 지금의 서울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서 이뤄지는 퉁소강습에 참여 할 수 있다는 안내와 전화번호가 있었다.

용기 내어 전화를 드리고, 그렇게 나에 퉁소의 입문이 시작되었다. 2023년 20년이라는 세월 동안 퉁소를 불면서 퉁소, 퉁소 음악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연주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또 다른 시작이었다. 대금이라는 악기로 전문 연주자 생활을 한 지 5년여 만에 관심을 갖게 된 퉁소는 나의 음악 세계에 또 다른 기회와 흥분과 희열을 느끼게 하였다.

‘퉁소 불지 말아라 밤에 뱀나온다 ’ ‘방안 퉁소’ 등 우리 내 삶 속에서 선조들의 생활 언어 속에 속한 퉁소, 피리, 대금, 리코더를 불어도 모두 퉁소로 통용되어 불리우던 퉁소, 그 퉁소를 소개하자면 다음 내용과 같다.

 

백제금동대향로에 나타나고 있는 관악기를 부는 악사,. 출처 : 국립부여박물관@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퉁소의 기원

퉁소는 종적(縱笛), 즉 세로로 부는 형태의 관악기로, 서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 전역에 걸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의 악기이다. 백제의 금동대향로, 고구려의 안악 제3호분 내 벽화, 신라의 토우, 통일신라 시대의 진전사지 삼층석탑 등의 유물에서도 이러한 형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악기의 기원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퉁소는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사용해온 악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기록에 퉁소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자료는 고려시대의 음악을 다룬 『고려사』 악지이다. 고려에 유입된 당악을 기록하는 과정에서 퉁소가 나타난 것이다. 이 자료에 의하면 퉁소는 중국에서 전해온 악기로,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악사 구중(丘仲)이 강족(羌族)의 관악기를 개량해 만들었다고 전한다. 따라서 기존에 존재하던 세로로 부는 관악기가 오랜 역사에 걸쳐 개량되며 한반도에 전해진 퉁소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퉁소는 ‘척팔(尺八)’, ‘소관(簫管),’ 등의 여러 이름으로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통하여 고구려 시대의 장적(長笛), 일본 악기 샤쿠하치(尺八)과 연관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특히 샤쿠하치는 중국 한나라에서 만들어진 악기가 한반도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진 악기로, 현재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관악기로 연주되고 있다.

인용-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퉁소의 역사 (악기백과, 설보라, 이수지, 유경아, 민은기)

 

필자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퉁소

 

북청사자놀음 퉁소 (왼쪽) / 창작음악용 퉁소 (오른쪽)

 

 

이렇게 시작 한 퉁소는 북청사자놀음의 사자춤 반주와 함경도 민요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한국퉁소음악연구회의 회원으로 자연스럽게? 입적되어 정기공연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퉁소음악을 연주하게 될 자연스러운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후 다양하고 활발한 학술 세미나와 국제교류 공연에도 참여하게 되어 중국<연변>과 유럽등 여러나라를 달랑 퉁소 하나를 들고 다녀오게 될 수 있는 귀한 시간도 함께 하게 되었다.

퉁소를 불었기 때문에 퉁소를 불었음으로 백두산도 천지를 두 번씩이나 다녀오게 되는 행운을 갖게 되고 유럽이란곳을 처음으로 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봉장취 , 퉁소산조의 영역에 도전 하다

2009년 11월 30일 삼성동 무형문화재 전수관에서 (사)동북아음악연구소 (권오성교수 대표) 의 의뢰로 ‘잊혀진 한국 음악의 진수 , 새를 묘사한 음악 봉장취 연구와 복원 재현 연주회 의 퉁소연주자로 참가 하게 되었다. 북청퉁소는 소지 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고 산조퉁소는 없었던 터라 주변에 악기사 (양평 주구석대표) 에 의뢰 하여 현재 산조퉁소(퉁애)를 복원 하게 되었고 선대 명인들의 음악을 복각, 복원 하는 작업에 충실하게 참여 할 수 있는 기회 생겼다. 지순자, 박환영 등 희대의 명인 선생님과의 밤샘 작업에도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퉁소연주자와 봉장취 , 산조 등의 음악 연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유동초(柳東初, 생몰년 미상)

본명은 유봉, 호는 동초이다. 퉁소의 명인으로 이름을 날린 인물로, 당시 한국음악을 관장하던 이왕직아악부에서 “동쪽에서 이런 명인이 처음 났다”고 하여 ‘동초(東初)’라는 호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퉁소산조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1936~1940년 퉁소산조와 <봉작취> 등의 악곡을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연주하였으며, 음원은 유성기음반으로 남아있다.

 

유동초의 퉁소산조는 중모리 34장단으로만 이루어져 있어 산조의 초기 형태로 짐작된다. <봉작취>는 새의 소리를 다양하게 묘사하는 퉁소 독주곡으로, 음반에 의하면 “소쩍새가 울어”, “뻐꾸기가 울겠다” 등 새의 소리를 고수가 미리 언급하며 다양한 새소리의 음형을 보이는 악곡이다. 자진모리 장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후 한범수의 퉁소산조에서 자진모리 부분에 삽입되었다.

 

2) 한범수(韓範洙, 1911~1984)

한범수는 대금, 해금, 퉁소의 명인으로 유동초의 산조를 이어받아 한범수류 퉁소산조를 만들었다. 퉁소와 대금, 단소, 해금을 모두 학습하였으며, 국악사양성소에서 대금과 해금 강사로 활동하였다.

 

한범수는 그의 산조론에서 퉁소산조는 송천근, 정해시, 유동초, 편재중 같은 명인들이 있었으나, 후계가 없이 모두 고인이 되셨고, 본인이 유동초 선생의 가락을 받았으나 대금에 비해 용도가 넓지 못하여 배우는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본인 역시 힘도 모자라고 하여 폐지 상태에 있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통해 한범수를 마지막으로 한동안 퉁소산조의 전승이 끊겼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3) 정해시(鄭海時, 생몰년 미상)

유동초와 한범수 외로 또 퉁소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고음반으로는 일본의 빅타음반에서 출시한 정해시의 <퉁소산조>가 있다. 그와 관련한 기록은 오늘날 거의 남아있지 않아 생몰년과 전승과정을 알 방법이 없다. 다만 그는 유성기 음반에 가장 많은 퉁소와 대금 연주곡을 남겼으며 이를 통해 당대 제일의 음악인들과 함께 연주한 산조합주, 무용반주 음원을 감상할 수 있다.

 

정해시의 퉁소산조는 유동초와는 달리 전반적으로 매우 슬픈 느낌의 계면조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새소리를 노래하는 <봉장취>를 비롯하여 합주로 연주하는 산조나 <새타령> 등 다양한 퉁소 음원자료를 남겼다.

출처 인용 [네이버 지식백과] 퉁소 관련 정보 (악기백과, 설보라, 이수지, 유경아, 민은기)

 

이중 유동초 명인의 ‘봉작취‘ , 정해시 명인의 퉁소,해금 2중주곡인 ’새타령‘, 봉장취 즉흥 시나의 등의 음악을 복원 연주 하여 북청퉁소의 음악에 머물러 있던 나에 음악 장르 , 세계의 폭을 넓히는 큰 기회 되었다. 이후 KBS 국악한마당 봉장취 편에 초청 되어 유동초의 봉작취를 연주하는 기쁨?과 영광을 안게 되는 기회도 갖을 수 있었다.

다양한 연주를 통해 봉장취 음악과 퉁소 산조 음악의 연주법 시도와 연구를 도모 하던 중 고 한범수 선생의 퉁소산조 음반을 접하게 되어 한범수 선생의 온전한? 산조의 원형을 복원하게 되었고 이후 다양한 연구회, 세미나를 통해 시연자의 활동을 활발하게 되었다.

   

 

 이름 석자 걸고? 내고? 산조? 

퉁소, 퉁소산조, 봉장취 라는 옛 선인들의 음악 , 그것도 민초들에 의해 전해 지고 연주되는 음악을 대금씩? 이나 전공한 나로선 정말 신선한 음악의 장르 개척의 기회라 생각 되었다.

북청사자놀음보존회, 한국퉁소음악연구회 등을 통해 많은 연주와 기회를 함께 하였지만,

이제 불혹의 나이를 너머 반 백살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새로운 음악적 도전의 기회가 찾아 오게 되었다. 2022년 5월 26일 (재) 전통문화예술공연진흥재단 광무대 상설공연에 선정되어 ’서민의 애환을 닮은 ‘소’ 산조를 발표 하게 되었다.

그 동안의 봉장취 음악과 산조 복원 연주를 통해 연마한 퉁소산조의 음악적 기법과 나만의 음악적 소양을 접목시켜 나만의 산조 가락을 구성하여 완성, 발표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최여영 류 퉁소산조 , 이름석자 하나 걸고 류‘ 라는 이름을 얹는 다는 것은 나에게 큰 기회와 도전이기도 하였다. 세상이 바뀌고 다양한 창작어법을 통해 새로운 민속악의 장르가 개척 되어야 한다는 소명과 함께 평소 음악의 정리를 한 걸음 내 딛는 기회라 생각되었다.

세월이 지나 또 다른 세대가 경험하게 되면 이또한 하나의 역사이고 문화라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또 한발을 딛는 순수함과 열정, 그리고 겸허함으로 겸손하게 시작 할 수 있었다.

 

 

 

이러한 봉장취, 퉁소산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일반인들에게 퉁소에 대한 새로운 인식변화와 음악에 대한 관심을 갖게하였고, 서울에서 강원도 원주에서 다양한 계층의 일반인, 전문인들과의 강습을 통한 기회도 갖데 되었으니 나에게는 정말 , 퉁소라는 악기는 새로운 연주자로서의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악기임에 틀림없다 하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KOSJRLwPJcE <최여영류 퉁소산조>

https://www.youtube.com/watch?v=H3yAHFysBFg <한범수류 퉁소산조>

https://www.youtube.com/watch?v=3ytzi8hNtS0&t=71s <유동초 봉작취>

 

 

 

 

 모던퉁소 , 창작퉁소! 

국립국악관현악단, 성남시립국악단, 광양시립국악관현악단, 서울시청소년국악관현악단, 상상챔버국악오케스트라등 유수의 관현악단과의 협연을 통해 창작음악범주의 영역 또한 함께 도전하게 되었다. 만파식적의 노래 _백대웅작곡 ’을 시작으로 ‘ 청의울림 ’ 등의 곡으로 퉁소창작음악을 국악관현악으로 협주 하는 곡들을 소화 해 오는 작업들을 하게 되었다.

‘안데스음악을 위한 흥’ , ‘개똥이를 위한 흥 ’ 등 직접 작곡 한 곡까지 실내악 소품곡으로 연주 하면서 퉁소의 음악적 확장과 다양한 연주법 개량에 나름의 노력을 해왔던 지금의 모습이 참으로 뿌듯하고 내 스스로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 바로 대금이라는 악기를 병행하며 살아왔지만 대금의 연주 기회 보다는 상대적으로 퉁소음악의 연주기회가 더 많았던 터였기 때문이다.

저마다의 달란트, 고유의 영역을 담아 내는 악기로서 퉁소라는 악기는 나에게 그런 의미로 다가 왔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으로 그 동안의 연주활동과 퉁소음악의 확장에 대한 노력을 내스스로 위안 하며 다독인다는 의미로 여겨 졌으면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qZlyK2Wnq4 <청의울림 창작퉁소 협연>

https://www.youtube.com/watch?v=mpWV8ocjnbs <청의울림 창작퉁소 협연>

 

 

퉁소연주자로서의 자세 

 

 

앞으로 퉁소연주자로서의 삶은 어떠 할까 생각해 보았다.

화려한 무대의 스포트라이트 , 멋진 화관복, 두루마기 , 말총갓을 쓰고 민속악계의 관재화 된 무대공연의 틀과 비교해서 과연 어떤 음악적 가치 구현과 완성도를 갖출 것인가?

옛 것에 대한 고증, 복원작업 과 새로운 창작 활동을 통한 이 시대의 또 다른 영역의 음악장르 구현인가? 남들에게는 관심없던 영역, 관재화된 타 전통 악기와는 사뭇 이 시대의 악기에 대한 인식과 인프라가 다소 부족한 것이 사실이지만 앞으로 나는 그 간에 다양한 시도와 노력의 결과물을 얹게 끔 한 퉁소의 음악에 진심으로 , 진심 어리게 , 진심을 다해 연주자로서의 삶과 지도자 로서의 삶을 계속 해서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다.

대한민국에 모든 국민이 단소와 대금을 알고 수학 하듯 퉁소의 음악을 생활화 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 졌으면 하는 기대로 이번 기고를 가름한다.

 

 

최여영

전 충주시립우륵국악단 상임단원

전 시흥시립전통예술단 악장

현 국가무형문화재 45호 대금산조 이수자

강원도무형문화재 15-2 이수자 <태평소>

(사)원주매지농악보존회 이사 / (사)한국전통예술단 아울 음악감독

원주시민국악관현악단 지휘자 / 퉁소산조연구회 대표

THE MOVE Press@ithem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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