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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우석의 행복론 ④] 경청과 행복_타인의 이야기를 성심으로 들어주는 것

기사승인 2023.08.11  23:3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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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청이란?

경청(傾聽)이란 귀를 기울여 잘 듣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잘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음성학적으로 귀를 기울인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상대방의 말의 내면 혹은 이면에 깔린 동기나 정서, 마음을 귀 기울여 잘 이해한다는 뜻이다. 말하기와는 대(對)가 되는 것으로 특히 토론이나 대화에서 번갈아 가며 말하기와 더불어 한쪽이 다른 쪽에 대하여 가지는 행위 혹은 태도를 말한다. 누구나 상대방이 말할 때 듣고, 상대방이 들을 때 말한다. 동일한 사람이 들으면서 동시에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진정으로 듣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듣는 것이 진정으로 듣는 것일까? 그것은 인격으로서 듣는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인격으로서 듣는 것일까? 그것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말한다. 아니면 최대한 상대방의 입장(易地思之)에 서서 듣는 것이다. 그러면 진심으로 존중한다 함은 어떤 것인가?

 

 

 

2)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프랑스의 유명한 수필 작가로서 교수이자 신부(神父)인 피에르 쌍소는 이렇게 말한다.

 

“타인의 말을 들어 줌으로써 그를 최고의 상태에 이르게 할 수 있다. 그는 단어를 사용해서 자기의 생각을 언어로 표현하는데, 자기도 모르게 밖으로 나타난 자신의 생각에 스스로 놀라게 될 때가 있다.”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그 말을 진지하게 들으려는 사람,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말하자면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어쩌다 운 좋게 이루어진 것으로서, 미처 기대하지도 못했던 기분 좋은 사건이다.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런 행복한 만남이 계속 일어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는 편이 좋다. ...말하는 사람은 진심을 털어놓고 말할 용기를 가져야 하고, 듣는 사람쪽에선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마음 자세를 가질 때만이 그런 만남이 가능하다.”

 

“대화 속에서는 듣는다는 것이 수동적인 역할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화란 서로가 차례를 바꿔 가며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듣는 사람은 주의력을 지녀야 하고, 또 들은 내용을 마음에 새겨둘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런 공간 안에서만 상대방의 말이 본래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다. 무언가를 줄 수 있기 위해서는 솔선하는 태도와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한 법인데, 실은 무언가를 받기 위해서도 똑같은 태도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말하고 듣는 일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기주의자, 다시 말해서 무언가를 주고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대화에서도 절대로 들을 줄 모른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인하여) 이제 모두가 듣는 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인터넷 사용자들은 ...수많은 정보를 서로 교환한다. 감정을 교환하는 일은 거의 없다.”

(피에르 쌍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여기서 보면 듣는 행위는 말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자신의 최고의 상태가 되도록 해 주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떻게? 진심을 다해서 듣는 순간 나는 상대방의 입장이 될 수 있다.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내 앞에서 내 얘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청자가 있다, 나는 신이 난다, 그래서 나 자신이 잘 모르던 일까지 척척 생각이 난다,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신기할 지경이다. 정말 신기하다. 순간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생각이 든다. 나를 진심으로 이해해 주는 사람이 지금 내 앞에 성의를 다해 앉아 있다. 그에게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려면? 답은 바로 나도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이다. 그것만이 그의 진실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일이다.

 

3) ‘1,2,3의 법칙’

 

흔히 둘이서 토론을 할 때 지켜야 할 사항을 ‘1,2,3의 법칙’이라 부른다. 1이란 1의 분량만큼 내가 말한다는 것이고, 2란 상대방으로 하여금 2만큼 말하도록 배려한다는 것이며, 3이란 상대방의 견해에 적어도 3번은 진심으로 긍정하는 마음을 담은 제스쳐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으면 상대방 역시 나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며 결국은 싸움(논쟁)으로 비화되어 본래의 목적에 반하게 되어 결국 대화나 토론을 안 하느니만 못하게 될 수도 있게 된다. 토론 최악의 경우인 것이다. 타인을 배려해 주는 신사적인 태도만이 생산적인 토론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내심으로는 상대방의 견해를 시인하지 않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짓는 것은 위선이 아닐까? 진정한 경청이란 과연 무엇일까?

 

4) 듣기의 좋은 예(모모)

독일의 소설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Momo)에서 주인공 모모는 바로 이런 듣기의 달인이다. 그녀는 어느 누가 와서 말을 해도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 그것도 귀를 털고 듣는다. 그 다음엔? 그뿐이다. 반응이나 특별한 말이 없다. 그런데 이것이 걸작이다. 모모를 찾은 사람들은 그녀의 경청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좋아한다. 그래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모모를 찾는다. 또 다른 사람이 문제가 있을 경우 모모를 찾을 것을 권유한다. 그래서 모모를 찾은 사람들은 만족해서 돌아간다. 그녀는 정말 듣기의 재능(?)을 타고났다. 그냥 듣는 것이 무슨 특별한 재능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각자 자신을 생각해 보면 알 것이다. 이렇게 보면 듣기란 결코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태도다.

 

5) 듣기와 만남

듣기, 경청이 없으면 진실한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다. 우선 대화가 겉돌거나 아예 이루어지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만의 다른 생각을 하게 되면 각자 자기 말을 반복하는 독백만을 하게 된다. 말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결론이 뭐야?” 하고 다그친다거나 “네 말은 알겠는데...”하고 말을 끊는 것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진정으로 배려하지 않는 현대인의 사무적 만남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만남은 인간과 인간,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 아니라 실은 인간과 사물의 만남에 지나지 않는다.(마틴 부버) 자신의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 되는 것이 사물이다. 상대방을 사물로 본다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물건을 사려고 가게에 들어가서 주인의 말을 경청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필요한 물건만 사면 그만인 것이다. 그 밖에는 단지 듣는 시늉만 해도 좋을 것이다.

진정한 듣기는 상호적이어야 한다. 나 혼자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도 똑같은 기회를 갖는 것이어야 한다. 이런 만남은 서로를 친숙하게 하여 인간적인 유대감을 갖도록 한다. 누구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그 역시도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사람. 이 둘은 진정한 인격적 만남을 통해서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영화 <인턴> 인턴 사원 70세의 벤(로버트 드니로)은 풍부한 인생 경험으로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삶의 지혜를 나눈다

6) 듣기의 상대자

그러면 이야기의 상대자, 친구는 어떤 자격을 갖추어야 바람직하다고 할 것인가? 거기에 한계는 없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것은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지 꼭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대화 상대자의 일정한 자격이란 없다. 그가 어떤 신분이든,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이든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꼭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인격의 완성자라야 좋은 대화의 상대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론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예컨대 청소부나 살인범도 좋은 대화 상대자가 될 수 있다. 그가 잘 들어주는 역할을 하는 한에서 말이다.

 

7) 듣기가 중요한 또 다른 이유

인간은 원래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타인의 말을 잘 들어줌으로써 그와의 성공적인 만남이 가능해지는 경우가 많다. 일단 상대방의 이슈가 무엇인지 잘 들어줌으로써 신뢰를 가지도록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하는 명예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명예심이란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감정을 말한다. 명예심은 가히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런 명예심을 어느 정도는 가지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8) 영화 《웨이트리스》(2007)와 듣기

영화 《웨이트리스》의 주인공 제나는 단지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 자신의 근무처 사장인 대부호 조의 인생 은인이 되었고 완전 타인임에도 유산의 일부를 물려 받게 된다. 그녀가 행복했을지 그렇지 않았을지는 각자가 상상해 보기 바란다.

행복은 나 혼자 살면서도 충분히 올 수 있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행과 불행을 겪지 않을 수 없는 여건에서 살고 있다. 타인과 관계를 잘 맺기 위한 손쉬운 듯하면서도 실은 결코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일이다. 타인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 주는 연습을 통해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고, 나아가서 타인과의 돈독한 관계를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은 평범한 일이면서도 신기한 일이다. 요즘 사회적으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공감(共感)이란 것의 뿌리도 사실 이 듣기에 있다 해도 좋을 것이다. 남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으면서 그를 진정으로 공감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 이제 남의 이야기를 성심으로 들어주어 보자.

 

-계속

양우석 아욱스부르크대학 철학박사, 한국외대 철학과 themove99@daum.net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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