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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민의 생생무용다이어리 ⑤] 때로는 멈춰야 볼 수 있는 것

기사승인 2023.11.13  18: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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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작품들을 창작하며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가 있다. 누군가가 듣기엔 별것 아닌 일이 나에겐 형용할 수 없는 가치의 일이 되고는 한다. 그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길 잃은 나를 다시 창작자의 길로, 예술의 길로 되돌려 놓는다.

 

유럽에서 잠시 춤을 추던 때였다. 넓은 스튜디오에서 만난 세계 각국의 댄서들은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곧장 즉흥에 돌입했다. 우리가 한 즉흥은 프리 즉흥으로 아무런 제약 없이 댄서들끼리 자극을 주고, 받으며 움직임을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다. 3,40여 명의 무용수는 호흡을 맞춰 나가며 움직이기 시작했고 몇몇의 댄서들은 본인의 기량을 뽐내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나는 춤 추지 않았다. 그저 주변을 걷기만 했다.

앞서 말했듯,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이 공간을 보고자 했기에 화려한 기교를 부리는 댄서들 틈에 섞이지 않았다. 그리고 날 움직이게 할 만한 자극을 받지 못했다.

 

그렇게 약 10분을 홀로 걸을 때 즈음,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동시에 그녀와 난 스튜디오 한가운데로 걸어와 마주 보며 멈췄다. 그녀의 눈은 에메랄드빛으로 반짝였으며 빠져들 것만 같은 눈을 지녔다.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무언가 하고 싶었지만. 서로 눈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또 그녀의 즉흥을 내가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온전히 이 시간과 공간을 느끼고 싶어 하는 만큼 그녀 역시 마찬가지 일터이니 말이다.

 

시간이 조금 흘렀다.

 

주변의 무용수들은 화려한 기교를 뽐내며 춤을 추고 있다. 누군가는 서로의 몸을 맞대며 살결을 비볐고, 누군가는 육성으로 소리를 내며 다른 무용수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난 아직 넓은 스튜디오 한가운데 멈춰서 그녀와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10분 정도가 흘렀다.

아직 우린 그 자리에 작은 미동도 없이 멈춰 서있다.

먼 타지에서 처음 만난 그녀의 눈빛은 애틋했던 오랜 추억을 가진 옛 친구를 만난 듯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슬퍼 보였고 무언가 내게 말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주변의 소음과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15분 정도가 흘렀다.

 

처음이었다. 한 사람의 눈을 이렇게 오랜 시간 보고 있던 것은. 심지어 타지에서 처음 만난 한국인이 아닌 사람의 눈을 본 것은.

 

점차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져 갔다.

반짝이던 에메랄드가 붉어져 갔다.

 

곧이어 나의 눈에도 물기가 가득해짐이 느껴졌다.

밀물이 차듯이 서서히 차올랐다.

 

우리를 제외한 모든 무용수는 너무나 동적이었고 그녀와 난, 너무도 정적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은 무엇보다 동적이었고 100마디의 말보다 진한 대화를 나눴다.

 

약 20여 분이 흐르고 나서 즉흥을 종료하는 알람이 울렸다. 그녀와 난 그제야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닦으며 별다른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여운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다음날 스튜디오로 향하는 아침, 그녀와 입구에서 마주쳤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그녀는 내게 어제의 일을 꺼냈다. 그녀는 나의 눈이 외로워 보였다고 말했다. 나의 눈을 보니 자기의 눈 역시 외로운 눈을 하고 있어서 놀라웠고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 순간이라 말해주었다. 역시 눈물이 흐른 이유는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나의 짧은 영어 때문에 더 좋은 말을 전하고 싶었지만 간단하게 얘기를 나눴다. 부디 그녀에게도 이 감정이 전해졌길. 여전히 그때의 즉흥이 서로의 예술에서 가장 깊은 춤으로 남아있기를.

 

내가 만약 멈추지 않고 곧바로 움직였다면, 혹은 그녀와 무언갈 하고자 했다면 이와 같은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오직 무용 예술이라는 장르에서만 찾을 수 있는 미학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때론 멈춰서 볼 때만 보이는 것들도 있는 거라 했다.

 

 

눈을 통한 대화는 그 어떤 말보다 가장 진심을 잘 드러냅니다. 눈은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은 서로를 탐구하고, 의심했고 시간이 지나며 서로를 존중했고, 끝이 다가오자 서로를 위로했으며 어쩌면 아주 짧은 찰나의 사랑을 느꼈을 것입니다.

춤은 신체를 움직이며 감정을 담아내고 얘기를 풀어냅니다. 나의 눈 역시 내 신체의 일부입니다. 난 그날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눈으로 그 어떤 춤보다 아름다운 춤을 추었다고 말합니다.

 

우리 잠시 말과 행동을 멈추고 애인을 눈을 바라보아요. 친구의 눈을 바라보아요.

서로의 눈과 눈이 서로에게 진심을 말하고 있다면, 눈빛이 반짝이고 있다면

그 정적은 절대 조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껏 나눈 대화보다 가장 충만하게 서로의 마음을 채워줄지도...!

 

이수민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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