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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삶을 농락하지 말라_2019 Bregenzer Festspiele <리골레토 Rigoletto>

기사승인 2019.08.21  07: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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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세상 : 오페라 <리골레토>

삶에 대한 엄중한 경고

무대가 열리면 보덴 호수(Boden See) 위로 풍선을 든 광대 리골레토가 공중에 매달려 유영하듯 무대로 날아가는 동화 같은 장면이 시작된다.

올해 브레겐츠 오페라 <리골레토>의 무대는 무엇보다 이야기 전개에 따라 변화하는 무대 연출의 각 장면들이 특출했다. 연출과 무대디자인을 맡은 독일의 유명한 영화 감독 필립 슈톨츨에 의해 거대한 무대 전체가 계속 움직이며 변화하는 장면을 연출했다. 거대한 두상의 광대의 얼굴과 두 손은 장면마다 바뀌면서 전개되는 극의 분위기와 내용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띠었다.

특히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멀리서 굽어보다가도 눈앞에서 직시하는 듯 부리부리한 거대한 눈알을 들이대는 눈(시선)의 변화는 놀라웠다. 반쯤 감은 듯 치켜뜬 눈 아래 벌어진 입 속에서 가수들이 노래하는 장면들,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 번쩍이는 광란의 놀이판을 펼치는가 하면,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비참한 지경에 이르러 눈알이 빠져 나가 나뒹굴고, 빠진 눈 속의 공허한 자리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작태들, 손바닥위에 올라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질다의 무대는 그래봤자 손바닥 위이고, 마침내 악마의 얼굴인양 붉게 물든 핏빛 무대...

이 모든 장면은 거대한 보덴 호수 위의 어두운 밤풍경과 조화되어 자연의 풍광이 함께 연출해 낸 장대한 드라마를 보여준다. 불구의 몸으로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는 광대 리골레토는 세상을 저주하며 방탕한 귀족의 타락한 놀이에 끼어 부추기는 역할로 세상에 대한 복수를 하는 듯 하지만 그 저주는 결국 자신의 계략에 의해 복수를 계획한 스스로의 함정에 빠져 헤어날 수 없는 비극을 맞는다. 삶을 가벼이 여긴 자에 대한 저주인 셈이다.

순진한 처녀 질다는 사랑에 눈 먼 순정드라마의 주인공이다. 사랑을 바친 남자의 마음이 진심이 아닌 걸 알아차린 후에도 그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사랑’의 속성이 아닐까.

 순정을 바친 남자를 대신해 자신이 스스로 제물이 되는 헛된 희생조차도 어쩌면 사랑의 한 형태로 봐야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낭만적 멜로의 경향이고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을 목도한 아버지의 심정은 어떠할까? ‘빠진 눈알’은 못볼 꼴을 본 자의 시선만이 아니라 비루하고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가 아닐까. 스스로 농락한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후에야 비극의 종지부를 찍게 되는 허망한 인생의 결말이다. 

그 누구도 결코 삶을 가벼이 여기지 말지어다. 그러나 이 모든 비극적 일들이 벌어지건 말건 방탕한 귀족 카사노바는 여전히 노래한다. 삶은 여전히 비극이다. 

2019 브레겐츠 오페라 <리골레토>는 천혜의 자연 풍광과 어울려 시적, 동화적, 드라마적 무대로 다양한 인간군상의 유형을 통해 타락한 세상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노래한다.

순정과 저주에 관한 광폭한 멜로드라마_ 오페라 <리골레토>

순정과 저주받은 삶, 호색한과 순정에 관한 러브스토리는 동.서양 고금을 막론한 오래된 멜로다. 2019-2020 시즌 브레겐츠 페스티벌’ 의 오페라는 주세페 베르디의 <리골레토>로 지난 달 막이 열려 한여름 밤 호수 위에서 환상적인 오페라무대를 펼치고 있는데, 오페라 <리골레토>는 내용적으로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호색한과 순정에 관한 러브스토리와 비참한 하층민의 저주받은 인생에 대한 사회비판적인 극이다. 호색한과 순정의 멜로드라마는 동.서양 고금을 막론한 오래된 이야기로 수 천 년을 지나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장르다. 베르디의 전체 29개 작품 중 낭만주의 특색을 띠는 이 16번째 오페라 <리골레토>는 원작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의 희곡 ‘방탕한 왕(Le roi s’amuse)‘으로 1851년 페니체극장에서 초연됐다. 초기 애국주의적 작품 <나부코> <에르나니>로 이탈리아 내에서 명성을 떨치던 베르디는 이 작품 <리골레토>로 전 세계에 명성을 확립하게 된다.

한 인간의 처참하고 기구한 이야기로 비극적 결말을 초래하는 <리골레토>는 자신의 계략으로 인해 자신의 딸을 죽게 하는 저주받은 운명의 인간이다. 세상의 놀림을 받은 꼽추 광대로 귀족(만토바 공작)의 문란한 생활을 부추기는 비루한 삶을 살아가지만, 아끼는 딸(질다)을 숨겨두고 사랑하는 딸을 보는 즐거움으로 살아가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구한 운명은 사랑하는 딸이 공작을 사랑하게 되고, 난봉꾼 공작의 마수를 벗어나기 위해 공작에게 복수할 기회를 찾아 살인청부를 하기에 이른다. 운명의 장난은 아버지의 계략을 알게 된 딸이 공작에 대한 순정의 마음으로 공작을 대신해 자신을 살인청부의 제물로 스스로 희생하면서 결국은 아버지에 의해 죽음에 이르고, 그 아버지는 자신의 덫에 스스로 빠져 저주 받았음을 깨닫고 비탄의 절망에 빠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16세기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방탕한 귀족 사회를 벌하려다 오히려 자신의 딸을 죽게 만드는 궁중 광대 ‘리골레토’의 비극적인 삶을 그리고 있다.

 비극적 운명의 주인공 ‘리골레토’ 역은 ‘블라드미르 스토야노프’가 맡아 입체적인 연기를 선보이며, 리골레토의 딸 ‘질다’ 역은 ‘멜리사 쁘띠’가, 바람둥이 ‘만토바 공작’ 역은 ‘스테판 코스텔로’가 맡아 열연을 펼친다.

 

 

〈저주(La Maledizione)〉 => <리골레토 Rigoletto>로 

민중의 처참한 삶에 대해 생생하게 담아낸 <레 미제라블> <파리의 노트르담> <웃는 남자>등을 집필한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갖가지 인간 군상들의 전형을 보여주는데, 이 <리골레토>의 원작인 <방탕한 왕>에서는 프랑스의 군주의 방탕과 타락한 모습을 묘사했다는 이유로 공연이 금지됐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던 이탈리아에서 베르디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군주를 비하하는 원작의 내용을 변경했다. 프랑스 왕국을 이탈리아 도시 만토바로 바꾸고 엽기적, 외설적 내용은 빼고 등장인물의 이름도 모두 바꾸었고, 원래의 제목도 〈저주(La Maledizione)〉였지만, 이 역시도 이탈리아 정부가 국민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고 하여 주인공의 이름인 <리골레토>로 제목이 바뀌게 되었다. 

음악적으로도 오페라 <리골레토>는 당대 주류 오페라에서 베르디가 혁신적인 변화를 시도한 작품 중 하나다. 아리아를 중심으로 극의 전개를 전달해 주는 레치타티보 세코 대신에 일관된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혹은 2중창 등이 연속되어 나오는 ‘쉐나(scena)’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공작의 칸초네 ‘여자의 마음’을 아리아로 치더라도 오페라에서 아리아가 자치하는 비중은 2중창보다 적은 수로 그 비중이 줄었다. 대신 아리아의 비중이 줄어듦으로써 조역들이 다양하게 극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임효정 기자  

 

 

임효정 기자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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