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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치유하는 방법 <벨기에 물고기 Le poissonbelge>

기사승인 2017.04.04  09: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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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단 프랑코포니, 연출 까티 라뺑)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중년남자와

삶의 이탈을 꿈꾸는 외로운 소녀의 만남

 

 

연극의 언어가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전할 수 있다면, 그 연극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매체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우리가 우리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우리 속에 있는 ‘부정적인’ 그 무엇을 제거하는 일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다.

                        "

 

2009년 “고아 뮤즈들”로 창단한 극단 ‘프랑코포니’는, 그동안 "유리알 눈”, “난 집에 있었지. 그리고 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지.”, “단지 세상의 끝”, “무대게임”, “이 아이”, “두 코리아의 통일”등 현대 프랑스어권 희곡(프랑스, 캐나다, 퀘벡, 콩고의 작가들이 프랑스어로 쓴 희곡)을 번역하고, 출판했으며, 동시에 공연으로 보여준, 한국 연극계에 존재하는 유일한 프랑스어 전문극단이다.

극단 ‘프랑코포니’는 번역가이자 드라마투르기의 역할을 하는 숙명여대 프랑스 언어문화학과 임혜경 교수와 상임연출인 외대 불어과 교수 까띠 라뺑의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기여와 활동으로 유지되고 있으며, 한국의 대표적인 희곡작가인 최인훈, 윤대성, 이현화, 이윤택의 희곡을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해서, 프랑스어권에 소개하는 작업도 함께하고 있다.

 

 

1981년에 태어난 프랑스-스위스계 극작가 레오노르 콩피노의 작품 <벨기에 물고기>는 지난 3월 15일부터 4월 2일까지 ‘알과 핵’ 소극장에서 공연했다.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자신 속에 소녀가 자라나고 있다고 믿는 40대 후반의 그랑드 무슈(Grande monsieur 전중용 역)와 열 살의 소녀 쁘티 피유(Petit fille 성여진 역)가 어느 겨울날 오후,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익셀 호수에서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다.

한국과 다른 벨기에의 문화적 풍토와 사회적 환경, 각기 다른 삶의 이야기를 지닌 두 사람이 서로 만나, 부딪치며,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꾸기 시작한다는 이 작품은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길거리, 버스, 가게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했던 작가의 기억에서부터 출발했다.

 

 

작가의 어린 시절 이야기이며, 작가의 상상력이 묻혀있는 바다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마치 동화와도 같은 환상적인 상상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지만, 버림받고, 상처 받은 두 존재의 만남과 서로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관용과 희망이 있는 삶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현실을 다룬 이야기다.

남자이면서도 여장을 즐겨하고, 스스로 여자임을 확인하는 중년의 남자는 우연히 만난 어린 소녀에게서, 자신이 낳았으나, 자신을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는 자기 아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외동딸로 부모님의 지나친 과보호 상태로 자란 열 살짜리 소녀는 부모님이 자기를 데리러 올 것이라고 믿으며, 호숫가에서 서성이다가 이 중년남자를 만나게 되고, 소녀의 부모는 교통사고로 둘 다 죽었다는 사실을 중년남자는 이 소녀에게 알려준다.

추운 겨울을 피해 잠시 머무르게 된 이 중년 남자의 집에는 화려한 목욕탕이 있고, 소녀는 자신이 스스로 물고기라고 착각하며, 물속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옆구리에 상처를 내고, 자신이 물고기이기 때문에 아가미로 숨을 쉰다고 착각하고 있는 소녀와 자신의 몸속에는 수많은 뱀들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입을 열면 뱀이 쏟아져 나온다고 소녀에게 겁을 주는 남자는 사실 서로가 사회적으로 완전히 단절된, 철저히 고립된 존재들이다.

 

 

소녀는 학교에서 소외되었고, 남자는 여장의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남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하게 된다. 오갈 데 없는 이 두 사람은 ‘물고기 장례’라는 게임을 고안해, 함께 집중한다. 부모님의 죽음을 실감하게 된 소녀와 미국에 있는 자신의 아들을 만나 볼 용기를 얻게 된 남자는 ‘물고기 장례’를 치룬 후, 미국으로의 여행을 준비한다. 그러나 그 여행이 쉽고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두 사람은 너무나 빨리 알아차리게 된다.

결국 절망과 체념에 익숙해진 두 사람은 다시 두 사람을 묶어 놓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고, 결국 남과 다를 수 있는 권리를 빼앗기게 된 것이다. 이때 소녀의 환상 속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다. 남자의 몸속에 있던 뱀들이 전부 다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을 소녀는 본 것이다. 시각적으로 충분히 표현되지 않은 이 마지막 장면이 오히려 이번 공연에서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이 작품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정체성을 상실한 인격’이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주변과 소통을 이루기 시작했다는 메시지를 잘 표현하고 있었다.

 

 

연극은 언어의 예술이며, 연극의 언어가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전할 수 있다면, 그 연극은 우리에게 살아있는 매체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우리가 우리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우리 속에 있는 ‘부정적인’ 그 무엇을 제거하는 일이라는 작가의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다.

 

김창화 (상명대 공연영상문화예술학부 연극전공 교수)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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