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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소설로는 흥미로운,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설득력을 잃은....

기사승인 2017.11.28  14:2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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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

남산예술센터 2017 시즌 마지막 연극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

 

박해성 각색 | 연출 (상상만발극장) / 남산예술센터

 

연출의 호흡과 연기자의 열정이 잘 맞아, 몰입할 수 있었으나 자칫 죽음을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순응주의적’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진정한 ‘애도’는 기억하는 것이며, 기억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다.

                            ”

 

소설가 권여선의 신작 중편소설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가 박해성 각색/연출로 남산예술센터 2017 시즌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지난 11월 23일부터 12월 3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공연됐다.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겪은 한국의 공연예술계가 ‘죽음’에 대한 기억 혹은 ‘애도’의 대안으로, 2002년 월드컵 경기가 마무리되어가던 6월의 마지막 날 밤에, 공원에서 살해당한 어느 여고생의 동생이, 언니의 ‘죽음’을 14년 동안 찾아다니는 이야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번 공연의 기획 및 제작을 담당한 김지우 PD는 프로덕션 노트에서 ‘죽음 앞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우리가 할 줄 아는 유일한 애도는 나 자신을 학대하는 것뿐이다.’ 라고 하면서 이유 없는 죽음에 대해, ‘너무 아파서, 외면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 연극은 소설의 기법을 빌려서, 연극치료의 스토리텔링기법을 사용했다. 다만 일반적인 치료연극에서의 스토리텔링과 다른 것은 소설의 1인칭 기법을 그대로 연극으로 가져와, 5명의 등장인물들은 서로 대화를 하기 보다는, 나름대로, 자기 자신의 문제와 상황을 대변하는 긴 독백으로 극을 이끌어 나간다. 그래서 죽은 혜언의 엄마역과 혜언의 죽음과 묘한 연관이 있다고 추정되는, 태림 역을 함께 맡은 우정원의 연기가 매우 설득력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후반에서 진술하는 결혼과 신앙생활, 어린아이의 실종 등이 14년 전 다언(신사랑 역)언니인 혜언의 죽음과 분명한 연결선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태림(우정원 역)의 진술로 살인자의 누명을 쓴, 만우(노기용역)는 그의 여동생 선우(신지우 역)를 통해, 무죄가 증명되었으나, 암으로 젊은 나이에 죽어 버린다. 연극은 다른 지역에서 전학 온, 혜언과 같은 나이의 상희(황은후 역)가 후배인 다언을 몇 차례 만나면서 진행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으나, 소설적 진행형을 그대로 무대에 적용한 듯, 매우 순차적이고, 설명적이며, 불필요한 반복과 재현이 넘쳤다.

그러나 소설적 표현법을 무대의 언어로 옮겨오면서, 연출은 상징과 축약을 매우 잘 활용해, 사건의 전개가 실제 ‘재현’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나, 배우들의 몸의 방향과 절제된 신체적 움직임으로, 재현 이상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대단한 ‘하이퍼 리얼리즘(hyperrealism :극사실주의)’을 보여주었다. 특히 죽은 언니에 대한 ‘애도’의 적극적인 신체화를 추구한 다언은 성형수술을 통해, 언니의 모습에 다가가고자 시도했다. 집요하게 언니 죽음의 원인과 이유를 파헤쳐나가는 다언역의 신사랑은 최근 다양한 역할과 출연으로, 매우 주목받고 있는 연기자이며, 특히 이번 공연에서, 매우 성숙하면서도 섬뜩한 집중력과 강한 에너지의 분출을 보여주어, 극 전체의 흐름을 강력하게 몰아가는데 적중했다. 연출의 호흡과 연기자의 열정이 잘 맞아, 관객들은 두 시간 가까운 공연시간 동안 완전하게 빠져들었다.

 

그러나 이 연극은 지나치게 소설의 기법과 작가의 상상력에 집중하여, 연극의 언어로 구체화될 수 있는, 인물의 감정과 사건의 숨은 의미를 드러내는 데에는 긍정적이지 않았다. 특히 죽음과 애도에 대한 분명한 연극적 제시나 연출의 비전이 드러나지 못해 매우 아쉬웠다.

또한 세월호와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가 이 연극에서 뚜렷하게 드러나지 못했다는 것도 큰 아쉬움이다. 작가는 소설의 제목을 성경의 한 대목에서 옮겨 왔다고 했다. 예수가 인간들이 하는 짓을 빗대어, 하느님에게 인간의 용서를 빌기 위한 의도로 사용했던, ‘주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알지 못하나이다.’에서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라는 소설의 제목을 찾았고, 우리는 우리가 하는 짓을 모르고, 당신은 우리가 한 짓의 의미를 모른다는 매우 중의적인 의미로 이 제목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칫 죽음을 운명처럼 받아들일 수 있는 ‘순응주의적’ 감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진정한 ‘애도’는 기억하는 것이며, 기억을 통해 극복하는 것이다.

 

김창화

상명대 공연영상문화예술학부 연극전공 교수

 

THE MOVE Press@ithemove.com

<저작권자 © THE MOVE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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